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산을 다녀와서
(鷹峯山 遊覽記)
뜽끔없이
“토욜 수업 끝나고 응봉산 오릅시다!!”
긴급제안이 순간 번쩍거렸다.
우레소리에 카톡방이 흔들~~흔들~~
미동(微動)이 가라앉더니
庚衍學堂(경연학당) 우리학우(學友)
손에 손을 잡고
흔쾌(欣快)히 똘똘 뭉쳤다.!!^^
淵泉(연천)님이 물꼬를 텄고 柏山(백산)님이 가세(加勢)를 했고 滄浪(창랑)님이 깊은 관심(關心)을 표했다.
열성(熱誠)을 보인 진짜배기 당원(黨員)도 있었다.ㅎㅎ
“수업 마치고 가면 시간이 좀 빠듯할 것 같아요..
선생님께 1시간 일찍 마쳐달라고
떼쓰기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ㅎㅎ
향학열(向學熱)에 불타 ‘묵직하고 두툼한’ 서물(書物)(쉿! 사실은 쫌 무겁죠이? 그죠?^^ 서로들 눈만 쳐다보며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등에 매는 가방에 넣어 전철을 오가면서 “저기 저 中浪川(중랑천) 물가에 자리잡은 나지막한 산(山)이 궁금했고 그 꼭대기에 당당(堂堂)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정자(亭子)가 시선(視線)을 끌어 당기곤 했다. 언제 함 올라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긴급(緊急)제안 한마디에
즉시 ‘書經列車’(서경열차) 전세(專貰) 내어
학우님들 제각각 가뿐한 몸을 날렵하게 실었다.
순간 굉음(轟音)을 내는가 싶었더니 드뎌!! 꿈에 그리던^^ 京義中央線(경의중앙선) 鷹峯驛(응봉역) 아니던가!
작지만 아담하고 단단한 큰 바윗돌산을 올라가는 길이 조금은 언덕이었다.
날씨가 참 따스했다.
조금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이마가 땀이 날 정도였다.
머리 위로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학우님들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올라가던 중 柏山님과 이런 얘기를 했다.
“정상에 올라가면 뭐가 내려다 보일까요?”
공자께서는 “.. 동산을 올랐더니 노나라가 작아 보였고 태산에 올랐더니 천하가 작아 보였다..”라고 했는데 말이죠.
성현(聖賢)의 말씀이 가물가물해서 원문(原文)을 찾아보았답니다. 孟子 盡心上 第24章 “..孔子 登東山而小魯ᄒᆞ시고 登太山而小天下ᄒᆞ시니..”
나지막하지만 사방(四方)이 뻥 뚫려 뚜렷이 보이는 이 응봉산 정상에서 만물(萬物)이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것은 각자(各自)의 몫이겠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정말로 사방이 뻥뻥 뚫려 있었다.
와아-!!
탄성(歎聲)이 튀어나왔다.
이게 太山(泰山) 아니고 무엇이랴! 태산이 따로 없다!! ㅎㅎ
전철안에서 멀리 바라보았을 때랑 막상 올라서 보는거랑 천지차이(天地差異)로다.!!
팔각정(八角亭) 위로 널따랗게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
한 때 경마장(競馬場)이 있었던 서울숲이 눈앞에 선명(鮮明)했고
南山(남산)이 우뚝솟은 탑을 독야청청(獨也靑靑)하듯 뽐내고 있었고
(잠시 휴게소 쉬어가기^^)
누에가 南山(남산)에 엎드린 채 고개 들어 먹이감 뽕잎을 찾고자 시선을 저멀리 漢江(한강)변에 두었으니 그 곳에 뽕나무를 심었는지라 그 땅이 蠶室(잠실)이요 누에 엎드린 그 산이 木覓山(목멱산)이라 일명(一名) 남산이라
淸溪山(청계산)이며 冠岳山(관악산)이며 牛眠山(우면산)이며 사방 주위가 뚜렷했다.
