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일의 교과서는 우리의 신경을 곤두서게 합니다.
일본은 줄기차게 고대 한반도에서 자신들이 식민지를 경영하였다고 망언을 서슴치 아니하고, 중국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켰습니다. -발해는 이미 그들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 이 어찌 통탄스럽지 아니한 일입니까?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한 분이 의견을 개진하셨기에 제 의견을 미약하오나 피력해 봅니다.
우선 언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 일본어는 고구려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국어는 신라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고로, 가야의 지명이 일본틱하다는 것은 그 당시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보다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시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김수로왕때의 언어와 그 이후의 언어가 차이가 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김수로 왕이 개국을 했을때 시기를 살펴보는 것이 빠르다 하겠습니다.
김수로왕의 경우 42년에 탄생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고구려는 북방의 한 나라였으며 그 왕은 3대 대무신왕이었습니다.
2대 유리왕때 고구려에서 한 무리가 남하하여 온조의 무리가 한성 위례성에서 백제의 근간을 세웠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백제는 그 세력을 점차 넓혀갔지만, 김수로왕의 시기에는 가야까지 넓히진 못했을 것이며, 그 언어 또한 전해지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고로, 가야의 언어는 인접한 신라의 언어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사려됩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남하집단인 백제가 지속적으로 남하를 감행함에 따라 당연히 가야와 그 국경을 접하게 될 것이며, 이는 가야의 언어 생활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됩니다.
고구려의 한 집단인 백제의 언어에 가야가 영향을 받으면서 신라어의 영향이 흐려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로, 백제의 언어 (즉, 고구려의 한분파의 언어)가 가야에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또 다른 고구려어는 일본에 영향을 미쳐 일본어를 생성하게 되었습니다.
한 언어에서 영향을 받았으니, 가야의 언어가 왜색이 짙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임나일본부설이라는 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식민지 하는데 이용한 당쟁과 더불어 가장 주요한 학설입니다.
한반도의 남부 특히 가야부분을 일본이 지배하였으므로, 일본은 한반도 지배의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다.. 라는 이시하라적인 망언인데요.
그 허위성은 첫째, 일본의 지배계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계층들은 대부분이 도래인 입니다. 이 도래인들은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도래하였습니다. 그 일 예로, 일본 왕실과 남부여왕실과의 인척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두번째, 일본 내의 주요 사찰의 이름과 주요 다리의 이름들을 고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일국이 다른 나라를 사대할 때, 그 나라의 문화를 모방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입니다. 또한 그 모방은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아니하고 하나의 주류를 이루기도 하고 언어 생활에도 영향을 줍니다. 일 예로 일본에 백제사, 백제교, 신라사, 고구려사 등과 삼국에 대한 이름은 아직도 지명이나 고유명사로 많이 전해지고 있지만, 한반도 내에 일본에 대한 이름은 식민지 시대를 제외하고 왜관정도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임나일본부설이 일본 당국의 말처럼 식민지 통치 기구였다면, 한반도 남부에 아직도 일본에 대한 지명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위에서 어느분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임나일본부라는 기관은 무역대표부입니다. 당시 한반도 남부에는 철이 많이 생산되었으며, 일본의 구리와 한반도의 철을 물물교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미국이나 러시아의 무역대표부가 있다고 우리가 그 나라들의 식민지가 아니듯, 임나일본부라는 무역대표국이 있었다고 하여 가야가 일본의 식민지는 아니었습니다.
첫댓글 맞아요 맞아..음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말씀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당~~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