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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멘토들] #1. 안양 KGC 프로농구단 김일두 선수
공부하는 운동선수의 모범상
첫번째 용감한 멘토 |
이 름 : 김 일 두 생년월일 : 1982년 4월 23일 체 격 : 196cm / 98kg 이 력 : 휘문중-경복고-고려대-2005신인드래프트1라운드6순위–서울SK-안양KGC 학 력 : 고려대학교 학사 / 동 교육대학원 수료 프로입단 : 2005~2006년 수상경력 : 08~09 프로농구 우수 후보선수상 |
미스터 해머 파이팅!
지난 8월 10일 오후 3시, 안양실내체육관. 꽤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아 인천 전자랜드와 안양 KGC의 연습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팬들의 응원 덕인지 선수들의 움직임은 한층 활기차 보였다. 그때였다. 괴성과 함께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선수가 눈에 확 띄었다. 누굴까.
"미스터 해머 파이팅!"
경기를 지켜보던 한 꼬마 팬이 목소리를 높여 응원을 한다. '미스터 해머…….' 가까이 가서 그 선수가 누군지 살펴봤다. 아, 안양 KGC NO.32, 김일두 선수였다.
김일두 선수에게는 팬들이 지어준 2가지 애칭이 있다.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안양의 골 밑을 지켜 얻은 '미스터 해머', 또 하나는 운동을 하며 대학원에 진학해 얻은 '석사일두'. 농구선수로서 인정받으며 학업을 성공적으로 병행하고 있는 김일두 선수. <용감한 멘토들>의 첫 번째 주인공인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연습경기를 마치고 쉬지도 못하고 바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닙니다. 태술이나 희종이처럼 스타도 아닌데 찾아 주셔서 오히려 감사하죠(웃음).
오늘 김일두 선수를 찾아온 이유는 대학리그에서 뛰는 학생선수들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 아, 제가 뭐 잘한 게 있다고요. (부끄러워하며) 오늘도 경기 못해서 감독님한테 혼나는 거 보셨죠? 프로선수가 되어도 감독님한테 혼나는 건 똑같습니다(웃음).
저도 기사 못쓰면 팀장님한테 혼납니다(웃음). 오늘 아무쪼록 인터뷰 잘 부탁합니다. - 저야말로 경기장까지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어떤 도움이 될진 몰겠지만 최선을 다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
기본을 강조하신 부모님, 그리고 농구 시작
작년 김일두 선수 기사를 찾아보다 중,고교 시절 농구를 하면서 과외도 함께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쉽지 않았을 텐데 부모님께서 학업을 강조하셨나요? - 부모님께서 저에게 항상 강조하신 말씀이 있어요. 바로 '기본'입니다. 공부하라고 강요하진 않으셨지만 항상 기본은 하라고 하셨죠. 초등학교 시절 국·영·수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셨어요. 또한 예의범절을 중요시하셔서 학생으로서의 모습을 원하셨습니다.
아, 그럼 운동을 시작하면서 과외도 함께 시작한 건가요? - 과외라고 말하긴 부끄럽고요(웃음). 학습지를 했어요. 그 있잖아요. 아주머니들 오셔서 문제 풀도록 하고, 검사하고. 경복고에 진학하기 전까지 꾸준히 했습니다.
농구하면서 한 번도 (학습지) 밀리진 않았나요? - 그럼요, 지친 몸으로 집에 와도 꼭 자기 전에 숙제 다 하고 잤어요. 그리고 학습지 선생님 오시는 목요일에는 운동을 안 나갔어요.
그래요? (목요일 훈련 제외를) 학교에서 배려해 주었나요? - 네, 부모님께서 직접 학교에 요청하셨어요. 하지만 저학년 땐 선배들에게 괜히 눈치가 보여 학습지 하러 가는 날이면 너무 싫었어요. 그 당시엔 부모님께서 너무 하신다는 생각까지 했죠.
그럼 중학교 시절 성적은 어땠나요? - (당시) 휘문중학교가 좋았던 점이 정규수업 후에 훈련하는 시스템이었어요. 대회가 아니면 수업에 빠질 일이 없었죠. 수업시간에 필기도 열심히 하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성적은 나쁘지 않았답니다(웃음).
