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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숙자 10대 소녀의 인간승리
인간이 어떤 환경에 노출 되었느냐가 운명을 가름할 수도 있지만 그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느냐가 더 중요한 운명이 될 수도 있다. 한 10대 소녀의 감동적인 삶의 기록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케 한다.
14살의 미혼모인 어머니가 차디찬 쓰레기더미에서 이 소녀를 출산했고 노숙자로 쓰레기를 뒤지며 굶주림을 해결했으며 길거리에서 키워졌다. 일 년에 학교를 12번 옮기고 일 년에 이사를 12번하면서 매춘부들과 마약중독자들의 꼬임에도 불굴의 의지로 일어선 이 소녀가 16살의 초반 나이에 대학지원서를 에세이로 작성했다.
어린 소녀로서 더욱이 노숙자의 처지로 자신의 일생을 담은 삶의 경험과 교육열을 논리적이면서 설득력 있게 구사했다는 점에서 나는 놀랬다. 단어는 쉽게 문장은 간결하게 표현은 정확하게 구사했다. 그 이름은 카디자 윌리암스다. 그 소녀는 하버드 4년 장학생이며 20살에 2013년도 하바드 수석 졸업생이 되었다. 이 글을 번역하면서 나 자신 글을 써봤다는 주제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윌리암스의 자필 대학 신청서 에세이를 아래와 같이 번역해서 공유코자한다.
카디자 윌리암스의 하버드 및 20여개대학 입학 자필 지원서
"I have not prepared for college or life in the traditional manner. For almost all of my life, I have never had a place to call home. I have questioned why I have to struggle so hard to succeed while others do not have to question whether they will go to college.
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인생도 대학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은 집이라고 불릴만한 은신처도 결코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의문을 가졌었습니다. 왜? 나는 그렇게 치열한 투쟁이 계속 되어야만 했고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왜 대학에 가야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는지를 말입니다.
However, there is one thing I have never questioned: My education. My life and circumstances have given me life skills, that in turn, have helped make me into the driven and passionate student I am today.”
그러나 나는 결코 의문을 갖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의 교육입니다. 나의 삶과 환경은
나에게 사는 기술을 제공했고 순차적으로 나를 주도적이고 열정적인 현재의 나로서 존재토록 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I have lived in many types of shelters and motels throughout my life, and as a result, I have learned to be flexible, independent, resourceful, and driven in achieving my goals.
나는 다양한 유형의 보호소와 모텔을 전전하며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유연하게 되고 독립적이고 재치 있게 사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나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Whenever I am hungry, I know where to find food. Whenever I am depressed and stressed, I know exactly where to go to calm down. I tune out the prostitutes who try to sway me towards their way of thinking and ignore the drug addict’s plea to try just one drug. I have learned how to tune out the patronizing pimp that snorts, ‘You ain’t college bound. You live in Skid Row!’
내가 배가 고플 때는 언제든지 음식을 어디서 구해야하는 지를 압니다. 내가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정확히 어디를 가야 평온한지 압니다. 나는 매춘부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나를 흔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외면하고 마약 한 알만 먹어보라는 마약중독자들의 호소도 무시했습니다. 나는 매춘부들이 “너는 대학 묶기가 아니야. 너는 흙 수저로 살아야 해” 하며 코웃음 치는 것을 외면하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I have learned not to show fear when I am walking home late at night, and I have learned how to remain alive with almost no money. By moving around and experiencing so much, I have learned to adapt to many different situations, go after and accomplish my goals, and most importantly, thrive.
나는 밤에 늦게 집으로 걸어올 때는 무서움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배웠습니다. 돈이 다 떨어졌을 때도 살아남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주위를 방황하고 많은 것을 경험 하면서 나는 다양한 상황들에 적응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나의 목표를 추구하고 성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하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Interestingly enough, my difficult life encouraged my passion for learning. The refuge I sought when I was at my most depressed was school. School was free, it was amazing, and it stimulated the intellectually curious side of me. I began to love school. However, shelters were temporary, and as a result, the schools I went to were temporary as well. In kindergarten, I did not notice too much. I simply learned my ABCs and found happiness in school. However, by the time I reached elementary school, I figured out that my way of life had messed with the thing I loved the most. I could not let that happen. One moment in third grade defined my path today.”
