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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ternationalle
랭테르나쇼날
작사: 외젠 에덴 포티에Eugène Edine Pottier
작곡: 피에르 드 가이터Pierre De Geyter
1. 개요
카이저라이히의 진주인공 제3인터내셔널 진영의 주제가. 프랑스 코뮌으로 플레이 하면 오리지널인 프랑스어 버전을 들을 수 있고, 브리튼 연방으로 플레이 하면 영어 버전, 이탈리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플레이 하면 이탈리아어 버전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외의 몇몇 국가에서도 사회주의 계열 이데올로기가 주지 이념이 되면 들을 수 있습니다.
2. 작사 및 작곡 배경
1870년 보불전쟁은 나폴레옹 3세가 스당에서 프로이센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항복함으로써 사실상 끝났습니다. 비스마르크는 투항한 프랑스 황제를 극진히 대접했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제2제정이 무너지면 종전조약을 맺을 정통성 있는 정부가 없어서 장기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제가 직접 이끈 주력군이 괴멸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파리 시민들은 제정 붕괴와 공화정 복귀를 선언하고 항쟁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임시정부는 알자스-로렌 지방의 할양을 요구하는 프로이센에게 단 1인치의 영토도 넘기지 않는다고 답함으로써 전쟁은 다음 막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프로이센 재상은 예상치 못한 프랑스 국민들의 저항에 당황했으나, 참모총장 大몰트케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은 신속하게 지방의 프랑스군을 각개격파하고 파리를 포위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파리 시민들은 동물원의 동물들까지 잡아먹으며 4개월을 버텼으나 쥐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자 항복하고 맙니다.
프랑스인들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막대한 전쟁 배상금, 핵심 공업 지구인 알자스-로렌의 상실 같은 물질적인 손실보다도 정신적인 상처가 컸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을 재패했던 대육군Grande Armée이 먼저 선전포고를 해놓고도 국경도 제대로 넘어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는 사실과 프로이센 국왕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전쟁을 수습하고 성립된 제3공화정은 나폴레옹 3세가 퇴위했을 뿐이지 제2제정과 거의 흡사한 인물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선거를 통해 국민의회를 장악한 왕당파는 왕정복고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었습니다. 무능한 정부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만이 더해가고 있던 와중에 정부가 큰 삽질을 하고 맙니다. 임시정부였던 보르도에서 파리로 복귀하면서 외회를 베르사유에 설치했던 겁니다. 이건 의회를 장악한 왕당파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고, 프랑스인들은 앙시엥 레짐의 상징에 자리 잡은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렸습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의 주체였던 수도 파리의 시민들은 분노 폭발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국민위병에게 어떠한 명예로운 처우도 없이 해산을 명령하면서 마침내 폭발했습니다. (국민위병은 18세기 말~19세기 초 프랑스의 의병들로서 사실상 예비군 역할을 했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 프랑스의 높으신 분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런’해버리는 게 주특기였기 때문에 정규군 같은 전투력이 없었음에도 애국심으로 충천한 사기 하나로 수차례 나라를 망국의 위기에서 구한 국민위병의 위상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파리의 의용군이 해산 명령에 불응하자 아돌프 티에르 대통령(<라인강의 수비>편에서 나온 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왕당파는 아닙니다. 다수파인 왕당파가 누구를 왕으로 옹립할지를 두고 계파 간 갈등에 빠지면서 소수파인 공화파의 거물인 이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국민위병을 강제로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정규군을 몽마르트 언덕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한 군대가 지휘관들의 명령을 무시하고 파리 시민들의 편에 서버렸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수도 파리의 통치권을 상실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세계 최초로 인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자치 정부를 선포했으니 그것이 마르크스가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로 간주한 파리 코뮌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인민주권을 극혐하는 독일 제국 정부의 압력을 못 이기고 프랑스 근대사 최악의 흑역사라고 평가받는 결정을 하고 마는데, 코뮌 정부와 협상을 한 것이 아니라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진압에 나섰던 겁니다. 시민군을 상대로 중앙군이 소극적으로 나서자 파리가 소재한 일드프랑스 지방과 지역감정이 나쁜 지방의 병력을 차출하여 싸우게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요. 게다가 자국민을 밟겠다고 주적인 독일에게 빌어서 포로로 잡혀있던 육군 40만을 돌려받습니다.
