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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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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스크랩 영화 "도가니"를 보고 와서
이명재 목사 추천 0 조회 162 11.10.08 10:28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공교로운 일인가? 1964년 작가 김승옥이 소설 “무진기행(霧津紀行)”에서 건설한 한 도시가 있었다. 반도 남쪽 어딘가에 있을 '무진'이 그곳이다. 이 ‘무진’이 영화 "도가니"의 무대가 되고 있다. 무진시에 소재하고 있는 한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이 이 영화의 주 무대이다. 김승옥이 건설한 '무진'을 소설가 공지영이 다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문학적 알레고리가 있을 법하다. 여기서 '무진'은 한자로 '霧津'이 될 것이다. 안개 자욱한 나루, 이 낭만적인 도시에서 반인륜적인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교회 학생들에게 요즘 인기 정상에 있는 영화 "도가니"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모두 모른다고 했다. 그 중 한 청년이 영화 시작 부분에서 주인공 강인호가 자애학원 미술교사로 취직되어 내려가는 도중 눈길 도로에서 짐승 한 마리를 치어 죽이게 되는데, 그 죽은 짐승 이름이 '도가니' 같다고 했다. 그럴 듯하지만 아니다. '고라니'를 '도가니'로 혼동한 듯하다. '도가니'는 '단단한 흙이나 흑연 따위로 만든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을 말한다. 청각장애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말인 것 같다. 불의에 저항하는 곧 터질 것만 같은 자애학원 청각장애인들의 이글거리는 마음 말이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始終一貫) 기득권을 가진 세력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의 대립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을 축재 수단으로 삼는 것도 부족해, 어린 아이들을 학교 교직원들의 성적 노리개로 삼고 있는 현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교장, 행정실장, 교사, 기숙사 사감 등 아이들의 지식과 인성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학생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철저하게 유린해 가는 과정이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다. 작가 공지영이 실제 있었던 사실을 소재로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어서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소설이든 영화든 처음 깔리는 복선이 전개 과정과 결말을 어느 정도 알려 준다.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장애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는 희망을 안고 무진으로 가던 중, 로드 킬(Road kill)로 희생된 고라니, 자애학원 교장실에서 인사를 하면서 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거액(5천만원)을 요구하는 학교 측에 속수무책(束手無策)인 인호, 전세금을 빼서 거액의 발전기금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인호의 홀어머니 등은 이 영화의 전체 상황을 잘 상징해주고 있다. 슬픔, 비극, 불의를 이기지 못하는 정의로운 아이들, 교육과 법과 언론과 경찰이 한 통속이 되어 약자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먹이 사슬. 이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잔상들이다.

 

악과 선이 공존하는 세상이라곤 하지만 악이 선을 보란 듯 지배할 때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더욱이 선을 가장한 악이 세상에 군림할 때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는 세계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애학교의 최고 책임자인 교장과 행정실무 책임자인 행정실장이 일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은 진실을 혼란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사실 법정에서 교장 측 변호사는 이 쌍둥이를 앉혀놓고 성폭행한 교장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무리한 질문이다. 성 폭행 사실을 발설하면 죽인다는 수화에 얼굴이 일그러진 사람을 보기 좋게 교장으로 지목한 연두지만 기득권층은 사실을 이런 식으로 왜곡해왔다.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라는 속담도 이들에게 해당될 말일 텐데, 그들은 굳이 초록은 다르다며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능하다.

 

 

사진 설명-영화 "도가니"의 광고 포스터. 자애학교 미술교사로 새로 부임한 강인호는 배우 공유가 역을 맡았는데, 공유는 군 입대 직후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선물로 받아 읽고,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강인호의 역을 꼭 맡아 보고 싶어 했다고 한다.