매우 흥미롭게도 나의 곤궁한 삶은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북돋았습니다. 내가 가장 우울했을 때 찾고자한 피난처는 학교였습니다. 학교는 자유로웠고 환상적이었으며 나의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나는 학교를 사랑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보호소는 일시적인 거처였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다니던 학교도 역시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치원에서는 많은 것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나는 단지 알파벳을 배웠고 그리고 유치원에서 행복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는 나는 알아차렸습니다. 나의 삶의 방법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로 엉망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놔둘 수 없었습니다. 3학년 때 한 계기가 오늘날 나의 길을 결정했습니다.
“I am nine-years-old and a few years behind in school. I am supposed to be in fourth grade, but moving around has left me behind. One day, my teacher comes up to me in the beginning of my third grade year and says, ‘Young lady, you have got to learn your times tables or you cannot pass on to fourth grade!’
저는 9살에 학교에서는 몇 년 뒤처졌습니다. 나는 4학년이 될 예정이었지만 이리저리 이사 다니면서 나를 뒤처지게 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이 3학년 초기에 나에게 다가와서 말하길 “애야! 너는 시간표대로 배워야한다. 아니면 4학년에 올라갈 수 없단다.” 하였습니다.
I am very upset. I cannot flunk third grade. So what do I do? I go to the library and check out 4th Grade Adventures, a computer game, and stay at the library every day after school. That year, I tested in the 97th percentile in math and 94th in English. My test scores placed me in the 99th percentile overall, and since then, I have been considered gifted. I cannot let homelessness stop me from learning. This attitude has followed me to today.”
나는 대단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나는 3학년으로 낙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렀다면 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도서관에 가서 4학년 과정을 모험해보는 게임기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 매일 도서관에 머물렀습니다. 그 해 내가 테스트한 한바 수학 97점 영어 94점이었습니다. 나의 시험점수는 전 과목에서 99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재능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나는 노숙자라는 이유로 배움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태도가 오늘의 나를 이끌어왔습니다.
“After this moment in third grade, I realized that if I wanted to continue learning, I would have to teach myself, make sure that I did not fall behind, and learn to adapt to the whims of wherever I would live. Therefore, this is what I did and have been doing for all of my life. After this experience, I skipped two more grades and I finally was in the 10th grade, my right grade,
3학년에서 그 유급하는 사건 있은 후에 나는 내가 만일 배움을 계속하고 싶다면 내 자신을 가르쳐서 뒤처지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하고 내가 사는 곳은 어디든지 변덕스런 것들에 적응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가 했던 것이고 모든 나의 삶에서 지금도 해오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 경험 후에는 2개 학년을 월반했고 마침내 나의 바로 그 학년이던 10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when I had another dilemma. I was 35 credits, a whole year behind in high school. I remembered how my mom and I researched food banks by asking other homeless people where to eat. Therefore, I knew that if I wanted to become a smart, successful scholar, I should talk to other smart people. I asked questions and learned that I could catch up credit wise by taking community college courses. When I signed up for my first set of classes, however, I had to move again. Thank goodness, I learned patience a long time ago.”
내가 또 다른 곤경에 처했을 때 나는 35점이었습니다. 일 년 내내 고등학교에서 뒤처졌습니다. 엄마와 나는 다른 노숙자들에게 어디서 먹을지 물어보면서 푸드뱅크를 이용하는 방법을 조사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만일 내가 영리하고 성공적인 학자가 되길 원한다면 다른 영리한 사람과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의문점들을 물어봤고 그래서 지역사회대학 과정을 이수함으로서 현명하게 점수를 따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첫 수업을 등록할 때 나는 또 이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나는 오래전에 인내를 배웠습니다.
