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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 인천항내에서 배까지 이동시키는 셔틀버스
↑ 첫날 단동페리호의 선내식사 - 부페식인데, 맛이좋았고, 일정내내 배의 식사는 전반적으로 양호함
↑ 2층으로 되어있는중의 1층선실내모습임. 17시간동안 있어야할 장소임 비교적 중급정도임
↑ 인천항을 떠나며 따라붙는 갈매기들
↑ 8월 22일의 일몰전경
↑ 8월23일의 일출전경
↑ 단동 동항으로 들어가는중에 옆으로 지나가는 북한배
↑ 단동 동항 이곳에서 단동시내까지도 몇십분 버스로 이동하였다.
↑ 드디어 중국땅 항구내의 셔틀버스를 기다리는중
↑ 단동시내 압록강변의 식당에서 중국내첫식사를 하였슴. 건너편은 북한땅
↑ 송강하로 이동중 다리보수공사로 아래의 냇물을 건너다 빠진 미니버스를 페로다가 끌어내는 모습
우리는 이길을 포기하고 돌아서 가는바람에 몇시간 더 걸렸슴
↑ 비포장으로 계속 몇시간씩 달렸슴
여담:
단동항도착후 정말 인내심을 갖고기다려야한다.배에서 내리는것만도 1시간정도. 입국심사만도 1시간정도....
사람도 많지만 처리절차가 정말로 한심하다. 버스2대로 배에서 내려 심사장까지 나르는데, 몇대더투입해
도 될터인데, 마냥 민적민적대고있었고, 시끌벅적만하지 누구하나 옳게 안내하는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냥시끄럽고 어디에 서있어야될지도 모를정도이다. 시스템이 눈에 띄질 않는다.
벽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보니 한국어로, 최선을 다한 서비스와 심사하겠다는 다짐의 글들도 있는것으로
보아서 계속 변해가는중인것은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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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4일
8/24 06:00 기상+식사
08:45 백두산 서파주차장도착후 5호주차장으로 옮기는 셔틀버스로 갈아탐
09:40 5호경계비 주차장 도착 백두산서파 종주 시작
10:15 5호경계비 도착 날씨 초 괘청 !!
17:20 북파 주차장도착으로 완전종주끝 (7:40분 산행함/식사30분포함)
21:00 이도백하 호텔에서 취침
높이 2,744m로 북위 41˚01´, 동경 128˚05´에 있으며 한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최고봉은 병사봉(장군봉:2,744m)이다. 2,500m 이상 봉우리는 16개로 향도봉(2,712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차일봉(2,596m) 등이 있다. 남동쪽으로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이 뻗어 있다. 천지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5호경계비 2,373m → 청석봉 2,662m →백운봉 2,691m →녹명봉 2,603m →용문봉 2,596m→북파로하산
오늘 여행기:
버스주차장에서 5호 경계비까지 느리게 40 분 걸렸다. 천지가 다시금 내눈속에 빨려오듯 새파랗게 펼쳐졌
다. 두번보지만 그래도 가슴이 벅차오는 느낌은 똑같았다. 북쪽경계비 사진을 찍지말라 하였으나 모든사
람들은 북한쪽영토를 밟고 사진은 계속 찍여졌다.
달문쪽도 보이고, 천문봉도 보이고, 장군봉도 보였다. 이제부터 저기 달문넘어까지 천지를 뱅뱅돌며 산행
을 할것이다. 이곳을 가보려고 수많은 산행을 했을까 생각될정도로, 내산행의 최고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치는 이루말할수 없이 이뻣다.계속 천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산을 오르내리며 예쁜모습을 보면서 주행을
하였으나, 천지는 않보여주려 앙탈부리듯 돌바람과 세찬바람으로 계속우리를 천지에서 산밑쪽으로 밀어
내었다. 밀리지않으려 천지쪽으로 몸을 밀어붙을라치면, 어느새바람이 약해져서 천지절벽쪽으로 휙끌여
들여져서 머리끝이 오싹하기를 여러번 ! 참으로 조심조심 등산을 하여야 되었다.
무척힘들고 경사도 급했으나 워낙바람이 세차게 불어서인지 땀은 별로 나질않았다. 숨만벅차고 좋은경치
에 카메라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파에서 북파쪽으로 갈수록 전망이 좋았다. 청석봉을 지나 백운봉 오
르는 코스가 가장 힘들었으며, 계속 Z자 오르막이 전개되었다. 사진을 찍을힘도 없을정도로 가파랐다.
