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 18. 오늘의 양식 : 주일에 대하여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예배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1. 예배의 부름----------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507 저 북방 얼음 산과
33 영광스런 주를 보라.
265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
3. 신 앙 고 백---------- 사 도 신 경--------------------------------------------------------
4. 찬 송---------- 289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
5. 기 도----------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요한계시록 1장 20절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7. 설 교---------- 주일에 대하여
오늘날의 달력은 B. C. 45년경 율리우스 씨이저 때부터라고 한다. 바벨론 사람들은 별들을 숭배하여 요일마다 행성의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일요일(Sunday, 태양), 월요일(Monday, 달)등이다.
교회법적 공고는 서기 364년 라오디게아 공회에서 토요일(안식일)의 예배일을 일요일로 바꾸었다. 그 전에 콘스탄틴 황제가 제정한 일과(서기 321년) 또한 약 2세기경부터 공예배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는 추정도 있다.
우선 일요일이라는 말은 이교적 명칭이다(순교자 저스틴이 처음으로 이 말을 부득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하신 날은 안식 후 첫 날, 즉 토요일 다음 날인 일요일 새벽이다. 그래서 사도 시대부터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 것으로 나타났다(주일, 주의 날, 주의 부활하신 날).
① 구약의 안식일은 지금의 토요일이다.
안식교도들은 토요일에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안식일 계명을 신약에도 지켜야 구원을 얻은 것으로 주장하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며 이단적 견해이다.
주일성수 뿐 아니라 십일조나 모든 율법적 행위로 구원 얻을 수는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힘입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신약의 구원 방편이다.
② 예수께서는 (구약)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며 모든 율법을 이루신 분이다.
롬 10: 4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했다.
이는 (마 5: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즉 이루신 것은 폐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재해석만 남았을 뿐이다.
③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다음 날인 지금의 주일에 부활하셨다. 신약 성도에게는 이 날이 더욱 중요하게 된 것이다.
율법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구약의 모든 요구를 듣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당신의 영광스런 부활을 기념하며 이 날에 예배하고 안식하는 것이 신약 성도의 바른 안식일 준수가 된다.
* 마 12: 8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 마 28: 1 -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 계 1: 10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지으시고 일곱째 되는 날에 쉬심으로 이 날이 안식일이었는데 곧 지금의 토요일이다. 안식일 다음 날이 되는 지금의 주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이 날이 더욱 귀하여 사도 때부터 주의 날(부활하신 날)에 예배하며 헌금한 사실을 보여준다.
* 고전 16: 2 -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④ 주일(主日)은 주의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낱말이고 일요일(日曜日)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의로운 태양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을 뜻하기 위한 낱말이다.
* 말 4: 2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⑤ 이 날을 기억하라고 하셨다(기억하여...).
잊어버리고 있다가 주일을 당하면 당황한다든가 하는 것은 바른 안식일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⑥ 이 날을 기억하며 6일간은 힘써 일을 해야 한다.
6일간 세상에 빛과 소금되는 성도의 충실한 삶을 통하여 영광을 돌리고 주일을 맞이하는 것이 옳다. 6일은 세속주의로 살고 주일만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정서상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거룩함으로 영광을 돌리며 주일은 특별히 성도들이 모여 주간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영생을 찬미하고 또한 영혼과 사회를 위해 기도하며 온전하게 하루를 살아드리는 것이다.
이 날의 언행은 우리 자신을 위하기보다 하나님을 위한 날이어야 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는 날이다.
* 출 20: 9 -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 살후 3: 10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 요 5: 17 -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⑦ 육축(짐승)도 일하지 않아야 하고 집에 온 손님도 일하지 않아야 한다.
⑧ 주일은 예배를 드리는 때만 거룩한 것이 아니다. 온 종일 거룩한 날이다.
⑨ 구약의 안식일 준수는 그야말로 율법적으로 매우 세밀하고 엄격했다.
* 사 58: 13-14 –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⑩ 특별 사항은 생명과 위급한 일에 관련한다.
