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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최초로 향이 발견된 것은 언제일까? 바로, 18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왕,이집트 제18왕조 파라오(BC 1580~1314년)인 투탄카멘의 무덤 안에서 발견되었다. 석고로 만든 아라바스타 항아리에 채워진 향고는 20세기 발견 당시 은은한 향기로 남아있어 전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향고는 손에 묻히면 녹는 끈적끈적한 물질로 냄새는 느끼한 느낌으로 마치 미타리과 식물의 냄새를 연상시킨다. 또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방부성을 가진 유향이나 보류성이 높은 방향성 수지를 사용하여 3000년 동안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같이 'PER FUMUM'이라는 (라틴어로 '연기를 통한다'라는 의미)향의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이집트 왕조들은 마르지 않은 나일강처럼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향을 애용하였고 시체의 부패방지, 보존을 위해 약품으로 사용하였다. 이밖에 일반인들은 특별한 나무나 나뭇가지를 태운 향을 신에게 공물로 바쳤다.
로마에서 시저를 잃을 뒤 '심홍 돛을 단 카레선위에서 감송과 육계의 향기를 미풍에 실어 보내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던 클레오파트라...그녀의 뛰어난 미모 뒤엔 언제나 향유와 향고가 있었다. 당시 그녀는 매일 시돈산 감송유를 몸전체에 바르고 양손에는 1번에 400데나리온의 향고를 발랐고 목욕후에는 장미, 수선, 백합 등의 향내가 담긴 향유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의 집에는 46시간 동안 방향을 가득채워 늘 향으로 집안을 채웠고 향로가 들어있는 사탕과자나 음료수, 사벳트 등을 즐겨먹었다고 한다. 한편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등지로 퍼진 향수는 귀족계급의 기호품으로 사용되었다. 그만큼 원료재배와 제조기술이 일정지역에 국한 되어 향유와 향고는 고대 귀족들에겐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일반인들이 향을 갖는다는 건 꿈이었다고 한다.
투르크족에게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떠났던 십자군원정(1096~1270년) 7차례 일어난 십자군원정은 동.서유럽 무역의 활로를 개척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 그리스, 이집트의 향을 서유럽에 소개한 중요한 계기였다. 되풀이되는 원정속에서 동.서의 교통도 점차 넓어지고 후추, 육계, CLOVE 등 향신료가 급속히 서유럽에 퍼졌다. 특히 1202년에 일어난 제 4차 십자군원정은 십자군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과 합세해 콘스탄니노플을 공격, 그 결과 동쪽으로 향한 지중해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렇게해서 베네치아는 동방무역을 통해 동양의 비단과 자수품, 향료 등을 들여왔고 유럽에 향수와 화장품의 원료를 조달하는 창구이자 유럽에서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성지탈환을 위해 떠났던 십자군기사. 바로 이들이 당시 종교적인 열망 만큼이나 유럽전체를 향료내음으로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향수가 발견된 것은 바로 포도주 때문이었다 비법은 바로 [알코올], 어느 연금술사가 오랫동안 향을 유지시킬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그 비법을 발견한 것이다. 금을 만드는데 실패했던 그들은 포도주 증류과정 중 알코올을 발견, 각종 향신료와 섞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존의 물, 기름 등에 의한 기제보다 모든 방향물질을 용해하는 성질이 뛰어난 [알코올]은 휘발성향을 오래 유지시켜줄 뿐 아니라 원료로만 머물었던 향료를 드디어 '향수'라는 개념으로 끌어올리게 했다. 한편 최초의 알코올 향수는 로즈메리(ROSEMARY)와 수지를 증류시켜 알코올을 뽑아내고 여기에 증류과정에서 나온 로즈메리의 잔여물을 첨가한 '헝가리워터'(HUNGARY WATER)인데 오늘날의 오데코롱(EAU DE COLOGNE)의 전신이기도 한다. 1370년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만들었다는데 72세나이로 폴란드국왕에게 청혼을 받았다고 할 정도니 그 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콜롬버스, 바스코다 가마, 마젤란 등이 미지의 바다에 도전했던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향료군도를 찾기위해서였다. 