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는 쉽게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거창 미녀山을 찾아서
(내 산행 중 최악의 날,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서)
다음 불 로그:-kims1102@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중부지역에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져
피해가 속출했다는 보도다.
시간당 50mm장대비가 쏟아지는가하면 하루 200mm의 기습폭우가 내려 중부지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것인데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더 걱정스럽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 초안山 국철1호선 공사현장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근
동부간선도로를 지나가던 차량 여러 대가 흙속에 파묻혀 1명이 죽고 3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었다.
서울과 경기북부, 충남지역에서도 행락객실종과 가옥, 도로 및 농경지침수가 발생했고
하천의 수위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주의성보도도 있었다,
장마전선이 약간 남하하겠지만 곳에 따라 120mm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우리지역에는 비가 그렇게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남하하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어제는 광주에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었는데
산행을 해야 하는 나로 써는 영 자신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것은 오늘 금광에서 거창에 있는 미녀山을 산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녀山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30m이다.
마치 미녀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누워 있는 형상처럼 보여 미녀山이라고 불린다.
봉우리들이 빚어낸 산세는 여자의 긴 머리와 또렷한 얼굴 윤곽선, 볼록한 가슴과
배의 모양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산속에는 선돌, 음양석, 여자신체 중 은밀한 부분을 가리키는 양물 샘 등이 있어
산 전체가 자연숭배의 사상이 스며있음을 알 수 있다.
미녀山에 대해 전해오는 전설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옛날에 이곳이 바다였는데 어떤 장군이 나룻배를 탄 채 표류하고 있었다.
이를 본 옥황상제가 딸을 보내 장군을 구하라고 했으나 딸을 본 장군은 한눈에 반해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이에 옥황상제는 두 사람을 산으로 만들어 영원히 누워 있는 형벌을 내렸는데
바로 미녀산과 장군봉이라는 전설이다.
또 하나는,
병으로 위독한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이 산에만 있다는 약초를 캐러 갔던 딸이 뱀에 물려
죽자 이를 불쌍히 여긴 산신이 山의 형세를 죽은 처녀의 모습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산행 전날 밤은 아예 잠이 오지 않는데 새벽에 베란다 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니
온통 물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보니 비는 오지 않는데 아스팔트길은 물에 젖어 검게 보였다.
쥐어짜면 금시라도 물이 줄줄 흐를 것만 같은 공기가 내 몸으로 묻어온다.
“오늘은 우산을 준비해야겠구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남성들은 비가와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는데 그것은 남에게
나약해 보이기 싫어서였다.
18세기까지 주로 여성의 액세서리였던 우산은 영국의 무역업자 “조너스 한웨이”에
의해 대중화됐는데, 30년 동안 늘 우산을 들고 다닌 덕분이었다.
바야흐로 우산의 계절이지만 우산장수는 장마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장마철을 싫어하는 까닭은, 대부분 집에서 미리 우산을 들고 나오기 때문이란다.
6월부터 시작된 때 이른 장마가 언제쯤 끝나려는지 지루하다,
“칠칠한 머리채 풀어 / 목을 놓아 울고 싶구나,
뼈가 녹고 살이 흐물도록 / 이승너머 저승까지
모질게 매듭진 인연 / 그만 녹여 풀고 싶구나,” (유안진의 “七月령” 장마에서)
광주역광장, 산행버스가 도착했는데 오늘은 기분좋은날이다.
회원들이 잔뜩 겁주는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만석으로 힘을 보태주었다.
하늘은 오전 내내 그 속내를 보여주지 않고 있어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듯이
산행버스는 거창을 향해 88올림픽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가조면에 가까워지자 산행이사가 차창 밖을 가리키며 미녀峰에 대해 설명을 했다.
가천에 긴 머리카락을 담그고 누어있는 여인의 단아한 이마, 오뚝한 콧날, 헤벌린 입,
뚜렷한 턱과 목을 거쳐 불룩 솟은 젖가슴 아래로 아기를 잉태 한 듯 불룩한 배,
山峰들이 어울려 빚어낸 자연의 걸 작품을 회원들의 흥미를 자아내게끔 말했다.
산행버스는 음기마을입구에서 우리를 내려주고 하산지점에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오늘산행은 한 팀만 운영하기로 했다.
