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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영靈을 만나서
박 인
1
열두 살인데도, 나는 밤이 두려웠다. 거대한 괴물처럼 다가오는 어둠이 무서웠다. 밤 열두 시 괘종시계가 울리면 온몸에 피칠을 한 사내가 왔다. 창문을 열고 들어와서 눈을 하얗게 뒤집으며 자신은 억울하게 죽었다고 내 목을 졸랐다. 식은땀이 흘렀다. 공포에 질려 안방으로 건너가서 엄마 옆에 누워도 귀신은 쫓아왔다. 그냥 가위에 눌리는 거라며 엄마는 귀찮은 듯 말했지만 내 눈에는 사내가 보였다. 다음 날 밤, 사내는 새벽 한 시를 알리는 시계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내 귀에 무슨 소리를 중얼거렸다.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면 그는 내 목을 졸랐다. 밤이면 밤마다 피 칠갑한 남자에게 시달리고 나면 나는 오줌을 지리곤 했다. 지독한 밤이었다. 일부러 잠이 깨어 있는 날은 그가 오질 않았다. 사내는 유리창 밖에서 어른거리다 가버렸다. 그러면 은하수가 흐르는 꿈을 꾸었다. 사내가 온 날 아침이면 나는 늦잠을 자서 엄마에게 혼이 낫다.
그날 내가 거적때기를 들추고 본 것은 기차에 치여 목과 다리가 잘린 사람이었다. 눈을 까뒤집고 죽은 사람의 머리가 몸통 옆에 피범벅이 되어 구르고 있었다. 몸통은 엎어져 있고 두 손은 전깃줄에 묶여있었다. 팅팅 부은 얼굴 옆과 가랑이 사이에 발목 위에서 잘린 양발이 ㄱ ㄴ 모양으로 버려져 있었다. 나는 목이 잘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부어오른 얼굴이 낯이 익었다. 어디서 보았을까. 누구더라, 잠깐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에도 피비린내가 났다. 가마니를 들춰보라고 내 옆구리를 찌른 계집애는 갑자기 미친 듯이 울었다.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기찻길 옆 시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산동네 개와 새들이 놀라서 달아났다.
“너 귀신 본 적 있니? 난 매일 본다.”
작두 타는 할아버지 귀신과 말을 주고받는다는 계집애 말은 거짓일 것이다. 괜스레 배시시 웃으며 계집애가 손가락으로 내 옆구리를 찌르자 오기가 생겼다. 예쁘지는 않지만, 딱히 밉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실실거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 애가 굿 상에서 집어 오는 떡이나 사탕 따위를 기다릴 뿐이었다. 계집애가 찔러보는 바람에 코흘리개 몇을 밀치고 내가 나섰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시체는 방치된 채로 썩어 그 냄새가 기찻길 옆 언덕을 넘어 산동네까지 번졌다. 산동네 골짜기에는 다닥다닥 붙여서 지은 판잣집들이 낮게 엎드려 있었다. 집집이 문을 걸어 잠그고 집 밖으로 출입하지 않았다. 가마니를 들어 올리자 계집애가 다가왔다. 파리 떼가 날자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작 계집애는 시체를 보고 나서는 헛소리를 하며 울었다. 순경이 아이들을 쫓아낼 때까지 계집애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하늘을 보았다. 나는 점심때 먹은 빵조각을 다 토했다.
