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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개연폭포를 찾아서
1. 개연폭포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 김수영(金洙暎, 1921~1968), 「폭포」
▶ 산행일시 : 2024년 7월 28일(일), 맑음
▶ 산행코스 :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구천폭포,구천계곡,대동문,동장대,일출봉,용암문,백운대,동장대,천해대,
태고사,산영루,중성문,법용사,보리사,개연폭포,수문,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
▶ 산행거리 : 도상 12.3km
▶ 산행시간 : 7시간 27분(08 : 15 ~ 15 : 42)
▶ 갈 때 : 4호선 전철 수유역 4번 출구에서 마을버스(강북 01) 타고 종점인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내림
▶ 올 때 : 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구파발역으로 와서 전철 탐
▶ 구간별 시간
08 : 15 –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산행시작
08 : 36 – 송계별업(松溪別業) 터, 구천폭포
09 : 40 – 대동문, 휴식( ~ 09 : 55)
10 : 00 - 시단봉(柴丹峰, 동장대, 601m)
10 : 25 – 일출봉, 용암문
11 : 20 – 백운대(836.5m), 휴식( ~ 11 : 30)
12 : 30 - 시단봉(柴丹峰, 동장대, 601m)
12 : 36 – 천해대(天海坮)
12 : 57 – 태고사(太古寺)
13 : 15 – 산영루(山映樓)
13 : 52 – 법용사(法龍寺), 국녕사 갈림길
14 : 02 – 새마을교, 보리사, 원효봉 갈림길
14 : 25 – 개연폭포, 휴식( ~ 14 : 50)
15 : 32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15 : 42 – 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 산행종료
2. 오늘 아침 노을, 아래 가운데 오른쪽은 예봉산
비가 오지 않으니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연일 32도가 넘는 폭염경보의 연속이다. 이런 날을 계곡산행이 알맞다.
오늘 무박으로 설악산 계곡을 찾아 야유회를 가려고 했는데 거기는 비가 온다고 하여 연기되었다. 그렇다면 가까운
북한산 계곡을 찾아 혼자만의 야유회를 즐겨보리라 한다. 북한산 4대 폭포로 흔히 구천폭포, 개연폭포, 동령폭포,
청수폭포를 든다. 내 아직 개연폭포를 지도에서만 지명으로 보았지 실제로 폭포는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개연폭포를 꼭 찾아보리라 수일 전부터 다짐했다. 그러자면 구천계곡 구천폭포를 보는 것으로부터 산행을
시작하는 게 산행거리와 산행시간(물론 백운대는 들러야 한다.)이 일당 가까이 얼추 맞아 떨어진다. 동령폭포나
청수폭포는 그 폭포 말고는 계곡의 잔재미 적은 반면 구천폭포나 개연폭포는 폭포 못지않게 그에 가고 오는 계곡에
서 계류를 보는 재미가 짭짤하다. 요즘 잦은 비로 계류는 불었으리라. 그 계류를 장노출로 사진을 찍자면 비가 오거
나 흐릴수록 좋다.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초소에 국공이 출근을 하지 않았는지 비어 있어 천만다행이다. 낙석발생구간으로 대동문까
지 통제중이라고 목책 둘러 막았다. 얼른 목책 넘고 잰걸음 한다. 박석 깐 너른 등로다. 초소가 보이지 않게 숲속에
들어서고야 우당탕탕 큰소리치며 흐르는 구천계곡 계류를 들여다본다. 200m쯤 왔을까. 직진하는 등로는 목책과
출입금지 표지로 막았고, 이정표의 대동문 방향표시가 오른쪽 계류를 건너도록 안내한다.
그새 등로가 바뀌었나 고개 갸웃하며 우선 이정표의 대동문 방향표시를 따른다. 산모퉁이 돌고 등로는 산을 가는 게
아니라 산을 내려간다. 오룩스 맵 꺼내어 들여다보니 등로는 진달래능선 쪽으로 안내한다. 거기도 계곡을 따라 오르
는 잘난 등로가 있지만 무슨 폭포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뒤돌아간다. 갈림길에서 목책 넘어 직진하는
등로를 잡는다. 적발되는 경우 5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한다.
