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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시 브라트 빈젠(Kirsch Bradt Bingen)
인종 : 발타 족
키 : 183cm
성별 : 남
나이 : 26세
외모 : 빛바랜 황록색의 머리칼과 눈동자
출신 : 에스텔 랜드
그는 알게 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그가 않고 있는 죽음의 운명 에델포이데는 결코 달갑지 않은 형태로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을. 때문에 그는 일찍이 빈젠家를 나와 방랑을 떠났다. 운명에 항거할 힘을 기르기 위한 고되고 긴 방랑이었다.
스스로 자부할만한 실력을 쌓았다고 믿게 되었을 때 기다려왔다는 듯이 그가 찾아왔다. 그의 가문을 천형의 사슬로 옭아맨 그린페헤름, 뇌제 아그리프는 독안을 번뜩이며 그가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일러 주었다.
‘내가 지정하는 9인의 강자를 꺾으라. 그리하여 마지막 강자를 꺾을 수 있다면 그대의 피는 붉어지리라.’
아그리프가 말하는 강자란 살육자를 뜻했다. 하지만 그로서 이 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그는 어떠한 시련이라도 감내해 낼 수 있었다. 설령 강자와 싸워 죽는다 한들 어차피 죽게 될 몸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미 병은 그의 몸을 시시각각 좀 먹고 목숨마저 죄어 들고 있던 것이었다.
그 뒤로 그는 지정된 강자를 찾아가 목숨을 건 결투를 벌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가 몸을 추스리고 나면 하얀 날개의 처녀가 내려앉으며 다음 강자를 알려준다. 그러면 그는 어김없이 다음 강자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아직도 반복되고 있는 중이다.
아르카나: 벤투스-그라디우스-루나
기적: 신이-사신의 손-불가시
성흔: 오른 무릅-왼 손등-목
공진: 발열, 현기증, 구토의 증상을 보인다.
[능력치] <기능>
[체격]-9
[반사]-17 <경무기> ***
<회피> ***
[공감]-10
[지성]-10
[희망]-12
HP: 39
DP: 9
AP: 13(-4)
이동력: 18(14)
장갑치: 7/4/3
사용 경험치: 51
잔여 경험치: 1
[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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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종별/기능/판정/대가/타이밍/범위/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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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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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바람 / - / <격투><중무기><경무기><사격> / -3 / 없음 / 메이저 / - / -
<운명의 바람>을 조합한 판정의 크리티컬을 +2 한다.
기지 / - / <회피> / -3 / D / 리액션 / - / -
<기지>를 조합한 판정의 크리티컬치를 +2 한다.
행운의 일격 / - / <격투><중무기><경무기><사격> / -3 / 없음 / 메이저 / - / 무기
<행운의 일격>을 조합한 공격의 명중판정에서 크리티컬이 발생하면 대미지롤을 +2D10 한다.
불행 중 다행 / - / 없음 / - / R / 효과참조 / 자신 / -
그대의 판정 직후에 사용하여 그 판정을 다시 굴릴 수 있다. 1씬에 1번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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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디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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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섬 / - / <경무기> / +3 / H3 / 메이저 / - / 무기
<일섬>을 조합한 판정의 판정치를 +3 한다. (판정: +3) 1씬에 1번만 사용할 수 있다.
우라카스미-[2] / LV / <격투> <중무기> <경무기> / -2 / D2 / - / - / -
<우라카스미>를 조합한 판정의 크리티컬치를 +LV 한다. 이 특기는 3레벨까지 얻을 수 있다.
수라 / - / <중무기> <경무기> / -2 / 없음 / 메이저 / - / - /
<수라>를 조합한 공격의 대미지롤을 +1D10 한다.
이도류 / - / 없음 / - / R / 마이너 / 자신 / -
이 메인 페이즈 동안 2회의 메이저액션을 실시한다. 단 메이저액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경무기>의 백병공격뿐이다. 각 공격에는 별개의 무기를 사용할 것. 공격의 판정치는 -5 된다. 1씬에 1번만 사용할 수 있다.
