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의 탄생 3】
뉴올리언즈의 Uptown족(흑인들)은 무식해서 악보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구입한 싸구려 악기를 힘껏 불어댔지만,Creole은 음악적 소양을 충분히 쌓았던 사람들이라서 그런 엉터리 음악은 연주할 수 없었다.
"재즈란 미국에서 흑인과 유럽 음악의 만남으로부터 태어난 예술이다"라고 정의하는데,이 경우 유럽 음악은 백인이 가져온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엄중했던 뉴올리언즈에서 흑인과 백인이 같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러면 흑인과 유럽 음악은 어떻게 만났을까?
유럽 음악의 교양을 깊이 체득한 Creole이 그 매개역을 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뉴올리언즈의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서 흑인에 대한 거부감이 덜 하였다.
그러다보니 프랑스 백인과 흑인 사이에 많은 혼혈이 태어났다.
이들이 Creole이다. 노예 해방령에 의해 지위가 올라간 노예의 자손과 반대로 지위가 내려간 Creole의 자손이 대등하게 만나 Mix band를 편성한 데서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이 발생하였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군항이었던 뉴올리언즈의 사창가 스토리빌이 폐쇄되면서 재즈맨들이 일거리를 잃게 되면서 북부 도시로 이동한 것은 사실인데,이들 뉴올리언즈의 재즈맨들이 모두 시카고로 이동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뉴올리언즈에 남아있는 재즈맨들이 많았다.
원래 자리잡고 살았던 고장을 떠나기 힘들다는 것은 전세계 어느 곳이나 똑같다. 이들 잔류파 재즈맨들은 프로 중의 프로였다. 예전보다 일거리는 많지 않겠지만 수입에 상관없이 이 음악에 일생을 바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들의 실력은 점점 좋아졌다.
1910~20년에 걸쳐 미국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한 인구는 백인 5백만,흑인 3백 50만 이라고 한다.
발전 도상에 있었던 미국의 경제 조직,산업 구조의 변화(농업 중심 →공업 중심)가 북부의 공업 도시로 인구를 이동시킨 원인이 되었다. 흑인의 대부분은 뉴욕을 피해 시카고 주변에 몰려들었는데,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같은 흑인이라도 뉴욕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고 도회적인 감각을 체득하고 있어서 남부의 시골 사람을 노골적으로 경멸하였다. 남부 출신에게 있어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도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시카고라면, 만일 실패하여 고향에 돌아가더라도 거리가 가까와 여비가 싸다.
더구나 시카코는 대량의 흑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였다.
뉴올리언즈에서 북상한 프로 뮤지션의 기분도 같았다.
시카고는 산업이 발달한 대도시여서 자연스럽게 클럽이 활성화되고 여기서 새롭게 재즈가 기반을 잡았다.
연주자는 뉴올리언즈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시카고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게되며,백인 재즈 연주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밴드 전체가 함께 즉흥연주를 하던 뉴올리언즈 스타일에서 즉흥 연주가 적어지고 솔로의 활약이 전체 밴드의 연주보다 강조되는 스타일로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뉴올리언즈 스타일보다는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솔로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타 뮤지션이 탄생하게 된다. Louis Armstrong이 그 대표적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