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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유리창 너머에는 해가 붉게 타오르고, 빌딩 숲의 너머로 도망치듯 사라진다.
나는 그제서야 느릿느릿, 침대에서 기어나와 화장실로 향한다. 거울 속의 나는 한
소녀. 피곤한 눈으로 하루 종일 잔 탓에 망가진 몰골을 바라본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고,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와 상체에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나시티를 입는다. 화장대로 향해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아이라이너를 짙게 그리고,
까만 아이 섀도우를 넓찍하게 바르고, 마스카라를 바르고 또 덧바른다. 입술은 붉게,
붉게 칠한다. 매혹적인 향수를 살짝 뿌리고, 핸드백을 들고 집을 나선다.
띠리리-
집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 저 편에서는, 익숙한 사십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람아, 지금 시간 괜찮지?”
고객이다.
“오빠! 왜 이렇게 오랜만에 불러줘요,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가식적인 콧소리를 섞어가며,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이래야지 그들은 나를 더 자주 불러줄테니까. 이래야지 나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을
테니까.
“좀 바빴어. 지금 로얄비 호텔 1209호로 와.”
“금방 갈게요.”
택시를 잡고, 그가 불러준 호텔로 향한다. 로얄이라는 이름처럼, 그 곳은 화려하다.
입에서 물을 뿜는 사자 조각상, 반짝이는 샹들리에, 웃으며 손님을 반기는 호텔
종업원들. 엘레베이터는 위로, 위로 향하고 나는 반짝이는 서울의 야경에 반한다.
엘레베이터는 멈추어 서고, 나는 1209호로 향한다. 방 앞에, 그는 초조한 모습으로
서 있다. 들킬까봐서 조마조마하면서도 나를 찾는 그가 증오스럽다. 여자에 미쳐
가정조차도 소홀히 하는 그가 징그럽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미소를 띄고, 그에게
인사를 한다. 그는 진심으로 반갑다는 표정으로, 내 허리를 끌어안고 내 입술에
진하게 키스를 한다.
복도 저 편에서 다가오는 정장차림의 한 남자는, 그의 열정적인 세례를 받는 내
눈과 마주친다. 그는 피식, 비웃음을 흘린다. 기분은 나쁘지만, 그의 비웃음이
이해는 간다. 가정이 있는 사십대 남자가 십대 소녀를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는
것이나, 앞날이 창창한 십대 소녀가 돈 좀 벌겠다고 사십대 남자에게 몸을 파는
것이나, 둘 다 비웃음을 살 수 있는 행동이니까. 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그의
손길에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내 옷을 벗기고, 나는 희열을 느끼는 척, 그가 원하는 대로 따라준다.
이 추한 상황도,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
유부남인 그는 출장을 갔고, 다른 고객들은 푼돈밖에 쥐어주지 않기 때문에 바쁘
다는 핑계로 그들의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대신에 앉아있기만 하면 돈이 들어오는
편의점 알바자리를 구해, 카운터 뒤에 앉아 만화책을 읽고 있다.
늙어빠진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학교
미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더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시간당 얼마
주지도 않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돈이 필요
했다. 구질구질한 삶을 떨쳐버리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몸을 팔았다.
하지만 그 일을 즐긴 적은 없다.
딸랑-
문에 걸린 종이 소리를 내자, 나는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한다.
“어서오십시오-“
묵직한 구두소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묻히고, 잠시 후 손님은
커피 한 캔을 내민다.
바코드를 찍고, 그에게 가격을 말해준다.
“오백원입니다.”
그는 오백원짜리 동전을 내민다. 그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보는 순간,
내 얼굴은 화끈 달아오른다.
우연일까. 그는 호텔에서 본 그 정장차림의 남자다.
그의 장난스런 눈빛은 생각을 읽어낼 수가 없게 한다. 그는 나를 기억할까. 아마도
짙은 화장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는 커피를 들고 종소리를 내며 나가버린다. 왠지 모르게 착잡한 마음에 주머니
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CCTV가 설치 되어 있다는 걸 기억해내고 관둔다. 담배
한대를 피기 위해, 교대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는 왔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가격의, 똑같은 브랜드의
캔커피를 들고, 언제나 정장차림으로, 장난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계산을
했다. 그의 눈빛에는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내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만난 사람을
이렇게 반복적으로 만난 일은 없었다.
