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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바흐친의 대화론은 자아와 타자가 상호작용하며 존재를 형성하는 원리를 설명하며, 이는 사회적 현상으로 확장되어 카니발 이론으로 발전한다. 카니발은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사회적 위계를 해체하는 반(反)구조적 축제로, 상생과 공존의 원리를 드러낸다. 그는 소통과 대화 속에서만 인간과 문화가 살아 있는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으며, 언어와 문학에서도 독백적 서사(독백주의)보다 다성적이고 개방적인 구조(대화주의)를 강조했다. 카니발적 축제는 일시적 전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장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세계를 새롭게 구성한다.
바흐친 : '반(反) 구조적 카니발'과 '소통시스템'
축제 이론
바흐친의 대화론은 상생과 공존 원리의 기저를 설명하는 그의 모든 이론의 토대를 형성한다. 대화 속에서 '나'와 '남'은 각자의 고립된 개별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상호 소통과 조정의 역동적 관계를 형성한다. 대화의 주체들은 세계를 공유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각각이 지니는 차이들을 매개로 존재하며 그 차이들로 인해 결합된다. 대화론이 확장되어 나타난 사회적인 현상이 카니발이다. 바흐친은 카니발을 통해서 사회문화적 현상을 분석하는 관점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 사육제적 이미지를 통해서 사회적 구조나 체계, 그리고 사회관계가 현상적으로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1. 미하일 바흐친과 대화론
카니발을 통해서 사회문화적 현상을 분석하는 관점의 변화를 설명한 미하일 바흐친(Michael Bakhtine, 1895~1975)
미하일 바흐친(Michael Bakhtine, 1895~1975)은 카니발 형태의 축제와 같은 민속문화를 연구한 민속학자나 문화인류학자로 간주되는가 하면, 기호학이나 언어이론을 체계화한 기호학자나 언어학자로도 인정받는다. 그는 또한 프로이트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심리학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탁월한 마르크스 이론을 전개한 사회이론가나 지성사가로, 그리고 변증법적 종합을 통해서 형식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그 특유의 '사회학적 시학'으로 발전시킨 문학이론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대화주의 또는 대화론(Dialogism)은 미하일 바흐친의 이론을 총괄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바흐친의 이론은 철학, 심리학, 언어학, 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학문의 유파들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을 불가능케 하는 포괄성과 독창성을 지닌다. 대화론이라는 용어는 바흐친 개인만이 아닌 '바흐친 학파'의 이론을 통칭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한다.
바흐친에게 대화는 일차적으로 주체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대화 속에서 '나'와 '남'은 각자의 고립된 개별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상호 소통과 조정의 역동적 관계를 형성한다. 대화를 구성하는 발화들은 주체들의 공유 세계를 전제로 하는 사회적 행위이며, 바흐친이 강조하는 언어의 살아 있는 실재다. 바흐친이 말하는 대화적 관계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한정되지 않는다. 대화는 차이들을 매개로 성립하며, 또한 그것들을 결합시킨다. 따라서 대화적 관계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상호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모두'라는 상호포용적 관계다.
바흐친에서 자아 ‑타자의 관계는 자아가 고정되고 완성되고 완결된 주어진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활동의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대화적이다. 바흐친의 대화주의(dialogoism)과 독백주의(monologoism)의 구분은 그의 자아이론에서 중핵을 이룬다.
독백주의는 타자를 의식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반면, 대화주의는 타자와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열려 있는 의식을 찬양한다. 따라서 독백주의는 내부 지향, 자아의 봉쇄, 분리와 고립으로 이어지고, 대화주의는 봉쇄를 거부하고 외부를 지향해 타자들의 의식과 조우하고 반응한다.
바흐친의 자아개념은 매우 성찰적이다. 자아가 타자를 성찰하고 타자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해주고, 그리하여 타자의 담론이 자신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즉, 나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서 타자가 필요하다.
바흐친에게 문화는 공동체 내의 차이, 상호작용 양식, 그리고 사회 내의 사회적·정치적 메커니즘을 극복하고 뛰어넘고자 하는 개인들의 노력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바흐친에게 문화는 차이들로 인해 열려 있는 비완결적인 과정이고, 이러한 차이들은 대화를 통해서 그 통일성을 발견한다.
바흐친의 대화론은 카니발 이론에서 출발한다. 대립적인 것들의 공존은 인간의 삶 자체가 타인과 대화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본다.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인간과 부딪히고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살아간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집단과 집단의 관계, 그리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방적이고 독백적인 관계는 종국에는 자멸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카니발 이론
카니발은 기독교적 중세사회라는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중세기에서 근대기로 넘어오면서 좀 더 분명한 성격을 띠게 된다. 도시적 사회가 제도화 과정을 거치게 되면 그 제도를 정당화하는 권력층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벌어진 축제는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도시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협동체적인 공동체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동시에 새로운 사회질서를 정당화하는 공식적인 가치체계와는 대조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제도 외적인 측면으로서 '축제=저항(fête=contestation)'이 드러나는 것이다.
