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베르디 레퀴엠 공연을 마치고
월간리뷰 상임평론가 성용원 작곡가의 성명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예술단체 5곳(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통합을 계획하면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세종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1985년 지휘자 홍연택에 의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한국 최초 민간 오케스트라로 첫 발을 뗀 국립심포니는 2001년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단체로 지정되어 오페라, 발레, 합창을 전담하는 극장 오케스트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더니 2022년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새 역사를 시작한 한국을 대표하는 관현악단이다.
음악의 근간인 연주자 – 작곡 – 지휘 세 분야의 미래 육성에도 앞장서며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교육하는 ‘인터내셔널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작곡가 육성을 위한 ‘아틀리에’, 전 세계를 무대로 차세대 지휘자를 발굴하는 ‘국제지휘콩쿠르’ 등을 기획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작곡가 김택수, 피아니스트 임윤찬 등을 발굴하고 성장시켰다.
또한 한국외국어대학교와의 협약으로 예술과 학문의 협력을 통한 융합형 창의 인재 육성에도 힘쓰며 K-클래식 확산에 한국의 인문학도들의 참여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국제 문화 교류 진흥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인재 육성의 기반을 다져 클래식 저변 확대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런 국립심포니를 국립이란 명칭에 맞게 세계 속에서 경쟁시킬 생각은 안 하고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거대 아젠다와 정치적 셈법에 입각하여 발전을 저해하는 발목잡기 작태가 그저 통탄할 노릇이다.
국립심포니가 세종으로 내려가면 지역 클래식음악 향유자가 수준 높은 공연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고 문화 수준이 서울 & 수도권에 근접하여 전국이 격차 없이 똑같은 문화생활을 누릴 거라는 장밋빛 청사진은 너무나 어리석고 문화예술, 특히 클래식 음악의 ‘클’자도 모르는 무식한 발상이다.
서구 클래식은 중세 이래 각 지역의 귀족이나 영주, 왕들이 자신들의 영지에서 세력을 키우고 지원하였다. 즉 봉건주의 시대의 성주나 가문 수장의 문화적 취향이나 척도, 관심에 따라 지원과 발전이 천차만별이어서 예술가들은 자신을 알아주고 고용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유랑했고 상주했다. 그러니 도시의 규모와 크기, 인구수와 음악 발전은 별 연관성이 없어 인구 20만도 안 되는 독일 동부의 작은 도시 밤베르크(Bamberg)가 인근 주도인 뉘른베르크(Nuernberg)보다 더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보유하고 있고 우리로 치면 익산이나 군산 정도의 도시 밖에는 안되는 독일 남서부의 칼스루에(Karlsruhe)는 바덴(Baden) 공국의 수도로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 초연될 정도였다.
그런 역사적 배경과 오랜 세월의 축적 없이 서양 클래식 음악을 수입한 우리나라의 여건상 한 줌도 안 되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인구 비례 상 당연히 서울 & 수도권에 몰려 있을 수밖에 없는데 강제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장기판의 말 옮기듯이 재편한다는 발상 자체가 관료주의의 극치이다.
지역에도 엄연히 각 기초단체의 예술단이 존재하고 그런 시향을 키울 생각을 해야지 잘되는 집안에 이제 너희들도 많이 먹고 웬만큼 컸으니 다른 집안을 도우라는 건 한국 사회에 만연된 거의 전 분야에서 벌어지는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재능을 오직 천박한 돈벌이의 상업적 수단으로서만 여기며 극단으로 치닫는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와 하향평준화이다.
일반 대중들에게 보편성이 상실되어 사회적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클래식이지만 조성진, 임윤찬 같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아티스트를 배출했고 지금도 여전히 백여 명의 전공생들이 묵묵히 음악의 길에 헌신하고 있으며 국제콩쿠르의 출연자와 입상자를 꾸준히 나오는 등 현저히 작은 클래식 시장에 반해 음악적 수준은 선진국 수준의 반열에 올랐다.
유인촌 장관이나 탁상행정을 한 공무원이나 정치인 중 3월 9일 국심의 베르디 ‘레퀴엠’ 공연에 단 한 사람이나 와 봤는가? 아님 다비드 라일란트와 함께한 슈만의 교향곡이나 국립심포니에 의해 발견되어 한국이 최초로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수상한 윤한결이 지휘했던 라벨 연주회는? 아니면 우크라이나 출신의 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에게 평화의 사도 역할을 맡겼던 2023년 여름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은 와서 들어보기나 했는가?
대학 야구를 살리자고 10라운드 안에 대졸 선수를 무조건 1명 이상 지명해야 했던 프로야구 전면 드래프트, 재래시장을 부활시키고 지역 상권을 살리자고 마트를 강제로 의무휴업 시킨 것, 국민 전체를 호갱으로 만든 단통법 등 실효성과 타당성이 무의미한 정책을 남발하고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에 창피함과 손해는 왜 오직 국민의 몫이란 말인가?
지방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대다수의 일반 계층은 그다지 큰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야기된 새로운 불평등은 또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모든 인간은 격차를 갖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그게 동기 부여이자 발전의 원동력이고 사람마다 엄연한 능력의 편차와 고유의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획일성을 지양하고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 상호 간에 자극과 견제를 통해 성장을 하고 국립심포니와 같은 기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단체로 수도에 상주시켜야지 지나친 대중성과 평등의 추구는 도리어 문화적 토양을 척박하게 만들고 열정과 사명을 가지고 열심을 다하는 자의 의욕을 꺾는 독약이다.
지역에 시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지역의 니즈와 수요를 충족시키면 된다. 그들에게 지방 인재 고용과 취업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맡기고 국심은 내수용이 아닌 세계를 바라고 키우는 상징성을 부여해야 한다. 국립심포니는 이미 3월 9일, 외국인 용병과 객원 단원 한 명도 없이 월 클래스 수준으로 베르디 ‘레퀴엠’을 뽑아내었다. 국립심포니가 서울에 계속 있어야 하는 이유로 더 이상 무슨 말과 근거가 더 필요하겠는가!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