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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을 올립니다.
잇빨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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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포스 창설자 찰리 벡위드 대령
에릭 핸니의 Inside Delta Force - ending
산디니스타 반군은 쿠바의 도움을 받고 있었는데,
온두라스에도 들어가 정보작전을 벌였다. 이들의
영향력은 커져. 특히 영향을 각별히 받은 국립대학
에서 많은 학생들이 반미 데모를 벌였다.
[산디니스타 : 1979년 7월 중미 니카라과의 소모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사회주의 정치단체. 소모사를 무력으로
무너트리고 혁명정부를 만들어 1990년까지 11년 동안 니
카라과를 통치하다 선거에 패배해 실각했다. 니카라과 국토
위쪽은 온두라스이고 아래는 코스타리카다. 산디니스타는
무력으로 얻은 사회주의 정권을 선거에 패하자 합법적으로
우파 정부에 정권을 넘긴 거의 유일한 사례로 기록되었고,
2천 년대 중반 산디니스타 대통령 후보가 다시 당선되었다.]
온두라스에는 6개 정도의 게릴라 그룹이 있었으나
좀 작고 효력도 약했다. 그 게릴라들이 쿠바와 니카
라과와 접촉해 도움을 요청했다. 쿠바는 라틴아메리
카에서 원래 그런 일을 하던 곳이기는 하나 정치에
매우 민감했다.
쿠바는 대변인이 공식적으로 요청을 해야 가능하다
고 반응했고, 사실 그런 작은 게릴라단을 지원할 생각
은 없었다. 이런 상황이 더 이상 진전 없이 1년 반 정도
지속되다가, 갑자기 온두라스 게릴라 약 300명이 니카
라과를 거쳐 쿠바로 훈련을 받으러 간다.
점차 상황 심각해졌다. 산디니스타 반군은 몇 달 동안
온두라스 국경을 넘어 정찰을 시도해왔다. 그럴 때마
다 우리 추적팀이 국경을 넘으려 그들을 추격했다.
온두라스 게릴라들이 쿠바로 가서 훈련받을 때
우린 온두라스 테구시칼파 공항 하이재킹 사건
진압공격이 무산되면서 마음이 심란한 때였다.
이때 명령을 받고 나를 포함해서 델타 병력이
들어가 온두라스 땅으로 돌아오는 새롭게 훈련
받고 완전무장한 그 게릴라 부대를 찾기 시작했다.
찾으면 '즉각행동'이었다.
우린 아주 길고 끔찍한 전투를 겪었다.
우린 그 게릴라부대를 추격해 찾아내
8일 동안 차단하면서 지속적으로 전투
를 벌였다.
결국 그들은 온두라스 외딴 산악으로 도주했다.
난 온두라스 특전단 혼성부대를 이끌었다. 칼리브
해 출신 흑인병사 추적병이 다시 게릴라부대 이동
흔적을 찾아냈고, 난 hunter/killer 팀을 이끌고 주야
로 전혀 쉼 없이 그들을 추격했다. 난 소부대로
나눠 일정한 대형을 유지했다.
결국 부주의한 그들을 따라잡았고, 장거리 매복에
들어갔다. 저격수들이 낙오자들을 쏴서 쓰러트렸고,
당시 작전에 가장 중요한 건 물(water)이었다.
난 게릴라들도 물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얕은
진흙탕만 있어도 물을 채우러 내려왔고, 그때마다
우리 기관총이 인정사정 없었다.
그들도 결연하게 필사적으로 우리에게 대항했다.
그러나 게릴라부대는 전상자와 질병과 탈영으로
약해져갔고, 결국 혼란스럽게 흩어지며 약해져
저항도 점차 감소했다.
난 국경을 넘어 안전한 곳으로 가기 전에 잡으려고
했고, 지도도 소용 없는 아주 외딴 곳으로 점차 깊게
들어갔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히 깊은 산악 높은 산
이었고, 나는 점차 한 산악의 정상을 향해 천천히
조여 갔다.
