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붙든다는 것
조원규(시인, 문예지 베개 발행인)
당신은 무엇을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무엇을 놓쳐본 사람입니까?
이렇게 묻고 싶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과 나는 인간이라는 보편 안에서 어쩐지 비슷한 것을 붙들고 있고 또 놓쳐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바둑에 흰 돌과 검은 돌이 있듯이 인생에는 붙듦이 있고 놓침이 있다. 어떤 대국에도 예외는 없다. 그러나 어떤 대국도 똑같지는 않다. 모든 대국이 어김없이 바둑이면서도 서로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건너다보기도 한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의 장면은 이런 것이다. 내겐 자식이 있지만 내 몸으로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다. 나는 아이를 낳는 아내의 손을 잡고 침상 곁에 앉아 있었다. 아내가 내 손을 꽉 쥐는 바람에 결혼반지의 테두리가 손가락을 짓눌러 순간 몹시 아팠지만, 아내는 내 손을 놔주질 않았다.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아내는 아이를 내놓고 나서 몇 시간 정도 놀랍도록 생기있는 모습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심히 앓은 사람처럼 초췌해졌다. 기운을 다 써 한 생명을 낳고는 이제 힘을 풀어도 되겠다고 알아차린 몸의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는 슬며시 눈을 떠 주위를 한 번 가늠하더니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눈도 안 뜬 채 아이는 작은 손으로 내가 가져다 댄 새끼손가락을 꽉 쥐었다. 그때 깨달았다. 인생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여기까지 쓴 다음 나는 내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가만히 쥐어 본다.
성향과 기질 탓일까, 나는 대체로 사물을 단순한 몇 가지로 환원시켜 생각하곤 한다. 이를테면 인생의 절반은 누군가의 손을 쥐는 일과 다르지 않다. 언젠가는 스르르 풀리리라.
당신이 쥐었던 어떤 손에 관해 이야기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청탁받은 원고를 쓰고는 있지만 나는 이야기를 청해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태양이 밝음을 알려주듯, 식물이 성장을 알려주듯 인생을 알려준다.
어머니, 내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석 달 전에 나와 함께 서울 여의도의 산책로에 계셨다. 산책을 좋아하는 내가 수도 없이 다녔던 곳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언젠가 그 길 위에서 어머니를 추억하리라는 예감에 따랐던 것일까.
어머니는 뜻밖의 장소로 나와 함께 나들이 나와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산수유, 매화, 살구나무가 양쪽에 늘어선 길을 걸으며 어머니는 결혼 전 소녀 시절을 회상하셨다. 곁에서 걸으시던 어머니가 나를 돌아보시던 그 눈빛이 잊히질 않는다. 무언가를 정말로 알려주고 싶은 눈빛이었다. 외할머니 얘기, 학교 다니던 얘기, 외삼촌들 얘기 등등. 정말 소중한 기억을 왠지 간절히도 자식인 나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어머니의 눈빛, 그것만이 내게 남았다. 그때 깨달았다. 사금砂金처럼, 아니 정금精金처럼 인생에서 남아주는 것은 어떤 교감의 한순간이라는 것을. 잊을 수 없다, 수풀과 꽃나무 사이로 걷다 날 돌아보던 그 눈빛을. 소녀였다 늙어버린 한 고운 분의 그리움의 표정을.
어머니 돌아가실 적에 며칠 동안 나는 어머니의 손을 쥐고 주무르며 자꾸만 말했다. “어머니, 감사해요, 사랑해요, 애 많이 쓰셨어요. 우리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탈진하여 눈도 못 뜨시던 어머니는 내게 붙잡힌 손으로 반응을 보이셨다. 내가 어머니 손을 꾹꾹 쥐면 어머니도 미약하게 맥박치듯 두 번 그래, 그래 손으로 답하시는 것 같았다.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손잡고 시장 가는 길에서 어머니는 손으로 대화하는 놀이를 처음 시작하셨다. 어머니가 잡은 손으로 두 번 꾹꾹 신호를 보내면 내가 두 번 꾹꾹 답신을 보내는 단순한 놀이였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다정했고 행복했다.
그것이 어머니와 나만의 비밀추억인 줄 알았는데, 돌아가실 무렵에 형도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것을 알았다. 멍청한 나여, 어머니가 장남인 형을 얼마나 사랑했는데. 마지막 시간까지 그 손 잡음으로 어머니와 통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차가워진 손을 잡고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 이제 고통받지 않으셔요. 그리고 어머니의 손. 꾹꾹 신호를 보내도 감감히 응답 없는 손.
그로부터 얼마 뒤에 꿈에서 어머니를 뵈었다. 컴컴한 들판인지 벼랑 근처인지 어머니와 손을 잡고 있었는데, 한순간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 어머니가 내 손을 놓으시고 어딘가 깊은 심연으로 뛰어내리셨다. 꿈에서 깬 뒤 나는 거대한 우주의 크기를 상상했다. 작별이란 온 우주의 크기만큼을 경유해야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이었다.
손을 쥔다는 것, 손을 놓친다는 것, 함께 걷다 문득 알아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또 그 시선을 알아차린다는 것 - 내 생각에 이것이 인생의 근본형식이다. 근본형식이란 수많은 개별경험이 환원되는 원형原形같은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하고 외로워하실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진다. 언젠가 내가 일억 가까운 돈을 대출받고 수입도 없이 이자밖에 내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였을 때,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화내거나 야단치지 않으시고 지금부터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갚을 수 있지 않겠니, 라고 용기를 주는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때 아버지는 내 위가 아니라 내 곁에 계셨다. 드문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어.’ 그때 아버지는 인생에 대한 당신의 자세를 알아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어떤 동의를 바라시는 것처럼 나를 보며 나와 함께 길 위에 서 계셨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또 듣고싶다. 멀리서 바라보면 결국 몇 가닥 사람의 일로 환원되는 각자의 경험을. 그 안에서 우리가 그다지 똑똑하지도 않으며 그저 막연히 인간적인 것을 바라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던 시간 속 정경들을.
당신은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무엇을 놓쳐보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