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갈망하라,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
“Stay hungry, stay foolish”
청년은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부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가 이루어놓은 것 정도의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부자는 자신만큼의 부자가 되고 싶다면, 다음날 새벽 해변으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청년은 신이 났습니다. 기대에 한껏 부풀었습니다. 이른 새벽 4시에 해변을 찾았습니다. 부자는 청년의 손을 잡아주며 얼마나 부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이 정말 간절하게 원한다고 대답하자 자신을 따라 바다로 들어오라고 말했습니다. 청년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물위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닷물은 발목과 무릎을 넘어서 곧 허리까지 올라왔습니다. 앞서 걷고 있었던 부자가 정말 이상해 보인다는 생각이 청년의 뇌리腦裏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부자는 청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오라고 손짓했습니다. 바닷물이 가슴을 넘어서 어깨까지 올라왔을 때, 청년은 부자가 미친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습니다. 부자는 청년의 생각이나 확신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습니다. 더 깊이 들어오라고 말했습니다. 급기야 바닷물이 입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더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동시에, 부자는 “성공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는 청년의 대답을 들은 다음에는, 더 들어오라고 말했습니다. 바닷물이 청년의 키를 넘는 순간, 다짜고짜 머리를 눌러 물속으로 쳐 박아버렸습니다. 무방비 상태였던 청년이 발버둥 치며 몸부림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허우적거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에 생채기를 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동안 발버둥치는 것을 지켜보다가 정신을 잃기 직전에야 비로소 꺼내주었습니다.
그리곤 “네가 물속에 쳐 박혀 있을 때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한줌의 공기를 원했던 것만큼 성공하고 싶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예고 없이 물속에 쳐 박힌 청년의 간절한 소원은 다른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신선한 공기 한줌뿐이었습니다. 단순히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정도가 아니라 다른 것들은 다 포기하더라도 반드시 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마음 곧 갈망渴望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가수인 동시에 배우인 그녀Beyonce는 자신의 일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무려 삼일 동안이나 밥 먹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뒷골목 깡패출신인 그50Cent/Curtis James JacksonⅢ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래퍼Rapper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촬영 일정이 모두 다 끝난 다음 비로소 관련 음악 작업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잠은 언제 자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잠이요?, 잠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즐기는 것입니다. 저는 잠을 좋아하지 않아요. (잠을 자다가) 제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공감하기 어려운 대답이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간절한 마음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밥 먹는 것을 잃어버릴 정도로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간절한 마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전심전력합니다. 간절한 마음을 쏟아 붓습니다. 아들들 가운데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이 은밀하게 반역을 꾸몄습니다. 매일 아침 함께 식사를 나누며 중요한 국사國事를 의논했던 친구도 반역에 동참했습니다. 시인에게로 향하고 있었던 백성들의 마음 역시 돌아섰습니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소식은 곧 시인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시인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그들만큼은 절대로 그렇게 참람한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치고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그들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극소수의 참모들과 함께 황급히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기가 막힌 상황에 내동댕이쳐지듯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풀 한포기 제대로 찾아볼 수 없는 거칠고 황량한 광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을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시63:1a)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는 의미상 “여호와여!”입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에게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언약을 베풀어주시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뤄주시기 위하여 신실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는 처음 사람들이 당신을 떠나도록 사주한 사탄을 향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창3:15)라고 저주하셨습니다.
당신을 떠나서 자신만의 왕국을 꾸리기로 작정했지만 뜻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지옥불구덩이 곧 스스로의 수고와 노력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절대 절망에 빠져버린 인류는 반드시 구원해 주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 죄와 절망으로 가득 찬 인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주고야 말겠다는 당신의 거룩하고도 뜨거운 열정과 의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의 구약 성경은 당신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열정과 의지가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침내, 당신이 정한 때가 이르자 친히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여전히 당신을 떠나 있는 세상, 떠난 것도 모자라서 쉬지 않고 반역하며 대적하는 세상,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죄인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곧 인류의 허물과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약속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학자들은 반드시 살리겠다는 약속을 받고 죽으셨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를 이룬다는 측면에서 볼 때, 대가를 보장 받지 않고 받아들인 죽음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대가를 확실하게 보장 받은 상태에서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정체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장사되셨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던 동굴에 매장되셨습니다. 영원한 죽음과 저주와 지옥 불구덩이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창세 때부터 하나님의 숙원 사업이었던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베풀어주신 언약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주는 분인지 완벽하게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불가능이 전혀 없으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상상을 완벽하게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신비神秘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없는 놀라운 일들을 척척 이루어내십니다. 시인은 어떤 사전 예고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한꺼번에 다 잃어버렸습니다. 강탈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는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전능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환경과 상황과 조건과는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한 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지존의 자리에서 티끌같이 비참한 처지로 전락해 버린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과 염려를 하나님께 던져버렸습니다. 온전히 맡겼습니다. 계속해서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라고 고백했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간절히...찾다רחשׁ(솨하르)”입니다.