송계별업(松溪別業) 터다. 안내문에 따르면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1622~1658)이 1646년에 풍광이 아름다운
구천계곡 일대에 조성한 별장으로 자신이 호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송계별업에는 보허각(步虛閣), 영휴당
(永休堂), 비홍교(飛虹橋) 등이 있었으나, 인평대군 사후, 그의 후손들이 1680년 역모사건에 휘말려 축출되어 송계
별업이 관리가 소홀해지고, 구천계곡이 왕릉의 채석장으로 변해지면서 별장과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이 급속히 파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680년의 역모사건은 ‘삼복의 옥(三福의 獄)’이라고 하는데, 숙종 때의 정승 허적(許積)의 서자 허견이 인평대군의
아들들인 복창군(福昌君), 복선군(福善君), 복평군(福平君)의 3형제와 역모를 꾸민다고 고변하면서 발생한 사건이
다. 이 사건으로 허견과 허적이 사사되고, 허견과 직접 관련이 없는 (송시열과 치열하게 맞섰던) 윤휴가 사사 당했으
며, 허목 역시 죄인으로 몰려 파직, 문외출송 당했다.(위키백과)
송계별업 터 바로 그 옆이 구천폭포다. 물소리부터 시원하다. 밑에서 올려다보고, 슬랩 올라 옆에서 보고 내려다본
다. 더 위쪽은 어떤 장관일까, 예전에 오르내렸던 기억으로 슬랩을 기어오르려는데 중간에 물때가 심하게 끼어 여간
미끄럽지 않다. 그만 둔다. 나는 구천폭포라고 한 이유를 내 나름대로 추측해본 적이 있다. 이 구천폭포 맨 위쪽까지
크고 작은 아홉 개의 폭포와 각각 그 아래 소(沼)가 있어, 그 명경의 소에 비친 하늘 또한 아홉 개여서가 아닐까 하
고. 불교에서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가는 곳을 이르는 구천은 ‘九泉’이다.
그런데 미수 허목(眉叟 許穆, 1596~1682)은 「갑인기행(甲寅記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비홍지교(飛虹之橋)를 지나면 석정(石亭)이 나오는데, 아스라이 높이 서 있는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다리 위
로 폭포가 아주 멀리서 내려오는데 멀찍이서 바라보면 마치 물이 구천(九天) 위에서 떨어지는 듯이 보이므로 ‘구천
은폭(九天銀瀑)’이라고 새겨 놓았다.”
3. 구천계곡
4. 누리장나무
5. 구천폭포 하단
8. 구천계곡
10. 일출봉에서 바라본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인수봉
11. 용암봉 병풍바위와 만경대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바윗길 덮은 데크계단이다. 오른쪽 구천폭포를 들여다보자 해도 절벽과 나무숲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첨봉인 306.2m봉은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넘고 계곡과 만나 함께 오른다. 비로소 송계별업의
비홍교(飛虹橋) 뜻을 알겠다. 곳곳의 비폭(飛瀑) 물보라에 이는 무지개가 아닌가. 등로 살짝 벗어나 계류에 들락날
락하기를 반복한다. 덥다. 산행시작한 지 1시간쯤 지나고 물에 빠진 것처럼 온통 땀으로 속속들이 젖는다.
가쁜 숨 돌리고자 가던 걸음 멈추면 날파리와 모기떼가 몰려들어 그만 어서 가라 재촉한다. 계류 덮은 긴 데크계단
지나고 가파른 돌길 한 피치 오르면 등로는 완만한 숲길로 이어지고 곧 출입금지 목책 넘어 대동문이다. 대동문
너른 쉼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하고 있다. 나도 한쪽에 자리 잡고 오래 휴식한다. 아까는 하도 더워 대체 오늘
산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회의감이 들었는데 쉬고 나니 욕심이 생긴다.
가자. 백운대를 향한다. 잔 봉우리 오르내리는 성곽 길이 아닌 사면 도는 길을 간다. 성곽 길은 조망이 변변찮은 뿐
더러 지난 봄날처럼의 풀꽃도 없다. 동장대는 이따 다시 와서 천해대로 갈 것이니 그리로 가는 지능선 길을 보아둔
다. 일출봉만큼은 오른다. 거기서는 빼어난 모습의 병풍봉 병풍암과 만경대 동벽, 인수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렇다. 영봉 너머로 도봉산 연봉과 멀리 아스라한 불곡산도 바라본다.
용암문. 오는 등로 내내 예고했던 대로 용암문에서 백운대암문, 대동사 구간을 통제하였다. 지난 4월 29일부터다.
