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 이야기
망초/김문억
못 부친 상소문이 저리 만발 했습니다
억지로 길들여서 꺾어졌던 눈빛들이
저토록 몰려다니며 만세 소리 외칩니다
찢어 올린 깃발로 밤을 거역 했습니다
홀로 저 홀로 이름 없는 사람들이
산 따라 흐르는 물을 길로 열어 갔습니다
눈물입니다 저 미소는 긴긴 밤을 울어새운
역사의 갈피마다 흥건했던 놀빛이
종소리 망울 터뜨려 누리마다 피었습니다.
-김문억 시집<음치가 부른 노래.1991>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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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썼던 망초 한 수를 옮겨 본다.
어느 날 들판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망초 꽃 무리에서 민중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억압당한 한의 서러움이었고 염원을 담고 외치는 뭇 백성들의 깃발이면서 해방의 종소리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문득 그렇게 들어온 망초꽃의 이미지가 나로 하여금 망초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의미로 다가왔다.
망초 꽃은 한 대궁 안에서 대가족이 함께 웃으면서 살고 있어서 좋다.
꽃송이는 작지만 무리지어 협동하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낼수 있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받을 수 있는 꽃이다.
요즈음 망초가 한참이다
엇 저녁 늦은 밤에 산책을 나갔더니 망초 꽃이 모두 문을 닫고 휴식을 하고 있었다.
그냥 숨쉬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자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므라든 꽃술이 하도 귀엽고 앙증스러워서 한 번 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눈 감고 있는 모습이 혹여 잠을 깨우는 것이 아닌가 하여
가만 얼굴만 들여다보고 말았다. 귀엽다.
해바라기를 하면서 해맑게 웃던 싱싱한 꽃이 해가 지면 마치 하루치의 노동을 다 한 것처럼
꽃잎을 꼬옥 오므려 주먹 쥐고 있어 앙증맞다.
마치 가게 문을 닫고 퇴근을 한 것 같이 사람 상대를 안 하겠다는 것처럼 고요하다.
밤이면 꽃잎을 닫는 꽃이 여럿 있지만 오히려 밤이 오면 꽃술을 활짝 펼치면서 가게문을 여는 꽃이 있다.
그런 꽃은 기생 꽃이라고 마누라님 어록에 기록되어 있다. 향내도 진하고 모양도 화사하다.
아무렴, 꽃이 무엇이 부족하여 기생노릇을 하겠는가 나름대로 밤을 향유하는 자연의 조화로다.
그냥 보기 심심해서 뜻풀이를 해본 사람들의 해학이겠지. 꽃 위에 꽃 있고 꽃 아래 꽃 있겠는가.
자연은 그런 층하를 두지 않는다. 꽃은 그냥 꽃이면 그만이다.
하나의 생명이 꽃을 피우기까지 노정은 참으로 빛나고 의미 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서나 무엇이고 최고라는 봉오리로 상징한다.
유혹의 잔을 깨고 불면의 바다를 건너 시상대 맨 꼭대기에서 타 오르는 꽃이 되기 위하여 인내하고 노력한다.
그것은 생명의 절정이면서 삶의 진정한 가치다.
어둠이 오면 또 몽글몽글 메밀 꽃으로 보이다가 소금 꽃이 되기도 한다.
장돌뱅이 허 생원과 충주 댁의 로맨스가 달빛에 밟혀 자갈밭에 누워도 좋으련만
물레방아로 쫓겨 들어가던 밤의 그 왁자하고 화사한 메일꽃밭의 야한 정경이다.
그것이 물안개 자욱하게 끌고 먼동이 터 올 무렵이면
꽃밭인지 안개인지 분간하기 싫은 요요의 꿈같은 몽환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망초 꽃의 환상이다.
기나긴 밤을 지새워 빛으로 알알이 영글은 아침 이슬이 그 망초 꽃송이에 맺혀 있으면
이는 눈물이면서 보석이다. 꽃의 훈장 빛나는 웃음이다.
낮에 핀 망초꽃이 날 저물면 메밀꽃이요
달빛 아랜 소금 꽃 새벽녘엔 안개꽃이라
꽃이면 그만인 것을 화장까지 하느냐
오묘한 자연의 조화를 두고 이런 시를 써 넣었지만 나의 어줍잖은 시 한 수가 자연에 대한 결례였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늦은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피고 지는 근면성까지 겸비한 망초 꽃은
티 안 내면서도 화려하고 우수 속에서도 그칠 줄 모르는 서민들의 웃음소리가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