병원, 약국을 영업하라는 것이 아니며 위급해 찾는 자가 있을 시나 본인이 필요할 시 가능하다. 국가 안보 문제나(군복무) 일정으로 잡혀 있는 직장 당직 관계인데 가능한 예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독교국이 아닌 사회에서 주일을 성수하기 힘이 든다. 그러나 신앙 양심이 허락하는 한 주일을 성수 할 수 있는 직업과 직장이 돼야한다. 경비를 서는 일 등도 예배의 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경 사업, 건설업 등은 월요일 아침부터 작업을 하기위해서 일요일에 작업 준비(나무, 시설물 등)를 하게 되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가능한 토요일쯤에 월요일에 착수할 준비를 해 두는 것이 좋다. 주일에는 일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주일은 주님의 일로 충실해야 한다. 이웃에게 선한 일을 하는 날이며 믿음의 일을 하는 날이다.
구약의 안식일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들이 신약에 와서도 그렇게 율법대로 행할 의무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구약처럼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정신에 있어서 구약의 안식일과 다름없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구약의 모든 율법의 존재와 그 목표가 완성되었다는 신약적 구약의 재해석에 따른 안식일의 개념은 행위 언약은 폐하고 은혜 언약적 내용은 그대로 전수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에 많은 지도자들이 주일성수를 현실 문화에 비추어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정통신학에서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 주일성수를 통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많았음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대 생활에 적용 문제로 주일에 상거래를 하는 것이나 인간 중심으로 주일을 지내는 일들이 많다.
과연 신앙 양심이나 신학의 문제일까? 아니면 현실주의에 따른 합리적 해석일까? 우리는 주일성수가 구원을 얻는데 결정적인 율법적 요구가 된다는 이론은 내세울 수 없다. 신약에 예수님의 속죄 사건 중심으로 소위 하나님의 구속사적 입장에서 구약이 해석돼야 한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셔서 부활하시게 되므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안식일보다 날 자체로도 주일이 더욱 중요한 날이 된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는 온전한 예배와 이웃의 아픈 자, 약한 자를 돌보며 위로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많이 얻고 기도로 영성 훈련을 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생을 충분히 찬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주일에 생업에 종사하는 것은 내세의 소망이 없는 불신자들의 불신적 삶이 된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생업이나 어떤 상거래 같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영적으로 잘되고 세상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축복을 얻기 위한 믿음의 순종이 되는 것이다.
먼저 주일에는 시장 보는 일은 금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영업을 하게 되는 불신자는 결국 이 날에 주님께 찾아올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힘든 세탁은 전날에 해두는 것이 유익하다. 이날 너무 힘겨운 청소나 세탁하는 일로 고달픈 것은 주의 부활을 즐거워하는 날에 조화롭지 않다.
간단한 목욕은 가정에서 가능하며 오락을 즐기는 것은 부당하다. 이날은 인간의 안식이 되기 전에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토대로 하는 신령하고도 영광스러운 기념의 날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처럼 오락으로 육체적인 즐거움에 취하는 것은 거룩한 행위가 아닐 것이다.
직장 시험 치르는 것과 국가고시 자격증 시험 등에 대해 본인은 거절한다. 아무리 개인적인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결코 축복받을 행위는 아니라고 본다.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는 것은 무척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갈 수 있다.
현실과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합리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주일에 대한 신약적 이해 그리고 신학적 해석이 어떻게 정리되어야 하는 것은 많은 논란이 따른다.
그런데도 주일은 전통적으로 상업적 거래나 인간중심의 오락적인 행위를 금하는 것으로 전해져 왔다. 주일 뿐 아니라 오늘날 많은 부분에서 신자들의 삶의 규칙이 흔들리고 있다. 십일조의 개념이나 주일성수나 신약적 재해석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의 위엄과 거룩, 통찰력과 능력, 영원하심, 살아계심,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심을 알아야 하고, 특히 그가 세상에 있는 모든 존귀한 교회들과, 별들과 같은 목사들을 주관하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교회들을 주께 맡기며 기도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교회의 존귀함을 깨달아야 한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비록 부족이 없지 않지만 일곱 금촛대로 간주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구약 시대 대제사장의 옷의 흉패와 견대에 있는 보석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 교회를 귀히 여기고 또 잘 세워나가야 한다.
셋째, 우리는 교회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들은 촛대들로 표현되었다. 촛대는 빛을 비추는 기구이다. 주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 마 5: 14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그것은 우리의 선행을 교훈하신 것이다.
* 마 5: 16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 선행이라고 말하였다.
* 딛 2: 14 -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전도와 선행으로 지식과 의와 선의 빛을 비춰야 한다.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352 십자가 군병들아 ----------------------------------------------
10. 폐 회 ---------- 주기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