통제사유는 산사태(낙석) 발생 위험에 따른 탐방객 안전사고 예방이라고 한다. 산사태나 낙석이 이미 발생하여 등로
를 막은 것이 아니라 그럴 위험이 있다고 해서다. 아니 그렇다면 우리나라 어느 산이 위험하지 않으며, 위험하지 않
은 때가 있단 말인가. 겹겹이 둘러친 목책을 넘는다. 한적한 북한산이다.
오가는 사람이 없다. 열 걸음이 멀다 하고 출입통제 플래카드를 걸었고 그 숱한 데크계단마다 출입하지 못하도록
목책으로 막았다. 바위려니 하고 넘고 넘는다. 나는 만경대 사면 도는 바윗길에서 노적봉과 원효봉, 염초봉을 보기
를 좋아한다. 봄날이면 발아래 깊은 계곡 옅은 초록의 수림은 또 얼마나 환상적이던가. 백운대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발걸음으로 점점 줌인하여 바라본다. 오늘따라 무척 해끔한 모습이다.
대동사에서 오는 길과 만나고 데크계단 한 피치 오르면 백운대암문(위문)이다. 백운대암문은 출입하지 못하도록
아예 촘촘한 철조망으로 막아버렸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오른쪽 목책 넘고 층층 바위를 기어 성곽
에 오른다. 백운대암문 초소도 국공은 없다. 성곽이 높아 바로 뛰어내릴 수는 없고 백운대 쪽 성곽 끄트머리로 가서
조심스럽게 뛰어내린다. 백운대 오가는 사람들 무리에 섞인다. 백운대 가는 슬랩도 젖어 미끄럽다.
12. 자주조희풀
조희는 ‘종이’의 방언이라고 한다.
자주조희풀은 풀이라는 이름이지만 낙엽활엽관목이다.
13. 염초봉
14. 백운대, 내 발걸음으로 줌인하였다
17. 백운대에서 내려다본 원효봉, 염초봉, 파랑새능선 장군봉
18. 노적봉
19. 백운대 원추리
20. 도봉산 연봉, 왼쪽 뒤는 사패산
백운대 오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지체 없이 오른다. 백운대 정상은 의외로 시원하다. 햇볕은 짙은 먹구름에
가렸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댄다. 태극기 한 바퀴 돌고 암반에 앉아 휴식한다. 절벽 가까이 손바닥 넓이의 풀숲에
원추리가 활짝 피었다. 곱다. 그 원추리와 함께 인수봉 너머로 상장능선 연봉, 도봉산 연봉, 불곡산 등등을 바라본다.
충충 쌓인 구름 내 흉금을 씻어주고
멀리 응시하니 둥지 찾는 새 눈에 드네
내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주위의 작은 산들을 한 번 내려다보리라.
盪胸生曾雲
決眥入歸鳥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두보(杜甫, 712~770)가 태산(泰山)을 보고 읊은 「망악(望嶽)」의 일부다. 명말청초 때 사람 김성탄(金聖嘆,
1610~1661)은 이 시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고 한다.
“산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나머지 사람과 산이 일체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가슴을 열어제낀 것이 산이 가슴을 연 것
과 다를 바가 없고, 내가 눈을 깜박한 것은 곧 산이 깜박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산을 향해 돌아온 새가 결국은 나
를 향해 돌아온 것이다. 일러 주객합일(主客合一)의 경지 ……”(이병주, 『산(山)을 생각한다』의 ‘북한산고(北漢山
考)’에서)
용문산은 미세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이만하면 조망이 좋은 편이다. 백운대 슬랩을 내릴 때는 오를 때보다 더
미끄럽다. 동장대까지 온 길을 뒤돌아가야 한다. 방금 전에 내린 성곽으로 간다. 배낭 먼저 던져 올려놓고 철봉하듯
오른다. 백운대에서 만경대 사면을 도는 데크계단이 훤히 보였기 머뭇거리지 않고 잰걸음 한다. 이때는 주변 경치
둘러보는 것도 생략한다. 노적봉 안부에 이르러 잠시 숨 돌린다. 이때도 오가는 사람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중으로 목책 둘러 막아 놓은 용암문 앞에 국공이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처럼 건수 생겼다
하고 나를 불러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용암문에서 대동문 쪽으로 오가는 몇몇 등산객이 발걸음 멈추고 우리를 지켜
보고 있다. “어떻게 거기서 오시나요? 이 플래카드가 보이지 않나요? 출입통제 구간인데 과태료를 부과해야겠습니
다.”하고 논고하듯 말한다. “저 앞 산모퉁이를 가다가 이렇게 계속 막고 있어 그만 뒤돌아오는 중입니다.” 하고 사정
조로 말하며 머리 조아렸다.