단지 관세를 물지않고 인도나 동남아 등지로부터 향료를 마음껏 가져오기 위해 서쪽으로 항해를 떠났던 것이다. 당시 후추, 계피, 전향유 같은 향료는 저장한 고기, 생선의 부패를 막아주고 맛을 좋게할 뿐 아니라 페스트나 콜레라 등 전염병을 방지한다고 믿을 정도로 약품으로 이용되었고, 금은보화와 맞바꿀수 잇을 정도의 대단한 재화가치를 가졌던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확신만으로 망망대해에 몸을 던졌던 항해가들. 바로 그들뒤엔 항해권을 독점해 막대한 재산을 챙기려는 당시 포르투칼, 스페인왕의 야망이 깔려있었다. 한편 1508년 이탈리아 프로렌스의 성마리베라의 도미니카회 수도사는 향료조제용 아뜨리에에서 '유리향수'를 만들어 당시 유럽상류 층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1533년 앙리2세때 파리 노트르담사원 근처에 제1호 향수전문점이 연 이후 향료의 메카는 이탈리아에서 비로소 파리로 옮겨졌다.
향수하면 프랑스 그것도 파리를 연상시킨다면 큰 오산이다. 오늘날 향수산업의 큰획을 그었던 곳은 파리가 아닌 [그라스]이다. 남부 프랑스 지방의 해발 350m의 완만한 구릉위에 풍부 지중햇살이 비추는 곳, 그라스(GRASSE) 그곳에서 프랑스의 향수삽업이 시작되었다. 바로 최적의 자연조건 탓도 있었지만 가죽특유의 지독한 냄새를 없애기위해 향유를 쓰기 시작했다 12세기 무렵 그리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가죽과 유리를 수출하여 공업과 상업이 번창하기 시작, 16세기말부터 복격적으로 향료산업에 뛰어들어 향기나는 장갑, 모자, 벨트 등 향료가 섞인 피혁제품을 유행시켰다. 이때 향기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프랑스 루이 14세는 향료와 향수를 산업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17세기 중엽에는 여성들은 향냥이라는 향주머니를 즐겨차고 다녔으며 그 이후 파리에는 수많은 향료, 화장품전문점이 열기시작했는데 특히 '르네'점이 유명하였다.
불과 150가지의 향과 향료를 오늘날 4000여가지 이상의 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한 19세기. 바로 다양한 제조방법으로 비로소 향수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특정계급의 귀족이나 부자들이 이용했던 시대에서 평범한 사람들 까지도 향수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유기 화학이 발전하자 19세기 중엽의 화학자들은 다양한 추출법과 조향기기를 만들어 원료로서의 향수보다는 제조기법을 발전시켰다. 아울러 화학적인 방법으로 식물, 동물 등의 미세한 부분까지 추출하는데 성공하여, 천연향료에서 동물성, 합성향료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맡아보지 못한 다양한 향수를 만들었다. 단순히 원료에 그쳤던 향수가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범위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한편 최초의 합성향료를 만든 프랑스 화학자, 모리나드(MOLINARD)는 귀족계급이라는 특정계급에 그쳤던 향을 대중들에게 퍼뜨리게 한 일등공신역할을 했다. 또한 근대 향수의 아저지로 불리는 겔랑의 유명한 조향사인 '자끄겔랑'을 시점으로 향수는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1921년 패션과 향수의 만남으로 향수시장은 전성기를 맞았다. 바로, 샤넬과 조향사 어네스트보우(ERNEST BEAUX)가 만든 [샤넬 NO.5]이 그것이다. 모스크바 화학자인 어네스트보우는 패션의 불필요한 요소를 없앤 'Less is More(덜함은 더함이다)라는 샤넬만의 독특한 패션스타일과 실루엣 칼라 등을 합성향료 수종의 알데히드를 조합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향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 향산업은 패션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비로소 향수산업은 패션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향수와 유명인의 이름을 딴 이른바 향수브랜드시대를 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샤넬을 비롯해 랑방, 장빠뚜, 피에르가르뎅, 크리스챤디올, 지방시, 이브생로랑 등이 있다.