한강과 중랑천이 합해지는 지점이라 철새가 많이 찾아들어 산 정상에서 철새를 관찰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라고 한다. 야경(夜景)이 좋아 늦은 저녁에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일출(日出) 또한 훌륭하여 아침 일찍 사진촬영을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봄철에는 개나리꽃이 아름다워 개나리산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개발로 하나였던 산은 잘려져서 鷹峯山(응봉산) 大峴山(대현산) 大峴山配水池(대현산배수지) 金湖山(금호산) 매봉산[鷹峯山에서 鷹이란 글자를 뜻으로 읽은 산이름] 5개의 지역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매를 풀어 사냥했다는 역사사실이 있는 곳이다. 그러하니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도반님들요^^ 각자 내심(內心)으로는 비룡(飛龍)(^^)이 될 수 있을거라는, 아니 이미 비룡이라는 생각을 두지 않으셨나요? 동산태산 얘기를 들어보니 가능성이 있을 것같은데요^^~~
아무리 좋아도 마냥 이곳에 눌러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남쪽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三足烏(삼족오)가 서녘으로 날라가고 있을 즈음, 이런 유서(由緖) 깊은 곳에 편액(扁額) 하나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쾌청(快晴)한 날씨 덕에 응봉산 유람을 잘 마치고 역사(歷史)에 길이 남을(^^) 기념촬영(記念撮影)을 하고서 성현(聖賢)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경쾌(輕快)한♬♬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淵泉님 커피맛이 일품(一品)이었어요.
(모두들 감感謝사하는 마음^^)
오늘 응봉산에 或躍했다가 해질녘 각자 살고 있는 집으로 在淵이라~~~~~
志淵이 학우님들의 뜻을 담아 올립니다.
사족(蛇足) 하나달고 물러갈께요.^^ 우리 학우님들이 산에 올라간 날이 양력으로 11월 3일이고 음력으로는 10월 2일이니 우리의 본래 開天節(개천절)의 바로 전날[前日]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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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공부함이 이롭다! .. ?? .. !!^^>
●孟子 盡心上 第24章 : 孟子 曰孔子 登東山而小魯하시고 登太山而小天下하시니 故로 觀於海者에 難爲水요 遊於聖人之門者에 難爲言이니라 觀水有術하니 必觀其瀾이니라 日月이 有明하니 容光에 必照焉이니라 流水之爲物也 不盈科면 不行하나니 君子之志於道也에도 不成章이면 不達이니라
-『중용』제13장 : 君子 遵道而行하다가 半途而廢하나니 吾弗能已矣로라
군자가 도를 따라 가다가 중도에서 그만둘 수가 없다. 나는 능히 그만두지 못하노라
- 『논어』 옹야편 제10장 : 子曰力不足者는 中道而廢하나니 今女는 畫이로다
군자가 도에 뜻을 둔 이상 힘이 부족하다고 중도에서 그만두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획을 긋는 것일 뿐이다.
https://cafe.daum.net/well48/UkWs/183
(諺解本)
孟子ㅣ曰 孔子ㅣ 登東山而小魯ᄒᆞ시고 登太山而小天下ᄒᆞ시니 故로 觀於海者애 難爲水ㅣ오 遊於聖人之門者애 難爲言이니라 觀水ㅣ有術ᄒᆞ니 必觀其瀾이니라 日月이 有明ᄒᆞ니 容光애 必照焉이니라 流水之爲物也ㅣ 不盈科ㅣ면 不行ᄒᆞᄂᆞ니 君子之志於道也애도 不成章이면 不達이니라
●地豊升 大象傳 : 象曰 地中生木이 升이니 君子 以하야 順德하야 積小以高大하나니라(주역대관 하 217쪽~226쪽)
- 商書太甲下제4장 : 若升高 必自下하며 若陟遐 必自邇하니이다
“높은 데를 오르는 이는 반드시 아래로부터 함과 같으며, 먼 곳을 오르는 이는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함과 같나이다.”
- 『중용』 제15장 : 君子之道는 辟如行遠必自邇하며 辟如登高必自卑니라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길을 가는데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하는 것과 같으며, 비유컨대 높은 곳을 오르는데 반드시 낮은 데서부터 하는 것과 같으니라
- 衛風 淇奧三章(1장) : 瞻彼淇奧한대 綠竹猗猗로다 有匪君子여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로다 瑟兮僴兮며 赫兮咺兮니 有匪君子여 終不可諼兮로다
저 기수 언덕을 보건대 녹죽이 야들야들하도다. 문채 나는 군자여, 끊어놓은 듯 닦아놓은 듯하며 쪼아놓은 듯 갈아놓은 듯하도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나타나니, 문채 나는 군자여, 마침내 가히 잊지 못하리로다.
