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475
2부 장강의 영웅들 (131)
제8권 불타는 중원
제 17장 바람, 또 바람 (1)
- 상군 대장 극기(郤錡)가 피살된 듯싶습니다.
- 극기(郤錡)뿐만 아니라 극지(郤至), 극주(郤犨)도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연이어 날아드는 소식에 중군 원수 난서(欒書)는 기절초풍할 듯 놀랐다.
"범인은 누구라더냐?"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장 병사들도 가세한 것으로 보아 군부의 소행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반역이 아닌가, 주공의 안위가 걱정이다."난서(欒書)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대문 밖에 세워져 있는 수레에 올라타 궁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상군 좌장 순언(筍偃)도 급보를 받고 공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난서와 순언은 조문 앞에서 마주쳤다.두 사람이 다투듯 공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서동(胥童)이 무장 병사를 거느리고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오? 지금은 궁 안으로 들어갈 수 없소."
난서(欒書)는 평소 서동의 무리가 진여공에게 아첨하며 가까이 맴도는 것을 무척 못마땅히
여기고 있었다.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로 꾸짖었다."우리는 어떤 자들이 난을 꾸몄는가
알아보기 위해 입궁하려는 것이다. 너 같은 쥐새끼 무리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나타나
버릇없이 구는가. 썩 물러가지 못할까!"서동(胥童)은 본래 난서와 순언까지 해칠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그들 입에서 쥐새끼 운운하는 말이 나오자 눈이 뒤집혀지는 듯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노려보더니 마침내는 수하 병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저자들도 3극 일파와 함께 반역을 꾀한 놈들이다. 당장 체포하라!"
난서와 순언은 졸지에 몸이 묶여 조당 앞으로 끌려갔다.
조당에는 극기, 극지, 극주의 끊어진 목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진여공이 장어교(長魚矯) 등과 함께 목을 확인하는 중에 조당 문이 열리며 서동이 들어왔다.
서동(胥童)은 그때까지도 분을 이기지 못해 씨근거리고 있었다.
진여공(晉厲公)이 그런 서동을 돌아보며 물었다.
"3극을 모두 처단했는데, 너는 어째서 성을 내고 있느냐?"서동(胥童)이 대답했다.
"난서(欒書)는 3극과 가장 친한 사이입니다. 또 순언(筍偃)은 극기의 직속부하입니다. 이제 3극이
다 죽음을 당했는데, 어찌 그 두 사람이 가만히 있겠습니까,방금 전 그들은 저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그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들을 살려두면 그들은 극씨 일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주공을 해치려들 것이 분명합니다. 이 참에 아예 목을 베어 후환을 없애십시오."
진여공(晉厲公)은 눈살을 찌푸렸다."난서와 순언은 이번 일과 아무 관계가 없다.
하루아침에 3경(三卿)을 죽였는데, 어찌 또 2경(二卿)을 죽일 수가 있겠는가. 두 사람을 풀어주어라."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동(胥童)은 밖으로 나가 난서와 순언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진여공(晉厲公)이 난서와 순언을 들어오게 하여 말했다.
"극씨가 대죄를 지어 내가 이번에 그들을 토벌했는데, 경(卿)들이 죄 없음은 내가 잘 알고 있소.
경들은 이번 일로 모욕당했다고 여기지 말고, 전처럼 공실과 나라를 위해 맡은 바 책임을 다해주오."
죽는 줄 알았다가 살아나게 된 난서(欒書)와 순언(筍偃)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주공께서 대역 죄인을 토벌함에 있어 신들을 죽음에서 면하게 해주셨으니,
이는 모두 주공의 은혜입니다. 저희 두 사람은 죽더라도 주공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고는 궁을 나와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갔다.
진여공의 이런 처사를 본 장어교(長魚矯)는 궁을 나오면서 탄식했다.
"주공은 반드시 저 두 사람에게 해(害)를 당할 것이다. 이 곳에 남아 있다가는 나 역시 목숨을
빼앗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겠다.그 날 밤, 장어교는 서융(西戎)으로 달아났다.
조정에 대변혁이 일었다.
3극 외에 벼슬자리에 있던 극씨 일족은 모두 삭탈관직을 당했다. 그자리를 서동 일파가 차지했다.
서동(胥童)은 극기를 대신하여 상군 대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양오(夷羊五)는 신군 대장이 되어
극지의 자리를 차지했다. 청불퇴(淸怫魋)는 신군 좌장이 되었다.
이로써 서동 일당은 경(卿)의 반열에 올라서서 나라일과 군부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서동(胥童)은 약속대로 포로였단 초공왕의 아들 웅패(熊茷)를 석방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아울러 연일 궁중에 모여 진여공에게 아첨하며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하듯 이런 자들의 권세가 오래갈 리 없었다.
또한 그 종말이 좋을 리 없었다.그 무렵, 난서(欒書)와 순언(筍偃)은 겨우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언제 서동 일파로부터 모함을 당할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웬만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힌 채 궁중 출입을 삼갔다. 하지만 속으로는
늘 진여공(晉厲公)과 서동 일파를 제거할 생각을 품었다.마침내 기회가 왔다.