나는 백운봉정상은 포기하였다. 도저히 발이 떼어지질않았기 때문이었다. 백운봉 이후에는 내리막길로 이
어지고, 아름다운 천지절벽길로 다니게되어, 여유가 생겨 사진도 많이 찍고 감상도 많이하면서 내려왔다.
↑ 서파관광주차장에 도착후 셔틀버스로 갈아타기직전에 물과 도시락을 하나씩 받고 있다.
↑ 서파 매표소
↑ 표도 2장씩주고.. 돈도 2번내었겠지?
↑ 5호경계비 주차장까지 가는 셔틀버스 실내모습 -모두 새차이고 장비는 좋았다
↑ 멀리 백두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내려다본 백두산 아래쪽. 얼마나높은지 저멀리구름이 아래에있다.
↑ 5호경계비 최종주차장에 도열된 버스들. 다녀온사람들을 위하여 대기하고 있다.
↑ 서파 올라가는 직전의 최종매점. 이곳에서 집사람이 챙모자를 3천원에 구입하였다.
↑ 종주 직전의 모습
↑ 뒷짐짚고 있는사람은 이곳의 감시인
↑ 5만원 3만원 외치는것같았다. 힘든노인네들을위한 대여가마
↑ 사진중에 가마를 이용하여 내려가는사람을 볼수 있다.
↑ 이사진은 북쪽땅을 밟아야만이 찍을수 있는곳이다. 북한땅에 잠시 월경한 마누라가찍은사진
↑ 5호 경계비에서 보이는 천지모습. 일반관광객은 이곳만 보고 다시 하산해야된다.
우리는 이곳부터 천지만 끼고 장장 5시간30분을 걷기 시작한다.
↑ 보여지는곳마다 절경이다 .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 조금 추워져서 죠끼를 꺼내 입었다.
↑ 사진의 왼쪽부터2번째 봉우리가 장군봉이다 최고봉임 북한쪽에 있슴
↑ 청석봉으로 가는중에 바라본 5호주차장에서 경계비로 올라오는 인파들
↑ 장군봉이 정가운데로 보인다.
↑ 청석봉으로 가는 천지절벽길 사진의 오른쪽이 천지로 떨어지는 절벽이다.
건너산의 절벽위로 희미하게 보이는 길로 갈것이다. 환상의 길이다.
↑ 야생화는 그리많지 않았다. 환경이 열악해서인지 나무라고는 없었다. 전부 몇가지의 풀꽃뿐이다.
↑ 앞의 스틱으로 당겨주는 부부가 삼성전자은퇴자인 60대 부부이시다. 맨뒤가 마누라
↑ 5호 경계비에 모여있는사람들이 우측에 보여진다. 그외 회색산은 모두 북한쪽 땅이다.
↑ 청석봉에서 식사를 하였다. 도시락은 김치 새우 더덕뿐이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 천지에 바람이 불기시작하여 호수가 물결치기 시작한다.
↑ 천지 반대쪽의 절경
↑ 천지를 끼고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며 백운봉으로 가는 천상의 여행길
사진앞쪽의 제일높은봉이 천문봉 그뒷편바로밑까지 북파찦차가 다닌다
↑ 청석봉 지나서부터는 쟈켓을 꺼내입는사람이 한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인지 땀은 별로 않나고 높아서인지 숨은 무지 찻다.
↑ 이사진 이후에는 백운봉으로 올라가는 하일라이트가 펼쳐지는데 얼마나 힘이든지 사진을 하나도
못찍었슴을 집에와서야 알았다. 아꼬아라. 아꼬아라~~
(왼쪽길로 한참 내려가서는 Z로 길이 이어지는데 나에게는 무지가파르고 긴 산행길이었슴.백운봉은 올라갔다 다시내려와야되는데, 포기했슴 그냥 옆길로 지나쳤슴)
↑ 힘든 백운봉을 지나쳐나온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이들꽃이 백두산의 주종을 이루었다.
↑ 천지를끼고 내려오는 마지막내리막길. 이후에는 오른쪽으로해서 북파주차장으로 내려가게된다.
10:15~15:45분까지 천지둘레만 5시간반을 보았다.
이제, 천지와 헤어져야할 용문봉아래쪽에 도착되었다.
