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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설악산 어린이배움터 원문보기 글쓴이: 이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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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김광석 선생님이 밤새 넣어둔 나무 덕에 따뜻하게 잘 잤습니다.
이불과 제 몸에 온기가 가득합니다.
창가에 가서 커텐을 젖히고 바깥을 보니 산 위로 달이 떴습니다.
여명이 오며 푸르스름해져가는 하늘 빛이 곱습니다.
어제 밤 앉힌 밥과 가져온 반찬으로 간단히 식사를 했습니다.
"기철아, 내가 설거지할테니까 청소기 좀 돌려줄래? "
"선생님 제가 설거지하고 정리할게요. 청소기 선생님이 좀 돌려주세요."
"응, 그래."
기철이가 설거지하고 반찬 정리할 동안
청소기를 돌려 숙소를 청소했습니다.
# 용대자연휴양림 ~ 진부령 정상
길을 나섰습니다.
싸늘한 산속 아침 공기가 콧등을 간질입니다.
조금 걸어가시던 선생님께서 뒤를 돌아보시며
"무릎이 가벼워. 간성까지 가자!" 하십니다.
임광준 선생님 무릎이 괜찮아지셔서 다행입니다.
진부령 정상까지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는 길이 완만합니다.
주변의 풍경을 살피며 차가운 아침공기를 마음껏 들이키기 좋습니다.
김광석 선생님 댁에서 기르는 강아지가 쫓아오더니
자연휴양림 앞에서부터 앞장을 서기 시작합니다.
조금 앞서 가있다가 우리랑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잰걸음으로 다시 앞장서서 걸어가고
차소리가 들리면 잽싸게 길가로 피해있습니다.
불러도 응하지 않고 선발대마냥 앞서 챙기기만 합니다.
"주인 대신 배웅하나봐요."
"그러게, 개가 신기하네."
'군계'에 도착합니다.
"군의 경계라서 군계야."
"아~ 그래서 군계 구나." 임광준 선생님 덕에 배웠습니다.
강아지도 신기하게 딱 군계까지 배웅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녀석, 참 영리하네."
"그러게요, 훈련시킨 것 마냥 딱 그러네요."
잠시 길 위에서 쉬던 기철이가 '타닥' 하는 소리에 길 건너편을 바라봅니다.
"선생님, 멧돼지에요."
"어디?"
멀리 나무 가지 사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커다랗고 검은 윤곽이 쓰러진 나무 더미 위에서 무언가를 툭툭 치고 있습니다.
"정말! 와... 엄청 크네."
저멀리 있는 멧돼지 소리도 알아챈 걸 보니
청각, 후각이 좋다는 기철이 말이 수긍이 갑니다.
# 진부령 미술관, 부흥슈퍼
신발에 눈을 털고 들어가니
"세상에, 이 추운데 도보여행하세요? 대단해라..."
미술관 선생님께서 놀라시며 반기십니다.
방명록 작성을 부탁하셔서 임광준 선생님과 기철이가 먼저 쓰고
저도 '설악산어린이배움터 이주상' 이렇게 썼습니다.
2, 3층 전시관이 근사합니다.
선생님, 기철이와 한바퀴 전시회 구경을 합니다.
임광준 선생님은 전시회 자료집을 따로 청해 받아두십니다.
2층 전시관 안내를 받으시며
"리모델링하신 이후로 처음 오는데, 시설이 참 근사하네요. 참 잘하셨네요." 하시고전시회를 다 보고 내려오셔서
"대작들이 많네요. 3층에 동양화 그림 참 마음에 드네요."
임광준 선생님 칭찬에 관리자 선생님이 미술관 자랑을 하십니다.
문화원장을 역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대접받으려고 하시기보다 상대를 존대하고, 세우시는 선생님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드리고 나와
미술관 건너편에 선생님 아시는 어르신이 계신 부흥슈퍼에 들립니다.
"어머니 계셔?"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이시네요. 여행중이세요?"
"네, 원통서부터 도보여행 중입니다."
"어머나, 이렇게 추운데 대단하세요."
"하하, 추억이지요. 우리 커피 한 잔 줄 수 있어요?"
"그럼요, 잠시만요."
'정승집 개가 죽으면 정승댁 문지방이 닳아 없어지고 정승이 죽으면 개미 조차 얼쩡 않는다'
는 속담이 임광준 선생님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선생님은 돈, 권력, 나이로 인간관계를 유지하시는 게 아니라
자주 연락하고 왕래하고, 가끔 보더라도 좋은 말씀 주고받으시며 덕으로 사람을 사귀십니다.
부흥슈퍼 아주머니 어머니께서 서예 배우셨다며
요즘은 글씨를 쓰시는지,
글씨를 배우시면 어디서 어떻게 배우시는지,
오늘은 어디 가셨는지,
건강은 어떠신지 안부를 묻고 신경써주시는 마음이 따뜻합니다.
# 진부령 정상 ~ 진부령 휴게소
부흥슈퍼 아주머니께 인사드리고 나와 진부령 휴게소까지 걸어갑니다.