예전에 단풍 님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과태료를 납부하지 않아 즉심에 넘겨져서 판사 앞에 설 때의 요령이었
다. 절대 정장을 하지 말 것. 허름한 츄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싣고, 늦잠 자다 방금 일어난 것처럼 머리는 빗지 말고
뒷머리가 눌린 부스스한 채로 가라는 것이었다. 최대한 처량한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판사는 대뜸 과태
료를 깎아달라는 수법이구만 하면서 아무 말 안 해도 대폭 깎아준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등산객들이 어쩌면 내 일이 자기들의 일도 될 수 있겠다 싶었는지 말은 없어도 나에게 동정어린 눈빛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일까, 국공이 사뭇 부드러워졌다. “백운대암문까지 갔더라면 거기 초소에 국공이 나와 있어 틀림없이
과태료를 부과했을 겁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하면서 어서 가시라 보내주
었다. 나는 “감사합니다” 큰소리로 사례하고 물러났다.
21. 천해대에서 바라본 노적봉
22. 태고사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
23. 증흥사 옆 용암동계곡
26. 산영루 주변
동장대 서쪽 지능선도 금줄 치고 출입금지라며 막았다. 넘는다. 한적한 인적이 안내한다. 급전직하 내리막이다.
가파른 내리막이 잠시 주춤한 데가 천해대(天海坮)다. 오른쪽 산자락 아래에 있는 봉성암(奉聖庵)의 관할인지,
“이곳 천해대(天海坮)는 기도(祈禱) 도량이오니 유락(遊樂) 및 취사(炊事) 행위는 필히 삼가해 주십시오” 라는 안내
문을 세웠다. 천해대는 북한산에서 음기가 가장 강한 곳으로 기도의 명당이라고 한다.
소나무 숲 아래 너른 암반은 의상능선이 그림처럼 보이는 일대 조망처이기도 하다. 천해대 내리면서 오른쪽 나뭇가
지 사이로 보이는 노적봉이 또 다른 준험한 모습이다. 보물 제749호라는 원종국사 보우(普愚, 1301~1382) 탑을 둘
러보고, 계단 내려 ‘靈泉龍王堂藥水’ 한 바가지 떠서 마시고 물병에 가득 채운다. 태고사다. 적막하기 절간이다.
마당 한쪽에 귀룽나무는 잘 있다. 대로에 내려서고 중흥사다. 용암동계곡 입구이기도 하다. 중흥사 스님 대신 법문
하는 계류가 제법 우렁차다.
백운동계곡 계류와 함께 내린다. 그중 산영루 주변의 계류는 압권이다. 많은 사람들이 계류 주변 곳곳에서 놀고 있
다. 어디고 간에 내가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실례한다며 사진 찍고 얼른 나오곤 한다. 법용사 뒤쪽 잘난 등로
가 국녕사로 간다. 용유동계곡을 올라 국녕폭포를 보려고 했는데 가파른 오르막이고 지치기도 하여 꾀가 난다. 국녕
사 쪽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을 붙잡고 물었다. 볼만한 폭포가 있더냐고. 아무리 살펴도 폭포다운 폭포가 없더라고 한
다. 살았다. 발걸음 던다. 그 대신 용유동계곡 입구 실폭포를 인적 없는 낙엽과 잡목 헤치고 다가가서 바라본다.
개연폭포를 찾아간다. 새마을교 지나기 전 보리사 앞 갈림길이다. 이정표는 백운대 (2.6km) 가파른 길이라며 안내
한다. 우선은 완만하게 오른다. 원효봉과 대동사 입구까지는 이럴 것이다. 등로는 계류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서 간다. 계곡을 특별보호구역이라며 목책을 둘러서 막았다. 적발되면 과태료 50만원 이하라는 경고
도 덧붙였다. 30분쯤 올랐어도 계류가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효봉을 넘어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물었다.
개연폭포를 보셨는지. 고개 내저으며 아무런 폭포도 없더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나쳤을 것. 뒤돌아 내린다.
