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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0월 8일 (토)
*참가자 : 박희용, 박용준, 손정아, 김용남
금요일 밤. 늦은 시각에 출발 설악동에 도착하니 새벽 2시.
주차장 한쪽 구석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캔씩 마시고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시 잠을 청한다.
등반에 대한 설렘과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불빛, 주차 요원의 호각 소리까지..
잠 못드는 밤이 될 줄 알았는데, 웬걸 코까지 골며 잤다.
용준씨도 못 잤다고 주장하지만 박샘의 말에 의하면 나와 코를 번갈아 가며 협연했다고.
박샘만 소풍 전날의 소년처럼 잠 못들고 뒤척였나보다. 아니면 낮에 너무 많이 잤던가.
널부러진 침낭들.
알람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여명이 떠오르고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주섬주섬 짐을 정리한다.
그래도 고단한 거에 비해서 눈이 잘 떠진 건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라면과 김밥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계란까지 삶은 후 7시 30분쯤에 설악동 소공원에서 출발한다.
쌀쌀한 날씨. 출발전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
등반허가서를 찾고, 국립공원 곰돌이 앞에서 용준씨의 앙큼(?)한 포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오늘 안전하고 즐거운 등반을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용준씨의 앙큼한(?) 포즈.
비룡교를 건너며 저 멀리 오늘 등반할 노적봉을 올려다본다. 아침에 마주한 준봉에서 느껴지는 경건함이 좋다.
그리고 준봉과 계곡에서 굽이굽이 흘러나온 시리고 쨍한 공기가 가슴 깊숙이 들어오는 그 느낌도 좋다. 힘껏 숨을 들이킨다.
비룡교를 건너 오는 그들. 박샘은 카메라를 보며, 정아는 산을 보며 좋아서 헤~, 용준씨는 휴대폰?
출입금지라는 안내판을 등반로 입구삼아 시멘트 하수구가 만들어진 좁은 길로 들어선다.
아직 산 아래 숲에는 단풍이 들지 않았다. 가끔 제 몸의 푸르름을 조금씩 가을의 청명한 하늘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단풍잎이 있지만, 아직은 가지 끝에 단단히 묶여있다.
붉게 늙어가고 있는 나뭇잎.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린 모두 붉어져 간다.
우리는 소토왕골로 접어들어 조릿대 사이를 오른며 계곡을 건넌다.
여기서 길 아닌 곳으로 약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급경사 언덕을 올랐다.
어디선가 등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이 시작되는 1피치에 도착했다.
약간 헤맨 시간을 포함해서 1시간 조금 넘게 소요되었다.
멧돼지가 튀어 나올 것 같았으나 네명이라서 든든했다. 오늘은 로프도 있으니 여차하면 그 녀석을 묶을 수도 있다.
출발 지점에서 저 멀리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솟아 올라있는 모습이 보이고 왼쪽의 권금성으로는 케이블카가 다니고 있다.
저 아래 신흥사의 불상과 소공원, 우리가 건너온 비룡교도 보인다. 한 시간 만에 꽤 부지런히 올라왔다.
1피치에서의 조망. 멀리 울산바위가 듬직하게 서있다.
장비를 착용하고 드디어 등반을 시작한다. 등반 전에 느끼는 약간의 긴장과 설렘.
장비를 착용하는 박샘. 등반 전 진지함이 묻어나온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을 살펴보는 중? 가야할 길은 반대쪽였음.
박샘이 출발하고 정아가 후등으로 올라가고, 바로 용준씨가 선등으로 따라가고 내가 후등으로 올라간다.
용준씨가 멋있게 첫피치를 넘어선다. 핼멧을 안챙겨오는 바람에 썩어가는 느낌의 핼멧을 빌려 왔다. 역시 빈티지 매니아.
초반에 약간의 슬립이 있는 1피치를 무난하게 올라 선후 2피치 지점으로 살짝 걸어서 이동한다.
정아도 오래간만의 리지 산행이라서 그런지 기분 좋아한다. 등반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겨를이 없다.
2피치 또는 3피치로 이동중인 정아. 얼굴에서 미소가 멈출 겨를이 없다.
잘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큰 어려움 없이 3피치와 4피치 정도를 오른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다.
잠시 휴식하기 전에 나름 연출 사진.
역시 잘 기억이 나지 않는 5피치를 오른 후, 아슬아슬한 나이프에지 피너클 지대를 지나간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헉~.. 클라이밍하고 다시 다운하고 손에 힘이 저절로 들어간다.
다행이 홀드는 좋아서 혹시나 다리가 터지더라도... 이런 저런 상념 속에 천천히.. 믿을 건 홀드와 나 자신 뿐.
