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담씨가 촬영한 칼라사진◈
<Adam씨가 1950년대에 촬영한 칼라사진>
아래의 사진들은 6.25전쟁 직후인 1954년 교회 봉사활동을 위해 한국에
머물렀던 ‘아담’이란 미국인이 촬영한 칼라 사진들로서, 재미 유학생
(정찬권)에 의해 발견돼 세상에 공개된 소중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자료 입수 정찬권 (미국 유학생)
1주일 전에 아내가 영어를 배우러 다니는 미국 교회의 Adam이란 할아버지
선생님의 저녁 초대가 있었습니다. 한국인들만 초대하는 저녁식사였습니다.
전에 한국에 가본 적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방문을
했었습니다.
처음엔 Adam의 나이 79세, 우리나라로 따지면 80이었다는 것에 잠시
놀랬습니다. 80세의 나이에도 volunteer로 교회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수업
을 하고 있었습니다.
6.25남침전쟁이 끝나고 복구가 한참이었던 1954년부터 1955년까지 대구에서
2년간 교회의 봉사활동을 자원해서 한국에 왔었다고 하면서, 그 당시 찍었던
귀한 한국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 대구를 들어가면서 찍은 대구의 표지판입니다. 그 당시에도 사과가
유명했군요. 백두산 가는 길을 사랑하자라는 말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 소시장의 풍경입니다... Adam 아담에게 인상 깊었던 한국의 모습은
모두가 검은 머리에 하얀 옷을 입었다는 거였다고 합니다.
과연 장 마당 가득 찬 사람들 모두 흰 옷이군요.
▲ Adam 아담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인 한국 노인분들의 담배 피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Adam 아담 할아버지의 집 벽에 걸려 있던 사진입니다.
▲ 시장의 한켠...
▲ 구호물품인 옷가지를 받아 가시는 아주머니와 등에 업힌 귀엽게
생긴 아이의 모습입니다.
▲ 추수를 하는 들판의 모습입니다. 전쟁 때문이었는지 산에 나무가 없이
벌거벗은 모습이군요.
▲ 추수를 도와주고 있는 Adam 아담의 젊은 시절 모습입니다.
Adam은 지게에 대하여 무거운 짐을 지어도 힘들지 않게 설계된 아주
훌륭한 물건이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래 보이는 세 사진은 피난민촌의
사진 입니다. 붙어 있는 판자집들의 모습과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재의 모습입니다.
▲ 피난민촌의 모습! 붙어 있는 판잣집들, 무쇠솥에 데우고 있는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 피난민촌에 자주 일어났다던 화재 후의 모습.
▲ 줄을 서서 분유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Adam 아담의
기억하나는 그 당시 한국인들은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잘 모르고 진하게 분유를 주었다가 모두가 배탈이 나, 한동안
우유 배급을 거부했었다는 일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 공공 화덕에서 분유를 더운 물에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피난민촌에서 우유를 받아 마시고 있는 아이들. 사실 지금은 70대 초반은
되었을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어린 여자 아이가 무거워 보이는 한 푸대의 Charcoal(숯?)을 이고 가는 모습
▲ 현재의 Adam 아담과 아내 Alice 앨리스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갔을 당시 의대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자원 봉사를 나간 곳
이라 합니다. 이후 몇 나라를 더 돌아 다니다가 UTMB(University of
Texas Medical Branch)에서 의사 및 교수를 하다가 지금은 은퇴를 하고
교회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수업 등의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재에는 그동안 다녔던 30여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너무 오래된 기억들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해서 몇장의
지금의 한국 사진과 영상을 보여 주었더니 한번 가보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서 이젠 여행하기 힘들 거라며 웃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빛 바랜 칼라사진들이 묘한 느낌을 가지게 하네요.
100여장이 넘는 한국전쟁 후의 대구의 모습들이 있었습니다만, 블로그
한 페이지에 올릴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일단 몇 장만 올려 봅니다. 올라와
있는 모든 사진은 Adam이 사용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 1954년
대구의 사진들입니다. 싸구려 필름 스케너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130장
정도의 슬라이드 필름을 스켄하는데 5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학생인 저로서
5시간의 투자는 큰 것이죠, 물론 50년동안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던 Adam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요.
▲ 왼쪽이 Adam이고 오른쪽은 친구인 burkholder라고 써 있네요.
Jeep 찝 차를 타고 가다가 전복 사고를 당한 후 대구의 한 군병원
에서 치료 후 기념으로 찍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사진과 비교
했을 때 눈빛이 강렬하군요.
▲ 미국 원조 물품이 도착하자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현수막을 들고
환영하고 있는 모습.
▲ 이 사진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행사라고 하는데 고아가 아닌 듯한
사람들도 많이 보이는군요.
▲ Outdoor Meeting 야회 집회라고 써있는 사진입니다.