경복고에 진학했습니다. 중학교 때와 분위기가 비슷했나요? - (고개를 저으며) 경복고등학교는 4교시만 듣고 바로 운동을 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운동시간도 많아지고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너무 어려웠죠. 학습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학업과 멀어진 것인가요? - 운동은 너무 힘들었지만 수업시간만큼은 절대 졸지 않고 꾸준히 노트 필기를 했습니다.
수업을 이해하면서 필기 한 건가요? - 수업을 띄엄띄엄 들으니 당연히 따라가기 어려웠죠(웃음). 그래도 계속 필기하면서 수업을 들었더니 선생님께서 저를 예뻐하셨어요. 하루는 대회가 끝나서 정말 피곤한 나머지 잠깐 졸았는데, 한 선생님께서 '일두야, 너는 그러면 안 돼!' 라고 하시면서 깨우시더라고요. 나중엔 졸려도 졸 수가 없었어요.
그럼 중학교 때만큼 성적이 괜찮았나요? - 아니요, 대회 한번 나가면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 전략을 바꿨죠. 수업을 못 들으면 무조건 그 해당 과목 교과서를 베껴 쓰면서 공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필기만으로는 전 과목을 따라가기 어려웠죠. 결국 영어만 집중하기로 했어요. 일반학생들과 비교는 안 되지만 운동부에서만은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
운동을 위한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춘 고등학교. 그 안에서 그의 동료들은 펜 대신 농구공을 택했지만 그는 펜과 농구공, 둘 다 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농구 실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경복고 시절 그는 제2의 현주엽이란 평가를 받으며 그 포지션 최강자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출중한 실력으로 일찌감치 고려대학교 진학이 결정된 김일두. 당시 고려대학교 입학 조건은 수능 총점 60점. 그에게 60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당시 고려대학교에 진학하려면 수능 점수가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준비했나요? - 수능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아버지께서 저에게 제안을 하나 하셨어요.
어떤 제안이었나요? - 당시 제가 자동차를 너무 가지고 싶었어요. 그런데 (흥분된 목소리로) 수능 200점을 넘으면 차를 사주신다는 거에요. 어린 마음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죠.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서울역에 있는 입시학원 새벽반에 등록했어요. 새벽에 학원 수업 듣고 학교 갔다가 수업 끝나면 다시 학원 가서 공부하고. 수능 볼 때까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결국 200점을 넘었나요? - (당시 기분이 생각났던지) 하……. 아니요. 안타깝게 180점 살짝 넘는 점수를 받았어요. 언어에서 60점 이상 나와서 고대 합격은 간단했어요. 그나마 외국어를 열심히 풀어서 그 점수 나온 것 같습니다.
차는? - 실망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같이 어디 가자 하시더니, 바로 자동차 판매장에 가서 한 대 뽑아주셨죠(웃음). 너무 좋아 들떠있는데 아버지가 한 말씀 하시더군요.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 "운동선수는 성공하려면 집과 연습장이 가까워야 한다. 그만큼 훈련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지. 옆자리에 여자친구들 태워서 주접떨라고 차 사준 거 아니다. 명심해라."라고 하셨죠. 생각해보면 동생이 저보다 한 살 어리거든요. 동생이 막 고3이 되는데 저 때문에 이사 가기 힘들어서 그러신 거 같아요. 그 차 아직도 집에 있답니다. |
일반적으로 학생선수의 부모님들은 학생보다 운동선수로서의 성장을 더 강조한다. 하지만 김일두의 부모님은 아들에게 운동선수로서뿐만 아니라 학생으로서의 기본을 강조하셨다. 이러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김일두. 드디어 그가 꿈꾸던 자유와 낭만의 상징인 대학생이 되었다. |
항상 꿈꾸던 캠퍼스라이프,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캠퍼스 생활은 어땠나요? - 고대 캠퍼스 가보셨죠? 정말 좋습니다(웃음). 캠퍼스를 휘저을 즐거운 날을 상상하며 입학했는데……. 입학과 동시에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해 술도 엄청 마셨죠. 그게 대학 입학 후 한 달 간의 전부였어요.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하고 학기 내내 수업이란 것을 한 번도 안 들어갔어요. 학교의 건물 이름을 대학원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니까요.