죽음의 춤 / 현재 / <경무기> / -3 / 없음 / - / - / -
<죽음의 춤>을 조합한 판정에 다이스 보너스 +1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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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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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3] / LV / <회피> / -3 / 없음 / 리액션 / 자신 / -
<분신>을 조합한 판정의 크리티컬치를 +LV 한다. 또 <분신>을 조합한 판정으로 마법저항도 할 수 있다. 이 특기는 3레벨까지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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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특기&아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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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 - / 없음 / - / 없음 / 항상 / 자신 / -
그대의 【반사】를 +1 하고 【체격】을 -1 한다. 따라서 HP는 -1되고 AP도 다시 계산한다. 능력치 수정 결과 캐릭터 작성 시의 능력치가 16을 초과하거나 6 미만이 되어도 좋다.
신의 은혜 / - / <교섭> / -3 / 없음 / 메이저 / - / -
<신의 은혜>를 조합한 판정의 크리티컬치를 +3 한다. 1씬에 1번만 사용할 수 있다.
고통내성-[2] / LV / 없음 / - / 없음 / 항상 / 자신 / -
그대의 HP의 최대치를 +[LV*5] 한다. 이 특기는 10레벨까지 얻을 수 있다.
사자심 / - / 없음 / - / H2 / 마이너 / 자신 / -
그 메인페이즈 동안 그대가 주는 대미지를 +5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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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명칭/기능/장비부위/행동치수정/사이즈/공격력/방어수정/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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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타드 소드 L-Hand/<경무기>/한손/-4/L/S+8/2/지근
롱 소드 R-Hand/<경무기>/한손/0/L/S+6/2/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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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구&부적]
명칭/장비부위/재질/행동치수정/회피수정/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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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머리/천/-/-/ [1/0/0]
스트라이드 레더/몸통/가죽/-1/-1/ [4/2/2]
레더 스리브/용수/가죽/-/-/ [1/1/0]
레더 게틀/신발/가죽/-/-1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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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서/ <수라> 판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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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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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토
배낭
모포
소드벨트
부상봉인의 부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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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금]
?
[인연]
과거-[원수] 아그리프의 전령
"네 이름따위 알고 있지도, 알고 싶지도 않아."
아그리프가 지정한 강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바르페의 전령.
그러나 그녀에게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나의 이 병은 그녀의 주인에게서 비롯된 것이기에.
미래-[강적] 갈가마귀
"어떤가, 닮은 사람끼리 어울려 보는건?"
나와 그녀 모두 밤의 세계의 몸을 담은 자.
앙젤 1세의 명을 받은 그녀가 기어이 힐데가르트를 노리겠다면 나 역시 어둠 속의 검의 되어 그녀를 시험하리라.
[인과율]
과거 - [고향]
강해지기 위해,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떠나 버린 곳이다. 아마 다시는 돌아갈 일이 없겠지.
현재 - [귀부의 공자]
운명은 가혹한 형태로 닥쳐온다. 물러설 수 없다면 나아가겠다.
미래 - [투지]
포기? 좌절?
웃기지마라.
나는 고작 이정도에 쓰러질 사내가 아니다.
***
베커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그도 그럴게 오늘 만나고 온 소테른(Sauternes)의 영주는 그와 그의 부하들을 국왕군의 중추에 천거해 주기로 확실히 약조하였다. 떠돌이에 불과했던 그가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신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그는 부하들을 불러모아 가게 하나를 점거하고 저녁 내내 술판을 벌였다.
조끼를 매만지며 그는 귀족이 된 자신을 상상하였다. 에스텔 랜드의 주권을 두고 벌이는 두 형제의 경합, 이 난국의 흐름을 잘만 탄다면 일개용병대장에 불과한 그가 귀족이 되는 것도 꿈은 아니다.
