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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흘산(1,075m)도 바라봤습니다. 봄산행때면 정말 멋진 장관인데.......가을에 접어드니 풀(거렁)이 생기를 잃었네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백두대간 웅덩이 입니다.(대간길에 물이 있다는게 신기하죠?) 역시 산엔 조림을 하고 가꾸어야만 합니다. 폐 헬기장입니다. 드디어 산행을 끝내는 순간 비가 내리네요. 소나기도 오고 또 멎었다가 오고를 번복하는 가운데 후미들이 도착합니다. 일주일만에 다시 들린 이화령입니다. 휴게소에서 묵밥(10,000원)으로 시장기를 해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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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구간 (버리미기재-이화령)종주를 마치고......
매주 하는 백두대간이라 해도 세 산악회와 겹쳐 하다 보니 때로는 중복(重複)된 산행을 할 때도 있고 한편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기도 하는 요즘이다.
쉽게 말해 오늘은 희양산 구간이다.
들머리인 버리미기재 부터 국공의 눈을 피해야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때는 희양산 구간 통과도 국립공원 이상의 장벽이기도 한적 있었다.
한참 단잠에 빠져있을 이 시간(새벽 3시경)을 이용 산행을 해야 한다는 것 좀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 이해 못하는 단속에 울분이 치솟지만 울며 겨자 먹는 식의 도둑산행이다.
떳떳하지 못함에 양심 가책이 없는 것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내 마음을 달래며 나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간다고 자부(自負)하는 것이다.
휀스망이 끝나는 지점을 들머리로 마사길 따라 한참을 오르면 장성봉(916,3m)이다.
정상석 뒤로 가면 애기암봉으로 가게 되며 우리가 가야할 대간 길은 약간 왼쪽으로 가야하며 여기서도 주의해야할 삼거리에선 직진해야하며 잘난 길 따라 왼쪽으로 가게 되면 막장봉이 있는 저수리치로 빠질 수도 있다.
이곳에 오면 항상 지난날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2000년도 처음으로 대간종주를 할 때 우리부부는 (이화령에서 출발 버리미기재로 올 때)이곳에 오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지도 한 장이 전부였는데 막장봉으로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추억이 언제나 뇌리에서 벗어나질 않는 것이다.
젊었다는 자신감 하나로 산에 대한 상식이나 경험도 없이 맹목적인 밀어붙이기식의 무지함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한 적도 지금 생각해보면 결코 손해 본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기도 한 지금이다.
당시의 고생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의 나를 있게 했고 그 경험이 실마리가 되어 백두대간을 수차례 왕복 종주할 수 있는 능력도 있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순간의 실수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준비하고 조심한다면 언제나 산길은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지만 방심과 무관심으로 본의 아닌 고생은 하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다른 말로 다시 말하자면 믿고 먹는 약은 효과(效果)를 볼 수 있지만 제아무리 명약이라 할지라도 마음부터 믿지 못한다면 효과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성공할 수 없다고 한다.
산행에는 어려움과 많은 고통과 시련이 따르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고 우리는 모두 수준급 이상으로 성숙된 실전에 단련된 대원이라고 자부하는 것이다.
악희봉(845m)갈림길이다.
대간에는 벗어나 있지만 왕복 30여분 거리이고 선바위(미륵바위)가 명물이며 마당처럼 넓은 바위가 인상적이며 이곳에서 바라본 백두대간의 늠름함에 또 한 번 반하게 될 것이다.
다시 대간으로 돌아와 조금 운행하다 갈림길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40여분 내려가면 서낭당이 있는 은티재다.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있으며 주치봉(683m)을 지나 육산인 급경사를 오르면 구왕봉(879m)이다.
구왕봉은 희양산(백운대/999m)의 명성에 눌려 그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산이지만 실지로 산에 들어보면 그 무게와 산의 모습에 감탄하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인적이 드물어 백두대간 종주자가 아니면 찾는 사람이 없는 깨끗하고 아기자기한 산세는 종주자의 능력을 가늠해보는 시험 산이기도 한 곳이다.
내려가는 길은 정말 가파르다.
한때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지름티재다.
