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물고기'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창동의 두번째 작품이 기대되실
겁니다. 저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만 연휴동안 영화잡지의 이 소개글을
보면서 꼭 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처음엔 아름답지 못한 현대사의 굴곡을 이 희망으로 가득찬 세기초에
봐야만 하느냐는 회의가 없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만 보기에도 아까운 시간에 말이지요.
하지만 아직 사회의식마저 탈색된, 무미한 인간이 되기 싫은가 봅니다.
(첫사랑을 가슴에 묻고…. 더러운 손으로 더이상
순임을 잡을 수 없을을 아는 영호는 그녀가
마지막 건넨 선물 카메라마저 거절한다.)
1999년 현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김영호(설경구)는 자살하기 위해 철로에
오른다. 그때부터 1979년 같은 장소에 있을 때까지 시간의 역순으로 김영호의
인생사가 그려진다. 가구상을 하던 김영호는 한창 돈 잘 벌 때에도
아내(김여진)의 불륜으로 심사가 뒤틀려 있다. 자신 역시 미스 리(서정)와
불륜을 즐긴다. 결국 재산도 가정도 다 잃는다. 그는 ‘미친개’란 별명의
가혹한 형사였다. 구타와 물고문의 대가. 그도 처음엔 순진했으나
첫사랑에 실패한 뒤부터 짐승처럼 변한다. 그의 진짜 상처는 광주사태 때
진압군으로 참여하면서 오발로 여고생을 쏘아죽이면서 시작됐다.
첫사랑이 싹트던 1979년의 강변은 그래도 눈부시게 화사하다.
정보
김영호, 비틀거리는 걸음, 초췌한 얼굴, 일그러진
표정의 마흔살 남자. 우리가 영화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이 사내는 불행해보이지만 별 동정은
가지 않는다. 야유회장에 술 취한 채 나타나 분위기
깨는 이런 인간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행히 사라졌나 했더니, 어느샌가 철로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질러댄다. 뻔하다. 저 한심한 인생이
더러운 꼴 크게 한번 당한 게로군, 하면서도 놀던
사람들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가 달려오는데, 사내는 물러서기는커녕 눈을
부릅뜨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왜 저럴까. 정말 죽을
작정인가. 아무리 꼴보기 싫은 인간이라도,
죽겠다고 나서면 썩 내키진 않지만 놀이를 멈추고
일단 만류한 뒤 그의 사연을 들어주는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눈물이 흐를 듯 고인 채 파르르 떠는 사내의 눈은, 피하고
싶은데도 결국 속을 울렁이게 만든다.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며, 결코
호감은 안 가지만 냉큼 외면하기도 힘든 이 사내의
20년에 걸친 사연을 들려주는 영화다. 소설 쓰다가
<초록물고기>(1997)로 뒤늦게 데뷔한 이창동
감독은 두 번째 영화에서 한 사내의 20년사를 일곱
토막으로 나누어 시간의 역순으로 배열하는
독특한 구성을 시도했다. 관객은 거꾸로 가는
기차에 태워져 김영호라는 사내의 개인사를 한
모퉁이씩 들리도록 안내된다.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는 이유를 감독은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박하사탕의 색깔과 맛 같은
첫사랑의 순수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서”라고
했다. 박하사탕 같은 첫사랑 시절로 가는
시간여행이라면, 꽤 상큼한 관광이 될 거라고
기대함직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놀이의
흥을 깨는 주정꾼의 행패로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지만, 이 여행이 한 남자의 20년사일 뿐
아니라 미봉된 역사적 상처의 기록이란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김영호라는 주인공부터 그의 20년에
귀 기울이고 싶을 만큼의 매력이 언뜻 눈에 띄지
않는 어정쩡한 인물이다. 그의 직업은
공원-군인-형사-가구상을 거치는데, 역사의
전모를 몸으로 보여주기엔 너무 주변적이고,
역사의 상처를 관념으로나마 끌어안기엔 지식의
용량이 부족하다. 이를테면 그는 평생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서성이며 살았다. 이 중간자적
설정이야말로, 가해자에 대한 윤리적 고발장을
내미는 사회성 영화나, 보잘것없는 체험을 자의식 과잉의 수사로 분칠한
회고담 장르와 일찌감치 결별하는 기점이다. 역사의 화염은 때로 너무
광포해 슬쩍 스치기만 해도 치유불능의 내상을 남긴다. <박하사탕>은
미친 역사의 주변에 멍하게 서 있다 영혼이 녹아버린 한 착한 사내의
신음과 고열의 고백록이자, 온전한 영혼을 향한 가슴 저미는 연서다.
