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698) - 제7차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기행록 17
- 아즈치성적(安土城跡) 거쳐 히코네성으로(오미하치만 – 히코네 27km)
5월 4일(토),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일주일 여 계속 맑고 최고기온이 20도 넘는 날씨라는 기상예보다. 걷기엔 약간 더울 듯, 썬 크림을 바르고 얼굴가리개도 챙겼다.
오전 7시 20분에 숙소를 나서 출발지점인 오미하치만 시청으로 향하였다. 출발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휴일이라 조용한 편, 청사 안으로 들어가 입구에 비치된 자료들을 살폈다. 그중 흥미로운 표현에 눈길이 간다. 강주수향(江州水鄕), 오미하치만시의 농산물은 수향(水鄕)의 프라이드라는 표지다. 이를 통하여 오미하치만 시가 상업의 본고장이자 평화로운 농촌의 특성을 지닌 고을인 것을 깨친다. 부산하게 오가는 직원에게 시의 인구가 얼마인가 물으니 8만 명이라고 말한다.
오전 8시, 간단한 출발행사를 가졌다. 문화관광과장이 대독한 시장의 메시지, ‘21세기 조선통신사의 서울-도쿄 걷기 중 이곳에 들러 감사하다. 옛적 조선통신사들이 지녔던 그 마음으로 도쿄까지 무사히 가시기 바란다.’ 체조로 몸을 풀고 야나기다 씨의 선창으로 GO, GO, Let’s GO를 힘차게 외친 후 오미하치만 시청을 출발하여 히코네(彦根)로 향하였다
출발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인가도로 들어선다. 도로 양편으로 누렇게 익은 보리, 파랗게 자란 밀밭, 갓 심은 벼 등 조용한 농촌풍경이 운치 있고 수시로 오가는 기차소리가 정적을 깬다. 한 시간 반가량 걸으니 무사들이 격전을 벌인 아즈치성적(安土城跡)에 이른다. 아즈치성적은 오다 노부나카(織田信長, 1500년대에서 1600년대에 걸친 일본의 3걸 중 선임자)가 1576년에 축성한 것으로 당대 최고의 기술과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천하통일의 기반을 쌓은 유적지다.
오다 노부나카가 축성했다는 아즈치성적
잠시 휴식 후 아즈치성적을 출발하여 고갯길을 넘으니 히가시오미(東近江)시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도로 옆의 녹음이 짙은 산림지역에 비와코(琵琶湖)국정공원이라 적힌 푯말이 보인다. 호수는 보이지 않는데 그 권역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30여분 걸어 노도가와(能登川) 지역에 이르니 주택가의 좁은 도로로 축제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어른들이 앞장서고 중간에는 어린이를 가마에 태운 행렬, 뒤에는 건장한 청년들이 따른다. 지역사정에 밝은 코스리더 기타가와 씨에게 물으니 7세가 된 어린이 중 선택된 아이를 가마에 태워 마을 전체가 축하해주는 축제행렬이라고 설명한다.
7세 어린이를 축하하는 행렬
노도가와 지역을 벗어나 한참 걸으니 아이치가와(愛知川)을 지나 히코네 시계로 접어든다. 12시쯤 노변의 편의점에서 도시락 점심(걷는 길에 수십 명이 들어갈 식당이 마땅치 않아 점심은 미리 준 식비로 각자 해결), 편의점에 들어서니 재일동포 김승남(85세로 일행 중 최고령자) 선생이 한국 팀의 도시락 값을 치르겠다며 식단을 고르라고 말한다. 연 3회째 서울-도쿄구간을 걷는 고령의 건각이신데 지금도 마라톤을 한다는 노익장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12시 40분에 오후 걷기, 30여분 지나서 이른 곳은 조신통신사가 묵었던 지역을 금년 3월에 새로 발견하였다는 도로 옆의 공터에 멈춰 선다. 코스리더가 ‘조선통신사와 히코네’라는 책을 펼쳐들고 조선통신사가 올 때 집을 지었다가 지나간 후에는 그 집을 부순다는 설명한다. 꾸준하게 역사를 발굴하고 고증하는 일본인들의 지적 탐구가 부럽게 느껴진다.
오후 1시 반, 히코네 시가가 시야에 들어오는 지점에 들어선다. 곳곳에 조선인가도라 적힌 표지석이 보이는 도로를 따라 옛 조선통신사 일행이 묵은 사찰지역에 이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그중 강국사(江國寺)에 들러 조선인 설봉(김의신의 호)의 휘호가 적힌 현판을 둘러보고 국보로 지정된 히코네성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오후 5시까지 관람시간이라 이에 맞추어 서두른 것,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가깝다. 당일참가자(12명)에게 완보증을 교부하고 걷기를 종료, 총 41명이 27km를 걸었다.
시당국의 배려로 무료입장(입장료가 800엔이라 적혀 있다), 성안에 들어가서 대표적 건축물인 천수각에 이르니 입장을 기다리는 행렬이 길다. 한 시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에 입장을 포기하고 높은 성안에서 전망이 아름다운 시가지와 비와코를 바라보는 것으로 히코네 성 탐사를 가름하였다.
국보로 지정된 히코네 성의 천수각
숙소에 이르니 오후 5시가 지났다. 저녁메뉴는 한국식 스키야키(재일동포 이혜미자 씨가 생일에나 스키야키를 먹는다며 좋아한다)다. 식사시간에 사흘간 함께 걸은 장홍국 씨의 작별인사, ‘아버지가 처음으로 걷기에 참가하여 잘 걸으시는지 한국에서 두 번 현장을 찾아뵈었다. 노동절과 어린이날이 낀 연휴를 맞아 일본걷기에 합류하여 아버지와 함께 걸을 수 있어 감회가 깊다. 2년 후 아버지가 걷는다면 이곳에서부터 며칠간 다시 걷고 싶다. 도쿄까지 무사히 가시기 바란다.’
400여 년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선통신사와 번주 등이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조선인가도가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뛰어난 건축기술의 성터를 살핀 여정이 뜻깊다. 내일도 의미 있는 발걸음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