“날이 새다, 일찍 일어나다, 부지런히 구하다” 등의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환난과 시험의 때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안할 때보다 더 일찍 곧 새벽 미명에 일어났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갈망渴望입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입니다. 이는 시인이 피신했던 건조하고 황량한 광야를 가리킵니다. 동시에 광야를 방황하며 물을 갈급해 하듯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간절하게 바라며 구했었던 시인의 마음 상태를 가리킵니다. 역시 갈망渴望입니다.
“갈망하다צָמֵא(차메)”입니다. 목마르다는 기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시 갈망渴望입니다. “앙모하다המב(카마)”입니다. 남아 있는 마지막 힘까지 쇠잔衰殘시켜버리는 불같은 갈망을 가리킵니다. 역시 갈망渴望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 절은 “제가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제 마음이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제 영혼이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제 육체가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곧 전인격이 여호와를 갈망합니다.”라고 의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갈망합니다. 갈망합니다. 갈망합니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시인이 얼마나 뜨겁고 또 간절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목말라 했었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졸지에 빼앗기고 말았던 시인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채워져야 할 유일하고도 가장 절박했던 필요는 반역의 완벽한 진압이 아니었습니다. 왕권의 온전한 회복도 아니었습니다. 화려했던 삶의 완전한 회복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필요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어떤 예고도 없이 당한 당황스러운 상황을 참고 견디며 마침내 이겨내기 위해서 마음의 평안이 필요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호와로의 충만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의미입니다.
사도 역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동안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온갖 문제들 앞에서 먼저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또 문제를 통해서 일하시는 여호와께 집중하라, 여호와를 구하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리하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더할 나위 없는 평안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리라.”라고 외쳤던 이유입니다.
문제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저와 여러분은 절대로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누릴 수 없는, 저와 여러분의 이해를 완벽하게 초월하는, 일시적이거나 표면적이지 않은, 영원하고 본질적이며 완벽한 평안이 마치 파수꾼처럼 모든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적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참고 견디며 마침내 이길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던 은혜입니다.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평안이 넘치는 순간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었으며 마침내 이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전혀 없는 평안할 때든,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문제들로 인해 짓눌려 있을 때든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들 속에서 여호와를 갈망하고 또 여호와로 충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Steve Jobs는 애플 컴퓨터의 설립자입니다. 미국에서 두 주에 한 번씩 발간되는 종합 경제지Fortune로부터 최고의 경영자CEO로 선정되었습니다. 미래의 주역이 될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통해서 “늘 갈망하라,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외쳤습니다. 갈망은 꿈꾸고 있는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할 자세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서 반드시 가져야할 믿음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 경험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필수불가결한 사항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는 순간, 저와 여러분의 삶은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유일한 왕과 주인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힘들게 하던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게 하십니다. 아무리 용을 쓰며 노력해도 끊을 수 없었던 죄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끊어지게 하십니다. 못된 습관들이 하나둘 사라지게 하십니다. 임재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목표, 삶의 의미, 삶의 가치를 갖게 하십니다. 지극히 죄 친화적이고 죄의 경향성이 농후하며 지극히 작은 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죄가 자신인지 자신이 죄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거기다 지극히 이기적이기까지 한 나 중심의 삶이, 사랑하는 당신 백성을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내놓으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꿔주십니다.