그해 12월 하순경, 진여공(晉厲公)은 서동을 데리고 장려씨(匠麗氏)라는 총신의 집으로 놀러갔다.
장려씨의 집은 태음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옛 도읍인 익성(翼城)에서 20리 떨어진 곳이었다.
진여공(晉厲公)은 장려씨의 집에서 노느라고 그믐날이 가까워오는데도 도성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 소식을 상군 좌장 순언(筍偃)이 들었다.
'이때 큰일을 도모하지 않으면 언제 또 기회가 올 것인가?'
그는 이렇게 결심하고 미복 차림으로 중군 원수 난서의 집을 찾아갔다.
"원수께서는 지금의 주공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느닷없는 물음에 난서(欒書)는 물끄러미 순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우리가 3극의 신세처럼 될 것을 염려하시는구려.""그렇습니다. 서동(胥童)이 지금은
우쭐한 마음에 우리를 내버려두지만 조만간 무슨 참언을 주공에게 올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전에 우리가 먼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나도 그것을 염려하고 있었소.
그대가 별안간 나를 찾아온 것을 보니 무슨 묘책이라도 떠오른 모양이구려."
난서(欒書)가 관심을 보이자 순언(筍偃)은 용기를 가졌다.목소리를 한결 낮추어 말을 이었다.
"소위 경(卿)이라고 하는 직책을 가진 우리들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은 군주가 아니라
국가 사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수께서 진정으로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신다면,
지금 주공을 폐하고 어진 분을 새 군주에 올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일을 일으키면 성공하겠소?"
"지금 주공은 궁을 비우고 장려씨의 집에 놀러가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습니다."
이윽고 난서(欒書)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진나라 공실에 충성해왔소. 그런데 이제 내가 이런 계책을 쓰게 될 줄이야.
이번 일이 성공하면 후세 사람들은 나를 임금을 죽인 자라고 평하겠구려. 하지만 어쩌겠소?
나라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을."
말을 마치자 난서(欒書)는 중군 아장 정활(程滑)을 불러 비밀리 지령을 내렸다.
- 지금 곧 군사 3백을 이끌고 성을 나가 태음산(太陰山) 골짜기에 매복하라.
다음날 난서(欒書)와 순언(筍偃)은 오랜만에 조정에 나가 대부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주공께서 도성을 비운 지 오래 되어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소. 이제 내일모레면 해가 바뀌어
신년이오. 새해 첫날부터 군주가 궁을 비울수는 없는 일이니, 우리 두 사람이 가서 모시고 오겠소이다."
대부들 또한 진여공의 황음무도한 생활을 염려하고 있었던 터라 그들의 제안을 반겼다.
그 날 점심 무렵, 난서(欒書)와 순언(筍偃)은 수레를 타고 장려씨 집으로 가 진여공을 알현했다.
진여공은 서동과 장려씨가 구해온 미인들을 좌우에 앉히고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난서(欒書)와 순언(筍偃)이 찾아왔다는 말에 흥이 깨졌다. 그들을 불러들여 퉁명스런 어조로 물었다.
"경(卿)들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오?""주공께서 궁을 비우신 지 오늘로 엿새째입니다.
더욱이 이틀 후면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입니다. 지금 조정 신하들은 주공이 돌아오시기만을
목빼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속히 환궁하십시오."
이쯤되면 진여공(晉厲公)도 그 곳에 더 머물겠다는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돌아가려는 중이었소. 하지만 오늘은 너무 늦었구려. 내일 함께 궁으로 돌아갑시다."
다음날은 12월 29일이었다.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흐렸다.
눈발이 흩날렸다. 진여공(晉厲公) 일행은 장려씨의 집을 나와 도성을 향해 출발했다.
서동(胥童)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고, 그 뒤로 진여공의 수레와 난서, 순언의 수레가 따랐다.
그들이 태음산(太陰山) 아래에 이르렀을 때였다. 별안간 함성이 일더니 골짜기 저편에서
복병이 일제히 나타났다.진여공을 호위하는 병사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서동(胥童)이 지휘하는 상군 병사 50여 명이 고작이었다."도적이다."
서동(胥童)은 진여공의 수레를 호위하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그러나 싸움 경험이 없는 그가 군사들을 제대로 지휘할 리 없었다. 칼을 빼어들고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는 병사들은 없었다.그러는 중에 중군 아장 정활(程滑)이 바람처럼 나타나
서동의 목을 후려쳤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면서 목이 진여공 발 밑에 떨어졌다.
서동(胥童)은 자신이 죽는줄도 모르고 죽어 진여공 앞에 머리를 조아린 꼴이 되었다.
이토록 허무하게 죽을 줄 그 자신 한 번이라도 상상해보았을까?
자신의 발 아래로 서동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한 진여공(晉厲公)은 혼이 반 이상 달아났다.
기겁한 중에서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수레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눈이 쌓인 땅은 미끄러웠다. 발을 내딛는 순간에 몸의 중심을 잃고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군사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진여공(晉厲公)을 결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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