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느 가브리엘 까롱
Anne-gabrielle caron
폴 마리아 시글 신부
네덜란드 헤이그의 프랑스인 교구에서는 해마다 첫영성체자들이 피정을 하면서 첫영성체를 철저히 준비한다. 암스테르담의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당에서 25년째 봉사하고 있는 알렉산드리나 수녀는 첫영성체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2019년 초에 나는 안느 가브리엘 까롱에 대한 책을 받았어요. 그녀의 전기가 너무나 감동스러워서 나는 헤이그의 첫영성체자들에게 아마도 여러분이 태어난 해에 죽은 이 여덟살 소녀에 대한 책을 선물하기로 결심했어요.”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수녀의 말을 아주 열심히 들은 25명의 첫영성체자들이 이미 첫영성체를 했음에도 자발적으로 고해성사를 또다시 받았다는 것이다. 안느 가브리엘이 첫영성체 때 큰 열망과 사랑으로 예수님을 영했다는 것을 들으며 큰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고해를 들은 매튜 신부는 몹시 기뻐하며 자주 말했다. “아이들이 고해를 정말 잘합니다!”
안느 가브리엘 까롱은....
안느 가브리엘 까롱은 2002년 1월 29일 남부 프랑스 툴룽에서 해군 장교이며 잠수함 조종사인 알렉산더 까롱과 고전어와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마리 도피네 까롱 부부의 첫 아이로 태어났다. 딸 안느는 명랑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노는 것도 그림 그리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좋아했으며, 어린 동생들인 프란시스 사비에르와 블랑쉐를 엄마처럼 잘 돌보았다.
안느가 여섯 살이던 2008년 여름부터 오른쪽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2009년 2월이 되어서야 무서운 진단이 내려졌다. 유잉육종, 뼈에 생기는 불치의 전이성 암이었다!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힘겨운 고통 속에 화학요법을 받는 18개월 동안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안느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앙심 깊은 부모와 본당 사제들이 이 어린 영혼을 도와주었다. 소녀는 영적 세계에 아주 마음이 쏠려서 용감하게 말했다.
“아픈 건 싫지만 사람들이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하느님을 도울 수 있어서 난 행복해.”
자신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첫영성체를 기다리는 이유
2008년 9월, 안느 가브리엘도 본당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첫영성체 교리를 열심히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암 진단을 받으면서 2009년 5월부터는 뒤브륄르 신부가 매주 목요일 한 시간씩 집으로 찾아왔다. 안느는 거의 매일 첫영성체에 대해 생각했다. 너무나 많이 생각하자 엄마가 물었다.
“첫영성체를 그렇게 기다린느 이유가 뭐니?”
“엄마, 예수님을 영하고 싶기 때문이지. 당연히! 생각해봐요. 예수님이 내 마음속에 오셔서 정말로 계시잖아. 완전히.”
“하얀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쓸 수 있어 행복한 거야?”
“당연하죠, 엄마. 그런데 내가 정말로 행복한 것은 예수님을 모실 수 있어서예요.”
첫영성체 날인 2009년 6월 7일 주일을 안느는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직전 금요일에 상태가 나빠져서 급히 마르세유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엄마, 내 첫영성체! 왜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걸까요?”
안느는 문병 온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기도를 부탁했다. 자신이 빨리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무엇보다 주일에 첫영성체를 해야 하니까!
그러나 열이 조금 떨어졌을 뿐 백혈구 수치가 여전히 충분하지 않았다. 주일 아침 7시에 한 차례 수혈을 받았고 8시 30분에도 또 받아야 했다. 그 기다림이 여덟 살 아이에겐 마치 영원 같았다.
안느는 벌써부터 가방을 챙기고 첫영성체 드레스를 입고서 계속해서 성모님께 기도드렸다. 오늘 첫영성체를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다행히도 아빠가 함께 있었다. 마침내 다행스런 결과를 듣고서 아빠와 딸은 차로 달려갔다. 앞으로 툴룽까지 한 시간을 달려가야 했는데 교통은 혼잡하기만 했다.
미사는 이미 30분 전에 시작되었다. 침착하게 그들은 성체를 모실 준비로써 성모송을 바치고, 여러 기도들을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계속 바쳤다.