죽은 사내가 귀신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우선 나는 쥐 잡을 걱정부터 했다. 내일 당장 쥐꼬리 두 개씩을 학교에 가져가야 했다. 늘어지게 하품하는데 쥐새끼 소리가 들렸다. 어제 마룻바닥 밑에 설치한 쥐덫이 생각났다. 부엌 바닥에서 달걀을 굴려서 천장까지 옮길 만큼 영리한 쥐는 쥐약을 먹지 않았다. 생선 반 토막에 속은 커다란 시궁쥐가 쥐덫에 걸려있었다. 쥐를 잡고 나서는 반공 표어를 지어야 했다. 반공 포스터 숙제를 제때 내지 못한 날 담임선생님의 화 난 얼굴이 떠올랐다. 손바닥을 맞으면서 본 선생님 얼굴은 화가 난 게 아니라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걸 참아내느라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마치 촌지를 받을 때 짓는 미소처럼. 그 얼굴로 회초리가 부러지고 출석부가 뒤틀리도록 여자애들을 때렸다. 남자아이들에게는 둘씩 짝을 지어 마주 보고, 서로의 뺨을 치도록 했다. 정말로 세게 때리지 않으면 다른 조 아이들과 붙었고, 성격이 모질지 못한 아이일수록 더 맞아야 했다. 나는 초장에 일부러 뺨을 때리는 아이 쪽으로 머리를 돌려 더 세게 맞고 늘 멋있게 널브러졌다. 머리에는 피딱지가 마를 날이 없었다. 나는 쥐덫에 잡힌 쥐를 세숫대야에 담가서 죽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내일 아침까지 헤엄을 쳐서 살아남을 수도 있기에 그냥 마루 밑에서 굶어 죽게 내버려 두었다.
밤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쇠못 칼을 손에 쥐고 웅크려 누운 나는 사내를 기다렸다. 밤 열두 시가 되자 심장이 쿵쾅거리고 금방이라도 멎을 것 같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피범벅이 된 사내가 내 목을 졸랐다. 무딘 칼은 쓸모가 없었다. 손이 풀리면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나는 처음으로 눈을 뜨고 사내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밤마다 내 목을 조르던 귀신이 이번에는 가만히 있었다. 그는 내 목을 조르지 않고 어둠 속에 서 있다. 창이 형이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잘못했어요. 나는 누나의 하얀 발밑에 놓인 유서를 훔쳐 읽고 돌려주지 않은 벌이라 생각했다.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달려들었다. 살려 줘.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기를 쓰다 나는 기절했다. 기절하는 순간, 무당집 계집애가 스쳐 지나갔다. 내일 만나 죽도록 패주리라. 나는 주먹을 쥐고 파르르 떨었다.
아침에 엄마는 내게 쥐꼬리가 담긴 봉투를 주었다. 머리가 으스러진 쥐는 연탄재 통 아래 죽어있었다. 새마을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사무소 앞을 지나 학교로 가는 기찻길 옆길에서 나는 무당집 계집애를 기다렸다. 사내의 시체는 온데간데없었다. 계집애는 보이지 않았다. 교실에도 계집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집에 오니 무당집 딸년이 아프다는 엄마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체가 치워진 날부터 사내 귀신은 자주 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도 계집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핀 봄날의 저녁에, 산동네 무당집에서 굿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한달음에 무당집으로 올라갔다.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당집 앞에는 신내림을 받은 계집애 운동화, 색동 과자와 고수레한 제삿밥이 놓여있었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어둠은 야수처럼 산동네를 집어삼킬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2
목련화 한 송이가 떨어졌다. 아랫집 정옥이 누나가 죽었다. 불과 이틀 전에도 내 숙제를 도와주며 생글생글 웃던 누나가 목을 매고 죽었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벽에 목이 걸린 누나의 하얀 다리가 보였다. 누나가 나를 놀리려고 머리를 풀고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줄 알았다. 나는 울음을 삼키며 누나 발아래 떨어진 유서를 집어 읽었다. 술주정뱅이 새아버지와 대출이 놈을 원망하는 내용이었다. 유서를 주머니에 넣고 나는 누군가 달려올 때까지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봉제공장 일자리를 알아보던 누나는 내게 중학교 기초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서울의 국립대학에 합격했지만, 돈이 없어 등록을 포기한 누나였다. 누나가 곁에 오면 다이얼 비누 냄새 때문에 코가 간지러웠다. 노란 원피스를 입고 라일락이 만개한 산동네 언덕길을 내려오는 누나. 한 겨우내 튼 손에 바셀린을 발라주던 착한 누나.