국경을 넘어 올 때, 그들은 약 300명이었으나 탈영
과 전상자로 인해 60명까지 줄어들었고, 그들은 이
제 마지막 방어거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미 힘이
아주 약해졌다.
내 병력은 여전히 강력했고, 우린 강력하게 추적하고
빠르게 이동하고 잠은 최소한만 잤다. 정말 힘든 여건
에서 우린 지속적으로 싸웠다. 낮에도 태양이 들어오
지 않는 지형.
그래도 우리는 물도 최소한 있었고 식량과 실탄이
풍부했으며 무거운 짐은 동물을 이용해 날랐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취적이고 창의적이었으며
희망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게릴라들은 그게 없었고, 니카라과에서 날아
올 공중재보급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국 오지 않았다. 이미 운명은 정해져 있었으나
아직까지도 남은 자들은 매우 위험한 적이었다.
밤에 두 번이나 우리 포위망을 돌파하려고 시도했고
우린 두 번 다 물리쳤다. 그들도 대단했으나 약해지고
있었고 병력과 실탄이 줄어들고 있었다.
밤에 두 번을 물리치고 나서, 난 주간에 최후 공격을
준비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최종 1인까지 모두
사살하라고 했다. 그 당시는 그게 표준절차(standard
procedure)였다. 가끔 포로를 잡으면 차후 행동을 판단
하기 위해 심문을 했으나, 그들은 적과 교섭을 하느니
순교하는 쪽을 택한다.
동이 트는 시각에 우린 은밀히 접근해 그들 거점을
원을 그려 포위했고, 각각 휘하 제대에 최후 분쇄공격
을 명령했다.
난 지치고 힘든 대원들을 칭찬하며 격려했다.
“이제 마지막 한 번이다. 이제 끝난다.
우린 돌아가서 쓰러질 때까지 맥주를
마실 거다. 그리고 급료도 두둑이 받는다”
온두라스인들은 과거 사람들 같다.
작고 말랐지만 전사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챔피언 같은 공정한 지휘관 뿐이다.
그래서 난 그들과 함께 하는 게 즐거웠다.
난 공격을 조심스럽게 천천히 전진하라고
했고 서두르지 말라고 했다. 서로 엄호하면서
교대로 엄폐하며 진출하고, 보이는 모든 걸 제거
하며 나가라고 했다. 난 대원들이 노출되어 전상
을 당하는 걸 피하고 싶었다. 포로는 전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동녘하늘이 회색으로 밝아오면서 이제 최후의
시간만 남았다. 이 공격은 사격과 기동의 교범
과도 같았다. 우리 부대는 뱀처럼 앞으로 기어
나가기 시작했고, 엄폐물과 엄폐물을 기동하며
빗물처럼 퍼부어댔다. 한 제대가 전진하면 엄호
하며 다음 제대가 전진했다.
과감하면서 최면에 걸린 듯 아름다웠고, 그 작은
산의 평지 무릎 높이 수풀에서 기관총 예광탄이
십자사격처럼 교차하며 모든 걸 박살내고 움직
이는 모든 걸 쓰러트렸다.
대지는 적 참호나 개인호에 던진 수류탄 폭발로
진동하고 적은 살려고 필사적으로 행동했다. 하늘
가로 먼지가 피어오르고 적과 아군 모두 엄폐한
상태로 교전했다.
점차 틈을 좁히며 우린 야만적인 공격을 지속했다.
적과 아군은 숨 막히는 접전을 펼쳤고, 적은 더 이상
버티지도 숨을 곳도 없었다.
교전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게릴라 부대장이 나타났고 내 눈에 보였다.
그는 위로 올라가고 있었고 옆에 무전병이
있었으며, 휘하 흩어진 병력에게 필사적인
마지막 지휘를 하고 있었다.
난 내 소총을 들어 가늠자에 넣고
그의 목을 조준해 쐈다.
총알이 그를 때리고 밑으로
빠르게 굴러 떨어지면서 사라졌다.
그 장소에 기관총 2정이 불을 뿜었다.
게릴라 부대장이 쓰러지자 적 저항은 붕괴했다.