 

 

자애학원 미술교사 강인호는 그중 세상에 물들지 않은 풋풋한 청년이다. 아내를 잃고 딸애 하나를 둔 인호가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강한 기존 체제에 맞서서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장애 학생들과 끝까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요즘 대체적 사회 초년생들의 흐름이 인호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인호 어머니가 강조하고 있듯이 불의를 못 보아서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침묵하는 것이다. 강고한 사회 체제의 진부(眞否)를 따지기 전에 미리 흡수되고 마는 것이 지금 젊은이들의 성향이다. 그런 가운데 발견되는 미술교사 인호의 약자 사랑은 따스한 향기로 날아든다. 교장을 비롯해서 자애학원 내 성폭행 사건에 대해 입 다문다는 조건으로 가지고 온 돈 가방도 물리치고, 학교를 소개시켜 준 지도교수의 입 가림도 거부하는 그의 행동에서 보기 드문 인간상을 발견한다.

 

무진인권센터 서유진도 마음이 가는 사람이다. 대학 다닐 땐 데모하느라 연애 한 번 못해 봤다는 그녀, 학점이 펑크 나서 취직도 할 수 없었다는 그녀는 무진시 인권센터 간사로 자애학원 교직원 성폭행 사건을 여론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나는 아직도 진정한 사랑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즉 일대일의 사랑도 소중하지만 일대 다수의 사랑이 더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서유진이 달콤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했다는 것과 그럴 듯한 곳에 취직을 하지 못한 것은 그가 못나서가 아니다. 개인의 안락보다는 다수의 희락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 유진은 무진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유진은 학교 교육청 경찰서 법원 언론사 등을 종횡무진(縱橫無盡) 뛰면서 극중 역할로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오늘도 허름한 사회운동 단체 사무실을 지키면서 변변한 활동비도 없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뛰고 있을 서유진과 같은 활동가들이 눈에 와 잡혀 마음이 시리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연두, 유리, 민수를 비롯한 자애학원 학생들이다. 말을 못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굳어있는 것은 아니다. 듣지를 못한다고 해서 감정까지 메말라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아이들은 당하기만 한 학교생활에서 진정한 교사 강인호 선생을 만나고 사랑이 무언지, 정의가 무엇인지, 진리를 찾아가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또 무진 인권센터 서 간사를 만나고 나서 자신들을 돕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을 구별할 줄 아는 눈이 열린다. 법정에서 차분하게 증언하면서 진실을 파헤쳐 가는 힘은 전적으로 인호와 유진으로부터 참사랑을 감지하고 나서의 일이다. 그만큼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이 영화를 먼저 본 한 집사님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뻔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난 기독교인의 일그러진 상(像)이 기독교 전체를 웅변하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하지만 일부의 현상이라고 해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장로라는 교장의 그 온화한(?)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야수와도 같은 행동이 나올 수 있는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교사에게서 어떻게 그렇게 이중적인 언행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성 폭행 혐의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교장이자 무진교회 장로를 위해 법정 밖에서 찬송과 기도로 예배드리는 교인들에게서 싸이클을 잘못 맞추고 신앙 생활하는 현실을 목도한다. 어찌 이런 모습이 그 교회 뿐이겠는가?

 

눈물을 몇 번 흘렸다. 슬퍼서 눈물 흘렸고, 안타까워서 눈물 흘렸다, 아니 그것보다 불의가 정의로 둔갑되어 활보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눈물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이 사회는 약자와 강자가 공존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원리이다. 하지만 강자들은 그런 사회를 깨뜨리기를 즐겼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라는 논리로. 이 영화 상영을 계기로 강자 중심의 사회제도에 시정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애인 성폭력 범죄에서 '친고죄'가 폐지되고, 장애인 성폭행 죄의 법정형이 기존 3년에서 5년 이상으로 확대되는 등 제도가 보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영화 "도가니"는 사회적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멜로 영화가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스크린을 지배하는 와중에 사회적 약자(장애인)를 생각하며 더 큰 사랑에 마음을 두게 만드는 "도가니"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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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0.08 23:02

    첫댓글 목사님께서는 영화를 보셨내요 저는 아직 못봤습니다만 메스컴에서
    많이 들어 내용만 알고 있지요 자본주의 사회가 약자는 언제나
    약자로 살 수 밖에 없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오히려 약자가
    보호, 위로 받고 살아야 할 일인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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