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BIT와 관련해서 논란에 휩싸인 스크린쿼터(Screen Quota)는 영화, 상영관을 뜻하는 screen과 몫, 할당량 등을 의미하는 quota를 결합한 말이다. 즉 스크린쿼터의 사전적 의미는 스크린 할당제이고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대해 특정한 영화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외국영화의 시장독점을 막고 한국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의무상영일수를 지정해 놓은 제도’라는 의미로 쓰인다.
스크린쿼터 제도가 한국영화계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6년이다. 도입 당시는 의무상영일수가 연간 90일이었는데 몇 차례의 조정과정을 거쳐 1985년에 현재와 같은 연간 146일로 정해졌다. 1994년에 외국영화 수입 프린트 벌수 제한이 폐지되고 1996년 필요시 단축일수가 40일로 확정되고 교호제(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교차로 상영하는 규정)가 폐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스크린쿼터 제도가 처음 시행되던 당시에는 외국영화의 수입추천은 허가제로 운영되었고 사실상 국가의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영화사들이 외화수입에 의존해서 운영되었고 감독기관도 그것을 묵인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에 의해 정해진 의무상영일수는 단지 서류상에서만 지켜졌고 실제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1973년에 시행된 제4차 개정 영화법에서는 연간 4편 이상의 국산영화를 제작한 영화사에만 외화 1편의 수입권을 주는 의무조항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무제작편수를 체우기 위한 ‘날림공사’식의 작품이 만들어져 극장에 걸리지도 못하고 필름보관소로 직행하는 악순환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1985년의 영화수입자유화 조치가 이뤄지고 1988년 직배영화사가 국내로 진출하면서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스크린쿼터 제도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의 극장주들이 외화의 높은 수익률에 팔려 의무상영일수를 지키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했었다.
이것에 맞서 영화인들과 시민들이 내세운 한국영화 보호의 방패막이 스크린쿼터 준수였던 것이다. 1993년 민간기구 스크린쿼터 감시단의 출범과 함께 극장과 감독기관에 대한 감시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스크린쿼터 제도는 행정문서상의 제도에서 실제적으로 효용을 갖는 제도로 거듭난 것이다.
이처럼 스크린쿼터가 영화인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정착되었고 그것의 효과는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산업의 활성화로 가시화되었다. 그럼에도 1998년 미국과의 한미투자협정(이하 BIT)협상이 재개되면서 스크린쿼터에 대한 논란이 재개되기 시작했다. 미국 측에서 스크린쿼터가 국산영화를 업계에 강요하는 것으로 BIT표준문안에 어긋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서 투쟁에 돌입했고 양대 노총을 포함한 35개 시민사회단체들도 ‘우리영화지키기시민사회단체공동대책위’를 구성하여 비대위 활동에 결합했다. 이런 노력들은 전폭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고 이런 여론에 밀린 미국과 한국의 협상당국도 한동안 스크린쿼터 축소/폐지에 대한 주장을 멈춰야만 했다.
올해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다시 BIT협상이 재개되면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경제관료들과 정치권, 경제지를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 등에서 BIT체결의 걸림돌로 스크린쿼터를 지목한 것이다.
그들은 스크린쿼터를 통한 영화산업의 보호가 BIT협상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영화 때문에 전체 산업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일면 타당한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BIT 자체가 국가 경제를 회생시킨다는 주장 자체가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낙관론이란 주장 또한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이미 많은 나라에서 문화적 예외 조항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문화적 다양성 수호의 좋은 전례로 손꼽는 스크린쿼터 제도의 축소/폐지를 주장한다는 것은 경제적 논리로 문화를 재단하는 횡포란 주장도 제기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스크린쿼터의 완전폐지가 아닌, 축소는 가능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미 연간 40일의 감경일수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축소된 스크린쿼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대만이나 멕시코의 경우에도 축소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사실상 폐지로 이어졌다는 전례가 있음을 볼 때 축소는 폐지로 가는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 큰 문제는 스크린쿼터의 수호가 단지 영화 산업 지키기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란 점이다. 테이블에서의 숫자노름에 앞서 그동안 스크린쿼터가 차지해온 문화주권 수호라는 상징적 역할과 영화가 방송, 에니메이션, 게임 등 여타 영상문화산업과 맺고 있는 연관을 감안해야 한다. 스크린쿼터 축소/폐지는 협상 테이블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해결점이 아니라 해일같이 밀려들 일방적 문화개방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