Adam 아담의 말대로 모두가 검은 머리에 흰옷을 입었습니다.
▲ 대구 복현동 부근 고아원 어린이들이 달성예배당 앞에서 선물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뒤편 멀리 보이는 붉은 건물은 경북대 과학관이며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사람이 Adam씨이다.
▲ Adam의 목에 걸린 사진기가 이 대부분의 사진들을 찍은 사진기입니다.
기종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Adam 아담은 저 한복을 입은 여자 아이가
인상 깊었다고 합니다.
▲ 좀 사는 집 자제분들 같군요.. 비로도(?) 치마와 양장(?)을 한 자매들입니다.
▲ 피난민촌의 우유를 마시는 또다른 사진이군요. 개인적으로
사진속 분들의 지금 근황들이 궁금해집니다.
▲ 사진의 제목이 'boy wearing only rubber shoes' 입니다.
신 외에는 아무 것도 걸친 것 없는 벌거벗은 아이.
요즘은 보기 드물지만 제 어렸을 때도 저러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던 기억이.
▲ 그 당시 보기 드물었을 거 같은 ...교통정리 아가씨...
.멋지네요.
▲ Adam의 사진중 유일한 흑백사진인 김치독들의 사진입니다. 공동으로
사용한 장독대 같은데 그 당시에는 남의 것 슬적 하는 일은 없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 돼지 팔러 장터로 가는 한 아저씨의 사진입니다.
▲ 사진속의 아가씨는 Louis Khans 루이스 칸스 라고 하네요.
서양 자동차와 서양 아가씨의 모습에 동네 아저씨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좀 민망한 듯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네요.
▲ 대구에 있는 한 유치원 이라고 합니다... 일본식 건물이 눈에 띄는군요.
그래도 저기 계신 분들은 그 당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의 자제들이겠군요.
▲ 마을에 있는 공동 화로에서 분유를 데우고 있는 사진입니다.
▲ 놀이터 사진입니다.
▲ 소시장에서 소의 상태를 보시는 아저씨의 미소가 좋아보입니다.
▲ 소시장에서 만난 큰 모자(삿갓)를 쓴 아저씨가 Adam의 눈에는
신기해 보였다고 합니다.
▲ 또 다른 소시장 사진의 담배대를 파는 상인입니다.
▲ 유치원 사진이라고 써 있네요.
▲
분유를 데우고 있는 모습
▲ 피난민촌에서 분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
▲ 피난민촌의 전체 풍경.
▲ 분유 배급중입니다.
▲ 이 사진에는 부산이라고 써 있네요. 어딘지는...
▲ 정확히 상표는 모르겠지만 빈 맥주캔을 사용하여 만든 지붕입니다.
▲ 전쟁의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사진입니다.
▲ 군용트럭을 이용해 구호품을 많이 날랐다고 합니다.
60트럭과 디자인은 같은데...저도 군대시절 운전병이라 60 몰았던 기억이...
▲ 장터로 가는 길일까요? 흰 옷의 행열!
▲ 갓에 도포를 두른 할아버지와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어머니...
▲ 구호물품 중 옷을 받기 위해 모여 있는 모습입니다.
▲ 평온해 보이는 농가의 풍경....
▲ 모내기를 하는 건지 모종을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참 정신 없던 지난 몇일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던 한적한
제 블로그를 들어간 3일전 믿을 수 없는 방문 횟수에 네이버에 오류가
생겼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인터넷 신문에 제 블로그가 올라간
것을 알게 되었고 첫날 2500명 이상의 사람들, 둘째날 1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 주었습니다.
사진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말 못할 감정을 어설픈 제 블로그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준 것입니다. 수많은 방문과 댓글... 다행이 악플 하나
없는 댓글과 Adam선생님에 대한 감사 인사, 사진을 올린 저에 대한 격려로
아내와 저는 많이 흐믓해 했습니다.
그런중에 대구의 매일신문과 대구KBS에서 연락이 왔고 먼저 저에게 연락을
하신 매일신문의 사진부 안기자님에게 사진과 내용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참 보기 힘든 우리나라의 근대사 사진, 더군다나 컬러인 사진... 맘 같아서는
1954년 이후 한국을 잘 모르시는 Adam선생님을 한국에 초대하고 싶었으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아직 학생 신분인 저의 입장이...
한국 사람의 방문이 많지 않은 이곳 Galveston에서 기회가 있으실 때마다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셨고, 한국의 발전을 보고 듣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제가 할수 있었던 건 몇 장의 최근 한국 사진과 관광공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짧은 홍보 영상물을 DVD에 녹화해 댁에서 보여드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 매일신문사에서 온 감사 편지를 프린트해서 보여드렸습니다.
▲ 이 공돌이가 리포터 흉내를 내며 인터뷰 하는 사진입니다.
▲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서재에서 보여드리고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아뿔싸... 모뎀을 쓰고 계셨습니다... 한 페이지 보는데 10분 이상...
