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물레방아
남은우
강변에 나오긴 했는데
갈 곳이 없어
다리 밑
의자 모으는 할아버지한텐
지겹도록 놀러 갔고
대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나발 부는 것도 지겨워
해바라기 꽃밭에 놀러 가려고 해도
팔월에 오라 하고
답답해서
300살 팽나무에 뛰어올랐는데
부정 탄다고 내려오래
물레방아야
쿵덕쿵덕 물방아 찧으면 좀 풀릴 것 같은데
방아에 태워 줄 수 있어?
-《동시마중》 (2024년 9·10월)
발자국
노남진
자동차로 학원 갔는데
무슨 발자국이 남았을까?
친구에게 메일을 받았는데
어디에 발자국이 찍혔지
나도 모르는 탄소발자국이
가뭄과 홍수를 만들고
친구도 모르는 탄소발자국이
대형 산불을 만들었다
버스 타고 학원 가고
메일도 지우면서
지구가 아프지 않게
발자국을 지워야겠다
-『궁금해요2』 (2024 도서출판 한림)
숫자 공부
박옥주
6자와 9자를
어려워하는
할머니에게
콩나물이 머리를
쑥 내밀었다.
-할머니, 나처럼
머리 무거워서 고개 숙인 거
이게 9자야.
-그럼, 배가 불러 일어나지 못하는
배불뚝이가 6자구나!
-아하하, 맞아요. 맞아!
-《열린 아동문학》 (2024 가을호)
왜
박차숙
엄마가 떠났어요
내 잘못이 아니래요
그런데 왜
외로움, 그리움
모두 모두
내 몫인가요?
-『토마토 연못』 (2024 브로콜리숲)
오후 2시, 설레는 고양이
서유경
오후 3시,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무 아래 앉은 한 마리 여우를 보았어
살금살금 다가가
내가 아끼는 지렁이 쫀드기
툭, 건네주었지
모래 빛 여우는 내가 준 간식을 조금씩
뜯어 먹으며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누굴 기다리는 거니?”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이튿날 여우는
오후 3시부터 붉게 물든 얼굴로
누군가를 또 기다리는 거야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요즘 나는……
그 얼굴 빨간 여우가 꼬리를 살랑이며
앉아 있던 사과나무 뒤편에 숨어
오후 2시부터 설렌다
-《시와 소금》 (2024 가을호)
계단 의자
오원량
할머니 오르다가
앉아 숨 고르시는 자리 옆
민들레도
오르다가 힘들었나 봐.
모서리에 쪼그리고 앉아
수줍게 웃으며 쉬고 있네.
-『날마다 산타』 (2024 브로콜리숲)
봄, 여름, 가을 겨울
윤동미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강아지에게도
사람에게도 잘 어울리는
참 예쁜 이름
한 계절을 꼭 껴안고
사는 이름
-『혜암아동문학』 (2024 혜암아동문학회)
개미 이사
이재순
길바닥에
검은 털실
풀풀풀 풀어 놓았다
어디서 출발하며
어디까지 가는지
끝조차
보이지 않네
꿈틀꿈틀 검은 띠.
-《동시발전소》 (2024 가을호)
막내 이모
이철
어디서 낑낑대는 소리 들리면
잠 못 드는 사람이 있다
쓰레기장이든 하수구든
집 잃은 소리 찾아
밥 챙겨주고
라면 박스에 이불솜 깔아주고서야
잠드는 사람이 있다
엄마보다 열여섯 살 적은
누나보다 일곱 살 많은
외할머니가 웬수 웬수 하는
-『시골버스는 착하다』 (2023 학이사 어린이)
다들
천선옥
대기권을 통과한 인공위성이
내일 이맘때
우리나라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것도 우주타운 우리 마을에
다들 부둥켜안고 떨었다
지구의 종말이 올 것 같아 오돌오돌 떨었다
내일이 지나갈 동안 다들 입 다물고
집에 꽁꽁 숨었다
다들 내일 살아있을까?
하루가 무사히 가고 내일이 되었다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학교에 가고, 운동하러 가고, 쇼핑하러 간다
-『여기는 우주타운』 (2024 브로콜리숲)
출처: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이묘신
첫댓글 11월 <이달의 좋은 동시>에 선정되신 오원량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오원량 선생님,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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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량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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