하늘이 아주 파랗습니다.
임광준 선생님께
"선생님, 날씨가 참 맑아요. 삼일 내내 구름 한 점 없도록 파란 하늘이에요." 하니
"그러게, 아주 새파랗구만." 하십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기철이가 묻습니다.
임광준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그럼, 내가 젊은 사람들한테 희망을 줘야지." 대답하십니다.
기철이와 구불구불한 내리막을 내려가며 이야기 나눴습니다.
기철이가 운영자로 있는 회원수 8천명 가량의 온라인 게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기철아, 그 게임 처음에 어떻게 운영자로 하게 된거야?"
"지금은 서울 사는 형인데요. 원래 원통에 살거든요.
저랑 친한데, 그 형이 게임을 만들었다고 운영자를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한 거에요."
"그렇구나, 3년째 그렇게 같이 운영하는 거네. 대단하다.
게임들 보통 경쟁이 심할텐데 홍보는 어떻게 했어?"
"저사양에서도 잘 되는 게임 없는지 묻는 지식 검색결과에 답변하면서 모은 거에요."
"아, 그런 방법이 있네. 좋다."
"그런데 처음엔 그 게임 제가 운영자인데도 재미가 없었는데요.
제가 (게임내) 이벤트 담당하면서 관리자 역할도 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에요.
운영자가 총 다섯 명인데 형 두 명이 서버 담당이고 다른 형들은 이미지 담당이에요.
운영자 형 한 명 친구가 게임 내에서 조작을 좀 했는데요,
제가 그걸 발견해서 어떻게 할지 회의했더니 지금은 안 그래요."
"기철이가 사이버 수사대한 셈이네."
기철이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친한 형 이야기도 궁금했습니다.
"그럼 기철이 주말에 서울갈 수도 있다는 말이 게임 운영자들 회의하러 간다는 거니?"
"네, 할머니가 그 형 집에 간다 그러면 그 형 잘 아니까 믿고 보내세요."
"기철이는 좋겠다. 기철이만 할 때 그렇게 친한 형이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몰라.
나는 기철이만 할 때 그렇게 친한 형이 없었거든."
"그래요? 형이 서울가면 순대국밥 사주는데요.
지난 번에 한 번은 회전초밥집 가자고 했다가 '너가 사' 이러더니
결국 회전초밥집 가서 큰 돈내고 사줬어요."
기철이는 친한 형이 각지에 있고 집에 자주 놀러와서 잘 대해주는 친척들이 많습니다.
"기철이처럼 친척들과 가깝게 잘 지내는 것도 복이다." 했습니다.
서울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멀리 있어도 잘 대해주시는 이야기,
서울 명동에 놀러갔다가 일행을 잃었을 때
서울사는 유일한 친구에게 연락해 원통까지 무사히 돌아온 이야기,
기철이 생일 때마다 기철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친척 누나들 이야기...
기철이 삶을 둘러싼 풍성한 인간관계를 들으니
내 청소년 시절에 비하면 기철이가 누리는 바가 참 많구나 싶습니다.
"선생님, 저는 나중에 게임 관련한 일 하려고요.
프로게이머가 되거나 게임 제작일 하려고요."
"그래? 유행, 시대 흐름을 쫓아 일하기보다
기철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뜻을 세워
기철이에게도, 사회에게도 선한 일을 했음 좋겠다.
지금 기철이가 하는 운영자 경험이 좋은 바탕이 되겠네."
기철이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일로 사회에 유익이 되고
스스로 뜻을 세워 일하길 바랍니다.
"2,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사회 선생님인데 여자 선생님이세요.
여행을 좋아하셔서 방학 때마다 여행을 다니셔요.
국내는 눈감고도 다니신대요."
풍부한 인생경험을 전해주는 스승이 있는 기철이,
학교 선생님께 듣는 인생 이야기에 가슴이 뛰고 설레는 경험이 많기를 바랍니다.
# 진부령 휴게소 ~ 장신리 ~ 광산리 ~ 대대리 ~ 간성 ~ 원통
진부령 휴게소에 들러 주인 아저씨께 여쭙고 물을 얻었습니다.
엄춘자 어르신이 주신 만두를 넣어 라면을 끓였습니다.
따뜻한 국물에 밥을 먹으니 몸이 녹는 듯 합니다.
코펠과 그릇을 휴지로 닦고 썼던 자리를 원상태로 돌려놓은 후
기철이가 과자를 사고 주인 아저씨께 "잘 썼습니다." 인사드리고 나섭니다.
"맛있네, 기철아."
걸어가며 기철이가 산 과자를 나눠 먹었습니다.
진부령 고개를 넘어 간성으로 접어들수록 기온이 한결 포근합니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두드리며 걷고 있으니
기철이는 부러진 삽자루를 주워 흉내를 냅니다.
역시 길위의 도사, 기철이 답습니다.
근사한 자작나무 숲이 반대편에 나타납니다.
임광준 선생님과 감탄하며 산을 바라봅니다.
"선생님, 정말 멋있네요. 어떻게 저렇게 군락을 지었을까요."