항아리을 안듯이 안고 도는 저 바위에서 다소 후달림.
숨은 그림 찾기. 잘 찾아 보면 세명 있음.
앞만 보고 홀드를 찾아 가며 천천히 지나고 있는데, 저 앞 어디선가 한 피치 등반을 마치고 앉아 있는
용준씨의 목소리.. 형 왼쪽도 좀 보고 그래~ 으응, 그럴까.. 살짝 곁눈질로 보니, 아~ 현기증만.. 스릴 가득이다.
정아도 바위를 끌어 안으며 넘어 오고 있다. 고생이 많다. ㅎㅎ
다소 후달려 가며 피너클 지대를 넘어 간다. 7피치에서 선등자를 확보 보며 서 있는데,
아줌줌님들께서 우후죽순 몰려 오신다. 한줄에 한 열명쯤 엮여 있는 듯 했다.
아줌마님들은 후달리는 곳에서는 잘 달리신다. 달려 달려~
확보하며 등반하고 있는 나와 용준씨를 넘어 후다닥 지나 가신다. 흑~
8피치를 지나 9피치 시작점에 올라서니 날카로운 노적봉의 웅장한 자태가 드러난다.
본격적인 직벽 구간이다. 앞서 달려가신 아줌마님들께서 등반성이 요구되는 구간에서는 잘 못달리시고 있다.
우리는 그냥 천천히 가기로 하며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풍경도 구경한다.
휴식 시간 중 찰칵~. 한 명은 노스 풀세트 간지 스탈. 한 명은 빈티지 스탈. 하지만 등반하는 마음은 모두 즐거웠음.
아줌마님들께서 끌려올라가신, 9피치는 대부분 5.6으로 쉬운 코스인 '한편의 시를 위한 길'에서 유일한 5.8.
붙어보니 오버행 구간이었다. 그래도 홀드가 좋아서 볼더링 하듯이 왼쪽 다리를 올리고 다시 오른 손을 좀 더 뻗으니
단단한 홀드가 잡혔다. 얼씨구나~ 몸을 땡겨 올라선다.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행여나 발이 터지지 않기 위해
허벅지에 힘껏 힘을 주며 왼발을 세운다. 오버행을 넘어선 다음, 다음 구간도 또다시 오버행같은 직벽.
홀드가 어정쩡하게 핀치로 잡히지만 오른 발에 힘을 주고 다시 넘어 선다. 오.. 살짝 펌핑기가 온다.
내가 약간의 펌핑기를 느끼며 힘겹게 오르고 있는 동안 위에선 이렇게 놀고 있었음.
먼저 오른 자들의 여유라고나 할까?
깍아지른 절벽의 풍경이 현란하다. 용준씨의 표정은 곤란.
항상 선등하다보니 우리와 함께 등반할 때는, 막상 자신의 등반 사진은 거의 없는 박샘.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듯한 포즈.
표정은 이까이꺼 뭐.. 이런 표정?
이제 마지막 10피치를 오른다. 노적봉의 정상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 단풍이 진하게 물들지는 않고 날씨도 약간의 가스가 있었지만 그래도 설악의 풍광은 수려하다.
마지막 피치를 등반 중인 용준씨와 정아.
나름 촬영 포인트.
마지막 구간을 힘차게 넘어서고 있는 욘사마.
그렇게 모두 10피치를 오른 후, 약간 걸어서 드디어 노적봉 정상에 도착한다. 봉우리 건너편에는 오면서 보지 못했던
칼날 능선과 봉우리들이 솟아올라있다. 맞은 편 봉우리에는 경원대길, 솜다리길, 별을 따는 소년 리지길 등..
예쁘고 착한 이름의 길들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길게 내리 뻗은 토왕성 폭포가 보인다.
좁은 정상에서 15시간 정도 지난 김밥과 삶다만 달걀을 먹으며 휴식 시간을 갖는다.
정상에서 모두 함께 기념 사진도 찰칵~
이제는 하강과 신나는 하산만이 남았을 줄 알고, 룰루루~하고 있었는데... 왠걸..
클라이밍 다운 구간을 한 시간 정도 내려갔다.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정아.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 많다.
올라오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느낌. 안자일렌으로 서로를 묶어가며 천천히 내려 왔으나
고도감이 아찔한 곳에서의 후달림이란..
그래도 박샘의 자연스러운 리딩과 최대한 안전을 확보해가며 진행하는 배려로 차분히 잘 내려올 수 있었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다소 긴장된 표정. ^^
이리 저리 살펴보면 역시 세명 다 있음. 등반하는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 거 같음. 광부의 작업중 같기도 하고..
