수동변속기 ‘손맛’을 원한다고? 빈말 아니고 정말로? 그렇다면 지금 당장 차를 사야 한다. 여기 남은 마지막 불씨마저 사그라들기 전에
찰떡궁합
경차는 약하다. 배기량 1.0L 깜찍한 엔진으로 달리려니 오르막만 만나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래서 수동변속기가 딱 어울린다. 클러치로 엔진 출력을 바퀴까지 직결해 작은 힘을 손실 없이 쓰고, 구조적으로 간단해 무게도 가볍다. 즉 힘은 키우고 무게는 던다.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동 경차는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했다. 기아 레이나 현대 캐스퍼는 처음부터 없었고, 기아 모닝 역시 2020년 조용히 수동 선택지를 지웠다. 경형 상용차 시장 주역이던 한국지엠 다마스와 라보도 이젠 없다. 오로지 단 하나, 쉐보레 스파크만 남았을 뿐이다.
최고출력 75마력 1.0L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맞물린 단순한 조합. 몸무게는 무단변속기 얹은 스파크보다 10kg 가볍고 연비는 1L에 0.6km 더 높다. 어디 그뿐일까. 가격은 174만원 더 가뿐하다. 아, 그런데 그 소문 들었는지 모르겠다. 오는 8월에 쉐보레가 스파크를 단종한다던데….
CHEVROLET SPARK
I3 1.0L, 75마력, 5단 수동, FWD
작고 가벼운 매력
준중형 승용차는 원래 재미난 차급이다. 작고 가벼우며 실용성까지 챙겨 전 세계 젊은이의 사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선 현대 아반떼, GM대우 라세티 프리미어, 기아 포르테 쿱이 유명했고, 해외에선 폭스바겐 골프, 혼다 시빅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수동변속기를 맞물리면? 운전 재미를 더 짜릿하게 누릴 수 있다. 3단 기어에서 엔진 회전수를 6500rpm으로 레드존 일보 직전까지 끌어올리다 4단으로 번개처럼 기어를 바꿔 물리는 손맛을 상상해 보라. 그 차가 100마력이건 200마력이건 짜릿할 수밖에 없다.
준중형 차급에 수동변속기가 비교적 많이 남은 이유다. 아반떼는 자연흡기 모델부터 204마력 N라인과 280마력 N까지 고루 갖췄다. 현대 벨로스터 N은 처음엔 수동변속기만 팔던 차다. 이게 전부다. 다른 차는 없다.
HYUNDAI AVANTE
I4 1.6L, 123마력, 6단 수동, FWD
I4 1.6L 터보, 204마력, 6단 수동, FWD
I4 2.0L 터보, 280마력, 6단 수동, FWD
HYUNDAI VELOSTER N
I4 2.0L 터보, 275마력, 6단 수동, FWD
순수한 운전 재미
“얼간이들이 자동변속기 스포츠카를 산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아주 오랜 옛 얘기다. 지금은 최고의 스포츠카로 손꼽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도 모두 자동변속기를 얹으니까. 이제는 자동변속기 모델이 더 빠르고 효율까지 뛰어나 고성능 세계에서마저 수동변속기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하지만 본디 스포츠카란 숫자놀음보다는 재미를 탐하는 감성적인 존재가 아니던가. 수동 스포츠카는 사라지지 않는다. 포르쉐 718, 911 GT3, 마쓰다 MX-5 등등…. 단지 우리나라에서 살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토요타 86이 대단히 소중하다. 정식으로 우리나라 땅을 밟는 유일무이한 수동 스포츠카다. 이보다 더 순수할 수는 없다. 앞쪽에 얹은 수평대향 자연흡기 2.0L 엔진 힘을 수동변속기를 거쳐 뒷바퀴로 전한다. 폼 잡는 용도가 아닌 진정한 스포츠카를 고른다면 단연 최고다. 지금 출시를 준비 중인 신형 GR86도 수동을 꼭 들여오길 바란다.
TOYOTA 86
F4 2.0L, 207마력, 6단 수동, RWD
진입장벽 허물자
과거 상남자의 자동차였던 SUV는 수동변속기 선택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2000년대 초반 고급 SUV였던 현대 테라칸이나 쌍용 렉스턴까지 모든 SUV에 수동변속기가 들어갔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쌍용 티볼리 홀로 명맥을 잇는다.
목적은 뚜렷하다. 오로지 경제성을 겨냥한다. 티볼리 가격표를 보면 1659만원짜리 가장 저렴한 V1 트림만 수동변속기를 얹는다. 앞쪽 안개등이나 운전석 시트 높이 조절장치까지 빠진 한 마디로 ‘깡통’. SUV 맛을 누릴 네바퀴굴림 시스템 조합도 어렵다. 변속 손맛보다는 사실상 시작 가격을 낮추기 위한 모델이다.
그래도 기계적으로 우월하다. 자동변속기 모델보다 최대토크가 2.1kg·m 큰 28.6kg·m고, 무게는 55kg 가볍다. 변속 손맛과 더불어 강력한 성능까지 누릴 수 있는 셈이다. 그만큼 연비는 1L에 12.5km로 0.5km 더 좋다. 불편함만 감수하면 매력적인 선택지다. 국내 유일 수동 SUV라는 희소성도 있고.
SSANGYONG TIVOLI
I4 1.5L 터보, 163마력, 6단 수동, FWD
한 푼이 아쉽다
돈 벌려고 일할 때 내 돈 쓰면 억울하지 않은가? 같은 이유로 한 푼이 아쉬운 상용차에 수동변속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장비다. 찻값을 낮추고 연비를 높이며 정비 비용까지 저렴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강력한 토크를 뿜는 디젤 엔진과 맞물린 수동변속기는 시동 꺼뜨릴 걱정도 적다.
국내 모든 상용차가 수동변속기를 얹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산 1t 트럭 대명사인 현대 포터와 기아 봉고는 물론, 최근 등장한 MPV 현대 스타리아까지 모두 수동변속기 선택지를 마련했다. 유럽산 밴 르노 마스터는 아예 자동변속기가 없다. 픽업트럭 쌍용 렉스턴 스포츠는 기본 모델만 수동이다.
HYUNDAI STARIA
I4 2.2L 터보 디젤, 177마력, 6단 수동, FWD
HYUNDAI PORTER II
I4 2.5L 터보 디젤, 133마력, 6단 수동, 4WD
KIA BONGO III
I4 2.5L 터보 디젤, 133마력, 6단 수동, 4WD
I4 2.4L LPG, 159마력, 5단 수동, RWD
SSANGYONG REXTON SPORTS
I4 2.2L 터보 디젤, 202마력, 6단 수동, 4WD
RENAULT MASTER
I4 2.3L 트윈터보 디젤, 163마력, 6단 수동, FWD
*각 제원은 수동변속기 최고사양 기준
글 윤지수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