군사 교리도 잡혀있지 않고 훈련도 못 받은 코뮌군이 연패하면서 파리 코뮌은 두 달 만에 붕괴합니다. 최후의 시가전이 벌어지는 동안 코뮌의 과격파들은 파리에 살고 있던 친정부 성향의 요인들을 살해하고 구시대의 유물과 유적지를 파괴했습니다. 정부군도 이에 대한 보복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즉결처형 하면서 일주일 동안 파리 시민 수 만 명이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프랑스 근대사 최악의 참극인 ‘피의 일주일’입니다.
코뮌 봉기가 한창일 때 유명한 시인이자 지난 1848년 2월 혁명의 주요인물 중 하나였던 외젠 포티에는 전 세계 노동계급에게 민족과 국경을 초월한 단결을 호소하는 노래 가사를 썼습니다. 코뮌 당시에는 <라 마르세예즈>의 멜로디에 맞춰서 불렀다고 합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실제로 각국의 지식인, 노동자들이 코뮌군을 돕기 위해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고 이런 국제주의 전통은 훗날 스페인 내전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파리 코뮌이 실패했을 때 포티에는 영국으로 망명했고, 1873년 프랑스 사법부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1880년 프랑스 공화국에 민주주의가 완전히 자리잡게 되면서 사상범인 그는 특별 사면 되어 귀국합니다.
그리고 1888년 벨기에에서 프랑스로 이민 온 노동자 출신의 작곡가 피에르 드 가이터가 이 가사만의 곡조를 만들어서 붙이면서 오늘날 불리는 <인터내셔널가>가 완성되었습니다. 포티에는 1887년에 죽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드 가이터는 1932년에 죽었는데, 살아있는 동안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자기 노래가 소련의 국가로 정해지는 것도 보았으며, 레닌의 초청을 받아 성대한 대접도 받았습니다.
3. 가사
(1절)
Debout, les damnés de la terre
Debout, les forçats de la faim
La raison tonne en son cratère
C'est l'éruption de la fin
Du passé, faisons table rase
Foule esclave, debout, debout
Le monde va changer de base
Nous ne sommes rien, soyons tout
일어나라,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아
일어나라, 굶주림의 노예들아
이성의 불길이 분화구에서 타오르니
이것은 마지막 외침이 되리라
과거는 깨끗한 판으로 덮일지니
억압받은 민중들아,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상은 바야흐로 바닥에서부터 뒤바뀌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들이 전부가 되리라
(후렴)
C'est la lutte finale
Groupons-nous, et demain
L'Internationale sera le genre humain
C'est la lutte finale
Groupons-nous, et demain
L'Internationale sera le genre humain
이것은 최후의 투쟁이니
모두 단결하라, 그리고 내일
인터내셔널은 인류의 미래가 되리라
이것은 최후의 투쟁이니
모두 단결하라, 그리고 내일
인터내셔널은 인류의 미래가 되리라
(2절)
Il n'est pas de sauveurs suprêmes
Ni dieu, ni César, ni tribun
Producteurs, sauvons-nous nous-mêmes
Décrétons le salut commun
Pour que le voleur rende gorge
Pour tirer l'esprit du cachot
Soufflons nous-mêmes notre forge
Battons le fer quand il est chaud
어디에도 위대한 구원자는 없노라
신도, 황제도, 달변가도 아니다
노동자들아, 우리들 스스로를 구하고
공동체의 구원을 선언하라
그리하여 강도들의 탐욕을 환원하고
감옥에 갇힌 영혼들을 해방시키리라
우리네 대장간에서 달구어진
강철이 아직 뜨거울 때 두드리자
(3절)
L'État comprime et la loi triche
L'impôt saigne le malheureux
Nul devoir ne s'impose au riche
Le droit du pauvre est un mot creux
C'est assez languir en tutelle
L'Égalité veut d'autres lois
Pas de droits sans devoirs, dit-elle
Égaux, pas de devoirs sans droits
국가는 억압하고 법은 기만하며
세금은 불행한 이들의 피를 빨아먹는다
부자들에게는 어떠한 의무도 부과되지 않고
약자의 권리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미 감시와 탄압으로 쇠약해진
평등의 정신은 새로운 법을 갈망하니
의무 없는 권리 없다는 말처럼
권리 없이는 의무도 존재하지 않노라
(4절)
Hideux dans leur apothéose
Les rois de la mine et du rail
Ont-ils jamais fait autre chose
Que dévaliser le travail?
