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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절의 첫날에
참고말씀: 마4:19; 26:35,36; 눅12:15; 엡4:27; 6:11-13; 벧전5:9
읽을말씀: 눅22:1-71
주제말씀: 눅22:14,15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첫째,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시면서 당부하시다(1-38절)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4,15)
제자들 중 누가 예수님을 배신했습니까? 가룟인 유다입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까? 돈을 받기로 한 것으로 보아 탐욕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도를 의논하매 그들이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4,5절)
이때 무엇이 그에게 들어갔다고 했습니까? 사탄입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3절) 무턱대로 들어갔습니까? 아닙니다. 유다가 틈을 먼저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7) 이처럼 그가 먼저 틈을 내어주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사탄이 그에게 들어간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마귀에게 틈을 내어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삼가 탐심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4:25-27) /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12:15 상)
예수님은 무교절의 첫날에 베드로와 요한을 어디로 보내셨습니까? 예루살렘 성내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드시기 위함입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7,8절)
어떤 곳이 예비 되었습니까?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입니다.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12,13절) 이는 후에 누구의 다락방으로 알려집니까?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 전에 무엇을 밝히셨습니까? 고난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먹기를 간절히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14,15) 어째서입니까? 자신의 죽음이 가지고 있는 구속사적 의미를 밝히 알려주시고 이를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기념하게하기 위함입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19,20절)
그러면서 어떤 두 가지를 예고하셨습니까? 당신이 수난 당하실 것과 제자들 중 한 사람에게 배신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21,22절) 왜 배신을 언급하셨습니까? 마지막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제자들은 무슨 생각뿐이었습니까? 누가 더 크냐는 생각입니다.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24절) 예수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어도 누가 더 크냐고 다툼이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혹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들처럼 우리도 신앙의 본질은 멀리한 채 곁가지만 붙들고 있지 않습니까? 원컨대 이제라도 신앙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영적으로 제자들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사탄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상황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31절) 특별히 누구를 노리고 있었습니까? 수제자 베드로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어찌하고 있어야 했습니까? 자신들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32절 상)
그러나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은 호언장담만 하고 있을 뿐 전혀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33절) /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마26:35) 이는 고스란히 무엇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까? 참담한 실패와 넘어짐입니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34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도 우리의 대적 마귀가 호시탐탐 삼킬 자를 찾고 있음을 깨닫고,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근신하여 기도로 깨어 있습니까? 내일 일을 호언장담하는 대신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느냔 말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9)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지라고 하셨습니까? 전대와 배낭, 검입니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36절) 어째서입니까? 짙게 드리워지는 사탄의 때를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 말은 실제로 무장하라는 말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되 족하다 하시니라.”(38절) 허면 무엇이었습니까? 임박한 환난과 매일의 유혹에 대비하여 영적으로 무장할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서 영적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습니까? 아직 못하고 있다면 이제라도 빨리 무장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1-13)
둘째, 감람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잡히시고 심문을 받으시다(39-71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눅22:39,40)
이 일 후에 예수님은 어디로 나아가셨습니까? 감람 산의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마26:36 상) 무엇을 따라 가셨습니까? 경건의 습관, 곧 구체적으로 기도의 습관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39절 상)
누구도 함께 따라갔습니까? 제자들입니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39절 하) 이로 보건대 무엇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까? 신앙생활에도 여러 좋은 습관들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님을 부지런히 따라다녀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누굴 부지런히 따라다니고 있습니까? 원컨대 세상이나 사람을 따라 다닐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따라다닐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4:19)
가서 무슨 기도를 하셨습니까?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옮겨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어떻게 끝내셨습니까? 당신의 소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함입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42절)
제자들에게는 어떤 기도를 당부하셨습니까? 유혹에 빠지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40절) /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46절) 그러나 그들은 결국 어찌하고 말았습니까? 피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것을 보시고.”(45절 하)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기도에 힘쓰고 애쓰되,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44절) 항상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또 시험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날마다 이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누가 와서 거짓된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까? 가룟인 유다입니다.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47,48절)
그러나 예수님은 저항하시기는커녕 누구까지도 제지하셨습니까? 베드로입니다. 즉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칼로 쳐서 떨어뜨리자 이것까지도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50,51절) 왜 그리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된 모든 성경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먼저 어디로 들어갔습니까? 대제사장의 집입니다.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54절 상) 누구도 따라 들어갔습니까?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 가니라.”(54절 하)
다른 제자들은 뿔뿔이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예수님을 따라 들어간 것입니까? 일의 결국을 지켜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닭이 울기 전까지 몇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까? 세 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60-62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더라도 기도로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호언장담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철저하게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가고 있습니까? 베드로처럼 ‘멀찍이’ 따라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를 부인하면서 가까이에서 그리 하고 있습니까?
날이 새자, 그들은 예수님을 어디에 세웠습니까? 공회입니다.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66절)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물었습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67절 상)
예수님은 이에 대해 어찌 하셨습니까? 그들의 불신앙 가운데서도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67,68절)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증거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69-70절)
이를 통해 무엇을 더 깨닫습니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밝히 증거 하셨어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을 완악하게 했던 것처럼, 혹 우리도 불신앙과 완악함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이켜서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라고 밝히 증거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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