“브란트家의 위대한 시조. 베커 브란트. 그것도 좋지. 클클클.”
조끼를 마저 비운 베커는 그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부하들은 이미 잔뜩 취해 곯아떨어진 채로 곳곳에 널 부러져 있었다. 놈들은 코를 골고, 이를 갈아대며 베커의 귀를 불편하게 했다. 부하들의 작태를 보고 있자니 여기서 잠을 잘 생각이 싹 가셔 버렸다. 숙소의 푹신한 침대가 간절해진 베커는 술집을 나섰다.
나와보니 밤은 이미 깊어 한밤중이었다. 짙푸른 어둠이 깔린 가운데 사도 루나는 요요롭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술기운에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베커는 숙소를 향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이상함을 알아챈 것은 숙소로 가는 골목의 어귀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수많은 사선을 넘겨온 용병의 감은 앞에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좀더 조심스럽게 대처했을 터이지만 지금 그는 술기운이 들어가 호기로운 상태였다.
“마신이든, 용이든 뭐든 오라고.”
언제든 내 도끼로 뭉개버릴 테니. 뒤에 이어질 말은 생략한 베커는 허리춤의 도끼를 쓰다듬었다. 가슴에 차오르는 자신감을 느끼며 베커는 스스럼없이 골목으로 발을 디뎠다.
-구름이 달을 가리며 더욱 짙은 어둠이 내렸다.
우려와 달리 어둑한 골목 안은 별게 없었다. 너저분하게 널린 쓰레기와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그리고 검은 든 사내 말고는.
…검은 든 사내?
하마터면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 검을 빼어 들고 있는 사내는 골목의 어둠과 동화된 채로 베커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술기운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다. 기겁한 베커의 손이 도끼 자루에 가 닿았다.
-구름이 걷히고 달은 다시 지상을 비췄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자 드러나는 사내의 모습을 베커는 똑똑히 살필 수 있었다.
실로 아찔한 미안이었다. 달빛을 받아 청백색을 띄는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오고, 선이 가는 용모는 예술적인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목 아래의 전신은 투박한 판금갑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연약한 얼굴과 목선을 보면 큰 키에 비해 건장하긴 어려우리라.
이윽고, 사내는 잘 벼려진 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검처럼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베커 브란트, 맞나?”
“뭣…?”
베커가 미처 무어라 제대로 된 대답을 하기도 전이었다. 불현듯 상체를 낮춘 사내는 폭발적인 속도로 베커를 향해 짓쳐 들어온 것이다. 애초에 사내는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이처럼 파고들 한 순간의 틈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처럼 격렬한 움직임의 와중에도 사내의 금속갑옷은 그 어떤 소음도 일으키지 않았다. 사내는 그만큼 일체의 군더더기도 없는 동작으로 베커의 목을 노리고 그 무엇보다도 쾌속하게 검을 베어 들어갔다.
“어딜!”
-챙!
그러나 베커도 역전의 용사. 어느새 뽑혀 나온 그의 도끼가 검의 진로를 막아 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술에 몸을 가누지 못하던 자라고는 믿기지 않는 민활한 대처였다. 검을 떨쳐낸 베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머리위로 치켜 올려진 도끼가 사내를 향해 내리 찍었다. 지금 이순간의 베커에게는 사도 아르돌처럼 파괴적인 기운이 넘쳐 흘렀다. 이 일격으로 자신의 좋은 기분을 망친 저 건방진 암습자의 머리는 쪼개지리라.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으랴앗!”
산도 쪼개버릴 기세가 도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사내는 감히 정면으로 맞받아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주눅이 든 건 아니었다.
마치 바람결에 떠밀리는 가랑잎처럼 표풍 같은 움직임으로 베커의 도끼를 비껴낸 사내는 굽혔던 상체를 튕기듯이 일으키며 그 반동으로 검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검을 휘두르는 강렬한 역사선의 베기였다.
