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잘잘
김은오
태평양 어느 곳에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있다고
덜덜덜
우리나라 7배 면적이던 쓰레기 섬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고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많아질지 모른다고
미세플라스틱을 물고기가 먹게 되면
결국 우리 몸에 들어온다고
플라스틱 쓸 때마다 내 마음 덜덜덜
덜덜덜 떨지만 말고
덜 먹고, 덜 쓰고, 덜 싸고
덜 타고, 덜 가고, 덜 버리고
해봐야겠다 잘
-《어린이와 문학》 (2024 가을호)
책읽기
김진숙
한 손으로 책을 잡고
흔든다
바닥에 떨어진 글자를
두 손으로 긁어모아
머리 위에 얹는다
눈을 감는다
글자들이 머릿속으로
줄지어 들어간다
‘아! 재밌다’
-『이름을 불러줘』 (2024 가문비어린이)
새가 되어 난다
박근태
하얀 비닐봉지
바람에
대굴대굴 굴러간다
잡으려고
달려가면
재빠르게 도망간다
다리에 힘주고
뛰어가면
펄펄 날아간다
누군가 버린
또 버릴까 봐
비닐 새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간다
-《아동문예》 (2024 가을호)
배꼽
박해경
탯줄 자를 때마다
매번 떨렸다는 할머니
감꽃 떨어지는 계절이면
가만히 더듬어 본다
잘 있는지
-『달을 지고 가는 사람』 (2024 작가)
노래값
손인선
주렁주렁 달린 사과
잘 익어
단내 나는 사과
산비둘기 콕콕
까치 콕콕
일손 한번 안 보태고
그저 먹는다고
농부 아저씨 가짜 총으로
밤낮없이 빵빵
1년 내내
노래 불러준 값이라고
산새들이 제집처럼
들락날락
뻐꾹, 뻐꾹
꺅깍, 꺅꺅
과일 맛집 찾았다고
이웃 새까지 불러들이죠
-《문장 웹진》 (2024 11월호)
도둑눈
신이림
밤사이
도둑이 다녀갔다.
어지러운 발자국
몽땅 훔쳐 갔다.
새하얀 숫눈길만
남겨 놓은 채.
-『엉뚱한 집달팽이』 (2024 청색종이)
까치만 외롭게 남아
신현배
하늘 아래 첫 동네에
집들이 모두 헐렸다.
‘꿈나라 아파트 분양.’
형형색색 문구들을
집 없는 한 떼 바람이
슬금슬금 읽고 간다.
새 아파트 입주는
꿈도 못 꿀 일이라며
입주권* 팔아 치우고
떠나 버린 주민들.
꿈꾸던 집을 짓는다.
*입주권: 개발 예정지 안에서 도시 계획이나 택지 개발 사업 등으로 집이 헐리게 된
철거민이나 원주민에 대하여, 건물이 지어졌을 경우 먼저 입주할 수 있는 권리.
-『자작나무의 봄』 (2024 리잼)
얼음
우승경
누구랑 말해본 적 없어
누구랑 가까이 지낸 적도 없어
난 그저 빠르게 흘러가던 물이었지
살짝 내린 싸락눈
날개를 쉬었다 가는 청둥오리
깔깔대며 노는 아이들
누군가를 등에 태우는 것이
달뜨는 일이라는 걸
얼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어
-『등나무와 고양이』 (2024 초록달팽이)
박쥐가 왜?
전수완
포유류가 말했다
“현서한테 붙었다가 서현이한테 붙었다가
너, 꼭 박쥐 같아!”
조류도 지지 않았다
“현서네 편이야, 우리 편이야.
결정 안 하면 너 계속 박쥐 되는 거야.”
박쥐가 왜, 어때서?
너희가 다 같이 친하게 놀 때까지
난, 그냥 이대로 박쥐 할래
박쥐가
왜 왜 왜, 어때서.
-《동시마중》 (2024 올해의 동시)
대장간
최봄
여기서
태어나는 건
모두
대장들이야
밭매기 대장, 호미
풀베기 대장, 낫
장작 패기 대장, 도끼
1000도가 넘는
불가마를 견디면
대장이 될 수 있지
대장이 못 되면 어때?
너는 너!
그대로도 괜찮아.
-『풍선 데이 』 (2024 푸른사상)
출처: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이묘신
첫댓글 12월 <이달의 좋은 동시>에 선정되신 김진숙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우승경님의 <얼음>이 좋군요.올려주신 전자윤 선생님, 고마워요.
첫댓글 12월 <이달의 좋은 동시>에 선정되신 김진숙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우승경님의 <얼음>이 좋군요.
올려주신 전자윤 선생님,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