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과 동물원장 아내(Zoo Keeper`s Wife)
김 난 석
영화 남한산성이 화제였다.
김훈의 소설로 예열이 된 탓이기도 하겠고
연기자들의 열연 탓이기도 하겠지만
요즘의 시국에 덧대어 보는 의미가 있어서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당시의 상황론이야 하도 이야기가 많이 되어
이젠 거론하는 것조차 식상할 지경이지만
동창녀들과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오르니
그네들이 여자의 일생으로 참 많이도 참아 왔다 할까...
참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다행이라 할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화냥년이란 몸을 판 여인을 말하고
화냥년 시집가듯 이라 하면 아주 몸 파는 걸 일삼는 걸 말한다.
수어장대(守禦將臺)라면 임금을 지키는 지휘부라 할 텐데
병자호란 때 이게 한 달 반 만에 사정없이 무너져
50 - 60 만의 백성들이 오랑캐 나라에 끌려갔다니...
그 중엔 여성들이 반일 테지만
고관대작 부인이거나 처녀거나 가릴 것도 없이
혹한에 두 달씩이나 걸려 질질 끌려갔다니...
그것만이 아니다.
끌려가서 성 노리개로 첩으로 식모살이로 일꾼으로...
그러다가 몸이 상하면 속환(贖還)이라 하여
돈을 내놓고 데려가라 했다니...
그게 환향녀(還鄕女)였다.
조정과 사대부에선 몸을 망친 여자라 하여 내쳤단다.
그게 오늘날 화냥년으로 전음된 것인데
그네들이 자의에 의해 몸을 팔았던가...?
이게 사회문제화 하자 어명을 받아 속죄시킨다는 게
몸 씻고 오라는 거요
그땐 홍제천 물이 맑았던지
그 곳에서 몸을 씻으면 죄를 사한다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그곳 지명이 임금의 성은을 입은
홍은동(弘恩洞)이 되었다니
참, 기도 안 찰 일이 아니던가.
나라의 성(城)이 무너지면
더불어 여성의 성(性)도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영화 주 키퍼스 와이프(Zoo Keeper`s Wife)가 상영되었었다.
2차 세계대전 때의 일화를 깔고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동물원 주인 아내가
독일 장교 몰래
유태인들을 동물원 지하에 숨겨주는 일을 한다.
이를 감시하는 독일 장교 루츠가 감시를 핑계로
동물원에 드나들면서
동물원 주인 아내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독일장교 루츠가 그 아내 집 안에서 서성일 때
지하에 숨어있던 유태인들의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자
아내는 재빨리 루츠를 끌어안으며
두 귀를 감싸 쥐고 키스를 한다.
그 순간 아우슈비치의 비극으로 이어질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 아내의 남편이 오해를 할 수밖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내의 대답은 간단 명확했다.
“살아야 할 것 아냐요!”
우리 영화는 주화냐 척화냐로 대책 없는 논쟁만 벌이다가
성 문을 열고 모든 걸 내주자 여성들의 성도 무너져 내렸다.
동물원장 아내는 성을 미끼로 많은 목숨을 살려냈으니
살아야 한단 말이냐? 죽어야 한단 말이냐?
어찌 살아야 한단 말이냐?
산성에서 내려오면서
그네들에게 석촌동의 삼전도비를 보여주고 싶었으나
실버세대의 아픔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역사의 아픔까지 일깨워주고 싶지 않았다.
첫댓글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걸고 싸우는 남자들도 힘들지만 여자들이 더 고초를 겪습니다
순간적인 기지로 많은 생명을 구한 동물원장부인 참 지혜롭습니다
그게 영화의 묘미지요.
오랜만이네요.^^
많은 사람을 살린 부인의 기지와 지혜
망설임도 없이 순간의 선택 이었지요
맞아요.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안단테~^^
참 가슴 아픈 역사를 돌아보게 되네요
위정자들의 표리부동에 더욱 화가 나기도 합니다
사실 역사물은 특히 조선시대의 역사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보지 않습니다 화가 나서요 당파 싸움과 위선에 가득 찬 왕과 신하들의 암투
동창님들의 마음을 배려 해 주신 글이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참 가슴아픈 역사였지요.
국력이 쇠해서
여인들이 끌려간건데
환향녀라고 무시 괄세하고
넘 비겁합니더
루츠를 끌어 안은 동물원 여주인
용기있고 지혜롭습니다
여러 생명이 달린 귀한 일이었어요
지금도 정치인들이 정신 못차리네요.ㅠ
금의金衣환향이거나
곡절曲節환향이거나를 떠나 인명이 먼저라는 동물원 아내의 말로 정리되었으면 한다 굴욕을 대신한 이들은 고향의 모시적삼이라도 그리웠으리라!!
아무렴요.
환향녀가 생성된 병자호란 전까지
여인들은 남녀동등권을 누렸고 남편이 죽으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재가도 했습니다. 나라가 힘이 없어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환향녀가 발생하자 먹물 남자들이 열녀문을 세우고 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청나라 군사들에 당하느니 목메어 자결해 죽고. 심양에서 돌아온 환향녀들이 시집과 친정에서 내침을 받자 한강에 투신한 여자들을 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열녀문은 아름다운 문이 아니라 여자들을 옥죄기 위한 사회적인 장치입니다. 그 첫 1호 열녀문이 충청도 논산에 있습니다. 그 유산이 지금까지 내려와 과부들은 결혼하는것을 죄악으로 생각하고 열녀는 아름답게 존숭합니다.
긴글 설명 고맙습니다.
먹물신사란 말은 그런 때 써야 제격이겠네요.
먹물 먹어서 신사
먹물 뭍혀서 신사
그것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