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지, 그 깊은 맛 - 시니어 매일 노정희 기자
발효의 미(味)학, 숙성의 시간을 담은, 묵은 김
머리에서 내려와 가슴에서 발효되는 것을 행복이라고 했다. 강원도 화천군 감성마을에서 문단의 기인이라는 댕기머리 ‘옵하’를 만났을 때가 17여 년 전이다. ‘값이 저렴하고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잖아요. 그렇다고 영양가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손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 여러 좋은 장점을 갖고 있어요. 젊었을 때는 고통을 인생의 소금이나 고춧가루 정도로 생각하고 살았어요. 인생도 밥상 같아서 짠맛이나 매운맛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쓴 글들이 누군가의 인생에 묵은지 한 접시라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그가 다시 못 올 먼 여행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문학계의 큰 별 하나가 가슴에서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인터뷰에 언급한 묵은지 한 접시를 끄집어낸다.
재료와 온도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4℃에서 3개월 정도 익혔을 때 김칫속 유산균 수는 1mL당 1억 마리 정도 생성한다. 최고의 수치이다. 김치맛을 만드는 바이셀라 코리엔시스 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기 시작한다. 저온에서 6개월 이상 숙성시킨 묵은지의 유산균 수치는 1mL당 1천만 개 정도로 현저히 떨어진다. 하지만 영양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김치를 발효시키고 난 뒤의 발효 산물인 글루탐산과 같은 감칠맛의 아미노산과 유기산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특유의 깊은 맛을 낸다. 김장하면서 부러 묵은지를 만들 양이면 양념을 많이 넣지 말고, 찹쌀풀도 사용하지 않아야 시어지는 것을 늦출 수 있다.
동양의학에서 배추는 그 자체가 약재였다. 중국 허베이 지방이 고향으로 알려진 배추는 ‘백 가지 채소가 배추만 못하다’는 칭송 속에 ‘채소의 왕’으로 불렸다. 숭, 숭채, 백승, 우두승, 백채, 배차, 배채, 베추 등이 배추의 다른 이름이며,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같이 늘 푸른 풀’이라는 뜻으로 ‘숭(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숭은 사실 배추 뿌리를 뜻한다. 배추 뿌리가 희다고 해서 바이채로 불리다가 배추로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데, 예전에는 잎보다는 뿌리를 중시했던 것 같다. 배추의 주성분인 식이섬유는 대장 청소에 으뜸이고, 감기에 효과가 있다.
김치에 버무린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들어왔으나 당시에는 전쟁에 사용하는 독초로 여겼고, 19세기 초부터 정식 사용했을 거로 추정한다. 조선 후기 농업백과사전 ‘임원십육지’에 ‘산초와 함께 고추를 넣은 김치를 먹으니 봄이 온 듯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다른 일설에는 일본에서 고추를 ‘고려후추’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당초’라고 불렀기에 중국을 통해서 전해졌을 것으로도 추정한다. 김치는 삼국시대 이전에는 ‘저(菹)’라고 표기하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지(漬)’로 바뀌었다. 한자로는 ‘침채(沈菜)’라고 썼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침채→ 딤채→ 김채→ 김치라는 이름으로 정착하였다.
학자들은 김치에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발효의 미(味)학 같은 어떤 신비로움이 베일에 싸여 웅크리고 앉았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김치 종류는 336종이며, 배추김치를 재가공해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50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무궁무진한 요리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약선 김치를 담근다며 감초를 넣어 단맛을 내는 경우가 있다. 감초는 해독 살균 작용을 하므로 김치 유산균이 증식하는 데 적절치 않다. 김치가 시어지는 걸 방지하려면 달걀을 하루 정도 넣었다 끄집어내든지, 조개껍질을 넣어두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배추는 차고 서늘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열을 내려주고, 건조한 것을 윤활하게 해주며, 폐와 위로 귀경한다.
묵은지의 양념을 헹구어낸 후 꼭 짜서, 잘게 또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둔다. 팬을 달구어 들기름을 두른 뒤에 김치를 볶는다. 마늘이나 파는 휘발성이기에 만들고자 하는 요리 용도에 따라 그때그때 적절히 넣어서 사용하면 된다. 재료를 추가하여 볶음밥으로, 김밥 속에 넣어 김치김밥으로 응용할 수 있다.
묵은지는 발효를 거쳐 만들어진다. 소금이나 고춧가루로 버무린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짠맛과 매운맛까지 곁들인, 숙성의 깊이를 담은 맛이다. 싱싱하고 아삭한 김치에서 유익균 가득한 황홀의 시간을 거치고, 시간에 떠밀려 골마지 끼어 쿰쿰한 늙은 나이. 누렇게 널브러진 묵은지는 사람살이와 닮았다. 발효를 거쳐야만 낼 수 있는 특별한 맛이다. 머리에서 내려와 가슴에서 발효되는 인생의 밥상이다.
출처: 시니어매일 사이트
첫댓글 금년 여름의 무더위는 정말 대단합니다. 이러한 더위는 빨리 지나가 버리면 좋으련만 김치의 묵은지처럼 지긋하게 오래 가네요,.
금년의 첫 태풍 종다리가 종달새처럼 날라가 버렸지만 오늘은 그 후유증으로 낮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이네요. 이제 태풍 때문에 무더위는 조금은
사그러 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더운 폭염을 며칠을 참아내야 하겠습니다. 다음 주 주말부터쯤 되어야 낮 기온이 30도 이하로 유지될 전망입니다
포청친!
묵은지의 유래 효능 잘 보았네
건강하자구~
아~유~ 우리 청용이는 묵은지라면
그냥 좋아요. 그래 함께 건강하자구나.......!
선배님 허방다리 입니다 ㅎㅎ
묵은지의 유래를 읽다 보니 그렇게 많으시던 묵은지 같은 돼지띠 선배님 들의
건강 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뵌지 오래 되었지만 지금도 건강 하시지요? .
..
와~우~ 허방다리님께서 여기까지 방문해 주셨네요.
아주 오랫동안 우리 아름다운 동행 카페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를 기원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묵은지.ᆢ 친근한모습과 구수한 매력에
빠집니다
그이름 처럼 오~래 오래 건강합시다
얼굴뵌지가 일년도 넘은듯 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