조선족가이드가 애국가를 작게 불러도 좋다고 하였다.
모두모여 가슴벅찬 애국가를 합창하였다.
맑은날씨에 원없이 숨을 몰아쉬며 헤매보았건만,
그래도 남는 아쉬움에 마음이 아리해졌다.
내 살아다시 이곳을 찾아볼수는 없을것이다.
이곳의 이모습을 이제 영원히 내마음속에 묻고 떠나야할시간이다
평생 한번도 못온사람도 많을터인데,
맑은날씨에 두번이나 왔고, 내 작은소원까지 이루었으니
나는 얼마나 복이많은 사람일까.
민족의 혼이 담긴 백두산이여~
우주의 인연으로 나와 이어진 백두산이여~
나이제 떠나노니 영원히 안녕하소서.
↑ 마지막 천지를 눈에담으며..
↑ 하산하는길
↑ 장백폭포가 보이기 시작한다. 달문쪽은 산사태로 올라가질못한단다.
동행한 부산쪽 산악회장이 바리게이트 쳐져있는것을 미리뛰어가서 확인하고 옴
↑ 백두산에서 제일많이보이는 들꽃
↑ 장백폭포계곡은 아니지만 조그만 계곡이 있었다. 발을 담그고 3초를 못있는다.
↑ 북파 주차장에서 장백폭포와 천지쪽 조망 안개가 천지쪽에 내려앉았다.
↑ 이제 천지는 5호경계비에서도 볼수없을정도로 안개가 끼었다.
↑ 북파쪽 백두산 매표소 우리는 서파+북파= 2군대의 입장료를 모두 내어야된단다.
↑ 이도백하 호텔에서 체크인중에
↑ 용인민속촌에 살고 계시다는 삼성은퇴자분. 세계여행을 즐기시며,
60대이신데도 부부끼리 밀고 당기며 다니시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많이 느껐다.
여담:
군대막사는 겉보기에 웬만한 호텔수준이다. 아마도 군의자원은 잘챙겨주는듯하였다. 우리랑은 완전틀
리다.
장사는 중국사람이라고 했던가, 입장하는곳마다 희한하게 금을 그어 징수하고있었다.
도시가 바뀔때마다, 통행료를 징수하였고,
관광버스는 저멀리에서 내리게하고, 백두산공원가는곳까지는 자기들 셔틀버스를 이용해야된다.
산행을하려면, 종주비용을 또 더 내야된다.1인당 약 10여만원정도란다.
입장료도 서쪽에서 들어가서 북쪽으로 나오게되니 2군데의 입장료를 미리내어야한단다.
중국의 물가는 싸다고 알고 있는데 10만원의 입장료는 어떻게 생각해야될지...
더 웃기는것은,
이번여행중에 가이드만 6명이 붙었었다.
한국에서끝까지 따라붙은 1명 중국도착하니 중국전일정가이드1명 백두산가니 산문까지 안내하는 가이드1명 산행하니깐 앞뒤에 붙은 가이드2명 집안에 오니 그곳가이드 또1명.
백두산에도착하니 가이드만 5명이모여진다. 이걸어떻게 생각해야될지.....
문제는,
다 각자 어떻게든 팁을 가져가야겠다는 행동들이었다.
중국총괄가이드는 맛사지등 옵션을 붙여서 이동시키는것을 좋아했고,
통역을 해준다는 빌미로 물건살때마다 이윤을 챙기는것 같으며,
현지가이드는 식사까지 책임을 져서 그들이 안내하는곳까지 가서 식사를 하게하였으나 이모든것이 가이
드와 업체의 거래로 눈에 보이는 행동들이었다.
산행가이드는 종주후 소한마리 파티를 하자고 제의한다. 온천을 하려고 해도 가이드가꼭 있어야 된다. 백두산온천장이 시골목욕탕수준도 않되는데 무슨 1만원씩 받을꼬?
왜 이러한 시스템이 통용되는지 한국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중국과 북한만 그렇다고 한다.
아마도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고용창출의 목적일것으로 보이며, 자본의맛을 본 가이드등은 어떻게든 맡은 책무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익을 챙기려하는것으로 보인다는말이 맞는것 같았다.
백두산까지가서 입장료가 비싸다고 않들어갈수도 없을것이며,
백두산온천이 1만원이라고 않들어갈수도 없을것인바,
정해진 요금은 어쩔수 없다해도 절대로 중국에서 팁은 않주는것이 현명하다 생각된다.