음기마을입구에서출발:- 유방 샘 -눈썹바위 -유방峰 -893봉 -미녀봉정상 -오도재
-지실 골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오전 10시30분,
산행을 시작했는데 거창의 날씨는 물안개를 걷어내고 있었으며 장마철 특유의 끈적끈적한
더운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큰 딸아이가 사준 바람막이용 점퍼를 입었더니 얼마 걷지도 못하고 더워서 벗어버렸고
간편하게 산행을 시작했다.
음기마을에서 유방 샘까지는 몸을 풀듯 가볍게 시작을 했지만 더위는 어쩔 수 없었다.
유방 샘 삼거리에서 산들님과 나 회장님은 893峰으로 곧장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눈썹바위로 가는 정상코스를 밟기로 했다.
유방 샘에서부터 유방峰 능선까지는 멀고 가파른 산길이었다.
그동안 체증(滯症)때문에 10여일이상 약을 먹고 있는 나는, 심한 체력부담을 느꼈지만
더위 탓으로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더구나 옥황상제의 딸인 미녀를 내가 직접 품을 수 있다는 설렘과 빼어난 주변경관이
나를 자만하게 만들었다.
미녀가 뻗은 발을 무뚝뚝하게 내려다보는 두무산, 미녀무릎 옆에 앉아 명상하는 오도산,
미녀 머리위로 날아오르는 비계산, 멀리서 지켜보는 근엄한 의상봉, 우뚝 서서 미녀를
호위하는 늠름한 장군봉이 주위를 완벽하게 장식해 미녀山을 한껏 돋보이게 만들었다.
유방峰에서의 조망은 한없이 좋았다.
여자의 유방이 모성과 섹스 심벌로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 이었을까?
비온 뒤끝에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아름답고, 깨끗하고, 선명해서 좋았다.
마을과 논밭, 마을길과 고속도로가 숨길 것 하나 없다고 모두 드러내놓고 있다.
유방峰에서 입술부분까지 이어지는 굴곡심한 바위 길을 계단을 오르내리고, 밧줄을
잡고 내려가면서 전혀 입술까지 닿는 길이 없을 것 같은 바위사이로 가는 길이
열려있어 신기하기만 했다.
머리 부분에 선바위가 있었는데 멀리서 본 미녀 눈썹에 해당하는 눈썹바위였다.
정상은 머리 부분이 아니고 동쪽 미녀의 배에 해당하는 930峰이였다.
눈썹바위에서 다시 유방峰으로 와 길이 희미한 솔밭을 헤치고 나아가니 정상이었다.
여체는 신비스러웠고,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그래서인지 눈썹바위, 유방峰을 표시하는 푯말 한 개가 없었고 이것을 인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랑합니다, 시남氏, 군왕峰, 민들레, 신입회원과 맛있는 점심을 유방봉밑에서 먹었다.
하산은 정상에서 남동쪽 오도 치로 내려와, 오도산자연휴양림을 즐기면서 맑은 공기와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남쪽 지실 골로 내려왔다.
휴양림 쪽에서 올라온 최 교장님일행도 만났고, 지실계곡물에서 쉬고 있는 회원들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산행의 피로가 한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양동매씨들과 산행하지 못한 회원들, 그리고 먼저 내려온
회원들이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동심으로 돌아간 몇몇 회원들은 대구에서 온 산악인들과 친해져 계곡물에서 물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다.
시원한 맥주 한잔에 수박파티가 벌어지고 권하고 마시고 분위기가 좋았는데 나는 평상에
앉았다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허벅지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근육통이려니 생각했는데 통증이 가시지 않고 손발가락에 근육마비가
생기고 허벅지에도 근육이 뭉쳐서 걸을 수가 없었다.
4년여 내 산행 역사 중 최악의 날이었다.
체증(滯症)으로 쇠약해진 체력과 무더운 날씨, 무리한 산행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나는 꼼작도 못하고 산행버스에 누어있어야 했고 걱정하는 회원들의 시선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특히 마비가 올 때마다 내 가족처럼 응급조치를 해준 이상섭회원님, 총무님, 민들레님,
박 정순회원님, 파평 윤氏라는 木浦댁, 고맙고. 또 고맙고, 미안합니다.
(2011년 7월 1일)
첫댓글 산행기를 읽으면서 다시한번 산행을 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귀한 글 감사하구요. 이제는 괜찮으신지요 ?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건강은 어떻 하십니까 병원 다녀 오셨어요
사랑합니다님, 감사합니다. 기회있으면 광주근교산행을 한번 해봅시다.
내 가족처럼 돌봐 준 총무님께 감사드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