목책 넘은 인적이 있는지 자세히 살핀다. 찾았다. 그 인적 따른다. 가파른 사면을 내린다. 넓고도 높은 석벽 한가운
데에서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본다. 개연폭포다. 노거수인 소나무와 벚나무 아래 알맞은 크기의 층층 암반이
관폭대다. 무릇 명폭(名瀑)은 그 폭포를 보는 주변 환경이 한몫해야 할 것. 이런 점에서 개연폭포는 북한산 4대 폭포
중 으뜸이라 할만하다. 영락없는 능호관 이인상(凌壺觀 李麟祥, 1710~1760)의 명품인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의
실경이다.
개연폭포의 개연이 무슨 의미인지, 그 한자 쓰임이 어떠한지 모르겠다. 아무리 자료를 찾아보아도 알려주는 데가 없
다. 혹시 잔치를 벌인다는 ‘개연(開宴)’이거나 연회를 베푸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개연(開筵)’이 아닐까. 잔치를 벌이
기에는 아주 명당이어서 그렇다. 개연폭포 아래 계류가 깊이 휘돌아 흐르는 암반에 몸을 담근다. 물살이 무척 부드
럽다. 그런 다음 잔치 상 펼친다. 늦은 점심밥 먹는다. 관폭하며 독작하는 탁주는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를 읊게
한다.
君不見 임이여 보지 않았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回 바다로 쏟아져 흘러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을.
君不見 임이여 보지 않았는가.
高堂明鏡悲白髮 고당의 명경을 보고 백발을 슬퍼하는 것을.
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엔 청사와 같은 것이 저녁엔 눈처럼 되지 않았던가.
人生得意須盡歡 모름지기 인생은 마음껏 즐길지니
(…)
五花馬 기막힌 털을 가진 명마
千金裘 천금을 호가하는 백호의 가죽
呼兒將出換美酒 아이야 모조리 들고 나가 술로 바꿔 오너라.
與爾同銷萬古愁 너와 만고의 수심을 풀고자 한다.
(이병주, 위의 책 해석에 따름)
개연폭포 그 아래 폭포도 장쾌하다. 계곡 길 갈림길에서 포장대로보다는 계곡 길로 간다. 먼저 그 갈림길에서 왼쪽
산비탈 잠깐 올라 수렴(樹簾) 걷고 염초봉과 백운대, 만경대를 다시 본다.
계곡 길은 데크로드를 자주 지난다. 폭포구경은 계속된다. 폭포 사진을 찍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광량을 조절하
려면 햇빛이 구름에 가리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산 둘레길 다리 위에서 노적봉과 만경대를 바라본 다음 북한산성 주차장에서 의상봉과 용출봉을 바라보고 나서
비로소 눈을 돌려 산행을 마감한다.
30. 용유동계곡 입구 무명폭
31. 개연폭포
32. 개연폭포 아래 무명폭
33. 왼쪽부터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34. 백운동계곡 무명폭
36. 수문 근처 무명폭
39. 북한산성 주차장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용출봉(뒤)
첫댓글 예전엔 10 만 원 기억이 나는데 50 만 원이라니
물가가 오르니 과태료도 오르나 봅니다.
하기야 국공 월급도 올랐을 테니..
개연폭포 구경 잘했습니다.
물가도 오르고, 과태료도 오르고
산에 가기 점점 힘든 시절입니다.
개연폭포 보는 데도 자칫하면 50만원을 내야 합니다.
그저 여름엔 계곡이 쵝오ㅎㅎ
알탕하러 산에 갑니다. ㅋㅋ
개연이란 이름을 처음으로 듣네요. 50만원의 비자금을 준비해야 보게 될련지요? 아님 지나치다 슬쩍 들렀었던곳일지도... ㅎㅎ
개연폭포 주변은 특별보호구역이라며 다른 곳과는 달리 대접하는데,
보리사에서부터 개연폭포까지가 비폭들의 연속입니다.^^
북한산의 폭포들이 볼만합니다. 개연폭포도 잘 봤네요...
비 오는 날의 선물인가 합니다.^^
날 좋으면 하루재에서 만경대로 올라 보세요. 족두리바위도 올라갈수 있고요. 워킹으로도 가능한 곳입니다. 백운봉암문쪽으로 내려오실때 국공있는지 확인하시구요. 단풍든 가을에 좋을거 같아요. 저는 김상궁바위지나 도선사 지계곡 입술바위, 알프스 샘으로 올라갔습니다. 칼바위님 지도 보시면 나와요
이제 느는 게 겁이라 암릉은 무서워요.
그럴 욕심도 사라지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