나는 공사장에서 주워 온 긴 대못 세 개를 들고 철길로 내려갔다. 엊저녁 형에게 얻어맞은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길게 두 줄로 뻗은 철로에는 기차가 떠나며 남긴 기름 똥 흔적과 파쇄석이 깔려 있었다. 사람이 만든 육상 교통수단 중에서 디젤기관차가 제일 멋있었다. 연기를 내뿜으며 거칠게 다가오는 기차는 거대한 짐승 같았다. 넙죽 엎드렸던 기차가 움직이며 뿜는 연기에는 경유 냄새가 섞여 있었다. 산비탈에서 굴속으로 들어가며 뿜는 기차 연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면 몽롱해졌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이들은 자욱한 연기에 반쯤 취해 앞이 안 보이는 비탈진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철도 역무원의 눈을 피해 빠른 속도로 레일 위에 대못을 세로 방향으로 놓고 철로 옆 수풀로 도망쳐야 했다. 대못 머리는 이미 둥근 자갈로 두드려서 납작하게 만들었다. 레일 위에 침을 뱉고 못의 몸체를 문질러 붙이고 나는 풀숲에 엎드렸다.
대출이 놈은 연기학원에 다니며 가끔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그놈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싸움을 잘했다. 늘 동네 건달들과 무리를 지어 다녔다. 불량기가 가득 찬 얼굴로 다리를 건들거리며 어깨에 힘을 주고 걷는 그는 동네 사춘기 사내아이들의 우상이었다. 그는 창이 형을 미워했다. 정옥이 누나가 대학물을 먹은 창이 형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바퀴에 연달아 눌린 쇠못은 마치 작고 가는 칼날의 모양새로 납작해져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가시덤불 철조망을 넘어 언덕길을 뛰어올랐다.
누나의 의붓아버지는 창이 형을 싫어했다. 대학에서 데모나 하는 놈이라고 만나지 못하게 했다. 내 눈에 창이 형은 나쁜 사람들을 혼내줄 슈퍼맨처럼 보였다. 내 고민도 들어주고 용기를 주는 유일한 형이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산동네에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수재였다. 누나는 공부가 끝나면 내게 간혹 편지 심부름을 시켰다. 도중에 편지를 읽어보았는데 차마 눈뜨고 읽지 못할 내용이었다. 누나가 창이 형에게 그런 유치한 연애편지를 쓰는 것이 나는 정말 못마땅했다.
그날도 나는 누나의 심부름을 하러 야학으로 향했다. 누나의 편지를 읽으며 교회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편지를 낚아챘다. 대출은 다리를 건들대며 뺏은 편지를 읽었다. 주위에 있던 똘마니들이 돌려가며 읽고 모두 낄낄거렸다. 순간, 누나 대신 수모를 당한 느낌이 들었다. 건들거리는 대출이 놈의 다리를 내 딴에는 힘껏 걷어찼다. 대출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척 쥐어박았다.
“창이 그 새끼. 아마 교회에 없을 거야. 이 편지 내가 직접 전해 줄 테니까. 그리고 너 매일 정옥이 모르게 편지를 읽었지? 정옥이에게 말할까? 어린놈이 까져서.”
수치심에 얼굴이 벌게진 나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대출이 놈을 노려보았다. 놈이 내 가슴을 툭 밀쳤다. 바닥에 나뒹군 나는 새끼손가락을 접질리며 다쳤다.
“이 새끼 꼴통이네. 나중에 이 형님 밑으로 들어와라. 대장 시켜줄게. 내 심부름 한 번 해주라. 그럼 모른 척해 줄 테니.”
대출이는 그 자리에서 고쳐 쓴 편지를 접어서 내게 주었다. 나는 그 고친 글도 읽어보았다. 요일만 바꿔버렸다. 이건 순 사기꾼이었다.
