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웃기는지 이유를 따지지 않고 배꼽이 빠지도록 실컷 웃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영화가 좋은 치료약이 될 수 있다. [자니 잉글리쉬]는 타이틀롤을 맡은 로완 엣킨슨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넌센스 코미디이다. 넌센스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영국 첩보국 MI-7의 직원, 자니 잉글리쉬 역을 맡은 로완 엣킨슨은 이름이 낯선 배우이지만, 그러나 얼굴만은 절대 낯설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우 이름보다는 [Mr. 빈]으 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영화로도 개봉 된 [Mr. 빈]은 원래 TV 시리즈물로서 HBO와 ITV를 통해 방영되었으며 200여 나라로 수출되었고 지금은 코미디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 시대 가장 재능 있는 코미디언으로 평가되는 로완 왓킨슨은, 런던의 브로드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극장가 WEST END에서 원맨쇼 진행자로 출발해서 골든 로즈상을 비롯해서 ACE의 최우수 코미디상을 받았다. 할리우드에 표정 연기의 달인 짐 캐리, 혹은 정통 코미 디언의 대표주자인 로빈 윌리암스나 속사총 떠벌이 에디 머피가 있다면, 영국에는 이 모든 것을 합한 것 같은 로완 왓킨슨이 있는 것이다. 어리석고 모자라며 실수투성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Mr.빈의 순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국의 첩보원이라구? 우선 발상 자체가 재미있다. 가장 기민한 몸 동작과 예리한 판단력을 요구하는 첩보원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Mr. 빈을 캐스팅 한 것이 이 영화의 방향을 짐작케 한다. 역시 [자니 잉글리쉬]는 우리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엎치락뒤치락 실수 연발 끝에 그러나 자니 잉글리쉬는 목적을 달성한다.
항상 첩보원이 되기를 꿈꾸는 영국 첩보국 직원 자니 잉글리쉬는, 최고의 첩보원 001이 임무수행중 죽고(그 죽음은 자니의 결정적 실수 때문이다. 일종의 과실치사라고 볼 수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 그 장례식에 참석한 다른 첩보원들마저 몰살당하자(장례식 경호를 맡은 것도 자니 잉글리쉬다. 그가 맡은 일은 되는게 없다), 여왕의 왕관 탈취 음모를 대신 조사하게 된다(왜냐하면 모든 첩보원이 몰살당해서 조사할 사람이 없으니까 정보국 국장이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수 없이 자니에게 일을 맡긴 것이다).
첩보원으로서의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자질도 모자라지만 그가 갖고 있는 것은 목표를 향하여 물불 안가리고 달려드는 용감함과 대담함 그리고 높은 애국정신이다. 아는 것이 없으니까 용감하거나 대담할 수밖에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우리의 자니 잉글리쉬를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이다. 때로는 일급 여자 첩보원들까지도 그의 순수한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함과 목표를 달성하려는 집요함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독특한 이야기 [슬라이딩 도어스]를 만든 피터 호위트이다. 직접 각본까지 쓴 그 영화로 유럽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받았을 만큼 재능 있는 이 감독은 또한 배우 출신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비롯해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니 잉글리쉬]의 각본은 007 시리즈 [언리미티 드][Die Another Day]의 각본을 쓴 닐 퍼비스와 로버트 웨이드가 맡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은 넌센스 첩보 코미디이지만 외형적 형식 자체는 실제 007류의 영화의 거의 비슷하게 진행된다.
자니의 상대역 악당으로 등장한 배우가 이 영화에 무게감을 준다. 걸출한 개성파 배우 존 말코비치가 악당 파스칼 소바쥬 역을 맡았다. [사선에서]의 악당 역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지만 [존 말코비치 되기] 등 뛰어난 작품성 있는 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로 우리들을 매료시킨 그는 자니 잉글리쉬의 활약으로 끝내 욕망이 좌절되는 불운한 캐릭터를 맡아 진지한 연기를 보여준다.(그 진지함이 오히려 자니의 엉뚱함과 맞물려서 더 큰 웃음을 주지만)
007 시리즈에 본드걸이 있다면 [자니 잉글리쉬]에는 자니걸이 있다? 자니를 도와 일을 성공 적으로 수행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프랑스 첩보원 로나 켐벨 역으로, 호주 출신 가수 나탈리 임부루글리아가 캐스팅 되었다. [자니 잉글리쉬]는 그녀의 영화 데뷔작이다. 로레알 화장품 모델이기도 했으며 [Left of Middle](97년)과 [Torn]이라는 앨범을 밀리언셀러로 만든 그녀는 아직 덜 다듬어졌지만 충분히 성장 가능한 매혹적인 모습으로 자니를 보완해준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곡은 로비 윌리암스가 부른다.
[자니 잉글리쉬]같은 넌센스 코미디를 보러 갈 때는 007류의 첩보액션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뒤집어지는 이런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러 갈 때는 점잖이나 권위같은 것은 화장실에 잠깐 맡겨놓고 가야 한다. 설마 [향수][희생]의 타르코프스키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체리향기]의 키아 로스타미처럼 예술 영화를 보는 마음으로 극장에 가시는 분은 않게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