황산에서 산꼭대기까지 허리가휘게 음료수와 쌀을 나르는 사람의 하루인건비가 1만원이라고 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중국인들은, 특히 한국사람에게는 중국내에서 모든것을 한국국내 값이상을 불러서 받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단한 갑부일것이 아니겠는가? 이들에게 1달러씩의 팁은 돈으로도 않보일것이다. 황산의 짐꾼에게는 예외겠지만,
약조된일정을 팁을 않준다고 않해줄수는 없을것이다.
중국에서 서비스업하는사람들에게는 냉정하게 팁을 거부해야될것으로 생각되었다.
버릇을 아주 고약하게 들여놓은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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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5일
08:00 이도백하역에서 기차를 타고 송강하역까지 갔다
10:00 송강하역 도착 --이후 버스로 이동
21:00 관전숙소 도착
↑ 이도백하역 앞에서 (백두산갈때 최근접 열차역)
↑ 이도백하역 앞 광장의모습 (차량들이 소형들이 많다. 동북3성들은 중국내에서 못사는동네이기때문인가보다)
↑ 이도백하역의 대합실내 출구장
↑ 이 열차로 심양까지도 갈수 있나보다. 같은거리에서 시간이 버스보다 더걸린다고 함
↑ 객실내부 / 한쪽은 2인석 다른쪽은 3인석으로 되어있다./ 좌석권은 있었다.
↑ 만주벌판을 달리며
↑ 송강하역 / 꼭 70년초의 우리나라역과 꼭 같다.
↑ 송강하역 출구
↑ 송강하역 광장
↑ 통행료 징수중 / 우리버스는 이곳에서 속도위반으로 걸려서 운전수가 한참 않보였다.
↑ 사진을 실내에서는 못찍게하였다./ 그것을 위반한 사진. =^_^=
↑ 나무가 특이하였다. 가지가 힘이 없어서 밑으로 쳐지드만. 우산같음
↑ 사진을 또 못찍게 하는데 들어가보니 돌침대가 2개 놓여져있었고 그위에 광개토대왕과 비의 시신을
놓았다고 한다. 안에서 한사람이 지키고 서있었는데, 돌침대위에 돈을 무척많이도 던져놓았더만.
↑ 자료실에 들어가보니 일본사람들이 우정지웠다는 탁본
↑ 광개토 대왕릉- 문헌이 남아있으므로 확실함
↑ 아래위의 사진이 우리매스콤에도 나왔던 환경파괴주범 북한의 동제련소/앞의산은 모두 북한산
↑ 문헌이 없어서 추측만되는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릉
↑ 사면에 이러한 돌을 세운 이유는 당최모르겠다함. 이돌들갖고는 받치는역할도 않되므로...
↑ 장수왕릉뒤에 5개의 왕비의묘가 일렬로 있는데 그중에 이것만 유지되어있다고함
↑ 1500여년 전의 묘들인데, 돌위에 시신을 그냥놓아두는 형태였다고함./그냥 돌침대만 달랑있슴
↑ 국내성 터 / 관리를 않하고 그냥 공원으로만 지정해 방치한 상태임
↑ 우리같이 과일이 달지도 않고 꽈리도 먹는 과일로 치데?
↑ 이동수단 / 건너편의 산은 북한쪽 산임 / 200M만가면 이길끝이고, 압록강임
↑ 이꼬치 한줄에 1.2위엔 10개에 12위엔이므로 위 한접시에 1560원/ 양과소고기꼬치는 한개에
1위엔이므로 10개한묶음에 1300원임/술도 고량주 한병에 중급이 50위엔=6500원 맥주는 12위엔=1600원
정도임.
여담:
중국열차를 2번째 타본다. 첫째는 침대열차를 타고 만주벌판을 달려 이도백하까지 가본경험이 있었는데,
안개가 자욱한기억,뜨거운물을 각침대칸마다 승무원이 배달해주던기억.칸칸마다 승무원이 있는기억이 있었다.
그야말로 3등완행열차를 2시간동안 처음타보았는데 3인석 2인석이 한줄로 된 시스템이었다.
역시 각칸마다 여승무원이 있었으며, 이상하게 모두다 뚱뚱한사람들이 많았다.
역에 도착하면 각승무원이 열쇠로 문을 열어주고 달리는 중에는 잠궈 절대로 문이 열리질 않는다.