이젠 발가락도 너무 아파오고 슬슬 한계치가 넘어서고 있다. 하강용 쌍볼트가 나오기만 기다리며
천천히 진행해도 여전히 눈 앞에 천길 낭떠러지. 현란한 경치는 마음껏 본다. 흑~
그래도 경치는 멋짐.
이 길은 언제나 끝날까나~~
말 안들으면 확 놓아 버릴꺼야 하는 시추에이션? 나 낚인건가..
용준씨도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찰칵~. 박샘이 더 뒤에 가서 포즈잡으라고 했지만, 나나 용준씨나 그럴 생각이 엄따~
음.. 역시 자세가 나온다. 이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인가 말인가..
이 사진을 보고 위 사진을 다시 보니 욘사마.. 건설 현장의 다이나마이트 폭파 설치반 같은 ... ㅜ
그렇게 한 시간 쯤을 클라이밍 다운해서 드디어 하강 지점에 도착했다. 하강은 25m.
그동안 클라이밍 다운한 거에 비하면 너무 싱겁게 내려왔다.
하지만 하산길도 만만치 않다. 소통왕골 하산로는 돌들이 불안정하게 겹쳐있어서 흔들거리고 낙석도 많다.
발도 쭉쭉 미끌어지고 자칫하면 큰 돌들이 떼구르르..
하산길은 꽤 지루하게 길다. 그래도 어찌 지루하기만 하겠는가.
고목에서 상황 버섯을 발견한 박샘이 용준씨에 올라가게 한후, 나무가 튼튼함을 확인하고
나중에 다시 올라가 버섯을 힘들게 획득했다.
프리솔로로 나무를 올라 버섯을 따고 있는 용준씨. 애쓴다..
그렇게 놀면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면서 어둑해진다.
발가락도 아프고 허벅지도 뻐근하고 힘은 쪽 빠졌지만 그래도 가슴 한쪽엔 충만한 무엇인가가 남아있다.
설악이 준 선물일까.
오늘 등반한 노적봉을 바라보고 있는 정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달은 떠오르고 밤은 깊어 간다. 설악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다음에 만날 약속을 마음속으로 한다.
시집 한권 가져갔지만 막상 산 속에서는 꺼내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가슴 한쪽에 시 한편을 선물 받고 왔다.
한편의 시를 위한 길 - 김기섭
암벽화 끈을 조이며
이마에 붉은 스카프를 맨다.
소토왕골
시퍼런 물소리가,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오르고 있는 이 길은
동해의 푸른 바다가 생기고
바람이 생기고
우리가 처음인지 모른다
설악산 오면
가슴에 진한 병만 얻어 간다던
녀석의 얼굴이 생각났다
텐트를 두들기는 빗소리도
소토왕골을 가르는
하켄의 경쾌한 바람소리도
가슴 언저리 앙금처럼 뚜렷이 박히고
박힌 자리마다 바람처럼 돋아나는
에델바이스
우리는
인간의 언어를 다 동원해도
표현치 못할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를 보았다.
그리고
푸른 바다
동해가 밀려들고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리꽂는
저 까마득한 수직의 물줄기
우리가 구름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바람 가운데 있다는 것을
태어난 처음 비밀처럼 깨달았다.
<사람과산 '90.1.>
어두운 눈으로 바라보는 설악을 뒤로하고 우리는 차를 돌려 바다로 향한다. 한 잔의 소주를 위해서.
즐겁게 등반한 희용샘, 용준씨, 정아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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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용남이형 수고 했어요, 그리고 다들 고생 많았어요 ㅎㅎ~
국립공원 지역에서 풀 한포기도 반출 못하는데
버섯을 채취하고 증거까지 남기다니.....
^^나누어 먹자 술에 혹사 당한 간이 요즈음 수시로 욕을 해대서....
오랫만의 산행기록 ! 멋진 사진과 재미난 설명 덕분에 동행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역시 국어쌤!
역시 설악은 사진으로만 봐도 가슴이 설레이네요.
나름 대핟때는 설악을 사랑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안가본지 꽤 됐네.
그리고
‘확 놓아 버릴꺼야‘하는 사진은 용남씨가 ‘ 놓지마 ‘ 하는 표정인데....ㅋㅋㅋㅋ
설악은 항상 설레임으로 다가오지요.. 멋진 등반과 감동적인 후기글 멋지네요..
즐거운 시간였네용~ 고맙습니다. ^^ 설악산 또 가고 싶네요 ㅎㅎ
버섯따러 가자~~
멋진 풍경, 멋진 모습,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