“This patience enabled me to find local community colleges in my new place of residence—Los Angeles. Then, I found Upward Bound. I lacked the requirements to join the program: Two letters of recommendation, a middle school transcript, and a current school of attendance. I could not show Upward Bound my gaps in my education. I remembered a conversation I had with a pimp to get him to leave me alone, so I used the same logical frame of mind to explain to Upward Bound why I would be a great fit for the program.
이 인내는 로스앤젤레스의 나의 새로운 주거지에 지역사회대학을 찾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때 나는 미국연방정부의 지원프로그램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요구사항들이 부족했습니다. 요구사항은 두 장의 추천서, 중학교 성적증명서, 그리고 현재학교의 출석증명서입니다. 나는 나의 교육과정의 공백을 연방정부 지원프로그램에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매춘부와 했던 대화를 기억했습니다. 나를 홀로 남겨두기 위해 그가 취했던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연방정부 프로그램에 설명하기 위해서 마음속에 있는 같은 논리적 구조를 사용했습니다. 왜 내가 그 프로그램에 가장 적합한지를 말입니다.
“Look, I moved around too much to have a transcript, but I skipped from 8th to 10th grade, and I have earned a 3.85 G.P.A.. I want to go to college, and I will take on any challenge to get there.’ The pimp was driven away, and Upward Bound accepted my application.”
나는 여기저기 너무 많이 이사를 다녀서 성적 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8학년에서 10학년으로 월반을 했고 3.85의 학점도 받았습니다. 나는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도전도 할 것입니다. 매춘부는 쫓겨났고 그리고 연방정부 지원프로그램에서는 나의 지원서를 받아줬습니다.
“As I fill out my college applications to Harvard, Williams College and Amherst, my dream schools, I am thankful for what I have been through. Being homeless has given me the skills I need to succeed on the pathway towards my higher education pursuits and life-long goals. My experiences have made me a dedicated student both inside and outside of the classroom. I do not let anything stop me from achieving my goals. Hearing such negativity where I have lived has enabled me to focus on my goals and remain optimistic, even when faced with grave adversity.
나의 꿈인 대학들 하바드대학교, 위리암대학, 암허스트에 제출하는 대학지원서를 작성함으로서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노숙자 자체가 나의 높은 교육추구와 삶의 긴 목표를 향한 진로에서 성공에 필요한 기술들을 갖다 주었습니다. 나의 경험은 학교안과 밖에서 헌신적인 학생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나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 무엇이든지 멈추게 놓아두지 않겠습니다. 내가 살아왔던 곳에 대한 부정성을 들을 때마다 나의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했고 긍정적으로 살게 했습니다. 중대한 역경에 직면했을 때조차 말입니다.
Having to depend on myself for food has enabled me to take charge of my education. I have learned to be resourceful and diligent and I am confident in saying that I am a very self-motivated and determined individual that will stop at nothing to receive an education. When I go to college, I know that this acquired knowledge and skills will enable me to succeed in whatever I do.”
먹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의존해야한다는 것은 나의 교육을 내가 책임지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나는 재치 있고 부지런하게 되는 것을 배웠고 대단히 동기부여적이고 주관적이기에 교육을 받는데 어느 것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당당히 말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가 대학에 갔을 때 이렇게 터득한 교육과 기술들이 내가 무엇을 하던지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 16살 소녀의 하버드대학교 입학 지원서는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한 미국 20개 대학에 제출 되었고 20개 전 대학에서 합격했다.
* 카디자위리암스는 하버드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2013년 20살의 나이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하버드 졸업장에서 대표연설을 하였다.
2019년 11월 26일 오후 9시
율 천 이권행
첫댓글 감동입니다
인간의 한계가 끝이 없다는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ㅎㅎ 대단한 사람이네요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