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내린 눈
김가연
먼저 내린 눈이
뒤에 오는 눈을 안아주었다.
다음 내린 눈이
그다음 내리는 눈을 안아주었다.
그러자 수많은 눈이
무사히 땅에 내려앉았다.
-《동시 먹는 달팽이》 (2024 겨울호)
초대합니다
김 물
구름 조각전에 왔어
작품들은 매일 달라진대
어떤 조각품들이 전시될지 몰라
그건 바람의 마음
작품들은 조금씩 움직여
가만히 멈추고 바라볼 때만
느낄 수 있어
전시장은 조금 높은 곳에 있지만
위치가 아주 좋아
어디서든
금세 도착할 수 있지
오늘 조명은 좀 어둡네
먹구름 조각이 설치되고 있어
흰색과 회색빛이 섞인 엄청나게
커다란 작품이야
전시장에 고개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져
너도 어서 와
기다리고 있을게
참, 우산은 꼭 챙기고
-《시와 소금》 (2024 겨울호)
호박
김재수
호박을 심었지
넉넉한 잎
환하게 웃는 꽃
성큼성큼 뻗는 손
달덩이 같은 호박
호박을 보면 부러워
닮고 싶은 게 참 많아.
-《푸른잔디》 (상주아동문학회 2024)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
백두현
나는 제육볶음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아버지는 동태국이
둘 다
엄마가 만들었다.
-『엄마가 있지』 (2024 청개구리)
착한 돌멩이
변금옥
꽁꽁 언 땅에 갇혀
쿨쿨 잠자던 돌멩이
따스한 햇살 받고
기지개 쑤욱 켜려는데
곰지락 꼼지락 간질이며
돌멩이 살살 밀어내는 돌나물
“너도 봄이 좋지?”
엉덩이 살짝 들어준다.
-『동동동 동시 안녕』 (2024 춘천시립도서관)
바람
우동식
바람이 창문으로
몰래 들어와
동화책을
파다닥 넘겨보더니
방문을 꽝 닫고
나가버렸어
동화책이
재미없었나 봐
-『신난데이 우리 동네』 (2024 초록달팽이)
정글에서
임지나
원숭이들이
나무에 열려있다
나무 옆 아야어여 나무 위 오요우유
나무 둥치에 으 그냥 서 있는 이
악어가 입을 벌린 채 악어새를 기다린다
가글을 한다 가갸거겨가갸거겨
정글의 수박 장수, 수우박, 사세요 수바악!
사샤서셔소쇼수슈스시
어느 쪽을 잡고 먹어도 시원하다
모자도 팔아요 모오자!
떨이요 떨이! 만 원에 열 개
나 어때?
하햐허혀호효후휴흐히
-『동시 발전소』 (2024 가을호)
바이올린 탄생
정나래
나무토막을
장인의 손이
어루만집니다
나뭇결을
두드리고 쓰다듬고
달랩니다.
나무는
바람과 놀던 기억
새들과 이야기하던 기억
다 내려놓습니다.
노래를 위해
가문비나무라는 이름까지
내려놓습니다.
-《열린아동문학 》 (2024 겨울호)
해피엔딩
조하연
헨젤과 그레텔 남매는
숲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빵부스러기를 떨어뜨렸다.
집에서 멀어질수록
두려움이 차올랐지만
부스러기를 굳게 믿었다.
나도 깜깜한 밤을 건널 때면
교복 속에 갇힌 나를 잃지 않으려고
부스러기를 떨어뜨린다.
내게서 멀어질수록
허무함이 차오르지만
그럴수록 내 고민을 믿는다.
부스러기 쪼아 먹은 새처럼
‘뻘생각’이라 나무라고
모두 나를 시들게 해도.
끝내
나는 나를 붙들고
내게로 돌아갈 거다.
-《어린이와 문학》 (2024 겨울호)
하얀 토요일 아침
홍재현
하얀 종이 한 장
무얼 그릴까
무얼 써 볼까
아무것도 없는
아직 하얀 종이 한 장
누굴 그릴까
누굴 지울까
생각만 가득한
이불 속
-『고래가 온다』 (2024 청개구리)
출처: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이묘신
첫댓글 좋은 시 잘 읽었어요.
첫댓글 좋은 시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