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어디에서 나올까?
중국 명나라 말 이지(이탁오)라는 이가 이미 그 대답을 제출해 놓았다. 이른바 ‘童心論’이 그것이다. 그는 유교의 경전들이 ‘거짓된 사람들을 숨기는 늪’이라고 격하게 비판하면서 딱딱한 유교 봉건사상에 맞서 표현과 정신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그는 훌륭한 글은 동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동심은 참된 마음, 곧 진정성을 가리킨다. 거짓 없고 순수한 본심, 혹은 초심이 바로 동심이다.
이지에 따르면, 동심이 존재하면 언제든 좋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없고, 누구든 좋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지식과 견문이 쌓이면서 그 동심이 빛바래거나 사라진다는 것이다. 특히 잘못된 독서가 사람을 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책을 읽어 이름을 파는 데 골몰한다면 책을 읽지 않아 동심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만 못하다는 것.
어린이들이 쓴 동시를 읽다가 보면 동심의 파괴가 시작되는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어린이의 마음이 무조건 천진무구하다는 잘못된 전제 때문이다.
아이들 마음을 병들게 하는 건 어른들이다. 그게 답답했는지 백창우가 동시 한 편을 턱 내놓았다.
“니가 쓰고 싶은걸/
니 맘대로 써/
니 말로 말야/
니만 좋으면 돼/
시 쓰면서 눈치 볼래면/
뭐하러 시를 써/
세상에 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니가 아무리 잘 써봐/
그래도 다 맘에 들어 하진 않아/
그냥 니맘에 들면 돼/
니맘에도 안 든다고?/
그럼, 버려”
나에게 누군가 물어 본 적이 있다.
“글을 어떻게 쓰죠?”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꼴리는 대로 써요”
소설, ‘슬픈 미나미타’의 작가 이시무레 마찌꼬는 야학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작가가 되었다.
일본의 문학계는 동경대 출신들이 주도하는 엘리트 문학이다.
그것에 정면으로 반박한 사람이 이시무레 미찌꼬다.
나는 아이들 키울 때도 공부하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했지만, 매일 맘대로 글을 쓰라는 말은 했다.
맞춤법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라고 했다.
그것 때문인지 첫째 딸이 영극영화과에 입학하고 쓴 시놉시스를 교수가 읽고 인터넷에서 모방한 것이라고 오해할 정도였다.
글쓰기에 독서도 중요하지만, 나는 다만 글의 소재로만 사용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어릴 쓰게 된 그림일기다.
그것이 내 문학적 중요한 자양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