누나가 편지에 쓴 만남의 장소는 뒷산 ‘복 준 물’ 샘터였다. 나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누나를 멀리서 기다렸다가 뒤를 밟았다. 대출이는 샘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 누나를 산으로 끌고 갔다. 대출에게 짓눌린 정옥이 누나를 본 곳은 그늘진 계곡에서였다. 치마가 들쳐진 채 누나는 먹이가 된 새처럼 버둥거리고 있었다. 대출은 몸부림치는 누나의 하얀 팔다리와 엉덩이를 짓누르며 덮쳤다. 그러나 당장에 대출이 놈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누나를 구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내 몸은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나의 비명을 외면한 채 산에서 내려오면서 울었다. 이제부터 누나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였다.
쇠못으로 만든 칼을 신문지에 싸서 책상 서랍에 숨겨두었다. 아직 날이 서지 않아 오이조차 자를 수 없었다. 유서에는 누나를 겁탈한 대출이를 원망하는 글도 적혀있었다. 누나의 의붓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누나를 때리고 괴롭혔다. 겨우 마련한 대학 입학금도 그 작자는 술집에 뿌렸다.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은 누나를 보고 나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느긋하게 저녁을 먹으며 연속극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남녀가 껴안는 장면을 보자 나는 그만 대출이 놈 밑에 깔려 힘없이 버둥거리던 정옥이 누나가 생각났다. 입안 가득 문 밥을 삼킬 수가 없었다. 어쩐 일로 일찍 귀가한 형이 그런 나를 보고는 느닷없이 뒤통수를 갈겼다. “애새끼가 뭘 안다고.”
형은 그런 식이었다. 밥알이 사방으로 튀고 눈물이 흘렀지만 나는 참았다. 무릎을 꿇고 다음 날아올 주먹을 기다렸다.
열다섯 살에 일곱 식구의 가장이 된 형은 폭군이었다. 형이 술에 취해 집으로 오기 전에 나는 서둘러 숙제를 하고 방에 불을 꺼야 했다. 형은 수틀리면 인정사정없이 내 옆구리와 다리를 걷어찼다. 나무 빗자루를 들고 형이 문 앞을 가로막는 날이면 나는 죽은 목숨이었다. 자정 무렵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집으로 다가오고 발길질에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들과 나는 컴컴한 이불속에 숨어 귀를 열고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엄마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이라서 더 엄격하게 자라야 한다고 형의 폭력을 그러려니 했다.
밤은 이슥해지고 귀신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걷어 채여 숨을 쉴 때마다 욱신대는 왼쪽 갈비뼈를 한 손으로 문지르고 일어섰다. 정옥이 누나에게 가야 할 시간이었다. 유서도 돌려주고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다. 큰형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서랍을 열고 쇠못 칼 세 개를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그믐달 아래 별빛은 흐르고 봄바람이 불었다. 아랫집 계단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죽은 집은 불빛도 없었다. 아랫집 대문에 조등이 걸려있었다. 다시 컴컴한 골목을 더듬다시피 내려가다 나는 그만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검은 옻칠을 한 관이 길을 반쯤 가로막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나는 관을 넘어가지 않으려고 일어섰다. 관을 뛰어넘으면 그 혼령에게 붙들려 간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때였다. 화장실 옆방 창문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희미한 푸른 불빛 아래 정옥이 누나 얼굴이 있었다. 누나는 노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원망이 그득 찬 눈빛이었다. 검은 입술이 떨렸다. 누나가 죽은 지 하루가 지났다. 누나를 보자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사람이 없는 상갓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품 안에서 쇠못 칼 세 개를 꺼냈다. 수돗가로 가서 물통 안에 펼쳐놓았다. 그중 제일 날이 선 못 한 개를 시멘트 바닥에 갈아대기 시작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학교에서 배운 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며 세게 그리고 빠르게 문질렀다. 내 마음은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숨은 해와 지는 달에 물었다. 대답은 한결같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인간이 잠들고 귀신이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3
일곱 살 선아 발에는 영혼이 사는 것일까.
