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가 행복해
전주꽃밭정이 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민술
갑자기 내 몸이 28청춘으로 돌아간 것도 아닌데 나는 지금 이대로가 행복하다. 나는 지금 희수다. 인생을 거의 완주한 셈이다. 많은 상처 투성이인데도 여기까지 왔다. 신체 구조상 최전방인 머리통이 많이 곰삭았다. 눈眼 귀耳 치아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30%이상 기능하지 못 한 지 오래다. 바보처럼 입에 통증을 달고 살아 왔다.
누구는 말한다. 병원에 가면 될 게 아니냐고, 그런데 사실과 달랐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듯이 절반 이상 포기를 하고 일체유심조로 생각을 바꾸니 지금 이대로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행복이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나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주어진 삶에서 기쁨과 만족을 차선으로 느끼며 지하실을 더 파고 내려가 바닥을 보는 것을 연구하고 배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오르지 못 할 나무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남 보다 열 단계 항상 내려놓고 그 안의 삶에서 행복을 추구追求하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진리 眞理를 터득하니 맺힌 가슴이 휭 터져버린 것 같다.
어떤 사람이 그랬단다. 위암 말기로 몸 속 에서 암 세포가 구석구석 전이되어 한 달도 못 살고 죽는다는 의사의 극단적 선고를 받고 이래 죽 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무서울 것도 없고 마음이 갑자기 하늘을 날 것처럼 가벼워 졌단다. 가족들한테 어디 다녀오겠다고 이야기만 하고, 환자 혼자 들 수 있는 항아리 하나와 괭이를 들고 가족 몰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두더지처럼 나무 뿌리를 파면 굼벵이가 서너 마리씩 나왔는데 씻지도 않고 손으로 입에 넣고 씹었다고 한다. 그렇게 굼벵이를 먹고 나니 속이 개운하고 더 굼벵이와 도라지 더덕을 함께 먹었더니 시장기도 없고 마음도 편안해 졌다고 한다. 그러기를 반 년 동안 산속에서 살다가 암에서 완전히 벗어나 서울로 올라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한테 상담도 해주었더니 돈도 생기고 예전처럼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한다.
나는 지금 두 다리만큼은 멀쩡하다.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나를 바라보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학산은 자갈바위투성이다. 그 험준한 곳을 헤집고 맑은 공기 마시며 날마다 건강노래를 부르고 산다. 물론 눈이 부실해서 헛발을 딛고 넘어져 산인들의 실소가 몇 번 있었지만 털털 털고 일어나 파란 하늘을 보며, "나 넘어졌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실소를 해도 나는 그때가 행복했다. 늙은 사람들은 항상 "나 빨리 죽어야해!" 하지만 죽으라고 하면 서럽단다. 예전에 비하면 난 서운치 않게 살았다. 내 주위의 지인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나보다 먼저 천국이 좋아 그랬는지 별천지(別天地)로 간 사람들이 많다. 나는 앞으로 한 5년은 더 살 것 같은데 어떨는지 모르겠른다. 지금은 100세시대다. 이제는 나도 강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살고 싶다.
지금껏 산행을 하면서 유산소운동을 하고 뇌의 영양인자인 뇌세포를 활동적으로 만들면 더 건강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나온다. 약간의 우울증세가 나오면 술이나 마시고 술기운으로 마약 같은 환각효과를 얻는 것은 순간일 뿐 뇌를 더 망가뜨리는 것이다. 술은 절주가 아니라 금주를 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수가 적어지니 가족들도 좋아 한다. 이게 뒤늦게 얻은 작은 행복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내도 다리 재수술을 받고 정상적인 걸음으로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인공관절 삽입 수술이 성공적인 것 같다. 아직 환부의 통증이 남아있어 밤낮없이 얼음 팩을 달고 살지만 희망적이라서 마음은 가볍다. 사침(死針)에도 용서가 있다더니 우리에게도 작은 행복이 외면하지 않는 것 같아 감사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가 행복한 것이다.
지난 11월 8일 필리핀을 덮친 태풍이 얼마나 가공스럽고 얼마나 인간을 참담하게 만들었던가? 필리핀 인구 10%가 사망하거나 실종하는 이재민을 만들어 필리핀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어제 뉴스에서는 1.000여 구의 시체가 지금도 방치돼 있어 국제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태풍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기후가 높은 나라일수록 태풍의 강도와 파괴력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과 베트남이 피해가 많은 것 같다. 세밑 요맘 때 자주 듣는 말이다.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힘들게 살아왔다고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도 모든 잔병 때문에 피곤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가 행복한 것이다.
오늘은 2013년 마지막 날이다. 아침 7시에 꽃밭정이수필문학회카페에 들어가 두 번째로 출석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하늘을 치솟는 솔밭을 누비고 학산으로 가서 산소를 마음껏 마시고 왔다. 이런 소박하고 상쾌한 삶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2013.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