조세핀이 죽은지 70년이 지난후에는 그가 사용했던 침실에서 사향내가 물씬 났다는 것으로 볼때,
사랑의 미약인 사향으로 나폴레옹을 사로잡았다고 할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 역시 사향덕분에 미의 여왕으로 회자되어 내려오고있다.
로마제국을 건설한 시저가 이집트를 정복하러 갔다가 오히려 클레오파트라의 치마폭에 휘감기었으며, 시저를 비난하며 재차 정벌에 나섰던 안토니오마저 사랑의 포로가 되어 버렸던 클레오파트라.
그녀가 여왕으로 군림하고 시저와 안토니오를 굴복시킨 비결은 자세히 알려져있지 않았지만 화장술이 천재였다는 점을 미루어볼때 동방으로부터 수입된 사향을 독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중국에 까지 널리 알려진 조선명종시대에 천하의 명기 황진이도 이 사향을 애용 했다고한다.
선천적으로 시와 노래, 춤에 뛰어났으며 기생이면서 함부로 몸을 허락하지 않는 고고함도 있었지만 그렇게 미모가 뛰어났다는 이야기는 없다.
더욱이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은채 늘 수수한 옷차림이었으며 잔치자리에서 천연덕스럽게 이를 잡는 주책을 부렸음에도 중국의 관리들마져 황진이를 만나러 조선에 사신을 가길 희망할 정도의 국제적인 인기 비결은 무었이었을까?
바로 사향을 사용해 뭇 남자들을 뇌살시킨 것이다.
황진이가 죽고난 후 개성의 그녀집을 방문한 한 선비가 그녀의 방에서 누린내 비슷한 묘한 냄새가 나더라고 기록해 놓았는데, 이 냄새가 바로 사향의 향기였던 것이다.
오늘의 향수
1370년 헝거리의 왕비에 의해 헝거리 워터가 개발된다.
향료를 휘발성이 강한 알코올에 용해시킨 것인데, 오늘날의 향수와 같은 초기제품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특히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용하자 유럽의 귀족들과 상류층은 물론 일반대중까지 다투어 사용하면서 급격하게 퍼져나갔다.
19세기이후 유기화학의 발달로 알코올 산업이 발전하고 나무껍질에서 향 물질을 뽑아내는 방법이 알려져 합성향료를 저렴한 가격에 제조할 수 있게 됨에따라 값비싼 향료를 대신하여 합성향료 시대를 맞게된다.
꽃 한송이의 무게는 약 2g. 1kg의 천연향료를 만들기위해서는 2백만개의 꽃 즉 4천kg의 꽃들이 필
요했으니, 합성향료의 개발이 향수의 대중화에 절대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독일을 원정하면서 독일의 퀼른 지방에서 만들어지던 오데코론이 프랑스 명사들에 의해 대량으로 파리에 들어와 유행하기 시작하였으며, 퀼른 마을이름을 따서 불리어지게된 이 오데코론은 1685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요한마리아 파리나가 이탈리아에서 향료상인을 하면서 독일의 라인강변 마을인 퀄른에 와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향료를 수입해 1709년에 처음으로 만들어 팔았다고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탈리아사람 풀 디 훼미니스가 밀라노에서 처음 팔기시작했다고도한다.
출처 : http://blog.naver.com/limetreelove/120008961733
http://blog.naver.com/limetreelove/120008961524
http://kin.naver.com/db/detail.php?d1id=5&dir_id=51307&eid=RthsPtpVivx3Ty++1apMQrlIuhZNh/7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