상상과 다른 현실,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 (아쉬워하며) 대학 가면 좀 나아질 거로 생각했는데 달라진 게 없었어요. 오전, 오후, 야간으로 운동하고 또 1학년 땐 매일 청소하고 힘들었죠. 그 당시 적응하기 어려워서 농구를 그만두고 싶었어요. 이런 생활이 3학년까지 계속되다가 그 사건이 터진 거죠.
무슨 사건이죠? - 운동선수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언론에서 언급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당황한 학교는 부랴부랴 운동부를 수업에 막 들여보내기 시작한 거죠. 이 사건으로 드디어 대학수업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수업에 들어가니 어땠나요? - (당시) 학생들은 제가 정기전을 뛰었기 때문에 저를 알고 있었지만 저는 아무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마치 신입생처럼 적응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대학 공부라는 게 국,영,수 위주가 아니잖아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다양한 책들과 처음 배우는 것들. 무엇보다 한 손에 책과 파일케이스를 들고 캠퍼스를 다니는 것이 너무 멋져 보였어요.
그럼 수업을 다 듣고 졸업시험까지 보게 된 건가요? - 당시 난리가 났죠. 갑자기 운동부를 모두 집합시켜놓고 운동부 졸업시험을 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 체육교육과 유태호 교수님께서 운동부 졸업시험을 내셨어요. 단, 오픈북이었죠. 책 속에 답이 다 있었지만 아이들은 두꺼운 책을 보자마자 읽고 찾을 엄두를 못 냈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 둘 엎드려 자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는 책을 꼼꼼히 찾아가며 다 풀었습니다.
문제에 적절한 답을 써냈나요? - (회상하며) 당시 세 문제였는데 기억나는 문제가 '학교체육의 문제점'과 '체육시설의 실태'였던 것 같아요. 논술식이 수학처럼 정답만 딱 쓰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시험지 전체에 꽉꽉 채워 썼죠.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 고려대에 5개 운동부가 있어요. (자랑스러워하며) 그중에 저 혼자만 통과했죠. 나머지는 2차, 3차까지 가서 겨우겨우 통과했어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시험을 열심히 본 이유가 있나요? - 그 당시 저는 제 포지션에서는 최고였어요. 하지만 제가 방성윤(당시 대학생임에도 국가대표에 선발)처럼 A급 선수는 아니었어요. 인생이란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항상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
청소년 국가대표, 대학 선발 등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농구선수로서 인정받고 있던 김일두. 그러나 겸손함을 잃지 않고 스스로 학생임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프로에 입성, 끝날 것 같던 그의 캠퍼스 생활은 프로 무대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
프로농구선수 김일두, 대학원생 되다!
프로선수로서 시즌 준비와 몸만들기 등으로 학업을 신경 쓰기 힘들 텐데 어떻게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죠? - 짧은 시간이었지만 4학년 때 일반학생들과 수업 들으며 공부했던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좀 더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죠. 하지만 입학이 녹록지 않았어요.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 (안타까워하며) 과거 프로선수 선배들이 입학해놓고 수업에 불성실하게 참여했어요. 또한 교수님들께서도 '운동만 한 선수가 얼마나 공부를 하겠느냐'하는 선입견을 품고 계셨죠.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 그래서 일반학생들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지원했죠. 학부 성적도 제출하고 처음 보는 교수님들과 면접도 보고.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떨립니다(웃음). 결국 합격했죠. 그런데 그 합격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어떤 이야기죠? - 다른 교수님들은 다 프로선수인 제가 얼마나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할 수 있겠나 싶어 반대하셨답니다. 하지만 학부 때 졸업시험을 주관하셨던 유태호 교수님께서 '일두는 잘 할 거야. 합격시켜야 해.'라고 하시며 도와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페이지 꽉꽉 채웠던 것이 정답이었나 보네요? - 네, 제가 쓴 답이 마음에 드셨나 봐요(웃음).
사범대 출신인데, 다른 전공이 아닌 교육대학원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다른 대학원과 달리 교육대학원은 많은 수업이 저녁에 진행돼요. 6시 이후에 수업이 있어서 교육대학원을 선택했죠. 오전, 오후에는 팀 운동을 하고 저녁에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세부 전공은요? - 처음에는 운동생리학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생리학 자체가 전문적 용어와 과학적 이론이 많이 요구돼서 팀 훈련으로 수업을 못 나가는 날이 생기면 도저히 진도를 따라갈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스포츠마케팅으로 바꿨어요.
