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장미홍차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이레네]

지금 생각해보니 한가지 산을 오르면서  아쉬운점이 있었다면

그 좋은 분위기에서 차 한잔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산의 이슬과 별빛을 먹으며 신령스럽게 자란 고산지대의 차나무에서

채취한 찻잎을  정성스럽게 덖은 차(茶) 의  향기가 껌뻑이다 들어온 형광등처럼

이제서야 코끝에 스치니....

사람이 산에 올라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산이 사람을 혹독히 단련시키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몸의 모든 숨구멍을 활짝 열어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선하고 청정한 기운의 찻물로 세포 하나 하나를 씻어내야

비로소 산은 건강한 기운을 선물한다.

 

일몰 직전의  한가한 시간.

음관(音觀) 향(香) 한자루 사르고,

민괴홍차(玟瑰紅茶 : Rose Black Tea) 를 우렸다.

민괴(玟瑰) 라는 말은  해당화 계열의 야생 장미를 일컫는 중국식 한자용어로

쉽게 말해 장미홍차다.

차통에 쓰여있는 민괴(玟瑰) 가 무슨뜻인지 궁금해서 도대체 글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거의 30분 넘도록 인터넷과 사전 그리고 차관련 서적을 뒤져서 겨우 그 뜻을 알았다...

 

 다관에 찻잎을 넣고 끓는 물을 부었다.

첫물은 버리고 두번째 뜨거운 물을 부어 우려냈다.

홍차 특유의 검붉은색으로 윤기와 광택이 나고 작은 찻잔에 따랐는데도

꿀향과 장미향이 어우려져 찻상 주변에 은은히 피어 올랐다...

 

 10년전 지인을 통해 수종사 삼정헌에서 처음 찻잔에 입술을 댄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져 본적이 없는 찻물...

절제된 다도(茶道) 의 아름다움과 푸른 찻잎에서 우러나오는

혀끝을 휘감는 달콤함에 매료되어 시절을 잊고 항상 곁에 두고 음미했던 나날들..

그건 내 삶 한켠을 지킨 우아한 중독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차를 마시는 본질보다는 형식과 차생활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으로

다우(茶友) 들과 견해차이 그리고 갈등의 혼란을 겪었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인데, 형식에 얽매인 절도있는 몸가짐 자체가

오히려 자유보다는 구속을 강요한다고 생각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도 그다지 많은 변화가 있는건 아니지만,

차생활을 한다는건 솔직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어야 가능할만큼

차값이나 다구의 가격이 비싸서 빡빡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엄두가 나지 않는게 현실이다.

그로 인한 유복한 사람들과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만남의 괴리감...

보이지 않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힘든 찻자리를 함께 할 이유는 없었다.  함께 공부하며 차를 권하며 어울렸던

다우들에게서 조용히 나의 흔적을 거두어 결별을 했다.

이젠 차를 마시는데 있어서 나는 파르티잔이다.

나즉한 조명 아래 독백하듯 아주 편히 홀로, 내 마음 흐르는대로

내 손길, 내 몸 동작, 생각의 편린들 조차 청하여 찻상을 마주하고

또 다른 '나' 와  찻잔을 기울인다.

언제쯤일까.....

찻물에 담긴 담황색의 낙조속 버들가지

 유유히 흩날리는 강변을 거닐며

생을 사유할 수 있는 날들이.....

어리석게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두고도

먼 길 끝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연,

그대와 차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다시 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