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순창 남간초봉(646m)
산 이름 유래 알 길 없는 호남정맥 조망산
남간초봉(646m)은 순창군 쌍치면에 자리하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상의 무명봉이다. 단풍으로 유명한 국립공원 내장산(763m)을 이별한 호남정맥의 주능선이 동북쪽의 망대봉(556m)을 지나 개운치에 내려선다. 다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산줄기는 고당산을 저만치 바라본 618봉에서 오른쪽(남쪽)으로 곁가지 산줄기를 뻗어 내린다. 이 곁줄기는 553봉(북재봉 ?)을 오르내려 오늘 소개하는 남간초봉을 밀어올리고, 다시 남쪽으로 장군봉(606m)을 솟구친 후 섬진강의 상류인 방산천에 가라앉는다.
나는 2000년 4월 호남정맥 종주시 고당산에 올랐다. 그때 남쪽으로 바라본 곳에 고당산과 엇비슷한 높이의 산이 있어 지도를 살펴보았으나 이름이 없는 무명봉이었다. 어언 10년의 세월이 흐른 최근, 성지문화사에서 발행한 도로지도에서 그때 그 무명봉이 남간초봉이라 표기된 것을 발견하고는 절로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그리하여 지형도상의 무명봉인 남간초봉 취재를 위해 우정산악회의 산행에 따라나서서 순창 땅을 찾았다.
남간초봉의 들머리는 29번 21번 국도가 겹쳐 지나는 둔전리 버스정류소다. 버스를 내려 능선길을 이어간다. 유월의 햇살이 찬란한 산길은 연초록이 짙어지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솔숲이 이어진 산길에서 무덤을 만나고, 다시 베어놓은 나무가 길을 막는 묵무덤에서는 웃자란 고사리가 밭을 이루었다.
참나무 낙엽이 수북한 제법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진다. 뒤이어 장군봉의 남쪽에 자리한 전망봉에 올라선다. 동쪽으로 쌍치초교와 쌍치중학교가 자리한 쌍치면 시가지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그 너머로 깃대봉, 여분산, 세자봉이며, 그 왼쪽으로는 달려가는 호남정맥의 주능선이 아련하다.
해발 606미터의 장군봉 정수리에 올라선다. 산불초소와 삼각점이 자리하는 장군봉에서의 조망이 시원하다. 서쪽으로 내장산이 손에 닿을 듯 다가들고 남쪽으로는 백방산과 추월산이 겹으로 솟구친다. 산불초소 북쪽에는 앙증맞은 작은 돌탑이 자리하거니와 산불초소 동쪽에는 독특한 형태의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산불감시원이 만들었을까, 산꼭대기에서 볼 수 없는 디자인의 의자에 앉아 유월의 햇살을 만끽하는 여유도 부려본다.
장군봉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능선길을 이어가 동쪽의 조망이 눈부신 전망바위에 이른다. 다시 조릿대 숲이 우거진 산길을 한동안 내려가 느긋한 능선길을 만난다.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가 숲을 이룬 신록의 산길에서 가로로 쓰러진 고목을 만난다. 다리품도 쉴 겸 고목 둥치에 걸터앉아 싱그러운 청산의 대기를 한껏 마셔본다.
다시 이은 북쪽능선에서 밧줄이 설치된 바위지대를 만난다. 올라선 봉우리 (598m)는 왼쪽으로 폐교가 된 방산초교 방향으로 길이 갈리는 능선 삼거리를 이룬다. 598봉 지나 역시 밧줄로 이어진 바위지대를 내려가니 굴참나무 능선길이 이어지고 내장산이 눈부신 전망대를 만난다.
드디어 남간초봉에 올라선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그대로 묵무덤이 자리한 남간초봉은 정상석이나 삼각점은커녕 그 흔한 플라스틱 팻말이나 표지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신갈나무, 때죽나무, 생강나무 등이 어우러져 숲을 이룬 정수리 한구석에 자그마한 너럭바위가 놓여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일행을 기다리며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산줄기를 내린 호남정맥의 고당산(641m) 보다 외려 높고, 남쪽의 장군봉을 굽어보는 제법 당당한 높이건만 오랜 세월 무명봉의 설움을 겪어온 비운의 이 남간초봉. 빼어난 절경이 없는 까닭일까, 오지에 자리한 탓일까. 정맥에서 벗어나고 이름조차 없어 산꾼들도 거의 찾지 않는 이 남간초봉. 그러나 능선길에는 굴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위험하지 않은 순박한 산길은 고향의 어머니를 연상케 한다. 평생을 시골에서 자식을 위해 묵묵히 일하신 어머님의 은혜로 우리들이 이만큼 살고 있지 않은가.