과일등을 팔때도 근수를 달아서 팔았으며, 열차안에서 수박반통을 사와서 숫갈로 파먹으며 가는사람도 있었다.
내릴때 조금만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밀려닥치는 인파로 하차는 불가능하므로 절대로 일찍나가서 서 있어야되었다.
이동수단도 비행기빼고는 다타본것 같다. 중국에서 명절때 한달걸려 이동한다는것등을 약식으로 체험해본 같아서 이런한점이 이여행의 특징이었으며 재미있었다.
버스를탔다하면 11시간. 배를탔다 하면 17시간. 줄서서 기다렸다 하면 2시간. ㅎㅎㅎㅎㅎ 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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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6일~27일
오늘은 중국을 떠나는 날이다.
단동항에서 가까운 북한접경지역을 보게되는데, 호산장성과 압록강 신의주 일보과 등을 둘러보게된다.
관전에서 단동으로 와서관광후 단동동항국제여객터미널도착후 단동페리호 승선 숙박(17시간 배이동)
오늘 여행기:
박작성과 일보과에 다시한번 가보았다. 호산장성도 산중턱으로 끝까지 계단을 돌려설치해놓아서 굳이 장성위로 않걸어올라가도 한바퀴돌수있게 구조물설치를 해놓았다.
가이드없이 집사람과 단둘이 중국인과 손발로 거래했다.
담배를사라는것을 마다하고 과자를 하나사서 쪽배를 올라탔다 1인당4천원씩인데, 조금 올라가니 바로옆
에서 북한군이 국경철조망을 건설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아마도 식사용으로 민물고기를 잡는가본데, 피래미같은것만 많이잡혔다. 쪽배주인에게 가까이 가자고 하니, 1~2명이면 전해줄수 있어도 저렇게 사람이 많으면 않받는단다. 수고하신다고 소리를치니 한번힐끗쳐다보더니 이내 고기잡는일에만 열중한다. 당최 대꾸들을 않한다.
다시, 단동의 압록강단교를 보고 유람선을 탔다.
북한군과 인민들이 많이 있었으며 일요일이라그런지 수영도 하고 맥없이 앉아서 단동쪽을 쳐다보고도 있었다. 손을 흔들어보이니 많은 사람중 한사람이 손들흔들어 답을 주었다. 예전에는 어린애들이 손으로 상스러운모습을 보여주던것은 없어졌고, 그냥 무관심한척 쳐다만보고 혹은 다른곳을 보고 있다.
주변의 배는 정말로 보잘것 없이 녹슬어 운행이나 할수 있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들은 반대편쪽의 중국단동시를 보고 있을것이다. 유람선에는 주로 한국사람도 많이 탔다는것도 알수 있을것이다. 당최 대꾸들을 않한다.
단동시내의 청류관으로 마지막 식사하러 갔다.
청류관이라는 이름은 예전에 다른곳에 있었는데 이곳도 똑같은 이름으로 운영되어지고 있었다.
점심식사라서인지 손님은 없었고, 예전에도 그랬듯이 식당 뒷쪽에서 30대정도의 북한뺏지를 달은 청년몇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느낌이 감시원이다.
12시30분에 공연을 한다고 하였는데 우리밖에 없고, 12시28분이 되어설랑 아가씨에게 공연시작여부를 물었다. 어물쩍하며, 곧 한다고 답변을 하는데 시원치가 않았다. 않하려나??
공연이라야 별것아니다. 서빙하던 아가씨들이 룸으로 들어가 옷갈아입고는 전자올갠하나 달랑놓고 반주
하면서 1명내지 2명이 노래3~4곡 부르고는 끝이다.
여기도 역시 똑같다.
분명 노래와춤교육을 받은 아가씨들이고, 젊고 예뻤다.
다물학교에서 이들에게꼭 팁을 주라고 권장한생각이 난다. 아무리 북한공산당의 외화벌이라도 개인에게
준것을 너도나도다아는데 그팁을 모두빼앗지는 않을것이라며 그들의 부모에게조금이라도 돌아갈것이므로 팁을 주실수 있는데로 숨겨서 많이 듬뿍주라 권장했었다.
역시 오늘도 마이크가 나에게 넘어왔다. 꼬깃하게접은 돈을 집사람에게 쥐어주고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
도록 속삭인후에 부부가 나아갔다. 고향의 봄 이었다.
