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16. <함안 악양루 -입곡군립공원 -무진정>
도시마다 중앙로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오면서 본격 연말 분위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테마가 있는 낙지골목에는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휴일이라도 그지없이 고요하다. 아침 일찍 미용실 오픈 사인볼을 켜 두었지만 따스한 겨울 볕이 여유 한 줌 더해주니 퇴직 후 전국을 누볐던 나 홀로 여행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의 추억을 만드는 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음이려니 훅 털고 나서기로 한다. 물론 계절마다 여행의 맛은 확연히 다르다. 꽃을 보기 위한 봄이거나 풀 피어 생기 가득한 여름이거나 또는 이파리마다 물들고 떨어지는 가을에 비하면 사실 겨울 여행은 볼거리와 축제가 귀해서 때로는 삭막할 것 같지만 나름 고즈넉하고 한결 여유로워서 좋다. 특히 겨울이 되면 감성 세포 속에 숨어 있던 여행의 기억들이 내 일상에서 불쑥 불쑥 튀어 나오고 상황마다 자잘한 의미들이 부여되어 있으니 갑자기 마음이 묘해지고 혼자서 조마조마하면서도 다부지게 누비던 여행지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래서 떠나기로 한다.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되는 여행이라도 인터넷 안에서 사전 답사는 필수이기에 서둘러 검색을 해본다. 그리고 함안에 있는 악양루와 입곡군립공원을 거처 무진정까지 둘러볼 계획을 하고 남편과 둘이서 출발하였다. 미리 계획해두지 않았던 뜻밖의 여행이라 늦은 출발은 물론 경남 함안까지는 약 250Km이며 2시간 30분 이상 소요될 거리로 반나절에 다녀오기에는 다소 빠듯한 일정이었다. 또한 우리의 여행이란 기본적으로 걷기의 행위이다. 이동을 위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신체적 운동을 보태면서 보고 듣고 찾고 생각하는 감각을 발동시키기 위해서이다. 남편은 뜬금없이 떠나자는 의견에 동행은 하지만 오늘의 분위기는 밝지만은 않은 듯하다. 목적지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거리 산책정도의 외출이 아니라 구태어 먼 곳까지 떠나려는 것은 스스로 운전할 수 있을 때, 어디든지 매력을 느낄만한 곳을 선택하여 떠날 수 있을 때에는 주저하지 않고 떠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도 거침없이 달려보고 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과 추억의 핫도그 하나쯤으로 여행의 맛도 느껴보는 것이다. 마치 섬진강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함안 초입에서 악양루를 찾았다. 악양루로 가는 대법로 도로변에는 처녀뱃사공노래비가 있고 함안천 하천변을 따라서 산책로를 지나 악양루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찾게 된 악양루에 도착해보니 웬걸? 입구가 막혀있다. 출입을 통제시켜 놓은 흔적에 당황스러움으로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멀리서 왔기에 더욱 허망했다. 악양루(岳陽樓)는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정자인데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명승지인 '악양'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기두헌'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악양루'라는 현판만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멀리 오면 되도록 많은 곳을 둘러보고 돌아가야 여행의 뿌듯한 뒷맛도 느낄 수 있기에 이러한 기본 정보를 뒤로하고 아쉽지만 입곡군립공원으로 향했다. 입곡군립공원은 휑한 주차장에 자동차들도 몇 되지 않을 만큼 한산했다. 산림욕장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수려한 협곡의 자연형태를 그대로 보존해 만든 입곡저수지와 오른편으로는 주변 산을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한편 드문드문 늦은 나이에 글을 익힌 어르신들의 진솔한 글들이 시화로 제작되어 전시된 작품들이 감동이었다. 단풍철은 지났지만 입구에 들어서니 아직 단풍냄새가 물씬 풍긴다. 단풍철이면 단풍을 찾아 바쁘다보니 겨울에 찾아와 놓쳐버린 풍경마다 참으로 아쉬울 때가 많다. 사실은 이곳에서도 하늘자전거도 한 번쯤 타 볼 요량이었으나 관광객이 없어서인지 운행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숲은 가고 그 흔적의 길만 걸어도 일상의 무거움을 잠시 내려놓고 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갈 길은 먼데 저녁바람이 다소 몸을 사리게 한다. 우리는 서둘러 무진정으로 향한다. 무진정은 낙화놀이로 유명하다. 조준남의 효행과 조계선의 충절을 함께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32년 왕명으로 세워진 정려각이라한다. 어느덧 석양이 드리우고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오늘의 여행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건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중종 때 사헌부집의와 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였던 조삼(趙參)이 기거하던 곳이라는데 언덕 위에 있는 정자가'다함이 없다'는 의미를 지닌 무진정이 있고 앞 연못 중간에 있는 누각의 이름은 영송루라 한다. 무진정은 가야읍에서 서쪽으로 3㎞ 떨어진 곳에 있으며 1547년(명종 2) 후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하여 정자를 세워 그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고 하였다 한다. 무진정 아래에는 함안 조씨 문중의 재실인 괴산재가 있어 이모저모 차분히 둘러보기 좋았다. 역사와 지역관광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어디를 가나 사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하루가 채워지고 귀가를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둥지를 향해 함안을 빠져나올 즈음 지나다보니 재래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사실 어디를 가든 시장에 들어가 보면 그 지역의 정서를 읽을 수가 있다. 우리는 당연한 듯 자동차를 세우고 시장 속으로 들어섰다. <가야시장>이란다. 그러고 보니 이곳 함안은 <가야>라는 지명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지역 <마한>을 비교해보면 지역민들의 정서가 확연히 들여다보이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다녀온 이번 여행도 내일이면 우리에게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낯선 곳의 자연과의 만남과 새로운 문화와의 경험을 통해 또 한 번 여행의 매력에 빠져본다. 그리고 단순한 삶에 다양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다만 에너지가 있을 때 에너지만큼 열심히 여행하는데 시간적으로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첫댓글 여행은 눈으로 보는것 뿐만 아니라 가슴으로도 삶을 볼줄 아는 멋진 여행을 응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충분히 살아볼만한 세상이기에
한 순간이 소중하고 귀합니다.
틈새의 일상도 놓치지 맙시다.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