철부지 일곱 남매 기르다 힘이 들어/ 소나무 껍질이 된 어버이 두 손 뵈면/ 큰 사랑 밀물이 되어 가슴 벅차 오더이다// 씻은 듯 가난한 살림 말 못할 수모에도/ 오로지 자식성공 진명토록 애셨으니/ 성인의 어떤 사랑이 이보다 더하시랴// 어버이 지극한 사랑 아득히 끝이 없네/ 한평생 진력해도 갚을 길 전혀 없어/ 이 밤도 고향별 보며 두 분 모습 그립니다// 젊은 시절 객지에서 부모님을 생각하며 지은 자작 시조(사랑)를 읊조려 본다.
이윽고 일행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도착한다. 일정이 빠듯하더라도 정상에는 잠시 머물러야 하는 법. 싱그러운 숲차양 그늘에 둘러앉아 가져 온 간식을 권하며 산꾼들의 우정을 나눈다.
이윽고 하산을 시작한다. 정수리와 비슷한 높이의 바위능선을 조금 지나니 양절벽의 좁은 능선길이 이어지고, 고사리가 밭을 이룬 제법 너른 헬기장에 내려선다. 곧 만나는 589봉은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허리길을 돌아 종암리와 방산리를 이어주는 고갯길 마루에 내려선다. 고갯마루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553봉을 거쳐 호남정맥으로 이어지지만, 취재진은 동쪽(오른쪽)으로 내려서는 옛길로 접어든다. 내려가는 길섶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연인 형상의 나무를 발견하고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운다.
종암리 북재마을 입구에는 자락밭에 심은 완두콩 수확이 한창이다. 이곳에서 만난 양규홍(80세) 어르신께 산 이름을 물었더니 남간초봉을 이곳 주민들은 남산이라 부른단다. 남간초봉 산자락에서 수확한 완두콩은 과연 어떤 맛일까? 어르신께 부탁해 완두콩 한 자루를 사서 어깨에 메고 포장길을 내린다. 날머리 종암리 버스정류소 옆의 마을회관입구에는 1998년 7월 8일에 세운 빗돌이 자리한다.
'국사봉이 우러러 보는 고당산 능아래 우리마을 종암은 건강하고 행복하며 양보하는 사랑으로 거듭나는 우리마을 기리기리 후손에게 물려줍시다'
그러나 혹시나 하고 살펴본 종암리 박기종 이장이 쓴 비문에도 남간초봉이란 산 이름은 보이지 않았으니….
*산행길잡이
둔전버스정류소-(1시간10분)-장군봉-(1시간10분)-남간초봉-(30분)-30분)-북재-(40분)-종암버스정류소
장군봉-남간초봉 종주산행의 들머리는 쌍치면 둥전리다. 21번 29번 국도변에 자리한 둔전버스정류소 뒤쪽(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무덤길이 이어진다. 풀향기 그윽한 연초록 숲길을 따르면 솔숲에서 무덤을 만나고, 다시 고사리가 밭을 이룬 무덤을 지나면 베어낸 나무가 앞을 가로막는 산길이 나온다. 길은 제법 가파르다. 장군봉 전의 남봉은 참나무가 숲을 이룬다. 오른쪽으로 쌍치면 쌍계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능선길을 이어가면 산불초소와 삼각점이 있는 장군봉 정수리.
동쪽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지는 북쪽 능선을 이어 능선 삼거리를 지나면 밧줄지대를 만난다. 곧 서쪽의 내장산이 시원스런 산세를 자랑하는 전망대를 지나 20분이면 남간초봉에 도달한다. 세 갈래 능선이 만나는 남간초봉은 20평 정도의 너른 정상부를 가졌다. 그러나 산꾼들의 흔적이 전혀 없다. 신갈나무, 때죽나무, 생강나무가 둘러 자라고 자그마한 너럭바위가 이정표처럼 자리한 남간초봉은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산은 북쪽 바위능선을 따른다. 좁은 능선길을 지나면 고사리가 밭을 이룬 너른 헬기장에 이른다. 이곳에서 북쪽의 589봉을 왼쪽으로 굽어도는 허리길을 이어가면 종암리와 방산리를 잇는 고갯마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다소 희미한 길을 더듬어 내리면 북재 남쪽의 도로에 내려서고, 동쪽으로 내려가는 포장도로를 이어가면 종암리 마을회관 옆에 자리한 종암버스정류장이 나온다. 버스정류소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학산천변에 뒤풀이 장소로 훌륭한 정자쉼터가 있다. 둔전버스정류소~장군봉~남간초봉~종암버스정류소를 잇는 산행은 4시간쯤 걸린다.
*교통
남간초봉 자락인 쌍치로 가려면 순창보다는 정읍이 가깝다. 정읍에서 1일 8회(08:10, 08:40, 09:50, 10:50, 15:00, 17:10, 18:30, 19:00) 출발하는 쌍치면 경유 순창행버스가 둔전정류소에 선다. 35분 걸리고 요금은 2,200원. 하산지점인 종암버스정류소에서 쌍치면소재지를 왕복하는 군내버스가 1일 4회(06:45, 11:30, 16:20, 17:50) 출발한다. 10분 걸리고 1,000원이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와 날머리에 식당과 숙박업소가 없으니 정읍시내의 시설을 이용하여야 한다.
글쓴이:김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