괜스레 두려워진다.
딸랑-
종은 다시 울리고, 시간에 맞춰 그는 들어선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오늘은 그 지겨운
정장을 벗어던지고, 차가워진 늦가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바지에 후드티차림이다.
그리고, 오늘은 커피 두 캔을 사간다. 천원짜리를 내밀며, 그는 미소를 짓는다.
“감사합니다.”
그가 사라지자, 내 얼굴은 화끈거린다. 왜, 이러지?
교대시간이 다가오자 선배가 들어오고, 나는 옷을 갈아입고 편의점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가려다, 흠칫 놀란다. 편의점 문 옆에, 그가 서 있다. 캔커피 두개를 들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씽긋, 웃어보인다. 그는 캔커피 하나를 내게 내민다.
“집에까지 데려다 줄게요.”
놀란 표정으로, 나는 그의 두 눈을 바라본다. 짙은 갈색의, 악의 없는 눈빛. 작은 악동
같은 장난기는 서려있지만, 그건 오히려 그의 눈길을 더 매력적이게 만든다.
가슴이 쿵쿵거려 움직이지 못하는 나의 손을 잡아,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어준다. 얼굴이
다시 후끈 달아오른다. 그는 내 곁에 서서 내가 출발할 때까지 기다리는 듯 해, 나는
집으로 걷기 시작한다. 온 몸에 뻣뻣해, 걷는 것조차 어색하다.
“춥지 않아요?”
그가 묻는다.
그의 질문에, 그제서야 나는 내 차림을 내려다본다. 추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여름용 청바지, 칠부 소매 티셔츠, 쪼리. 여름은 떠난지 오랜데, 나는 아직도 여름을
갈망하는 듯한 차림을 하고 있다. 느껴지지 않던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닭살이
돋고, 턱이 떨려온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내게 둘러준다.
따뜻하다.
“이름이 뭐에요?”
그는 묻는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대답한다.
“한아람…”
“예쁜 이름이네요.”
그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는데로 그는 쫓아왔고, 곧 우리는 집에 도착했다.
그는 내게 작별인사를 했고,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가슴이 쿵쾅거려, 얼굴이 화끈거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오늘도 그는 편의점 앞에서 캔커피를 건낸다. 활짝 웃는 얼굴로, 나는 그걸 받아든다.
그는 나를 부드럽게, 꼭 끌어안는다.
“아람아, 보고싶었어.”
나도 그를 안는다. 그리고 그의 귓속에 속삭인다.
“나도.”
손을 마주잡고, 길을 걷는다. 발을 맞춰서, 함께,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나는 행복하다.
+++
띠리리-
한밤중에 전화가 울린다.
그다.
나는 전화를 받는다.
“출장 잘 갔다 왔어요?”
“그래. 지금 만날 수 있어?”
망설여진다. 처음으로 망설여진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죄책감에 말꼬리를 흐리며,
나는 중얼거린다.
“글쎄요…”
그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제시한다.
나는 허락한다. 나는, 나는 돈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짧은 치마에, 짙은 화장에, 핸드백을 들고 나간다. 그가 말한 호텔로 걸어간다.
그는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의 팔짱을 끼고, 방으로 향한다. 나는 가식적인
미소를 띄고, 원치않는 그의 입맞춤을 받아들인다.
열리지 않을 듯 닫혀있던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 나는 경직한다.
왜 니가 거기 서 있는건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정장차림의 그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도망가고
싶지만, 추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도망가고 싶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십대의
그는 내 팔을 끌고, 엘레베이터를 빠져나간다.
처음으로 내게 따스히 대해주었던 그는, 그 곳에 얼어붙어 눈길로 나를 쫓는다.
그의 눈가에 어린 물기는 내 착각인걸까.
온 몸에 힘이 빠져, 나는 그 놈에게 다시 몸을 내어주고 만다.
+++
발걸음을 질질끌며 편의점을 나선다. 주위를 둘러보고, 눈물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오늘도 그는 없다. 어제도, 그저께도, 그는 없었다. 한 층 쌀쌀해진 날씨가, 차가워진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내가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힘차게 때린다. 어린
아이처럼,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의 매를 맞는다. 나 같은 건 그래도 싸다.