"그러게. 아주 근사하네."
내리막길이 끝나자 길게 뻗어 돌아가는 평지길이 나옵니다.
이제부터 간성가는 길 시작입니다.
임광준 선생님이 장산리 버스 정류장에서 맨소래담을 조금 바르신 후 다시 출발합니다.
큰 이정표와 작은 이정표 거리가 1km 차이나니
기철이가 툴툴거리긴 하나 아직 남은 거리가 있어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저 멀리 걸어내려온 진부령 능선이 보입니다.
거대한 저 산을 돌아돌아 내려왔다 생각하니 꿈만 같습니다.
광산리 마을 어귀 평상에 앉아 잠시 쉽니다.
아껴두었던 포도즙을 하나씩 나눠 먹었습니다.
"선생님, 엄청 다네요. 설탕 들어간 거에요?"
"아니, 포도만 한거라던데."
"이선생, 포도즙 먹으니 다시 날아갈 것 같으네."
임광준 선생님 시인같은 표현에 웃고 다시 출발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내려오며 젖어드는 시골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아, 선생님 저기까지 어떻게 가요~" 기철이 말에
"기철아, 저기 힘든 거 보지말고 지금 주변에 아름다운 것 먼저 봐둬.
힘든 것보면 그거 위주로 기억에 남을라." 대답했습니다.
"여기 넘어오니까 없던 대숲이 보여.
요즘은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원통에 감나무도 된다 하니..."
임광준 선생님 말씀을 듣고보니
인제에서 볼 수 없던 대숲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합니다.
해는 어느새 산 뒤로 넘어갔고 날은 어둑어둑해집니다.
간성은 앞으로 2, 3km 남았는데 걷는 속도는 조금씩 더뎌집니다.
마음이 급해지긴 하나 미리 계산해본 바에 의하면
아슬아슬하게나마 버스를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간성 읍내가 가까워지는 반면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원통행 마지막 버스 탈 시간은 한 시간을 채 안 남기자
히치하이킹을 할까,
택시를 탈까 잠시 고민도 했으나 뾰족한 수도 없고
걸어가면 될 법도 싶어 마지막까지 기운을 냈습니다.
기철이와 제가 먼저 가서 표를 끊고 버스를 잡아두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간성터미널에 도착해 모아두었던 회비에 기철이와 돈을 보태 차표를 샀습니다.
임광준 선생님이 나타나시지 않자
"선생님 지나치신 거 아니에요? 오시나 제가 가볼게요. 선생님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기철이가 말하곤 선생님 오시는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선생님은 다행히 터미널을 조금 지나치신 정도라,
연락이 닿은 후 버스에 무사히 타셨습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세요?"
버스 기사님이 사정을 알고 묻자
"원통서 출발해서 2박3일 동안 도보여행 했어요." 임광준 선생님이 대답하십니다.
"어이구, 대단하세요. 20대 못지 않으신데요." 하는 기사님 말씀에 "허허" 웃으십니다.
차창 밖 어둠이 짙어진 가운데, 진부령을 거슬러 올라가는 차 안이 나른합니다.
차 안에서 이렇게 어질어질하게 휘휘 돌아가는 길을 걸을 땐 전혀 몰랐구나 싶습니다.
원통에 도착해 내린 후 서로 인사를 합니다.
"기철아, 우리 포옹 한 번 하자. 아~! 수고했어."
기철이가 씨익 웃으면서 선생님과 포옹을 합니다.
"기철아, 나랑도 포옹 한 번 하자. 끝까지 잘 해줘서 고맙다."
저도 기철이와 포옹하고 헤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있으니 임광준 선생님 전화가 옵니다.
그러고보니 차 안에서도 덕분에 잘 쉬고 갔다고
김광석 선생님께 인사 전하는 임광준 선생님 모습 보며
감사인사, 어떻게 해야할지 배우고 깨닫습니다.
"이선생, 잘 들어갔어? 어른들 챙기느라고 애썼지?
이래저래 신경쓰느라고 수고 많이 했어.
이선생 덕분에 아주 좋은 경험했네. 힘들긴 했어도 좋아.
전화 좀 하려고 그러는데, 기철이네 전화번호 좀 알려줄란가?"
임광준 선생님께서 기철이네 집으로 연락하셔서
기철이 할머니께 기철이가 어른 건사를 잘 했다고 칭찬하고
기철이에게 수고했다, 잘했다 격려하셨답니다.
길위의학교 활동 덕에 이웃 사이 감사 인사 오가니 고맙습니다.
첫댓글 내가 본 이주상 선생님의 이미지가 그대로 보여집니다. 길위에는 동행이란 학교가 있습니다. 길가엔 섭리를 배우는 학교가 있습니다. 마음 속엔 오래 참음과 숙고와 반성, 도전와 용기, 희망과 에너지를 키우는 학교가 있습니다. 동행한 사람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아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임광준 선생님 같은 어른과 함께 걷고 싶다.
저렇게 맑은 하늘, 맑은 공기, 밝은 햇살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