咺 점잖을 훤, 굳셀 훤, 섧게 울 훤 諼 속일 훤, 잊을 훤
https://cafe.daum.net/well48/Vctb/18
https://cafe.daum.net/well48/VZWc/34
●孟子大觀(舊 孟子易解) 告子 下(고자 하)편 15,16장 해설 :
- 離婁 下 第28章 君子 有終身之憂요 無一朝之患也라
군자는 樂天知命하면서도 늘 세상을 근심하지 않음이 없다.
- 그러므로 비록 미천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더라도 군자는 樂天知命하며 ‘그 덕을 순하게 닦아 조금씩 쌓아서 높고 크게 할 뿐이고(順德 積小以高大-『주역』地風升卦大象傳),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아니하며(人不知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논어』學而편),
-옳다고 보아주지 않아도 번민하지 않을 뿐이다(不見是而无悶 -『주역』乾卦 文言傳).
https://cafe.daum.net/well48/UkWs/172
●中庸講解26-10 詩曰惟天之命 : [注疏]正義曰易曰君子愼德積小以高大는 此易升卦之象辭니 案升卦컨대 巽下坤上이니 木生於地中하여 升進之義라 故爲升也라
[注疏] 정의에 가로대, ‘易曰君子愼德積小以高大’는 이는 역의 승괘의 대상전의 말이니, 승괘(䷭)를 살펴보건대 손(☴, 바람괘)이 아래하고 곤(☷, 땅괘)이 위이니, 나무가 땅속에서 나와서 올라가는 뜻이라. 그러므로 升이 됨이라
https://cafe.daum.net/well48/Ums3/69
1.서울교통공사
http://www.seoulmetro.co.kr/kr/board.do?menuIdx=409&bbsIdx=2204914
2.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D%91%EB%B4%89%EC%82%B0_(%EC%84%9C%EC%9A%B8)
3.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A4%91%EB%9E%91%EC%B2%9C
(中浪川)
첫댓글 역시 志淵作家님 文體는 편히 읽을 수 있는 산문이요
易, 中庸, 孟子를 이어주시니 工夫하라는 것이지요^^
덕분에 인재개발원 교육다닐 때 개나리 활짝 핀 응봉산을
보면서 서울에 저런 바위산이 있구나 참 신기하고 예쁘구나
하면서 지나던 30년전 새내기 시절의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이' 공부해얍죠ㅎㅎ 내년 봄 개나리꽃으로 수놓아진 풍경 기대됩니다.^^
熱誠黨員은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오면 진짜 떼쓰기 들어갑니다.ㅎㅎㅎ
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려서 복장이나 신발 준비하실 여유를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응봉산 .. 無逸하라고 했는데, 그때 안일했어요..
우와, 열공 분위기에 하나 더 첨가할까요?^^ 四書三經 속에 鷹이 나오는 곳은 딱 한군데밖에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詩經 大雅 大明편 제8장 가운데 있는 내용입니다.
"維師尙父 時維鷹揚하여 凉彼武王하여 肆伐大商하니 會朝淸明이로다(오직 국사인 상보가 이에 새매가 날듯이 하여 저 무왕을 도와 군사를 베풀어 큰 상나라를 치니 맞붙는 아침이 청명하도다)"
이 싯구를 염두에 두고 鷹峰이란 곳에서 사냥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鷹峰이란 이름이 조선의 군주가 사냥터를 삼기 전부터 있었던 이름인지, 아니면 조선의 군주가 매를 이용해 사냥터로 삼아서 나중에 붙여진 이름인지 알아봐야겠군요^^
肅宗實錄 定宗實錄(즉 정조실록) 등에 鷹峯이란 명칭이 등장하지만 언제부터 존재했던 이름인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나무위키 개요’에 따르면 태종이나 성종 같은 왕들이 매 사냥을 즐긴 곳이라 하여 응봉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