그러나 난 기관총에게 몇 분 간 더 쏘면서 낮은
지역에 수류탄을 더 던지라고 명령했고 일대는
dead ground가 되었다. 몇 분이 더 흐르자 더
이상 적의 응사가 없었다. 난 소리쳤다.
"Cease fire!"
마지막 수류탄이 터지고 총소리가
사라졌고 우리는 그런 강력한 화력망
안에서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일어서서
상처받은 대지와
불에 그을린 수풀을 봤다.
대원들은 실탄이 가득 찬
탄창을 교환하고 있었다.
기관총반도 총열을 교체하고
새로운 실탄 벨트를 삽탄한다.
어디에도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끝난 건 아니었다.
난 무전기로 각 팀에 계속 경계하면서 위치를
고수하고 모여 있으라고 지시했다. 델타 동료
지미 매스터스가 온두라스군 1개 소대를 이끌
고 게릴라 거점 수색에 나섰다. 난 목표가 완전
히 청소되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지미가 전진할 때 난 내 무전병을 지미에게
붙여 게릴라거점으로 진출시켰다.
지미에게 게릴라 대장의 시체는 보는 즉시
회수하라고 했다. 나는 그때, 그 게릴라 두목
이 미국시민으로 산디니스타에 가담한 사람
이라는 정보를 들은 상태였다. 그 시체를 테구
시갈파로 운반해 신원을 확인해야 했다. 다른
게릴라들은 그냥 거기 매장하면 끝이었다.
총소리 한 방이 정적을 깼는데,
다친 게릴라를 확인사살한 거였다.
나중에 레이건 대통령의 중앙아메리카
비밀전쟁이 잔인했다는 평도 들었다.
게릴라 두목은
그의 무전병 옆에 쓰러져 있었다.
둘 다 사망한 상태.
무전병은 쉽게 죽지 못했다. 우리 기관총에
왼쪽 허벅지를 맞았는데 뼈가 부서져 노출
되어 반짝였고, 자주-회색의 내장이 배 밖으
로 나와 있었다. 지저분한 손에는 그의 내장
이 일부 감겨 있었다. 내장이 밖으로 나오는
걸 막으려고 하다가 죽은 것 같았는데, 16세
정도로 보였고 수염도 없는 소년의 얼굴이었다.
게릴라 대장은 왼팔이 비틀려 몸 밑에 들어간
상태로 쓰러져 있었고 몸은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었다. 그의 목 측면에 작은 검은색
총알구멍이 나 있었다. 내가 목을 조준해 쐈다.
그 총알을 맞고
목이 부러졌고 바로 즉사했다.
피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난
그 옆에 잠시 쪼그려 앉아 그를 봤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난 내 왼손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
그리고 자세하게 보기 위해 사체를 돌렸다.
그때 잠시 난 조용히 이 산악의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죽거나 살았거나
그 산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손에서 아직 온기가 느껴져 오싹했다.
우리는 모두 신의 현미경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았고 우리의 영혼을 신께서 종종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슬프고 엄숙하고 너무나도 외로웠다.
우리가
종류만 다르지 같은 인간인 것은 자명했다.
이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적이 아니다.
이제 이 친구는 나의 형제다. 진실로.
그는 항상 내 형제였고 난 그를 죽였다.
그가 인생에서 무얼 원했는지 모르지만,
미래에 어떤 것을 희망하고 꿈꾸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제 끝났다.
그의 욕망은 미처 채워지지 못했다.
전능한 신이여...
난 너무 피곤했다.
난 30초반이었지만
마치 90대 노인이 몸을 끌고 가는 것 같다.
그를 돌려
무슨 신분증이라도 없나 조심스럽게 살폈다.
참 잘 생긴 남자였다.
체구는 중간 정도에 온 몸이 근육질이었고
가슴과 어깨의 폭이 깊었다. 병사로써 완벽
하게 몸이 단련되어 있었다.
먼지와 건 파우더가 가득한
그의 눈을 난 가까이서 응시했다.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미는 완전히 적 방어선을 평정했고,
이어 병사들을 데리고 내가 무릎 꿇고
있는 곳으로 왔다. 지미가 다가와 보고
하려고 입을 열기 전에 난 손으로 잠깐
중단하라고 신호했다.