새벽 한 시경.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꿈속인지 생시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세상은 묘한 경계에 펼쳐있다. 꿈속에서 나는 도망친다. 아직도 철길에 머리 잘린 남자가 쫓아오고 있다. 숨이 턱에 차고 헛구역질이 나오도록 달음박질친다. 막다른 골목길에 막혀서 주저앉는다. 선아의 맨발은 어두운 비탈길을 헤맨다. 산동네를 꿈에 사로잡혀서 거닐다가 돌아온다. 기찻길 옆 도랑에서 웅크리고 잠든 선아를 찾아서 데려온 적도 있다. 꿈에서 덜 깬 초점 흐린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발에는 흙이 묻어 있다.
‘넌 내가 죽을 때 뭘 했니?’
이번에는 정옥이 누나가 머리를 풀고 서 있다. 누나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누나에게서 도망친다. 보육원에 사는 친구 경미를 부르며 밤안개 속을 걸어가는 동생을 본다.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선아를 부른다. 선아는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산길에서 동생을 찾아 헤매다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다. 눈을 뜬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베개를 적신다. 식은땀이 목과 어깨를 타고 흐른다. 나 역시 밤이면 나도 모르게 깨어나서 동네를 배회했다. 자다가 깨면 새벽 동네 어귀였다.
용환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용환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돼서 보육원 앞을 몇 번이나 기웃거렸다. 평소 반겨주던 경비원 아저씨가 인상을 쓰고 쫓아내는 바람에 불어보지도 못했다. 규율 반장에게 맞아서 병원에 입원한 걸까. 아니면 생활지도 선생에게 걸려 체벌을 받은 걸까.
6학년 1반 단짝 친구 용환이는 여섯 살 때 동생과 함께 보육원에 들어갔다. 높은 담벼락에 철조망을 둘러친 보육원은 포로수용소와 다름이 없었다. 보육원 원장은 파란 눈을 가진 미국인 부부였다. 겉보기에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선교사처럼 보였다. 언덕에 자리한 양옥은 군대 막사처럼 줄지어 지어진 보육원 막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침점호 후 구보하고 성경 구절을 암송해야 빵 한 조각에 죽 한 공기와 운이 좋으면 사과 한 개를 먹을 수 있다. 산동네에 도둑이 들면 사람들은 보육원 아이들을 지목했다. 그때마다 엄격한 규율이 더욱 조여지고 애먼 담장에 철조망이 겹으로 쳐졌다. 용환이는 농구를 좋아했다. 늘 나이키 농구화를 신고 다녔다. 시설 담당 공무원이 방문하기 전날 미국인 부부 원장이 선심으로 나눠준 그 운동화였다. 용환이는 미국인 원장 부부를 미워했다. 그들은 아이들을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 얼마 전 여동생 경미가 미국인 양부모에게 선택되었다.
빨간 모자를 눌러 쓴 규율 반장과 생활지도 선생이 원생들을 다뤘다. 생활지도 선생과 반장은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적힌 몽둥이로 만만한 아이들을 팼다. 용환이도 참나무를 끌어안고 묶여서 엉덩이와 허벅지를 맞았다. 반장은 싸움 잘하는 고등학생 형들은 못 때렸다. 언제나 시퍼런 구렁이 문양의 멍이 용환이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지도교사 새끼를 죽여버릴 거야. 그 개새끼들이 어린 동생들을 건드리거든.”
“용환아, 우리 같이 도망칠까?”
“그러다 실패하면 숙소 안에서 밤마다 죽도록 맞아. 도망치다 잡혀가서 독방에 갇히고 굶으면서 죽어.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는 형들이 모두 미국에 입양 갔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알아. 모두 맞아 죽었는걸.”
원생들을 미국에 팔아넘기는 원장 부부는 몇 년 전에도 당국의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오히려 표창장을 받았다. 보육원 아이들은 더 굶주렸다. 용환이도 해골만 남은 얼굴에 두 눈만 반짝거렸다. 용환이는 내가 집에서 몰래 가져다준 누룽지를 먹다 말고 경미 주려고 주머니에 넣었다.
