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도, 일본을 꺾고 멕시코로 향했을때, 국민 모두 만세를 외쳤지.
6월항쟁이 있기 얼마전이었던것 같아..
아버지가 "민주(民酒)"라고 매직으로 굵게 쓴,
막걸리 빈병을 들고 집에 귀가하셨던 그 무렵.
솔직히 민주, 군정이 정확히 뭔지 모를 때였지만
확실한것은 아버지는 늘 "늙은 노동자의 노래"를 부르셨고, "철의 노동자"를 부르셨어..
그때.
우리나라가 월드컵을 진출했지.
기억나는 건 후지필름이 스폰서를 했다는 사실과
녹색 필름통 포장지 마다, 멕시코 월드컵 마스코트가 그려져 있었다는 것.
우연스럽게도 멕시코 월드컵의 상징색은 녹색이었거든.
마라도나가 나왔어. 첫게임인데..
허정무가 열심히 막았지.. 그냥 열심히 막는수 밖에 없었겠지.
박창선이 중앙선 근처에서 찬 공이 골이 되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지.. 박창선이 유공에 있기전 할렐루야 축구단이었나..
할렐루야가 한참 잘나가던때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유공 코끼리 축구단도 생각난다... 지금은 부천 SK ? ㅎㅎ
두번째 게임은 비오던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때만큼 수 없이 오는 비를 본적이 별로 없는듯 해..
아.. 피스컵 결승전도 만만치 않았구나..
어쨌든, 그 이후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김종부가 어디로 넣는지도 모르게
빗속을 뚫고 한골을 넣었지.. 불가리아..
우리나라 최초의 무승부 경기.
세번째 게임은 이탈리아 였나..
로베르또 바죠가 있던 팀이었는데.. 최순호가 정말 멋진골을 넣었던 게임.
솔직히 최순호는 이 경기 하나로 지금까지 버틴다고 봐야지..
근데 말이야.. 멕시코 월드컵때는 차범근도 나왔었어.
"아빠.. 차범근이 그렇게 잘해요?"
"응.. 차범근같은 선수 3명만 있어도 우리가 이길꺼야"
늘 그랬어.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차범근은 영웅이었지.
밥많이 먹어야 차범근 처럼 키 큰다고도 하셨고, 열심히 공부해야 차범근처럼
외국도 갈수 있다고 하셨거든..
근데, 차범근은 별로 큰 활약을 못했어..
어린 마음에 속으로 "에이..저게 뭐야.."라고 했었지.
2002년 월드컵 만큼은 아니었지만, 멕시코 월드컵으로 인해서
동네축구가 여기저기많이 열렸어.
일명 벽치기 테크닉이 통하는 골목축구.
그땐, 연탄도 많이 땠는데..
다 타버린 연탄 두개로 골목 양끝을 막아놓고 제일 찌질한 놈을
골키퍼로 세워두던....
보인이라는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놈은 내가 뭐라고 하기만 하면 우는 울보였거든..
그래서 그놈을 골키퍼 세워두고, 난 열심히 슛을 날려댔어. 그놈이 지루해 할때까지...
그놈은 뭐하고 사나..
같은 동네 형이 한명 있었거든.
그형은 아무래도 나보다 나이도 많고 하니까, 나보단 축구를 더 잘한단 말야.
벽에 공치고 내 옆으로 슥 지나가서 다시 공을 받는 벽치기 기술도 나보다
훨씬 잘했고..
그 형 어머니는 무당이었어.
우리 엄마는 그 형네 집에도 가지 말고, 그형이랑 놀지 말라고 했거든..
그 형네집에 들어가면 늘 향 냄새가 나고, 부적이 붙어있어서 무섭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카리스마 있는 골목축구 주장이었는데..
나? 난 부주장 ㅎㅎ
그형은 최순호. 난 변병주.
변병주가 얼마나 빠르냐면, 캐스터가 항상 그랬거든
"아 변병주 총알같이 달립니다.아"
변병주는 총알이었지.
내 기억속의 멕시코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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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이의 어릴적 회고~~(86멕시코 월드컵)__늘 그랬어.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차범근은 영웅이었지.
아수라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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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29 23:0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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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엄마 아빠도 차범근을 최고로 쳐요..ㅋㅋ 차범근이 옛날에 엄청 잘했다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