"지미, 이 친구 오랫동안 잘 보고,
어디서 전에 봤는지 한번 생각해봐."
이렇게 말하면서 난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시체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빼냈다.
그건 니카라과 군인 신분증이었다.
"Jesus Christ, Eric.
자네 모르겠어?
저건 키키 사엔즈잖아.
기억 안 나?
우리와 선발과정을 같이 했던
파나마 7특전단 출신. 특전단 하사."
[기고 에릭 핸니의 Inside Delta Force - I편,
글쓴이가 선발캠프 막사에 들어가서 서로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눈 키키 사엔즈 하사.
잇빨 주]
난 신분증을 들어 앞에 적인 이름을 봤다.
[엔리큐 에두알론도 사엔즈-헤레라 대위]
엔리큐 사엔즈-헤레라는
미 육군 특전단 하사였었다.
그는 선발과정에서 항상 조용했고
유능하고 프로페셔널한 군인이었다.
그에 관해 자세히 알 시간이 없었으나
가끔 나눈 대화는 즐거웠다. 선발 과정
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런데 이제
우리 앞에 우리의 목표대상 타깃이 되어
있었다.
오,
하느님 저에게 왜 이러십니까.
이 정체모를 산 정상에서,
이 외딴 정말 지구상에서
하잘 것 없는 곳에서,
내가 그를 죽였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 같았고
난 점차 더럽고 느껴지고 지쳤다.
주변에서 작전내용을 떠드는 말들이
내 마음 속에서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졌다.
CIA는 이 작전을 왜 그렇게 강하게 밀어붙였
는가, 왜 우리는 다른 지원을 거부하고 단독
으로 이렇게 힘들게 작전했던가.
난 이 사람들과 일을 치르면서 어떤 만족할
만한 답변을 듣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 난
테구시갈파에서 CIA 지국장을 만났을 때 왜
그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했는지 이제 짐작이
갔다.
난 지휘관들을 불러 보고를 들었다.
게릴라 몇 명이 중상인 상태로 고맙게도
살아 있었다. 의무병이 치료하고 있었고,
지미의 팀이 랜딩존을 만들고 있었다. 난
죽은 게릴라 사체 매장을 지휘했다.
난 내 무전병을 불러 암호책을 통해 임무가
완성되었고 타고 나갈 헬기를 보내달라고
송신했다.
얼굴에 맥박이 때리고 머리가 쿵쿵거려
수통을 꺼내 맛없고 미지근한 물을 오래
오래 마셨다. 그리고 남은 물을 내 머리에
천천히 부었다.
얼굴에 더러운 것을 씻어내 눈이 편해지자
가슴에 뭍은 것들을 씻어냈다. 군복 상의는
부드럽게 젖었다.
몇 년간 담배를 끊었는데,
난 담배 한 대가 간절하게 필요했다.
달 표면 같은 곳을 서서 돌아보는데 무릎이
삐걱거린다. 대지는 수상할 정도로 평화로
웠다. 귀에서는 오직, 여전히 들리는 전투
소음들이 윙윙거린다.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한 야전삽이 돌에 부딪치는 소리.
답변?
이 임무에 관해서 난 그 어떤 질문도 대답도
못 들었고, 오직 입을 다물란 명령만 받았다.
오직 내 마음 속에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키키(Keekee)가 정말로 산디니스타 혁명군
으로 들어간 건지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마음이 끝없이 방황한다.
혹은 또 다른 이해불가한 게임에서 희생자
가 된 건 아닌지. 내 마음 속에서 환멸과 불신
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오늘 날까지도
난 진짜 대답을 들은 바 전혀 없다.
한 가지 생각이 계속 응어리처럼 떠오른다.
키키 사엔즈가 죽는 그 순간까지,
혹시,
여전히 미합중국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그러나 태양을 공전하는 세계는 계속 돌고
있고 계절이 바뀌며 우리 부대는 계속해서
수년간 전술을 반복한다.
