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종환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게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시집 『접시꽃 당신』, 1986)
[작품해설]
이 시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애상적인 어조로 노래한 작품으로 「공무도하가」 · 「초혼」 · 「귀촉도」와 같은 사별(死別)의 노래와 주게면에서 흡사하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에서도 이 시의 화자는 결코 처연해지거나 절망적이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더욱 깊어진 그리움과 사랑으로 슬픔을 극복함으로써 찬 차원 높은 이별시가 되게 하였다.
이 시는 연 구분이 없는 전 14행의 단연시로 내용상 세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1~7행의 첫째 단락에서는 아내와의 사별과 그 아픔을, 8~10행의 둘째 단락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는 아득한 거리감을, 11~14행의 셋째 단락에서는 재회의 믿음을 통해 슬픔의 초극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1~7행의 전반부는 ‘당신을 옥수수밭 옆에 묻고 돌아온다’는 내용이고, 8~14행의 후반부는 ‘돌아오면서 새삼 깨닫게 된 여러 사실들’이 그 내용이다. 10행의 ‘하늘과 땅의 거리’는 죽은 자와 산 자, 아내와 화자, 영원의 세계와 찰나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아득하고 절망적인 거리를 의미한다.
전반부는 모든 시행을 ‘-돌아오네’로 통일시킨으로써 있어야 할 아내의 부재를 몇 번씩 확인하고 절망하는 화자의 현재 심정을 강조하고 있는 데 비해, 후반부는 ‘-알게하네’ 통일시킴으로써 아내의 죽음 뒤에 깨닫게 된 더 깊어진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시의 상황 설정이 반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내를 묻고 돌아오는 날이 공교롭게도 견우와 직녀가 오랜 이별 끝에 만난다는 ‘칠석날’ 이라는 데 있다. 그러나 화자가 처해 있는 현재 상황과 상번된 ‘칠석날’이긴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만남의 계기로 귀착된다는 데 이 시의 진정한 매력이 있다. 즉 ‘칠석날’인 오늘은 아내가 죽어 땅에 묻힌 날이라는 표면적 의미 이외에도 언젠가 ‘당신이 흙이 되고 내가 바람되어’ 견우돠 직녀처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화자는 살아생전 아내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의 회한을 구구절절 노래하면서도 좀처럼 눈물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편 이 시에거 주목해야 할 것은 첫 행과 중간[8]행 및 마지막 행의 의미적 상관성이다. 첫 행에서 언급된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석날’은 중간행의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밤’과 마지막 행의 ‘한 해 한 번 당신을 만나는 길’로 연결함으로써 형태적 완결성뿐만 아니라, 아내와의 사별로 인한 화자의 슬픔이 마침내 재회에의 확신을 통한 사랑으로 극복되는 의미의 완결성을 이룩하는 것이다.
[작가소개]
도종환(都鍾煥)
1954년 충청북도 청주 출생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제1집에 시 「고두미 마을에서」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89년 전교조 결성 관련으로 해직. 투옥됨.
1990년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 수혜
1997년 제7회 민족예술상 수상
시집 : 『고두미 마을에서』(1985), 『접시꽃 당신』(1986), 『접시꽃 당신2』(1988), 『내가 가라아는 당신은』(1988),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분단시대 판화시집』(1989), 『몸은 비록 떠나지만』(1989),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 배』(1994),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1995), 『부드러운 직선』(1998), 『그 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1998), 『슬픔의 뿌리』(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