항상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복잡한 삶을 완벽하게 정리해주십니다. 삶을 당신의 거룩한 신비들로 채워주십니다. 마음에는 전에 없었던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행복 등을 채워주십니다. 그야말로 엄청난 삶의 변화를 일으켜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태풍, 강풍, 풍랑, 대설, 한파, 폭염, 황사, 지진, 해일, 화산 폭발, 가뭄, 홍수, 해수면 상승, 산사태 심지어 우주로 쏘아올린 물체들의 추락 등 손쓸 겨를도 없이 밀어닥치는 각종 재난들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같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온 탐욕 앞에서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인간 군상들이 만들어낸 비극들입니다. 또 기억하십시오. 세상이 마치 미처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영적, 정신적 황폐함은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서서, 하루가 다르게 더욱 더 심화深化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은 물론 끔찍한 묻지 마 폭행과 살인이 이미 일상 가운데 하나처럼 되어 있습니다. 또 기억하십시오.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멸망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등불과 소금과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은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서 기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통로라는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과 구별하기가 너무 힘들 정도로 아니 세상보다 훨씬 더 깊은 죄와 육신과 쾌락과 거짓 평안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첨탑 곧 십자가, 보는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고 화려하며 웅장한 마천루摩天樓 곧 예배당,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버리는 맘몬을 마치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추구하고 있습니다. 끔찍하게도 사랑하며 섬기고 있습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를 정도로 타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또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비극은 모든 존재의 유일한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왕좌에서 쫓겨나시고, 대신 지극히 유한한 피조물들이 들어와 차지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피조물이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특히, 인간의 마음을 장악한 피조물들은 왕좌의 첫 번째 자리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공격적으로, 무차별적으로, 피를 튀기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할 자리바꿈이 일어난 마음은 당연히 만신창이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선물로 주신 평안은 마음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불안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 없이는 도무지 치료할 엄두조차도 낼 수 없는 불쌍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임재와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전인격을 다 동원해서 또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갈망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감당하기 힘든 환난과 시험과 고통의 때에 하나님을 갈망하십니까? 아니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평안한 때에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하게 갈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전존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다스려 주시기를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 갈망하고 있습니까? “제가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제 마음이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제 영혼이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제 육체가 여호와를 갈망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 같이 전인격으로 여호와를 갈망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이집트로부터 도망친 이후, 무려 40년 동안이나 양을 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져가고 있었던 모세는 불이 붙었지만 신기하게도 타지는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시91:1)라는 증거에 따르면, 하나님의 임재 경험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떨기나무 체험 이후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서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행하였습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두려워 떨었던 바로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바로와 맞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무려 430년 째 이어지고 있었던 바로의 압제와 고통으로부터 성민 이스라엘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루도 건너뛰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던 무수히 많은 위기들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기보다는 늘 원망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던 성민 이스라엘, 흙먼지 날리는 광야를 지나면서도 만족하기보다는 탐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성민 이스라엘, 심지어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돌로 치기까지 했었던 성민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의 삶이 통째로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저와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 저와 여러분의 미래 역시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정녕, 여호와는 너(곧 나)를 사냥꾼의 덫으로부터 빼내 주시고, 죽을병으로부터...건져 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깃으로 너(곧 나)를 덮어 주시고 너(곧 나)도 그의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니,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너(곧 나)를 지켜 주는 방패와 갑옷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곧 나)는 밤에 찾아드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고, 낮에 날아드는 화살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다. 흑암을 틈타서 퍼지는 염병과 백주 대낮에 덮치는 재앙까지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시91:3-6)라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그야말로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막의 성자로 불리는 그St. Charles de Foucauld는 “의탁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맡겨드리니 당신이 좋으신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이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제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 외에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고 기도했습니다. 열차 한 대가 지하 철로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괴로우면서도 처음에는 아무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갑자기 자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광분했습니다. 당하고 있는 엄청난 불편에 대해 욕할 수 있는 대상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객차 안은 그야말로 듣기 힘든 독설들로 난무亂舞했습니다. 순간, 한 여인이 새로 산 향수병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상큼하면서도 우아한 향은 열차의 모든 칸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은 마치 사로잡혀 있던 마법으로부터 깨어나기라도 한 듯 평상시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반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나 하나님을 더 알려고 하는 소망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의 축복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나기 전의 옛 생활 방식 그대로 기도합니다. 순종보다 간구가 앞섭니다. 간청이 예배를 밀어냅니다. 대부분의 감사는 축복에 의존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웃고 조롱하게 만듭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니다. 호흡하는 모든 순간 여호와 한 분께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아무리 많은 대가를 치른다 할지라도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게 여호와 한 분만 갈망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여호와께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호흡하는 모든 순간 친히 임재 하여 함께 동행 해 주시는 여호와를 경험하는 복된 삶,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된다 할지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복된 삶,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복된 삶, 천하보다 귀한 영혼에게 빛과 소금과 파수꾼의 역할을 다하는 복된 삶, 무엇보다 마치 미쳐버리기라도 한 것같이 영원한 죽음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세상을 여호와께로 이끌어주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