1986년 여름, 난 델타 선발코스 제대에서 근무
했고 전입 OTC 클래스 선임교관이 되었다. 그
전 해에 영국군 SAS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당했다.
난 부상에서 육체적으로 완벽하게 회복되었
지만, 진실로 말하면 난 피곤했다. 그리고 점차
나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고, 델타 8년 근무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델타포스 오퍼레이터는 항상 육체적으로 높은
수준을 요구했으며 프로 운동선수와 같은 수준
을 원했고, 1년 내내 쉬는 시즌이 없다. 또한 이
와 함께 정신적 감정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건 최후에 가서, 내 모든 것이
배수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결국 몇 달 후,
난 다른 부대 전출을 준비했고 나에게 맞는 부대를
물색했다. 해외파병이나 레인저 대대 같은. 그러나
결정은 어려웠다. 델타와 같은 걸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델타포스를 떠나 다른 부대로 가면 퇴행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진지하게 계속 생각
해서 난 점차 죄책감을 이겨냈다.
우리도 많은 대원들을 잃었다. 부상으로 인한 쇠약,
퇴역, 전출과 죽음, 이러한 병력 마모로 델타에서
계속 빠져나갔고 부대 정원에서 간신히 필요한 병력
숫자를 유지했다. 내가 나가면 부대를 버리는 것이
되고 부대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런 결정을 숙고하고 있는데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내가 육군성에 상사(sergeant major) 중
진급대상자라고 오른 것이다. 그 다음에 오를
것이라고는 부사관 최고계급 주임상사
(command sergeant major) 밖에 없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달 뒤 내 34세 생일에 계급 주임상사(CSM)
로 진급되었다. 내가 최연소였다.
모든 주임상사는 한 부대에 딱 한 명이고, 두 명
이 될 경우 한 명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야 한다.
댄 심프슨 상사가 당시 델타의 주임상사였다. 심프
슨 상사가 나에게 농담을 했었다.
“핸니,
네가 주임상사로 진급해도 난 이 부대 안 떠난다.”
그렇게 됐다.
육군은 나에게 부사관 최고계급을 선사했다.
모든 부사관의 꿈인 그것. 결국 난 정규 보병
으로 돌아가야 한다. 쉽지는 않을 거다.
오랫동안 내가 어디서 근무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 파나마.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난 임무 때문에 파나마
와 중남미에 나가 있었고, 파나마의 193보병여단
에 오랜 친구도 있었다. 노리에가 정권 당시였고,
나중에 일이 벌어졌을 때 난 싸우고 싶었다.
얼마 뒤 육군성 인사센터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부터 일주일 안에 전출이 가능하겠습니까?”
난 너무도 놀라 정말 빠르게 대답했다.
“아니오, 한 30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럼 다른 분을 찾아봐야겠군요. 명령서를
보류할 건데, 혹시 내일까지 마음이 바뀌면
연락 주십시오. 연락 없으면 이 건은 캔슬
됩니다.”
그거였다. 난 댄 주임상사에게 부대 전출절차
를 이틀 안에 끝내줄 수 있냐고 물었고, 작업과
타이밍은 완벽했다.
부대에 새로운 막사가 건축되고 있었고 거의
완성단계였다. 난 그 신 막사에 오퍼레이터로
발을 딛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난 이 오리
지날 첫 막사에서 마지막 날을 맞고 떠나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는 거다.
난 영원한 "stockade man"으로 남는 거다.
정말 정확하게 처리되었다.
오퍼레이터가 델타를 떠날 때면, 절대로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다. 파티도 없다. 작별인사(farewell)를 질질
끌어서도 안 된다. 그저 동료들과 조용히
악수하는 게 전부다. 마치 우리가 임무를
하러 출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고 떠나야 한다.
델타에서의 내 마지막 날, 난 선발과정제대의
오래된 동료들과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식당은 조용했다. A전대는 중동에서 한 비행기
를 추적하고 있었고, 거기서 점프한 A전대는
새로운 낙하산 침투기술을 훈련하고 있었다.
