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상 선덕여왕은 진평왕의 딸로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장녀로 삼국유사에는 차녀로 나와있는데 의문이 가는 것으로 진평왕과 선덕여왕의 나이차를 감안하면 둘이 부녀관계로 보기에 의심이 가기 때문이죠.
의심이 갈만한 요인 두가지를 든다면
1. 진평왕과 선덕여왕 둘 공히 출생연도는 전하지 않고 즉위년대만 전하는데 진평왕이 579년 즉위하여 632년 사망했스니 53년이라는 기간은 엄청 긴 제위기간이죠. 진평왕의 출생연도가 전하지 않지만 만일 즉위시 이미 결혼을 한 연령이라면 최소한 560년대 전반이전은 될것이고 결혼을 하고도 이미 선덕여왕등 딸들을 둔 상태에서 즉위했다면 더 나이가 많게 됩니다. 즉위전 결혼을 했다면 즉위전에 이미 선덕여왕이 출생했거나 즉위후 몇년안가 선덕여왕이 출생했슬 것입니다. 이 경우 선덕여왕의 출생연대는 진평왕 즉위년전후인 579년전후나 더 높게 잡으면 570년대 전반까지(진평왕이 최소한 20대 중후반의 성인으로 즉위했다면) 잡을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늦게 잡아도 장녀 아니면 차녀는 될것이라면 580년대 전반출생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 경우는 최소한 진평왕이 성년연령(최소 10대 중후반이상)을 넘긴상태에서 즉위했다라는 것을 전제하죠.
진평왕이 어린나이(대략 초등학생나이)에 즉위했고 즉위후에 혼인을 한 경우라면 대략 580년대 후반까지 선덕여왕의 출생연대를 설정해볼수가 있습니다. 진평왕의 즉위시 연령을 어리게 잡아 570년생정도(10세 즉위)로 보아도 미혼인 왕은 아무래도 혼인을 일찍하려고 하는 성향이 일반적인지라서 빠르면 10대 후반에 선덕여왕이 출생했을수도 있고 혼인후 좀 더 늦게 딸을 보았다면 590년대까지도 볼수 있슬것입니다.
물론 진평왕의 나이를 어린시기 즉위로 잡을 경우 그렇다는 것입니다.
632년을 기준해서 전자로 가정하면 선덕여왕은 최소한 50세는 넘은 당시로써는 고령이고 후자로 가정해도 40세 전후 아무리 젊게 잡아도 30대 후반은 될것입니다. 여자가 왕위에 오르는데 아무리 남손이 없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 30대 후반이상인 여자를 대상으로 왕위를 물색한다라는 것이 좀 이상합니다.
2. 최소 30대 후반이라면 선덕여왕은 이미 혼인을 하여 남편이 있슬터, 그러나 기록상 즉위전에 혼인하여 남편을 두었다라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존재에 대해서 중요한 것은 선덕여왕이 공주시절 혼인했다면 남편도 최소한 진골귀족일것이 분명한데 만일 진골귀족인 남편이 존재했다면 덕만공주보다는 그 남편의 왕위계승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평왕이 아들이 없더라도 진골계층의 사위를 두었다면 그 사위에게 왕위계승도 충분히 고려할것입니다.
그러나 아들도 없고 그러한 사위도 없었다는 것이 정황상 분명하다면 덕만공주는 즉위전에 처녀라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그런데 처녀라고 한다면 아무리 늙어보아야 10대후반이전일터 그 나이라면 아무리 생각해보 김춘추보다 더 어린나이가 됩니다.
그리하여 기록상 아직 부족한것이 많아 이렇게 진평왕과 덕만공주의 출생연대와 나이를 감안해볼적에 덕만공주가 진평왕의 딸이 아니라 손녀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됩니다.
즉 진평왕은 원래 아들이 있었고 아들이 태자로써 왕위계승이 예정되었지만 딸만 두고 부왕보다 먼저 사망했다라고 추측해볼수 있습니다.
진평왕의 제위기간이 53년이니 그럴 개연성도 충분하죠.
덕만공주가 즉위전에 처녀상태라고 한다면 진평왕의 손녀일 가능성이 충분이 계산 가능합니다.
여러 정황을 볼적이 덕만공주는 김춘추보다 더 연하일 가능성이 크고 나이가 좀 있는 상태에 즉위했다면 분명 진골귀족의 남편이 존재했을터 기록상 남편의 존재는 없고 아직 처녀였다면 진평왕의 딸이라고 보기에는 계산적으로 생각해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50대의 늙은 나이에 딸을 출생할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덕만공주는 여러딸들중 한참 서열아래가 되어버리죠.