한 방울, 두 방울.
그에게 전화를 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전화해 내가 잘못했다고 빌 용기가 없다.
그가 거절할까봐, 이 더러운 나를 완전히 거절할까봐 두려워서, 마지막 방울의 용기조차도
꽁꽁 얼어붙어버린다.
그에게 준 상처는 생각치도 않고, 이기적이게 내가 받을 상처만을 걱정해 전화를 하지
못한다.
하얀 것을 떨어뜨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운다. 울음을 꾹 참으며 운다. 더러운 나,
이기적인 나, 가식적인 나, 용기 없는 나를 원망하며 운다.
혼자 걷는 이 길은 너무나도 멀다.
+++
아파도 시간은 흐른다.
그를 보지 못한지 세달이 넘었다.
내가 그에게 남긴 상처는 아물었을까. 그가 내게 … 아니, 내가 내 자신에게 남긴 상처는
어느새 아물어 흉터만 남았는데. 이기적인 나는 어느새 그를 잊고,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데.
띠리리-
오늘 밤만해도 세번이나 울리는 전화. 호텔로 오라는 수십개의 문자. 나는 더 이상 몸을 팔
자신이 없기에,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버렸다.
시계가 정각을 울리자, 내 다음 교대인 선배가 나타난다. 나는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빠져
나와 집으로 향한다.
그리도 길었던 길이 보수공사라도 한 듯, 짧아진 느낌이다. 그를 잊었다는 확실한 증거일까.
살짝 미소를 띈 채, 고개를 들어올린다. 웃을 수 있다는 것도 그를 잊었다는 증거일까.
하지만 착각이었다.
길의 저 편에서는 익숙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악동같은 눈빛과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처음보는 귀여운 여자의 새하얀 손을 잡고.
그는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린다. 나도 범죄자라도 되는 듯 눈길을 돌린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서로를 스친다.
얼어붙어 빨갛게 되어버린 나의 두 귀에 귀여운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따스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보고싶다고 하던 그 목소리가 들린다. 나를 사랑한다고 했던 그
목소리가 들린다.
내 눈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18세의 상처는 다시 벌어져, 끊임없이 붉은 피를 흘린다.
새하얗고 순진한 눈밭은 투명하게, 붉게, 투명하게, 붉게 물들어버린다.
쓸쓸한 가로등 밑에 홀로 서서, 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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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은 처음이라 떨리네요ㅜㅜ
댓글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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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불쌍해요그여자주인공..남자도좀못됏긔!ㅋㅋㅋㅋㅋ
그남자가 이해해줄수는 없었을까요?
아아...헤어진 거군요...슬프네요...
여자주인공 너무 불쌍해요~ 번외편 써주세요 남자가 후회하는 걸로
맞아요 번외원츄요 ㅠㅠ 끝내면쪼리님미워할꺼에요
으아 완전 초불쌍한 여주인공........처음이라니 정말 대단하세요~
처음이신데 이렇게 잘쓰시다니 ㅠㅠ 남자 번외 없나요ㅠ?
......남자가 배신감을 아주 심하게 느꼈을듯 하네요 -ㅁ-;;
안녕하세요~ 쪼리님이 열심히쓰신 소설의 번외를 원츄원츄하는 애독자입니다 ~ 번외써주실꺼죠????~ 남자남자남자남자!! 번외말이예요~ 번외 생각하시고쓴거맞겠죠 ㅎㅎ? 기대할께요~
앗! 번외편 보고싶어요! 만들어 주세요!
아진짜여주불쌍해요 ㅠㅠ 번외부탁드려효!ㅋㅋ
참좋은데요.묘사도 너무 멋지고,ㅠ_-! 참....슬프네요. 대사도 별로 없고, 그렇지만 마음이 아픈게느껴지네요.건필!!!
용기를 갖구 한번 얘기라도 해봤음하는 아쉬움두 있구여 그냥 묻어가다보면 스스로를 위안하는법을 배우게 될땐 상처라기보다 다른 생각이 들겠네요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