스포츠마케팅은 괜찮았나요? - (밝은 표정으로) 네, 제가 프로팀에서 뛰고 있고 그 현장에 있기 때문에 너무 재밌었습니다. 수업 때 과제를 하기 위해 야구장 가서 조사도 하고, 적극적으로 발표도 하고요. 영어 수업을 듣기도 하고요. 아, 발목수술때문에 독일에 갔을 때도 병원에서 레포트를 작성해서 담당 교수님께 제출하기도 했어요.
정말 열심히 했네요. 성적은 어땠나요? - 대학 때 성적은 학교에서 관리해줘서 졸업할 수 있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대학원 때 성적은 A도 받고 B도 받았어요. 아, F도 있어서 그건 재수강했어요. 순수하게 제 실력만큼 받았습니다.
대학원 공부에 도움을 주신 분이 있나요? - 여러 교수님들이 도와주셨어요. 그중 마케팅 학과장님이신 강현민 교수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제가 수업 끝나고 찾아가서 질문하는 모습이 신기하셨나 봐요(웃음).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직접 찾을 수 있도록 관련된 책을 주시며 잘 이끌어 주셨죠.
그럼 석사학위를 받은 건가요? - 아직 수료상태에요. 졸업시험 범위가 너무 넓어서 도저히 선수생활 하면서 할 수 없겠더라고요. 8년 안에 논문을 쓰면 되니까 그때까지 영어 공부를 더 해서 완벽하게 써 보려고 합니다. |
'석사일두'라는 별명을 팬들이 괜히 지어준 것이 아니었다. 프로선수 중에는 군대를 연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편법으로 대학원에 등록하는 이가 간혹 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운동선수라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일반학생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고 당당히 합격해 대학원생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러한 학업에 대한 열정 때문일까? 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남들과 달랐다. |
상무 vs 공익, 선택에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팀에서는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상무에 가길 원했는데 공익근무를 선택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 네, 팀에서는 상무를 원했죠. 그러나 저 스스로 몸 관리에 대한 자신이 있었습니다. 또한 공익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할 시간이 확보된다는 점이었어요. 매일 근무가 끝나면 바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익근무 때 일과를 간단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새벽 5시 반에 기상해서 1시간 반 정도 한강을 달렸어요. 씻고 밥 먹고 근무지로 갔죠. 근무하고 일과가 끝나면 바로 영어학원에 갔어요. 영어 공부가 끝나면 태술이와 만나 슈팅 연습을 했습니다.
정말 바쁘게 생활했네요. 영어 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 1대1 수업을 선택했어요(웃음). 돈이 들어도 확실하더라고요. 1단계부터 4단계까지 소집해제되기까지 2년간 꾸준히 했어요. 정말 많이 늘었죠. 저보다 영어 잘하는 선수 없을 겁니다. 현재는 시즌 준비 때문에 학원은 못 다니고 영어 기본 문제집을 항상 풀고 있습니다.
영어공부가 많은 도움이 되나요? - 그럼요, 경기 중 용병들과 대화를 해야 할 상황이 오는데, 코트로 통역사를 부를 수는 없잖아요. 영어를 할 줄 알아야 용병들도 저를 존중해줘요. 그래야 서로 플레이하는데 편하죠. |
"김일두 선수는 학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 김태술(안양 KGC)
"일두형이요? 정말 존경하는 선배입니다. 술이나 담배도 안 하고 운동하면서 공부까지! 자기관리 하는 모습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 양희종(안양 KGC)
코트 내외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료 또한 김일두의 철저한 자기관리에 존경심을 표한다. 운동만 하는 것도 힘든데 그는 왜 다른 선수들과 달리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되었을까? |
100살까지 농구하는 것이 아니다. A급 선수도 35살 이후면 은퇴하는 게 현실이다.