봄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오한이 들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아이 등이 보인다. 선아가 일어나 앉아있다. 미동이 없다. 선아를 깨우려고 마른 등에 손을 대자 멀어진다. 선아는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간다. 흐린 알전구 불빛은 깊은 어둠을 더욱 진하게 색칠했다.
“어두컴컴한데 어딜 가니?”
선아가 말없이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본다. 눈빛이 없다. 선아는 대문을 열고 맨발로 보육원 가는 길 언덕을 오른다. 그믐 달빛 아래 나는 소리 없이 동생 뒤를 밟는다. 산동네 마을이 생기기 전 언덕땅은 공동묘지였다. 선아는 보육원 철조망 앞에 멈춰 선다. 보육원에는 아이들이 몰래 드나드는 개구멍이 몇 개 있었다. 연탄재와 쓰레기 더미에 낮아진 보육원 담벼락에 올라선다. 선아는 곧 미국에 입양을 가는 경미가 보고 싶은 것이다.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도 담벼락에 올라선다. 담장 아래 공동묘지 터에 사람의 형체들이 모여 있다. 아카시아 숲이 바람에 떨고 있다. 어둠 속 희미한 형체들이 보육원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학교에 나오지 않던 사라진 아이들이 거기 있었다. 목이 잘려 죽은 남자와 아랫집 누나가 보육원 막사로 이어지는 비탈길로 내려가고 있다. 귀신이나 유령은 뭔가 억울하거나 원한이 있을 때 나타난다고 했던가. 원장 사택에는 불이 꺼져 있다. 나는 꿈꾸는 선아를 데리고 개구멍을 통해 담장 철조망 아래로 내려섰다. 동생을 깨워 울리기라도 하면 온갖 유령들이 뒤를 돌아다볼 것이다. 여자애들이 모여 사는 A동 막사 옆에는 규율 반장이 지내는 숙소가 있다. 그믐달마저 구름에 가려 캄캄하다. 쇠못 칼을 손에 꺼내 든다. 숙소에는 창문에 비치는 전등불이 희미하다. 내 발은 선아의 맨발 옆에 붙어있다. 하얀 연기처럼 뭉클거리는 형체들이 일제히 숙소 창문에 달라붙는다. 창문을 통해 방안을 보니 한 사람이 누워있다. 하얀 이불 홑청을 뒤집어쓰고 있다.
아, 그 축 처진 발아래 놓여있는 낯익은 농구화 한 켤레. 나는 쇠못 칼을 숙소를 향해 힘껏 던진다. 쨍그랑, 쇠못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나는 선아를 업고 아카시아 숲길을 빠르게 내려온다. 검은 형체들이 스쳐 지나간다. 등 뒤에서 유령들의 웃음소리인지 부르는 소리인지 아니면 바람 소리인지 계속 따라온다. 집에 와서 선아의 발을 닦아주고 자리에 눕힌다.
4
창이 형이 사라졌다. 엄마가 시골로 보따리 장사를 가서 나는 저녁을 먹지 못했다. 창이 형을 찾아 나섰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었다. 창이 형은 집에 없었다. 벌써 일주일이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창이 형을 만나러 교회 청년회와 야학당을 들렀다. 데모하다 경찰서로 잡혀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구멍가게 주인아저씨가 쌀집 아저씨와 잡담하며 앉아있다. 둘은 만나면 싸우는 듯 목소리가 컸다.
“그게 창이라고 하던데.”
“그것이 정말이야? 기찻길에 죽은 사람이 창이라고? 손발을 묶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다니.”
“달포나 집에 안 들어와서 걔 엄마가 실종신고 하려던 참에 죽어서 돌아오다니.”
“그놈이 총학생회장에다가 데모주동자 아닙니까? 에이 골수 빨갱이들.”
“이 사람 할 소리 못할 소리가 있지.”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다 않습니까.”