마침내 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퇴장 성가가 울리는 가운데 퇴장 행렬 중이었다. 안느는 실망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갑자기 성가대가 노래를 중단하더니 성찬례의 성가를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안느는 결연히 중앙 통로를 걸어 제대 앞으로 나갔다. 루이소 수녀가 안느를 제대 위에 올려주었다. 지각한 이 첫영성체자가 감실 앞에 홀로 무릎을 꿇자, 안느를 위해 감실이 다시 열렸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뒤브륄레 신부는 말한다.
“나는 그 아이처럼 성체를 영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사제의 마음에도 몹시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엄마의 친구도 안느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날 우리는 제대를 향해 걸어가는 안느의 그 눈빛에 정말 감동받았어요. 안느는 마치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어요.”
첫영성체를 한 그날 내내 안느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고 계속 중얼거렸다.
“이제는 매일매일이 오늘 같은 주일이 될 거야!”
며칠 후, 엄마는 딸의 글을 우연히 보았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사랑하는 주님이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고. 매스꺼움, 화학요법.... 왜 주님께서 나를. 다른 사람 말고 나를 선택하셨는지 알고 싶다. 이유는 많겠지만 난 그걸 받아들이고 싶다. ‘저의 주님, 저는 당신 곁에 아주 가까이 있어요.’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어서 난 행복하다. ....제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께 의탁하는지를 당신이 아신다면!”
2010년 초에 다시 악화되었을 때 안느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 많이 질문했다. 엄마는 그 질문에 자연스럽게 답해주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네게 더 큰 계획이 있으신가 보다. 그래, 넌 성인聖人이 될 거야.”
2010년 2월 7일 주일. 안느는 너무 아파서 미사에 갈 수 없었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안느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거야. 나, 하느님께 청했어. 병원에 있는 아이들의 고통 모두를 내게 달라고!”
“아, 네 고통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니?”
“충분해, 그래도 내가 아주 많이 아파서 그 애들이 아플 필요가 없으면 좋겠어.”
4월, 가족과 함께 루르드 순례를 할 때 안느가 고백했다.
“있잖아, 엄마. 성모님한테 나를 고쳐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어. 그래도 다시 한번 걷고 싶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기도는 드렸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 마리 도피네는 이렇게 회상한다.
“마지막까지 안느는 병이 낫기를 바라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나 기도의 끝은 항상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였습니다. 가끔은 ‘하지만 너무 심하게는 말고요.’라고 덧붙이기도 했어요. 성모님께도 그런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복되신 어머니, 사랑하올 주님이 내게 무엇을 요구하시던지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당신께서 조그만 더 전구해주신다면 정말 좋겠어요.’”
2010년 7월 7일에서 8일 밤, 안느에게 발작이 일어났다. 그래도 숨을 거두지는 않았다. 마지막 몇 주간을 집에서 가족들과 보낼 수 있었다. 집에서 안느는 병상에 누운 채 매일 성체를 모셨다. 엄마는 이렇게 기록했다. “사제가 오시면 안느는 환히 빛나는 얼굴로 머리를 들었다. 성체를 모신 다음에는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 몇 분 동안 아주 가만히 있었다.”
아주 강력한 진통제를 맞아도 안느는 말할 수 없이 커다란 고통을 느꼈다. 영원히 완화도리 수 없는 고통이었다. 거듭거듭 안느는 그분께서 거기 계신 듯 크게 불렀다.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어느 날에는 어린 남동생에게 그랬다.
“내가 아무리 큰 고통을 겪어도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 안느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네 고통을 봉헌하였니?”
안느는 있는 그대로 담담히 답했다.
“아주 쉬워요. 그냥 말하면 돼요. ‘저의 하느님, 제 고통을 당신께 바칩니다.’”
2010년 7월 22일,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 다음 날 아침, 안느는 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자정 직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정신은 맑았다. 그리고 “오로지 하느님에 대해서만 말했다.”고 엄마는 전한다.
안느 가브리엘 까롱의 시복을 위한 교구차원의 과정이 2020년 9월 12일 툴룽에서 시작되었고, 안나에게 “하느님의 종Servant of God”칭호가 주어졌다.(성성聖性의 향기를 내며 죽은 사람으로서, 교회가 그를 복자로 선언 할 목적으로 그의 삶과 덕행을 조사하기 시작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Trumph of the Heart No.98>에서 이선영 옮김
(마리아지 2022년 5• 6월호 통권 23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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