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473
■ 2부 장강의 영웅들 (129)
제7권 영웅의 후예들
제 16장 신궁(神弓) 양유기 (6)
진여공(晉厲公)의 눈과 귀를 가리는 간신배의 우두머리격으로 서동(胥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서동은 진성공 시절 조순에 이어 잠깐 재상직에 오른 바 있던 서극(胥克)의 아들이었다.
서극(胥克)은 정신착란의 병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얼마 못 가 극결(郤缺)에 의해 재상직에서 쫓겨났었다.
이후로 서동은 아버지가 재상에서 쫓겨난 것이 극결 때문이라며 극씨 일문을
몹시 원망하고 미워했다.'언젠가는 극씨(郤氏) 일문을 몰살시키리라!'그는 이렇게 결심했다.
서동(胥童)은 천성적으로 간교한 사람이었다.
그는 진여공이 자신을 총애하고 있음을 이용하여 궁에 들어갈 때마다 부탁했다.
"신을 경(卿)에 임명해주시면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러고는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 부국강병책을 진언하곤 했다.
진여공(晉厲公)은 서동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경(卿)은 정원제였다.
이 무렵, 진나라는 7명의 경(卿)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군 대장을 비롯한 상, 하군 대장 및
좌장으로 구성된 6경에 신군(新軍) 대장을 포함한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결원이 없는 한 다른 사람을 함부로 경(卿)이라는 벼슬에 올릴 수 없었다.
이때부터 서동(胥童)은 극씨 일족을 제거할 구체적인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며칠 후, 서동이 다시 진여공을 찾아가 아뢰었다."지금 우리 나라는 극씨(郤氏) 일족의 세력이
엄청나서 모든 일을 제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습니다.
잘못하다간 주공께선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맙니다.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세도를 꺾으십시오. 극씨 일족만 몰아내면 벼슬자리는 남아 돌것이고,
그 자리를 주공의 심복들로 채우면 주공의 위용과 권세는 더욱 만천하에 빛날 것입니다."
서동의 말에 진여공(晉厲公)은 귀가 솔깃했다."그렇군. 하지만 극씨 일족이
이렇다 할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무슨 죄목으로 그들을 몰아낼 수 있단 말인가?"
서동(胥童)은 눈을 빛내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아직 모르셨습니까? 극씨 일문이 초(楚)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것이 사실인가?""그러합니다. 지난번 언릉 싸움에서 신군대장 극지(郤至)는 초공왕으로부터
활을 선물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로잡을 수 있었던 정나라 군주를 놓아주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이 목격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신의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이번에 포로로 잡아온 초왕의 아들 웅패(熊茷)를 불러 물어보십시오."
"극지(郤至)가 초나라와 내통한 것이 사실이라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대는 지금 가서
당장 웅패를 데리고 오라."궁을 나온 서동(胥童)은 그 길로 웅패가 구금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웅패를 진여공에게로 데리고 가기 전에 은밀히 말했다.
"공자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소?"웅패(熊茷)가 대답했다.
"어찌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그대가 나를 위해 힘써준다면
나는 결코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좋소이다. 내가 공자를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줄 터이니, 공자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오."
"말씀만 하십시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자신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지고 있는 웅패를 보고
서동(胥童)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가까이 오게 하여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알겠지요? 우리 주공께서 그대에게 극지(郤至)에 관해 묻거든......그렇게만 대답하면 되오.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다 처리하겠소이다.""명심하겠습니다."
말을 맞춘 두 사람은 곧 궁으로 들어갔다.
진여공(晉厲公)은 좌우 측근들을 밖으로 내보낸 후 웅패를 향해 물었다.
"극지(郤至)가 예전부터 초나라와 내통하고 있었다는데, 그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만일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면 내 그대를 초(楚)나라로 돌려보내주겠다."
"대략은 알고 있습니마단......워낙 내용이 엄청난 일이라서 군후께서 믿어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아무 염려하지 말라. 그저 알고 있는 사실대로만 말하라."
이에 웅패(熊茷)는 서동이 일러준 내용을 그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군후께서도 알다시피 우리 초나라 영윤은 공자 영제입니다. 그런데 공자 영제(嬰齊)는
전부터 비밀리 진나라 세도가인 극씨 일문과 가까이 지내며 수시로 서신 왕래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영윤 영제에게 온 극지(郤至)의 편지를 훔쳐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말씀드리면, '지금 우리 주공은 대신을 믿지 않고 음탕하기만 하여 백성들에게서 마저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소. 우리 나라 사람들은 한결같이 선군 진양공(晉襄公)을 추모하고 있소."
"진양공의 손자로 주(周)라는 분이 있소. 지금 그분은 주나라에서 벼슬을 살고 계시는데,
인품이 높고 신의가 있는 분이오. 나는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지금 임금을 내쫓고
공손주(公孫周)를 모셔다 새군주로 모실 생각이오.
영윤께서도 우리 일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군후께서는 어찌 아셨습니까?"
약 40여 년 전의 일이었다.진양공의 서장자에 담(談)이라는 공자가 있었다.
진양공(晉襄公)이 죽자 당시 재상인 조순은 진양공의 적자인 진영공(晉靈公)을 군주로 올려 세웠다.
이에 진영공의 서형이 되는 공자 담(談)은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강성을 떠나 주나라로 가서 살았고,
그 곳에서 아들 하나를 낳았다. 주나라에서 났다고 하여 이름을 주(周)라 지었다.
그 후 진영공이 피살당하자 민심은 진문공을 그리워하게 되었고, 대신들은 진문공의 아들이자
진양공의 동생인 진성공(晉成公)을 군위에 모셨던 것이다.
그래서 진나라는 진양공의 후손이 군위를 이어받지 못하고
진성공의 아들이 뒤를 이어 진여공까지 기르게 되었다.
그런데 진여공(晉厲公)은 황음무도하고 남색(男色)까지 즐기는 바람에 자식을 낳지 못했다.
중신들은 자연히 다음 대(代)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떠오른 사람이 바로 진양공의 손자인
공손 주(公孫 周)였던 것이다.웅패의 말을 들은 진여공(晉厲公)의 얼굴에 노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극지(郤至)가 감히 그런 서신을 초나라 영윤에게 보냈단 말이지?"서동(胥童)이 기회다 싶어
얼른 끼어들었다."그러고 보니 극씨 일족들의 행동에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언릉 전투에서 주공의 병차가 진흙 수렁에 빠진 것도 어자 극의(郤毅)가 일부러 한 짓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아무래도 역모가 상당히 진척된 것 같습니다.""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을까?"
"극씨 일족이 역모를 꾸민 게 사실이라면 어찌 증거가 나오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주공께서는
극지(郤至)를 사신으로 임명하여 주왕실에 보내십시오. 그리고 비밀리 측근을 보내어 극지의
거동을 염탐하십시오.""만일 극지(郤至)와 공손 주(公孫 周)가 서로 짜고 반역을 도모했다면
두 사람은 반드시 서로 만나 의논할 것입니다.
이것만 확인되면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습니까?"
"그 계책이 좋구나."며칠 후 진여공(晉厲公)은 극지를 불러 명했다.- 지난 해 언릉 전투에서
우리는 초나라를 이겼다. 경(卿)은 이 승리를 주천자(周天子)에게 보고하고 돌아오라.
아무것도 모르는 극지(郤至)는 진여공의 명을 받들어 초군(楚軍)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수레에 싣고 낙양성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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