“데모하는 학생들이 진짜 애국자여.”
창이 형이 죽었다. 철로에 손발이 묶여 죽은 사람이 창이 형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다. 누가 죽였을까? 정옥이 누나를 울린 나쁜 형 대출이가 창이 형의 죽음과 관련이 없을까? 창이 형이 누나 원수를 갚으려다가 깡패들에게 맞아 죽었을 수도 있다.
쇠못 칼 두 개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나는 길을 나선다. 우선 친구 용환이를 찾으려고 보육원으로 향한다. 분명 꿈을 꾸는 것은 아닌데.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몽롱한 저녁이다. 아까시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보육원 담장 철조망을 넘어 뛰어내린다. 급경사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주위를 살핀다. 사방이 조용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싸우는 소리가 사라졌다. 냄새나는 화장실 뒤로 숨는다. 화장실 문짝이 부서지거나 떨어져 나갔다. 기숙사동에 가도 아이들이 없다. 나는 언덕 위 미국인이 사는 사택으로 올라갔다. 텅 비어있다. 사납게 짖으며 달려들던 셰퍼드도 없다. 죄수처럼 끌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자갈 하나를 집어 들고 사택 창문으로 던졌다. 창문 깨지는 소리가 언덕에 울려 퍼진다. 뛰어서 정문으로 갔다. 보육원 이전 안내와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사이 보육원 아이들이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물쇠가 잠겨있는 쇠창살 철문을 타고 넘어 산동네로 올라간다. 숨이 턱에 찬다. 쇠못 칼이 바지 주머니에서 찰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산꼭대기에 있는 대출이네 집에 들러서 집안을 기웃거린다. 대출이 놈은 아현동 로터리 당구장에 죽치고 있을 것이다. 언덕을 넘어 당구장 가는 길에 창이 형네로 올라가는 골목으로 접어든다. 전등 한 개가 달랑 걸린 기다란 골목길은 좁고 어둡다.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둘이 어두운 골목 끝에 서 있다. 나를 노려본다. 순간 저승사자를 만난 것처럼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뻔했다. 주춤거리며 사내들 사이로 빠져나간다. 골목 안쪽 끝 창이 형네는 문이 잠겨있다. 평소처럼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무 응답이 없다. 흐린 전구 불빛 아래 노려보는 사내들의 눈길이 매서워 뒷골이 써늘하다. 골목 입구에 서성거리던 사내 하나가 다가와서 내 팔을 잡는다. 너무 꽉 잡아서 팔이 아프다.
“여긴 왜 왔어? 너 창이 찾아왔지?”
“제가 좋아하는 형인데요. 공부도 잘 가르쳐줘요.”
“창이 친구 놈들 심부름해 왔지?”
저승사자가 눈을 부라린다. 나는 도리질을 한다.
“다음에 창이 친구들 보면 113에 신고해라. 알았지? 간첩 신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골목길을 달린다. 바지에서 무언가 빠져나와 다리를 스치며 흘러내렸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린다. 무서운 저승사자로부터 멀리 도망친다.
산 사람이 죽은 귀신보다 더 무섭다.
