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피해 전담기구 생겼지만… “6개월간 도움 안됐다”
고양도 전세피해 속출하지만... 행정 난맥에 피해자만 '눈물'
서인국(가명)씨가 전세 피해를 당한 풍산동의 한 빌라 건물. 서 씨는 고양시 전세피해 전담기구가 만들어진 지난 6월부터 시청과 구청의 문을 수차례 두드렸으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고양신문] “그저 부동산과 집주인 말만 믿고 계약했는데 이게 말로만 듣던 전세사기일 줄은 몰랐죠. 비만 오면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집인데 집주인은 나 몰라라 하고 보증금도 돌려주지 않고...”
캐나다 국적의 서인국(가명, 64세)씨는 2020년 일산동구 중산동의 한 빌라에 전세 계약을 맺고 입주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했던 그는 한국 사정에 어두웠던 탓에 계약서를 쓸 당시만 해도 문제점을 알아채지 못했다. “계약서를 쓰는데 건물 소유가 신탁사로 되어 있어서 이게 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걱정 말라고 집주인이 믿을 만한 동네 유지인데 며칠 뒤에 소유권 넘어올 거라고 그렇게 얼버무리더라고요. 찜찜하긴 했지만 설마 속이겠나 싶기도 했고 한국 사정도 잘 모르는데 괜히 까탈스럽게 구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냥 사인했어요.”
하지만 입주 이후 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입주하기 전 체납됐던 수십만원의 전기세로 인해 전기가 끊기기도 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천장에서 계속 물이 샜다. 걸핏하면 물이 단전되는 탓에 일주일 넘게 샤워를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실시공 문제가 계속 발생함에도 집주인은 답변조차 없었고 보증금도 돌려주지 않자 급기야 해당 빌라의 월세 거주자들은 월세 납부를 거부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반면 전세로 입주한 서씨는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었고 그저 계약만료 날짜만 다가오길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부동산은 ‘나몰라라’, 변호사는 타박만
2022년 4월, 전세 계약 기간 2년이 끝났지만 집주인은 서씨의 전세금 6500만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전세금을 가져간 집주인은 ‘가짜 임대인’에 불과했고 실제 빌라 건물은 신탁회사 소유였다. 일종의 부동산 신탁사기를 당한 것이다. 전세금을 날릴 수 있다는 급박함에 서씨는 동분서주 움직였지만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은 ‘나몰라라’로 일관했고 법률상담을 받은 변호사는 “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계약을 했느냐”며 타박만 하기 일쑤였다.
“타박만 받으면 다행이죠. 자기가 해결해주겠다고 수백만원의 계약금 선금을 요구하더니 돈을 받고 나서는 태도가 싹 바뀌는 변호사도 있었어요.” 발품을 판 끝에 겨우 법무사를 통해 전세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을 진행한 서씨. 올해 1월 1심에 이어 7월 2심에서도 재판부로부터 잇달아 “전세보증금 6500만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집주인 한모씨는 “가진 재산이 없다”며 전세금 반환을 거부했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서씨는 여전히 돈을 돌려받지 못한 채 비가 새고 곰팡이가 생기는 집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 모임 통해 간신히 해결 기미
작년부터 전세사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고양시 또한 6월부터 ‘전세사기 피해대책 추진단’을 구성해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서씨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뉴스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신고를 접수 받는다는 나오길래 당장 시청으로 달려갔죠. 그런데 시청 담당자는 각 구청에서 접수를 받고 있으니 구청으로 가보라고 하고 구청 담당자는 불친절한 자세로 일관하더니 이런 문제는 경찰서를 가야 빨리 해결된다고 내몰더군요. 그래서 경찰서로 갔더니 거기서는 또 무료상담해주는 변호사를 만나보라고 하고 변호사는 또 저를 구박하기만 하고…. 시에서 또 찾아가는 상담센터를 운영한다고 해서 4번을 찾아갔지만 상담해준 변호사마다 다 이야기가 다르고 해결방안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다행히 서씨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지난달 국회 앞에서 진행된 전세 사기 피해자 집회에 참석하면서부터였다. 피해자 모임을 통해 부동산 신탁사기 전문 변호사를 소개받게 됐고 서씨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법률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보증금을 가로챈 한씨가 같은 수법으로 100여 명의 피해자들을 양산한 ‘전문 사기범’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현재 서씨는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와 연결돼 피해자 신청 및 법률지원 등을 받고 있다.
행신동 집단 전세사기 사건 등 피해사례 잇달아
이처럼 고양시 내에서도 전세사기 피해규모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고양시 HUG(주택보증기금) 보증사고(액)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10월 81억원(32건)에서 올해 3월 269억원(87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해당 기간동안 고양시 보증사고 총액은 828억원인데 이는 경기도 내에서 부천시(1149억원) 다음으로 높다.
특히 지난 6월에는 행신동 센스빌 건물에서 17명의 집단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보증금 피해 규모는 1인당 6300만원에서 7100만원에 달했는데 특히 피해자 대부분이 20~30대 사회초년생인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재 행신동 전세사기 사건은 부동산 이중계약 및 횡령 등의 혐의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같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지원과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을 위해 현재 시는 이정형 제2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전세사기 피해대책 추진단’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택과장이 TF팀 실무 총괄을 맡고 있으며 △행정지원 △임대사업자 및 공인중개사 관리 △전세피해신청 처리 및 제도상담 △전세피해자 지원 △시민홍보 5개 분야로 피해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서씨의 사례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실제 피해자 구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고양시에서는 매뉴얼에 따라 피해 사례를 접수해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이조차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례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조례’를 발의했던 최규진 의원은 “TF팀 구성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제 피해자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이라며 “전세 사기를 당한 시민들이 곧바로 피해구제 정책과 연결될 수 있도록 행정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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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 지원 받으려면?
서인국씨처럼 전세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건 국가로부터 피해지원 대상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지난 5월 제정된 전세사기피해자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로 지정될 경우 정부와 HUG, 고양시 등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임대주택에 대한 경·공매를 일시적으로 중지할 수 있으며 LH를 통한 임차주택의 공공임대 전환도 가능하다. 또한 기존 전세대출에 대한 20년 분할 상환과 최우선변제금 무이자 대출(최장 10년), 신규주택 구입 시 저금리의 주택구입자금 대출도 지원받을 수 있다. 특히 고양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월 162만원(최대 6개월)의 생계지원비도 지원받을 수 있다.
전세피해자 신청은 고양시 3개 구청 시민봉사과(토지정보팀)에서 접수받고 있으며 그 외 시청 주택과(민간임대주택팀)과 토지정보과(토지정보팀)에도 제출이 가능하다. 앞서 서씨의 사례처럼 경기도 전세피해사례 접수 및 지원업무를 총괄하는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직접 연락하는 방법도 있다. (연락처 070-7720-4870~4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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