영화는 아주 느리고 무겁게 상처의 중심에 다가간다. 도입부를 지나고
나서도 김영호에겐 악수를 청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가구상 하다가
주식투자에 실패하고 동업자한테 사기당하고 처자식한테도
버림받았으니 동정은 살 만하다. 하지만, 자살을 결심하고 나서도
1천원짜리 커피값을 떼먹을 때의 야비한 표정을 보면 정나미 뚝
떨어진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아이 얼굴 보려고 전처한테 갔다가 반쯤
열려진 문 사이로 강아지 이름을 부를 때, 얼굴이 짓무른 채 흉한
식물인간으로 변해버린 옛 애인에게 박하사탕을 건네줄 때는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이 시간여행은 얼마간 계속 이런 식이다. 잘 나가는
가구상 시절과 이력 붙은 형사 시절의 김영호에겐 징그러운 속물성과
끔찍한 가학성 사이로 아주 엷고 짧게 맑은 기운이 스쳐갈 뿐이다.
초보형사 시절, 그리고 군인 시절에 이르러서야, 우린 이 사내에게 말을
걸고 싶은 얼굴을 발견한다. 그에겐 정말 첫사랑이 있었다. 두 사람을
무참하게 짓밟아놓은 미친 역사의 횡포도 그제서야 드러난다. 거치지
않았으면 덜 불편했을 80년 5월을 지나서야, 종착역인 첫사랑의 공간,
도입부에서 김영호가 20년 후에 자살하려 하게 되는 바로 그곳에 이른다.
긴 여정에 지친 몸으로 이곳의 화사한 햇살을 쬐고나서야, 김영호뿐
아니라 모두가 이곳을 언젠가부터 잃었다는 걸 비로소 알아차리게 된다.
(철로 위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영호. 이렇게
해서라도 그때로 갈 수 있을까.)
이창동 감독은 좋은 소설가 출신답게,
거의 직설없이 엉뚱한 대사와 행동을
빼곡이 배치하는 것만으로 인물의
망가진 내면을 숨찰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강아지를 괜히 걷어차고
예뻐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술집 앞
좁은 공터를 하염없이 빙글빙글 도는
행위를 어떤 다른 설명으로 대신하긴 힘들 것이다. 형사 김영호가
물고문을 막 마친 뒤 노래방에서 아주 간드러진 목소리로 <내일 또
내일>을 부르는 장면은 이중성 운운하기에 앞서 그냥 끔찍하다.
무엇보다 <박하사탕>은 연기만으로도 오래 남을 영화다. 특히 김영호를
연기한 설경구에겐 최상급의 찬사가 과하지 않을 것 같다. 그의 연기는
숙련이나 노력과 관계없는, 일생에 단 한번만 몰아칠 것 같은 광기처럼
보인다.
<박하사탕>은 아직도 영화가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믿는 고집스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보석이다. 쾌락이 이데아가 된 유희의 시대에 불쑥
끼어든 불청객의 아주 심란한 진담이다. 이창동 감독은 시간 배열만 빼면
지극히 전통적인 이야기체 영화로 진실의 힘을 길어올렸다. ‘진실의
영화’(시네마베리테)가 사조에 관계없는 보통명사로 쓰일 수 있다면
<박하사탕>은 아마도 맨 처음 그 수식의 대상이 될 한국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