▲ 이날 인터뷰를 같이 한 동네 한인들과 함께 한 사진입니다.
다시 한번 Adam 아담과 Alice 앨리스에게 감사 드립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참 욕심 없으시고, 검소한 삶을
사시는 분들입니다.
귀한 사진 자료를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귀한 사진 잘보고 갑니다
캔맥주병으로 지붕 이은것 나 중학생 때 많았는대 엣날 생각이 나네요 잘 봣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잘보고갑니다.
좋은 자료 주셔서 감사 합니다
오늘의 번영한 대한민국을
이루게 해 주신 선배재현님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런시간 갖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요
귀중한 자료 잘보고 미국분에게 감사인사 해야 겠네요, ....
눈으로 보고 지났지만 다 잊었는데...
감사로이 잘 봤습니다 !
좋은 자료네요
어려웠던 그 옛날의 소중한 사진들 마음 속으로 잘 봤읍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이라도 찿아가서 뭔가도 하고 한국초대 기회을 만들어봄이 타당할줄로 아뢰오감 감사.
귀한 사진들 과거속의 자신을 보는 것같아 숙연했습니다.
귀한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보기드문 사진 잘보았습니다
귀한 사진 많군요. 잘 봤습니다
저도 오래전에 휴스톤에서
서양교회에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영어배우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50년대가 돌이켜 떠오릅니다 요즘 외국에서 해마다 6.25참전용사들을 초빙하던데 이 아담씨부부도 외무부나 국방부에 신청하면 반갑게 초청할 겁니다 이분은 미군으로 뭣 모르고 한국전에 왔겠지만 그 미군이 계속 한국에 주둔하여 남북통일이 안되고 있으니 주한미군을 속히 철수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귀한 사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저 또한 그시절 앞음을 않고 오늘에 왔습니다.? 저 또한 줄서서 대기중에있으며 머지않아
사라지겟지요. 조상들의 추억담 남겨 주어서
감사합니다.
아담생님 감사합니다.?
아담생님 감사합니다.?
그 옛날 우리나라가 이랬군요벗고 굶주림에서 벗어난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많은 추억이 담긴 사진 눈물이 납니다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내분으로 인하여 늘 어수선합니다
얼마나 싸워야합니까
모두 정신 차려야 합니다
미국의 아담 선생님 감사합니다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ㅡㅡ
옛날이여
감사합니더
옛날의 추억이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아픈추억입니다
감사합니다~**
그시대로 돌아가고픈지....요즘정말 정치판 큰분제입니다.
즐감
잘 간직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6.25전쟁 때의 그 어려웠을때가 다 담아있네요
잘 다 보았어요 고맙습니다?
지나간 추억이 새삼 떠 오르네요~
귀한 자료 잘 보고 다녀 갑니다^^*
지난 날의 생생한 기억으로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아담씨! 고맙습니다. 기억에만 있지 사진한장을 남길수 없었던 시절의 가난을 곱씹어 보며 다시는 이런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한국을 이끌어낸 어른들을 무시하는 지금의 젊은 이들을 보면 통탄 스럽 습니다.
오래지않은 날입니다....정신차려야지.....
새글새글////
예 추억에 사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담씨에게감사를들여야겠씁니다.귀한사진을고이간직하고계셔서 과거를떠올리게하는군요.
추억의 사진 아담씨 고맙습니다. 우리나라가 못살고 전쟁으로 먹을 식량이 없어 원조로 분유를 받아 먹고 설사를 해 분유 원조를 중단 해야 한다고 해... 우리나라가 미개 했나 가슴이 찡 하고 내 여섯살 때 생각이 나내요 설탕이 없어 산기슭에가서
띠뿌리 캐머고 명절때나 먹는 돼지고기는 잘먹어야 본전아라고 설사하고 미군이 와서 시레이숀 주는데도 코 큰사람
무서워서 도망가 숨고 한 기억이 나내요
옛날 우리가 이렇게 살았군요.
감사합니다.
피남민 수용소의 고생스럽던 생활을 떠오르게하는 귀한 사진이내요.
I've found my father and younger brother,naturely my self and the kindergarten und playing yard and sliding
And glade mashine at that time very high and shrill so much.Over the fence was national road no.1. 국도1 호. Dalsung Church's geografikal number was 1455 원대동 aside there was wandae police office on the big street. My father was pastor at the church my brother was a judge at main bd in Seoul about 10 years ago.
I'm a emerited Pfarrer in the korean methodist church.
너무 귀한사진 감사히 보고 갑니다 감사해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함니다 우리나라에초대 하고싶다
정말 귀중한 사진이네요
우리 고향의 대구모습 감회가깊고 너무좋은 자료입니다 .
전부찍어 보관 하렵니다 감사 하렵니다.
귀한 자료들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