“헉!”
설마 이렇게 즉각적인 반격을 해올지는 몰랐던 배커는 대경하며 도끼를 들었다.
-카카캉!
“칫.”
회심의 반격이 무용해진 사내는 베커를 향해 폭풍 같은 검기(劍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쉴 틈을 주지 않는 집요하고도 날카로운 사내의 공세에 베커는 막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는 사이 베커의 온 신경은 사내의 검을 쥔 오른 손에만 쏠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내가 진정으로 노렸던 바였다.
-창!
사내의 허리에 걸려있던 검대(劍帶)에서 또 다른 한 자루의 검이 뽑혀져 나온 것과 베커가 복부에 핏빛 실선이 그어진 것은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으리라. 곧 흉하게 벌어진 베커의 배가 대량의 출혈을 일으켰다. 베커는 잠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했다. 복부의 고통이 현실감을 돌려주기 전까지.
“으아아아아악!”
저 상태에서 잘 못 움직이기만 하면 내장이 쏟아져 나올 테지. 만족할 만할 성과를 거둔 사내는 뒤로 물러서 베커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베커는 사내를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크아아아! 죽인다! 죽여버린다! 네 놈!”
베커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잊은 듯 육중한 거체를 움직이며 땅을 울렸다. 분노로 붉게 충혈된 베커의 눈은 오직 한 사람 사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높이 치켜세운 도끼는 이번에야 말로 사내를 일도양단하려 하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로 흉신악살이 되어 돌진해오는 베커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준비해 논 덫은 통했다. 야수는 상처 입었으며 분노하고 있다. 본인은 분노로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베커의 움직임은 처음 부딪힐 때와 달리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둔해져 있었다.
사내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이제 마무리를 할 때다.
사내의 왼손에 들린 검이 천천히 궤적을 그렸다. 그것은 점점 달빛을 머금고, 아니 달이 검에 젖어 들고 있는 것인가. 달과 검의 구분이 사라졌다.
-침윤하는 달, 그리고 검.
베커는 생각했다. 어째서 달이 두 개씩이나 떠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하나의 달은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자신에게 스산한 달빛을 토해내는 것인가. 베커는 그 달빛을 피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이 빛을 피해 낼 수는 없는 법이니까!
-스걱
베커의 목이 몸과 분리되어 허공으로 치솟는다.
여전히 도끼를 치켜세운 자세인 몸이 스러지고 비행을 마친 목이 쓰레기로 진창인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걸로 여섯 번째.”
두 자루의 검을 모두 거둔 키르시는 자신의 몸을 점검해 보았다. 이번엔 정말 운이 좋았다. 조금 무리하게 움직인 것을 빼면 그 어떤 부상도 입지 않았다. 몇 일간 베커를 주시하며 그가 가장 방심하고 흐트러져있을 때를 노린 보람이 있었다. 정면대결이었다면 십중팔구 목이 달아나는 것은 그였을 테지만 결국 살아남은 것은 자신이다. 오랜 방랑과 지금까지 몇몇의 강자를 상대해가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바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진리다.
베커는 강자라 불릴 만한 이였지만 자신에게 허를 찔려 죽었다. 죽은 이는 말이 없을 뿐더러 강하지도 않다.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자신은 살아남아 반대로 강자의 위치를 차지했다. 키르시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서 강자가 되어야만 했다. 많이도 필요 없다. 앞으로 단 세 번. 세 번만 더 아그리프가 지정한 강자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지긋지긋한 운명에서 벗어나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다.
“그 전에.”
키르시는 품을 뒤져 하나의 수통을 꺼냈다. 마개를 연 그는 안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시신 위에 부었다. 내용물은 단순한 물이 아닌 듯 골목에 달콤한 주향(酒香)이 퍼져나갔다.