한때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살벌한 곳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목책으로 울타리를 만들어주며 평정을 찾은 셈이다.
봉암사 때문이지만 어찌 성직자로서 그렇게 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처구니가 없는 실태였었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년)지증대사가 심층이라는 사람의 권유로 봉암사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 있던 큰 못을 메울 때 용이 살고 있어 대사는 신통력으로 그 용을 구룡봉으로 쫒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이 구룡봉이 구왕봉이라 하며 한편 날개봉 이라고도 하여 이 날개봉엔 매년 소금단지를 묻어 그 기를 눌러 뒀다고도 한다.
다행히 요즘엔 아무런 충돌 없이 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스님과 함께 합장으로 반갑게 인사 주고받는 사바세계가 되어지길 진심으로 바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희양산을 향해 암릉길을 올랐다;
희양산(999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문경시 가은읍에 걸쳐있는 산이며 그 아래 봉암사는 출입이 절대적으로 통제되어있는 스님들의 수도도량이며 부처님오신 날 하루만 개방하는 그런 곳이다.
봉암사는 신라 9산의 하나인 희양산의 종찰로서 수도승의 선도장으로 일관해온 고찰이다.
적조탑(보물 제 137호)등 많은 보물과 문화재가 있고 웅장한 건물이 돋보이며 극락전은 경순왕이 잠시 피난 왔을 때 원당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산이란 외면보다는 내면의 세계를 잘 알아야 그 산의 깊이와 넓이를 알 수있을 것이고 아울러 말하자면 유혹하는 아가씨의 미소와 손자를 안은 할머니의 미소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산이라고 모두가 다 똑 같은 산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만봉(990.1m)을 지나 곰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곰넘이봉을 지나면 탈출할 수 있는 사다리재다.
치악산 오름길에 사다리병창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어쩌다 사다리재란 이름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듯한 급경사 길이라 붙여진 이름일 것 같다.
안말로 내려가는 길에 잘 자란 낙엽송을 바라보면 조건 없는 흐뭇함이 아마 이것도 하나의 애국심의 발로라 보아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종주가 목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대원이지만 앞으로 많은 문제점을 해결해야할 시간과 토론(討論)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백화산(1,063.6m)이다.
오늘 구간의 개념도를 보면 꼭 남자의 성기 같은 형태인데 그 꼭지점을 돌아가면 황학산(915.1m)이다.
중간 약간의 암릉도 통과 했지만 종주 중 이런 곳이 있음으로 좀 쉬어가는 느낌도 받는 것이다.
이제 평지 같은 느낌의 낙엽송 조림지를 따라가다 보면 대간 길에 물텀벙도 보고 곧이어 오늘 구간의 마지막 산인 조봉(681m)이다.
마지막 군 주둔 지역엔(지금은 비어있다)가지 않고 우회 하면 곧이어 오늘 산행의 끝인 이화령 생태터널 앞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친다.
다들 고생 하셨지만 우리가 이렇게 구간 구간 종주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공(公)과 사(私)도 구별해야겠고 대중을 위해서는 개인의 의욕도 조금 줄여야겠다는 마음의 결단력과 의지도 좋지만 대중에게 부담 주지 않는 방법도 한번쯤 생각해보길 부탁드리면서 백두대간의 진수를 맛본 이번 구간 완주에 축하를 드리면서 다음구간을 그려 봅니다.
다들 수고 하셨고 감사합니다.
아울러 늘 같이 하셨던 길따라 나그네 대장님의 빠른 쾌유를 빌면서 산행 후기에 가름합니다.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하문자.
첫댓글 요새 괴산 명산을 답사하느러 버리미기재를 자주다니는데 막아놓은 곳이 많고 송이지역이라고 입산금지하며 갈 수록 등산을 힘들게 하네요. 소개 해주신 여러명산을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편집사진까지 잘 보았습니다. 잘 다녀오시고 행복한 산행 하시길 바랍니다.
가을비가 잦아 버섯 자라는데 조건이 좋았을것 같습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우리 산 찾는 사람들이 조심해야죠.
비록 단축 산행을 했지만 20km이상은 힘들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