Dans les coffres-forts de la bande
Ce qu'il a créé s'est fondu
En décrétant qu'on le lui rende
Le peuple ne veut que son dû
거짓된 신화 속에 감추어진
광산과 철도의 지배자들
그들이 노동의 결실을 훔치는 것 외에
대체 무슨 일을 하였단 말인가
강도들의 금고 속에서
그것이 녹은 채로 만들어졌으니
이제 그들에게 반환을 명령하면
비로소 인민의 빚을 되찾게 되리라
(5절)
Les rois nous saoulaient de fumée
Paix entre nous, guerre aux tyrans!
Appliquons la grève aux armées
Crosse en l'air et rompons les rangs
S'ils s'obstinent ces cannibales
A faire de nous des héros
Ils sauront bientôt que nos balles
Sont pour nos propres généraux
위정자들이 우리를 중독시키니
우리들에게는 평화를, 폭군들에게는 전쟁을!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하고
투쟁을 개시하여 계급을 타파하자
세류에 저항한다면, 이들 야만인들은
우리들을 영웅으로 만들게 되리라
그들 야만인들은 우리가 복종하는 대상은
우리들 스스로뿐임을 깨닫게 되리라
(6절)
Ouvriers, paysans, nous sommes
Le grand parti des travailleurs
La terre n'appartient qu'aux hommes
L'oisif ira loger ailleurs
Combien de nos chairs se repaissent
Mais si les corbeaux, les vautours
Un de ces matins disparaissent
Le soleil brillera toujours
직공들, 농부들, 우리들은
위대한 노동자의 당이다
지구는 오직 인간의 소유이고
무위도식하는 자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던가
하지만 만일 그 약탈자와 위정자들이
어느 날 아침 사라진다면
태양이 영원토록 밝게 비추리라
4. 역사
<인터내셔널가>는 생일축하 노래, 크리스마스 캐럴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나키즘부터 스탈린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계열 이데올로기를 이념으로 삼는 단체는 나라를 막론하고 이 노래를 부릅니다. 사회주의 사상의 대부 마르크스는 자기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며 마르크스주의는 깠지만 노동계급 국제주의는 명시적으로 좋아했습니다. 마르크스 공인의 사상을 대표하는 노래이니 사회주의 계열에서는 즐겨 불릴 밖에요. 소련에서는 아예 공식 국가였습니다.(성질 더러운 콧수염이 1944년에 그 유명한 <소비에트 연방 찬가Гимн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로 갈아치우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오늘날에도 각국의 좌익 정당들이 공식 행사에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노래가 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노래를 즐겨 부른 국제기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내셔널은 노래 제목일 뿐만 아니라 국제기구의 명칭이기도 합니다. 파리 코뮌이 설립되었을 때에는 이미 영국에 제1인터내셔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동계급 국제주의를 실천하지 못하고 민족주의 성향의 사회주의 세력에 밀린 제1인터내셔널은 유명무실한 기구가 되어 자연스럽게 해체됩니다. 이후 독일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제2인터내셔널이 성립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국경을 초월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계급을 초월한 각국 국민들의 단결에 밀려버렸고,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 노선이 제2인터내셔널에 반발하면서 해체됩니다.
제3인터내셔널(카이저라이히가 아니라 현실의)은 바로 소련이 주도한 코민테른인데,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우방국을 관리하는 기구로 변질되었고, 1943년에는 해체되었습니다. 카이저라이히에서는 프랑스 코뮌이 주도하는 국제 사회주의 조직체입니다. 생디칼리즘이 주류지만 여타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국가들도 가입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인터내셔널로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소련에 대항하여 구성한 제4인터내셔널이 있습니다. 카이저라이히에서는 부하린이 제2차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키면 생디칼리즘이 주류인 제3인터내셔널에 대항하여 레닌주의를 기치로 내건 제4인터내셔널을 구성합니다.