그리고 30대정도 이상의 나이에 즉위해서 그 전에 혼인해서 남편이 있다면 아들을 두었을 가능성이 있고 아들이 있다면 그 다음 왕위계승자는 그 아들이 되어야 하는데 그 다음에도 사촌동생이 즉위했스니 아무리 생각해도 즉위시에 아직 처녀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첫댓글진평왕을 따질게 아니라 호림공(579년생)의 맏누이 마야부인을 따져야 될 것 같습니다...호림공 맏누이 이니 약 570년 생으로 잡더라도 보통 15세에 임신을 한다고 보면 아마도 58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추정됩니다...이것도 사료도입상 약간 문제가 있는 화랑세기 필사본에 의한 것으로 각자 알아서 판단하실 문제입니다만...^^*
진흥왕의 즉위년이 540년인데 즉위 당시 7살입니다. 즉 진흥왕의 출생년은 534년생, 26대 진평왕은 진흥왕의 손자입니다. 진흥왕과 자손들을 대략 20년의 터울을 두면 574년이 진평왕의 출생시기에 해당합니다. 진평왕 43년(서기621년)에 당나라 황제가 선덕을 희롱하는 기사로 보고, 선덕의 나이를 대략 15-20세로 보면 선덕은 602년-607년 정도에 출생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정합니다.
사서에 나타나는 기록이 있다면 그 보다 정확한 것은 없겠지요. 진흥왕의 출생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본 것이고, 진평왕의 출생은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존하여 비교해 보면 진흥왕과 손자인 진평왕의 나이 차이가 37세이므로, 그 부친들이 19-20세 출생이니 충분히 가능한 나이입니다.
첫댓글 진평왕을 따질게 아니라 호림공(579년생)의 맏누이 마야부인을 따져야 될 것 같습니다...호림공 맏누이 이니 약 570년 생으로 잡더라도 보통 15세에 임신을 한다고 보면 아마도 58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추정됩니다...이것도 사료도입상 약간 문제가 있는 화랑세기 필사본에 의한 것으로 각자 알아서 판단하실 문제입니다만...^^*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너무 무시하십니다...이런 추측성은 될 수 있으면 올리지 맙시다...
그렇다면 백제본기에서 서동요관련하여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간의 왕위계승관계에 대한 논란은 어찌 설명하실겁니까?
????? 삼국사기를 아무리 봐도 주장하는바를 뒷받침할만한 내용은 찾을수 없군요....진평왕의 재위기간이 좀길다는것 이외에는 없는데..... ooklee견해에 공감합니다.....
진흥왕의 즉위년이 540년인데 즉위 당시 7살입니다. 즉 진흥왕의 출생년은 534년생, 26대 진평왕은 진흥왕의 손자입니다. 진흥왕과 자손들을 대략 20년의 터울을 두면 574년이 진평왕의 출생시기에 해당합니다. 진평왕 43년(서기621년)에 당나라 황제가 선덕을 희롱하는 기사로 보고, 선덕의 나이를 대략 15-20세로 보면 선덕은 602년-607년 정도에 출생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정합니다.
화랑세기의 기록을 참고하자면 진평왕의 출생년은 567년입니다..579년에 즉위했을 때 나이가 13세라고 했으니까요..즉위한 해의 나이가 어린 만큼 선덕여왕의 탄생시기도 빠를 거라는 생각입니다..600년은 너무 늦고 580년대 초중반이 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으로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저도 화랑세기 필사본 내용으로 따진다면 聖君 仁宗大王 님의 주장에 공감이 됩니다만
사서에 나타나는 기록이 있다면 그 보다 정확한 것은 없겠지요. 진흥왕의 출생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본 것이고, 진평왕의 출생은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존하여 비교해 보면 진흥왕과 손자인 진평왕의 나이 차이가 37세이므로, 그 부친들이 19-20세 출생이니 충분히 가능한 나이입니다.
선덕여왕이 대략 580년대 후반생이라면 대략 600년대초중반에 혼인을 하였을것이고 남편이 있을터 남편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것이 미스테리입니다. 만일 남편이 진골출신이라고 한다면 진평왕은 다음 후사를 딸이 아닌 진골인 사위에게 물려주었을것이 분명하죠.
화랑세기에서도 남편에 대한 기록이 전무할까요???...한번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