농구선수 김일두도 유명하지만 공부하는 농구선수 김일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당연히 제 현재 직업은 농구선수이기 때문에 농구 잘하는 선수로 알려지는 게 좋죠. 사실 처음에 공부하는 농구선수로 알려졌을 때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부담스러웠죠? - 남들이 봤을 때 '운동선수가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하나'라는 부정적인 시선이죠. 그래도 다른 한편에서는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런 부담스런 시선에도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진중하게) 농구선수는 영원히 '농구선수'라는 이미지를 안고 삽니다. '공부하는' 농구선수 김일두는 차별화된 이미지임이 분명해요. 사회생활 하다 보면 잘 아실 거에요. 평생 운동만 한 선수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에 대한 기본이 부족합니다. 또한 무식하다는 선입견으로 고생하고요. 스타플레이어도 평생 농구선수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공부를 항상 가까이하는 이유입니다. |
맞다. 우리 사회는 운동선수들에게 운동만을 강요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중, 고등학교 더 나아가 대학교 때까지 교육을 받지만 정작 배운 것은 운동뿐이다. 사회는 그들이 높은 경기 성적을 내어 선수로서 성공하기만을 원한다. 이는 학교, 감독, 부모님 모두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 속에서도 현실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김일두. 선수로서 그리고 은퇴 후 그의 목표가 궁금했다. |
농구선수로서 목표는 무엇인가요? - (진지하게) 농구선수로서 목표는 FA가 끝나는 35살 이후 1, 2년 정도 더 (재계약에 성공해) 활약해 팀 내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주며 선수생활을 잘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은퇴 후에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 사실 코치, 감독과 같이 현장에 있는 것보다 구단 프런트에 들어가고 싶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죠? -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학원에서 배운 스포츠 마케팅을 해보고 싶어요. 정말 잘할 자신 있거든요. 제 강점인 현장감을 살려 스포츠 마케팅 이론을 적용해 마케터로 활동하고 싶어요. 프로구단 마케팅 수준을 미국만큼 더 높이고 싶습니다. |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평생 농구만 해온 A급 선수의 프로선수로서의 수명은 35살 전후라는 것을. A급 선수도 은퇴 후 단 10개 뿐인 프로구단에서 코치나 감독으로 살아남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코치나 감독이 되지 못하는 은퇴 선수들은 배운 것이 농구밖에 없는 상태에서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그런 현실을 김일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그가 펜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
"운동능력과 지적능력의 기본을 갖춘 선수는 구단에서, 사회에서, 팬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학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 농구 실력 면보다는 생활 면에서 조언을 해주고 싶네요. 저는 운동선수 스스로 무식하다고 티 내는 걸 가장 싫어해요. 프로에 진출하면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일도 있을 거고. 팬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 일도 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좀 더 똘똘하고 재치있게 대응할 수 있는 기본적인 지적능력을 키웠으면 합니다.
지적능력을 키우는 데 있어 다른 선수들이 다소 망설이는 이유가 있을까요? - (인정하며) 환경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선수가 수업을 듣겠다고 감독한테 말하면 '잘 다녀와.' 하고 보내줄 감독은 없을 겁니다. 그 선수가 공부하느라 연습이 부족해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감독직에서 쫓겨나기 때문이죠. 또한 부모님도 자식이 학생으로서 학업에 증진하기보다는 선수로서 운동에 집중해 프로에서 성공하길 원하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공부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는 건가요? - 환경이 변화되면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선수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여자친구를 24시간 내내 만나지 않잖아요. 운동도 24시간 동안 하는 거 아닙니다. 훗날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아빠, 이거 뭐야?'하고 물었을 때 대답을 못하는 아버지가 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
멘토로서 학생선수들에게 한마디
멘토로서 학생선수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 학생선수들에게 대단한 도전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농구실력도 기본, 예의범절도 기본, 지적능력도 기본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중,고등학교 10년을 교육받고 대학교 4년을 다니지 않습니까. 농구를 눈에 띄게 잘하지 못했지만 운이 좋아 프로에 온 경우에도 기본이 잘되어있다면 갑자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죠. 운동이든 학업이든 어떠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을 기본을 다졌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선수들 힘들게 운동하고 있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멋진 미래를 위해 조금 더 힘내세요. 파이팅!" |
〈용감한 멘토들〉의 첫 번째 주인공 안양 KGC 김일두 선수. 지금까지 선수로서 겪어온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진심으로 자신보다 후배들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그의 바람대로 학생선수들이 조금 더 힘을 내 자신의 미래의 멋진 주인공이 되었으면 한다. |
글 / 김창용 (대학스포츠 블로그 대학생 기자단 /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
사진 / 김태경 (대학스포츠 블로그 대학생 기자단 / 숭실대학교 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