재미있게도 오랫동안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유럽에서는 이 노래가 민중가요로도 유명한데, 소련이 무너지고 민주화 될 때 공산당 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에서 시위대가 즐겨 불렀기 때문입니다. 노래 가사가 단결하여 압제에 저항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주어와 목적어를 조금만 바꾸면 인민의 압제자인 공산당 독재를 규탄할 수도 있는 거지요. 애당초 20세기 주류 사회주의였던 스탈린주의 계열의 공산주의는 조국을 중시하는 1국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을 초월한 노동계급 국제주의를 부르짖는 이 노래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5. 한국에서의 <인터내셔널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불리는 노래라면서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생소할까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지만, 반공을 제1의 국시로 규정했던 게 냉전시대 우리나라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생소한 노래입니다. 공산주의를 주지 이념으로 하는 북한이 주적인 상황에서 국내의 사회주의 계열은 독재 정권의 탄압이 없었더라도 국민정서상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성장하려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독재 정권도 우파, 절대다수의 민주화 세력도 우파였으니 <인터내셔널가>를 법정 금지하지 않았더라도 불릴 일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국내 좌파라는 것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마개조한 스탈린주의 또는 그걸 다시 마개조한 주체사상(...) 계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니 <인터내셔널가>를 잘 안 부릅니다. 아니, 아예 모릅니다. 우스갯소리로 <인터내셔널가>를 부를 줄 알면 PD고 부를 줄 모르면 NL이라는 말이 있을 지경이지요. PD들도 국제주의 이념에 충실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좋은 노래라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념을 떠나서 민중가요로서의 측면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치사에서 중요한 국면에서는 있는지도 몰랐던 노래가 이제 와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불리기에는 우리나라만의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우리 고유의 민중가요들의 무게감이 특별하지요.
우리나라에 <인터내셔널가>가 처음 들어온 건 일제강점기에 조선공산당이 세워지면서였습니다. 지금도 북한이 점거한 이북 지역에서는 그 시절 버전의 원조 한국어판(?)을 부릅니다. 그렇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대한민국 이남 지역에서 부르는 건 원조 한국어판이 아니라는 건데, 87년 민주화 이후 사상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됨에 따라 오늘날에는 <인터내셔널가> 자체가 금지곡인 건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버전은 북한에서 지금도 정치적 목적으로 간간히 부르는 노래라서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에 전노협(민주노총의 전신)이 가사를 다시 번역한 버전을 부르는데, 총 3절로 구성된 것으로 보아 프랑스어판(총 6절)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소련판(총 3절)을 번역한 것 같습니다. 근데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도 소련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거라서 오늘날 북한이 부르는 것도 6절이 아닙니다.
5. 관련 매체
카이저라이히 버전.
대한민국 버전.
영화 박열의 OST 버전.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인터내셔널가>가 뭔지 처음 알았습니다. 구치소에서 박열과 동지들이 일본어로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카이저라이히 하면서 많이 들었던 곡조가 나오네?’ 해서 찾아보게 된 것이 계기. 해당 장면을 구할 수는 없었고, 가사 없이 반주만 나오는 버전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다루고 있는 영화 건국대업에서 중국공산당 초기 멤버들이 부르는 장면. 중국공산당이 장시성에 건국했던 중화소비에트공화국에서는 레닌 시절 소련과 마찬가지로 <인터내셔널가>가 국가였습니다. 이 영화는 양안관계가 개선된 2009년에 제작된 영화라서 중국 영화 치고는 국민당 정부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말하자면 ‘국민당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ㅂㅅ이 많았고, 공산당에는 더 훌륭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느낌.
<인터내셔널가>의 세계구급 위용을 느낄 수 있는 편집본. 47개국 번역을 한 소절씩 이어 붙여서 만든 버전. 한국판, 북한판이 따로 나오고, 영국판, 미국판이 따로 있어서 47개 언어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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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비록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꽤 극적인 연출을 보여준 닥터 지바고의 인터내셔날 합창 부분
https://youtu.be/jwbe4hRdwGg
PLAY
근데 당시에는 인터내셔널가보다 라 마르세예즈가 더 즐겨불려졌다는게 유머...
인터내셔널은 영원하리 파리코뮌의 불길이여 영원하라
이야기로는 술집에서 파리코뮌의 혁명에 감동받아 시를 읊는 것을 그 자리에서 곡조를 써냈다는 믿기 힘든 카더라가 있긴 하지만 역사상 가장 크게 성공한 곡이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죠.
"그가 이 곡을 썼을 때 사회주의 노동자는 겨우 10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만명이 부른다"라는 레닌의 말이 이 노래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줄 듯
옛날 비행기 테러 영화 '에어 포스원' 에서도 이노래가 나오더군요. 카자흐 초민족주의 테러리스트들이 미국대통령을 잡아둔 채 미국에 납치되었다가 석방되고있는 라덱장군 앞에서.. 그러나 바로 죽네요 ㅋ
가사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뜬금없는 연출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