황록색이 감도는 투명한 액체가 달빛을 영롱하게 반짝이며 비산했다. 어두워서 식별은 안되지만 그 액체의 빛깔은 키르시의 머리칼과 눈, 그리고 피의 색과 같은 것이었다.
“빈가레벤 아우스레제(Auslese)다. 저승길 가는 위로주로 그만이지.”
그 어떤 권력자도 탐을 낼 최상급의 귀부(貴腐) 와인을 무심히 흩뿌린 키르시는 망자에 대한 위로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여겼는지 수통을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달콤쌉싸래한 풍미가 입가를 맴돌다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마시고 나니 피로마저 풀리는 기분이다.
과연, 누구나 눈에 불에 켜고 달려들 이름값을 한다고 할까. 그러나 만병통치의 효험을 지녔다는 이 대단한 귀부 와인도 자신의 병 에델포이레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키르시(Kirsch)!’
처음 이 세상의 빛을 보았을 때 자신의 빛 바랜 황록색 눈동자를 확인한 아비가 탄식하며 지어준 이름이다. 이 이름에는 언젠가 그가 저 핏빛의 앵두주처럼 붉은 피를 가지길 바라는 아비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비원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키르시가 깊은 상념에 빠져있는 와중 이를 방해하는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한 모금 입에 댈 수 있을 까요?”
고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도 더없이 아름다운 성숙한 여인이었다. 미소 짓고 있는 순백의 처녀는 이 지저분한 골목에서 지독히도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키르시는 그런 여인에게서 어떠한 감흥도 못 느끼는 듯 돌아보는 눈빛은 냉엄하기만 했다.
“일 없다. 네 주인에게나 알랑거려 보시지.”
모욕적인 언사였으나 여인의 미소는 변치 않았다. 이러한 키르시를 한두 번 겪어보는 게 아닌 탓이다. 다 비워진 수통이 키르시의 손에서 아무렇게나 팽개쳐졌다.
“그보다 나는 다음부터는 까마귀를 보내달라 분명히 말했다. 매번 네 년의 면상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구역질을 참기 힘들어서 말이지.”
“어머, 제가 그렇게 예쁜가요?”
여인은 여전히 유들유들하게 받아 넘겼다. 키르시의 미려한 용모가 일그러졌다.
“암, 목을 졸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힘이 잔뜩 들어간 손가락들이 근질거린다는 듯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은 방금 전의 말이 단순한 농이 아니라는 증거다. 여인은 이만 장난은 관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전령을 결정하는 권한은 저나 당신에게 없으니 포기하세요.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이번의 7번째 상대가 아닌가요?”
맞는 말이라 입을 다물었으나 그렇다고 여인에 대한 적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당신의 이번 상대는 ‘철권의 마녀’ 리히트. 현재 바르비에스테 제국, 에스텔 랜드 왕국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변방에서 독자적인 세를 구축하며 악명을 떨치고 있죠. 덧붙이자면 사람 머리통을 주먹으로 쳐부수기 좋아하는 정신 나간 여자랍니다.”
뭐 그런 괴악스런 인간이 있나 싶었다. 어쨌거나 다음 상대를 지정 받은 이상 그 상대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키르시는 아무렇게나 벗어두었던 자신의 망토를 집어 들어 몸에 둘렀다.
-펄럭
검은 망토는 일순 하늘을 가리며 거세게 나부꼈다. 마치 그의 각오와 같이.
“무운을 빌겠어요.”
“흥, 너 따위가 빌어주는 운은 개나 주겠다.”
마지막까지 악담을 퍼붓는 사내의 뒷모습을 달과 여인은 묵묵히 지켜보았다. 사내가 달 조차 비추지 못할 어둠 속에 묻히기 전까지, 여인의 아련한 눈길은 사내만을 향하고 있었다.
첫댓글 '철권의 마녀'. 예스나 말고 저런 별호를 달만한 인물이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