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연평도 피란민들이 임시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인천시 신흥동 찜질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오전 6시. 박명선(64) 할머니가 찜질방 매트에서 몸을 일으킨다. 천근만근이다. 할머니는 벌겋게 부은 눈을 비빈다. 옆에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웃 수십 명이 줄줄이 누워 있다. 모두 피곤에 찌든 모습이다. 전쟁터인 연평도를 죽기살기로 빠져나왔지만 아직 마땅한 거처가 없어 찜질방에 의지하고 있다. 잠자리가 편하지 않다. 그러나 찜질방을 무료로 제공해준 사장님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또 고맙다. 청와대보다 정부보다, 그리고 인천시보다 옹진군보다 백 배 천 배 고맙다. 벌써 6일째 감사하고 있다. 28일 박 할머니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날은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됐다. 군무원인 큰아들이 아직 섬에 남아 있다. 잠이 올 리 없었다. “어떻게 해 …. 북한이 또 쏘면 어떡해.”
오전 8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선다. 갈치와 도토리묵, 시금치 반찬이 나왔다.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떴다. 며칠째 소화가 되지 않는다. 오전 11시18분. 찜질방이 조용해졌다. “연평도에 주민 긴급 대피령이 내렸다”는 속보가 떴다. TV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왼쪽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박 할머니는 5년 전 심장수술을 받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왼쪽 가슴 통증이 계속됐다. 잠을 청해본다. 하지만 주위로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피란민 500여 명의 사람이 좁은 공간에(3520㎡) 모여있다 보니 공기가 텁텁하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할머니는 찜질방 한쪽 옹진군 임시진료소를 찾았다.
“가슴이 자꾸 조여와요. 무릎도 아프고….” 의료진은 약을 처방해주고, 29일 길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조치해줬다.
27일에는 심리안정상담소에 두 손자를 데리고 가서 상담도 받았다. 모두 북한의 포격으로 유발된 극도의 심리불안이었다.
“작은아들이 인천에 있지만, 집이 아주 작아서 아이들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어. 이제 갈 데가 없어.” 할머니는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옷 한 벌 못 챙겨 나와서다.
비단 박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극도의 불안감으로 피란민 대부분이 두통과 소화불량을 호소하고 있다. 잠자리가 불편해 파스를 붙인 이들도 부지기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