5
저승사자에게서 풀려난 나는 대출이를 찾아 굴레방 다리 밑을 지나 아현동 시장으로 간다. 옆구리에 칼침을 줄 것이다. 정옥이 누나의 복수를 해야 한다. 쇠못 칼을 들이대며 창이 형이 어디에 있는지, 왜 형을 밀고했는지 물어볼 것이다. 아직도 대출이 그놈 때문에 삔 손가락이 아프다. 성결교회 앞을 지나면서 생각이 바뀐다. 내가 정말 칼침을 줄 수 있을까? 대못을 꺼내 들면 내 손목을 비틀어 놓을 텐데.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내가 사람을 죽이면 엄마는 슬퍼하겠지. 야행을 가는 선아는 누가 동행하지? 발길을 돌리고 싶다. 식당을 지나치는데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엄마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한 동생은 늘 손가락을 빤다. 나도 여섯 살까지 밥을 씹어 먹지 않고 빨아먹었다. 엄마는 늦둥이 선아를 밴 산달에 아버지를 잃었다. 사십구재 전에 난 아이는 미숙아였다. 만 두 살이 되어서야 인형처럼 작은 아이는 책상을 잡고 일어섰다. 나는 너무 기뻐 엄마를 불렀다. 내가 잡혀가면 누가 동생을 돌봐줄 수 있을까. 막걸리를 파는 술집에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반쯤 죽여라. 우리는 일렬로 서서 큰형의 성난 꾸지람을 들었다. 다리 하나를 아주 부러뜨려 버려라. 큰형 등 뒤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는 큰형에게 엄격한 가장이 되기를 바랐다. 어린 나이에 한 집안을 떠맡은 큰형은 강한 가장이 아니라 술꾼이 되었다. 일요일이면 큰형이 술 사 오라는 심부름시켰다. 나는 주전자를 들고 가겟집에 막걸리를 받으러 갔다. 주전자 부리에 입을 대고 밀 막걸리를 조금씩 빨아 먹으면 몸에서 힘이 났다. 기분이 좋았지만 다리는 후들거렸다. 나는 평소 아귀처럼 밥을 먹었다. 엄마가 시골로 옷을 팔러 가면 늘 먹을 게 부족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나는 기차 굴다리 옆 밀주를 담가 파는 집에서 술지게미를 얻어다 먹었다.
새벽 장사를 나가기 위해 보따리를 꾸리던 엄마가 말했다. 군인들 세상이 되었는데 누구든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맞아 죽기 딱 좋지. 엄마는 혀를 찼다. 엄마 말대로 창이 형이 서울 대학물을 먹더니 보이는 게 없었나 보다.
불현듯 나는 바지 주머니 속에 손을 넣는다. 주머니가 허전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주머니에서 쇠못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구멍이 난 호주머니에는 다행히 제일 날카로운 쇠못 한 개만 남아있다. 그 칼을 꺼내 손에 들자 세상 무서운 게 보이질 않는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쇠못 칼을 오른손에 들고 사람들이 모인 큰길 교차로로 걸어간다. 은행 골목으로 접어들자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다. 창이 형네 집 앞에서 본 저승사자들도 서 있다. 당구장 건너 파출소 앞으로 트럭이 들어온다. 눈에 구름이 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 군용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이다. 사람들이 포승줄에 묶여 줄줄이 차에 실리고 있다. 자기는 불량배나 부랑자가 아니라고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남자가 몽둥이로 얻어맞는다. 어디론가 끌려가는 사람들 사이로 대출이 놈처럼 생긴 남자가 언뜻 보인다. 구경꾼들 사이에 있던 나는 대출이 놈을 찾으려고 앞으로 나간다. 너도 따라갈래? 내 귀를 잡은 경찰관이 말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호루라기 부는 소리가 들린다. 시위하는 무리가 보이고 몽둥이와 방패가 하늘로 쳐들리자, 사람들이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한다. 쇠못 칼을 손에 쥔 채 악을 쓰며 나는 대출이 놈을 노리고 달려든다.
나는 갑자기 앞을 막아선 군화에 걸려 넘어졌다.
6
세상에는 사람 탈을 쓴 귀신 혹은 귀신 탈을 쓴 사람이 산다. 높은 데서 낮은 곳을 내려보다가 슬며시 나타나서 생사람을 잡아가는 억울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녹이 슨 쇠못 칼 하나가 불의를 보고 일어선다. 그동안 망각의 잠이 들어 깨어나지 못한 죄. 고통을 주는 불한당을 보고도 못 본 척 참은 죄. 귀신도 이런 나를 꿈에서 보고 용서해 줄까. 선뜻 깨어나면 어떤 악몽이 우리를 기다릴까. 어디에 흘려버렸는지 모를 쇠못 칼을 찾으러 다시 큰길로 나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나는 귀신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