축제는 사회집단이 세계관을 축제에 투사시키면서 가져다주는 '문화적으로 암시적인 의미'에서 '신성한 것'이 되며, "모든 형태와 이미지 또는 사고의 추상적인 체계를 통해서 통치체계와 기존의 원리,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의 영속성과 부동성을 만질 수 없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완전히 정반대적인 것을 주입시키는" 중세의 공식적인 문화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축제에서 표현되는 '세상에 대한 관점'은 우주적인 '재생'의 관점이며, 이 경우에 축제는 제도적인 체계에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그것을 다시 태어나게 하면서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병마개 구실을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흐친은 카니발을 통해서 사회문화적 현상을 분석하는 관점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했다. 사육제나 사육제적 주기를 중요한 사회적 변화의 시기에서 찾기 시작한 학자들은 바흐친의 사육제와 의례연구를 자주 언급한다. 바흐친은 사육제적 이미지를 통해서 사회적 구조나 체계, 그리고 사회관계가 현상적으로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카니발은 기존의 질서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기능을 했다. 카니발은 "모든 위계적 서열, 위세, 규범, 금지의 중지"를 의미하고, "모든 영원하고 완전한 것에 적대적이다." 비공식적인 민중문화는 인간관계의 평등을 강조하고, 정태적인 용어가 아닌 동적인 용어로 인간을 정의한다. 민중의 웃음은 조롱과 승리, 단정과 부정, 매장과 부활을 동시에 드러내는 전체 공동체의 웃음이다. 카니발 군중 속의 개인은 자신이 "계속해서 성장하고 새로워지는 민중의 일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카니발 속의 민중의 웃음은 "초자연적인 법칙, 신성한 것, 죽음···" 등 억압적이고 제약적인 모든 것을 정복하고자 한다.
카니발의 개념은 절대적인 평등과 자유, 즉 모든 사회적 위계와 사회적 거리의 정지, 다시 말해 유토피아적 진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 되는 시대를 표상하는 하나의 유토피아적 관념이다. 바흐친이 말하는 카니발 형식이 공식적인 질서를 전복하고 넘어설 때, 사회적 상징은 의미를 상실하고 뒤죽박죽 엉켜버린다. 카니발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들의 운명이 아니라 집단적인 장난, 외설행위, 상스런 언행, 진지성의 결여, 조롱적인 논쟁이다. 즉 안정적인 통합된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끝없이 이동하는 것이다.
축제에서는 흔히 비일상적인 전도현상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서 성역할 전도나 사회·문화적 지위가 전도되어 남자와 여자, 왕자와 거지, 주인과 노예, 산 자와 죽은 자 등이 서로 뒤바뀌어 표현되는 것이다. 이렇듯 축제를 일상생활의 '단절', 즉 하나의 의례적인 상황으로 간주할 경우에 축제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의식이 치러지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가 된다.
3. 상생과 공존의 원리
바흐친이 받아들이는 유일한 가치는 완성되지 않은 채 언제나 열려 있고, 죽음 앞에서조차 굴복하기를 거부하며, 탄생과 새로운 것에 통합하는 삶이다. 집단적인 축제, 야단법석 또는 사육제의 거대한 웃음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여기서는 모든 사회적 위계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주체가 되고, 이것은 공공의 장소에서 일어나며, 의례 속에서 탄생과 죽음, 끝과 시작, 높은 것과 낮은 것 등 대조적인 것들이 가진 차이가 없어지고 서로 연결되면서 양면 감정을 표현한다. 이 의례들은 바흐친이 '웃음의 대중문화'라고 불렀던 것을 구성하며, 이것이 각 문명의 중심에서 만들어져 산발적으로 '공식적인' 문화의 조직 속으로 투영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계승해 축제와 민중문화의 연관성을 밝힌 바흐친은 카니발을 축제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 들었다. 즉, 카니발에서 보이는 전도적, 비일상적 성격을 축제의 가장 기본 성격으로 지적하고 있다. 바흐친은 시끌벅적한 놀이처럼 보이는 카니발에서 문학과 인간의 신비를 열어 보여 주는 유용한 열쇠를 찾아냈다. 그의 '카니발'은 궁극적으로는 문학이론을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로 우리를 인도한다.
사육제라 번역되기도 하는 카니발은 원래 그리스도교 지역에서 사순절 직전에 행해지던 전 민중적인 제전이었다. 그것은 부활 대축일 이전 40일 동안의 금욕적인 삶을 앞에 두고 마음껏 놀아보자는 취지의 축제였다. 40일 동안이나 고기도 못 먹고 수시로 단식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에너지를 비축하는 의미에서 실컷 먹고 마시고 춤추는 질펀한 축제를 벌였다. 오늘날 유명한 관광 상품으로 부상한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이나 베네치아 카니발 혹은 뉴올리언스의 마디그라, 그리고 러시아의 마슬레니차 축제에는 이런 그리스도교적인 전통이 깔려있다.
오늘날 유명한 관광 상품으로 부상한 뉴올리언스의 마디그라
바흐친의 카니발 개념은 '해방된 삶'과 '거꾸로 된 삶'이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바흐친은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카니발에서 상생과 공존의 원리를 발견했다. 요컨대 카니발의 거꾸로 된 세상은 극적으로 대립하는 것들의 공존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사실 카니발은 시간적으로 연중 가장 심오한 고난의 시기인 사순절과 접경한다. 그러므로 카니발이 보여 주는 분방함의 극치에는 곧이어 시작될 사순절의 참회와 극기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같은 원리에서 카니발의 모든 부정적인 의미는 긍정적인 의미와 경계를 접한다. 카니발은 긍정하기 위해 부정하고, 존중하기 위해 조롱하며, 올라오기 위해 내려간다. 궁극적으로 카니발 속에서 삶은 죽음을 내보이고 죽음은 또 삶을 내보인다. 즉, 카니발은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부활과 갱생의 축제라는 것이다.
바흐친이 카니발에서 찾아낸 것은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인간은 타인 속에 투영된 자기 모습을 볼 때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