OTC 훈련생들은 사격장에 있어
커다란 테이블에는 고참 몇 명만
같이 앉아 있었다.
이 친구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고 생각하며 친구
들을 돌아봤다. 난 이 좋은 친구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다. 자리에 없는 훌륭한 친구들도 많았다. 그리고
수 년 간의 작전 중 쓰러진 친구들도 있고.
그러나 눈물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육군은 자기복제
가 가능한 유기적인 생명체이고 델타포스 역시 마
찬가지다. 사람들은 들어오고 또 나간다. 누가 떠나
더라도 부대는, 버티며, 영원히 살아 숨 쉰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난 Shooting House로 향하는
오래된 주기장의 트럭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들러본다.
엔진 시동이 걸리고 차가 움직인다.
난 눈물 같은 건 흘리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문에 도달해 내 신분증을 보여주고
보초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담장 바깥으로 나갔다.
난 백밀러로 뒤를 힐끗 봤고 곧 트럭은
오른쪽으로 꺾어 하향길을 천천히 내려
간다. 차단된 담장의 철조망을 보면서
반짝이는 그것을 나는 끝까지 본다.
마지막 커브를 틀 때까지...
그리고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Eric L. Haney,
American Citizen, Soldier
[에릭 헨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0년 군에 입대했고,
22세에 소대선임하사가 됐다. 이후 몇 년간 75레인저연대
에서 근무했고 곧 교관 후보자 명단에 올랐다. 1977년 새
롭게 창설된 대테러부대에 자원해 합격했다. 1978년 창설
된 1st SFOD-D 혹은 델타포스. 델타포스에서 총 13개월
훈련 후 창설부대원이 되었고, 합하면 총 19개월 후에
오퍼레이터가 되었다. 델타포스에서 1986년까지 중동
/라틴아메리카에서 특수작전을 수행했고, 주임상사로
진급되자 델타포스를 떠나 파나마 주둔 193보병여단으로
가 1990년 퇴역할 때까지 근무했다.]
[끝]
대원들이 복면을 한 상태에서 최근 공개된 델타포스 사격훈련. 타깃에 해부학 밑그림이 있다.
첫댓글 멋진분 이군요.. 파더 오브 델타포스...
아... 가슴 한 켠이 아련히 촉촉해지는군요... 감사합니다.... 멋지신 분이었어요...
훈련 받을때 안경쓰고 있던 얼굴과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갈수록 어떤 무사의 전기를 읽는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여단장님 여러모로 경황 없으실텐데 글 올려 주셔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낙은 언제가 될지요....
여단장님 말씀대로 소설에서나 가능한 것이 현실에 있었다니
키키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면 그들은 낄낄거리며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니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 모습이 참 웃기더라 - 에릭"
"헤~ 졸라 헥헥 거리며 헤메더니 무신 소리여 - 키키"
그들은 사상과 국가와는 상관이 없는 형제이니 말입니다.
슬프고도 아쉬운 사연입니다.
특수 작전을 수행하는 이들의 가슴에 박힌 그 사연의 파편은 영원히 그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특수 작전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글을 통하여 다시금 알게 됩니다.
단장님 감사합니다.
제 좁은 소견으로는 그 동안 여단장님이 쓰신 다른 특전단 상황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내공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무슨 내공까지는.... 아주 다르지는 않죠.
재미 있게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윗 사진으로 봤을때 백위드 대령의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배역은 조지 클루니가 적격이라 보입니다.
여단장님 덕분에 한편에 전사의 일대기를 본것같습니다.
그 끈임없는 인내와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여기에 언급이 안 된 게 있습니다. 바로, 이들 정신 속 깊숙이
뿌리 박힌 기독교 사상을 베이스로 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그들의 봉사정신과 애국심이죠. 우리가 미국을 모든 것에서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미국인들을 보면 정신적인 세계가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 어떤 면에서 무시무시하죠.
@二八中死 나라에대한 자부심이겠죠
지금 현상황에서는 있는 자부심도 사라질 판이니...
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이런 귀중한 글들을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