집사람은 행여 누구에게 보여지면 이아가씨가 갖지못할까봐 노래가 끝날때 까지 손을 붙잡고 놓지를 못하였다. 누가봐도 추측할수 있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아래에서 이어짐)
↑ 관전시내의 아침모습
↑ 삼륜차가 보인다. 중국인들은 아침을 거의 사먹는데, 5층에서 줄을 매달아서 올리는모습을 보았다.
↑ 우리의 고구려 박작성인데, 중국은 동쪽맨끝의 만리장성 시작점 이라 우기는곳 .우리城 임
↑ 일보 앞으로 가면 북한땅 일보 후퇴 하면 중국 땅이라는 뜻에서의 일보과
↑ 국경선인 이개울을 다니는 중국쪽배 1인당 4천원씩이었슴
↑ 왼쪽풀은 북한땅 오른쪽절벽은 중국땅 / 지금 국경선을 타고있는중임
↑ 조금가니 나타나는 북한군인들 국경선철조망 작업을 하고있었다.
↑ 일부는 작업하는데 내놓고 일부는 고기를 잡고 있었다. ??
↑ 가까이 가자하니 중국배주인이 않된다고 한다. 저인원에서는 않받는단다.
중국사람들이설치한 참게통발이 많았다. 북한군인이잡는 그물을 들여다보니 피래미종류들뿐이다.
↑ 압록강 단교모습. 미국이 북쪽다리만 부수어 놓았다. 옆은 조중 우호교라해서 새로이 설치한다리
↑ 신의주 압록강에서의 북한쪽 물놀이
↑ 이날이 일요일이다.자유스럽게 단동항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이 보는 느낌은 어떠할까.
앞의 배에는 남한사람이 타고 있다는것을 분명 알터인데..........................
↑ 북한담배
↑ 청류관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요리들 (이후에도 오리구이등 많이 나왔는데 우리팀은 모두 싹싹
비웠다. 음식이 정말 맛갈났다.김치가 맛있어서 추가시키니 2천원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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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여행기 위에서 이어짐)
노래들을 하려니 표정은 있어야할게이고 그표정에서
북한사람들이 나에게 여지껏 의문을 준 "당최대꾸를 않하거나 시큰둥했던답"을 읽을수가 있었다.
서로이 사람을 위한다는 목적은 하나이면서,
그 방법이 틀리다 하여 원목적을 잊을수는 없을것이다.
핑계로서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아세워놓고,
자기들의 세력들만 키우는 양쪽모두에게
사람들은 그저 대꾸없이 마음속울음으로 보내고 있슴이다.
↑ 긴여행일정중에 유일하게 모든일정이 끝난 청류관을 출발할때만 비가내렸다.
누구의 눈물일까..
일보과의 고기잡는 인민군일까.
하염없이 이쪽을 바라보고있는 신의주 주민들일까.
적대관계의 형제에게 식사를 날라주어야하는 청류관 아가씨일까.......
아니면 내마음속의 이념 정치인들에 대한 서운함일까........................................
광개토대왕일지도 모르겠지......................................................................
↑ 또 시작된 중국측 출항 난리통
↑ 중국단동항에서 예인선이 넓은곳으로 끌어놓아주고 돌아가고 있다.
↑ 잘있으라요 북한 닌민들이여!! 백두산이여 광개토대왕이시여~
마감:
백두산 천지 종주는 산꾼이라면 한번 시도해볼만한 가치있는곳이다.
비행기로 심양도착후 이도백하까지는 침대열차등으로 가서 천지등반을 하고
올때 관광버스와 배를 탄다면 골고루 여행의 참맛을 느낄수 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먹고 보는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닌,
어떤 의문과 지식을 갖고 여행을 하면서, 답과 확인을해간다면, 더욱더 값지리라생각된다.
집사람과 천지등반을 하고픈 작은소원하나를 이루던날에
2007.8.29 작성함
첫댓글 작은소원을 이루고 또다시 새로운 소원을 만들며 하나씩 그 꿈을 이루어 나갈때 삶의 보람을 느끼게 돼는가보다! 축하혀네! 다음에는 우리 죽기전에 중국땅이 아닌 우리땅을 밟으며 백두산에 오르게 돼기를 다같이 기도혀유!
추카혀 작은소원이 아니고 큰소원이 이루어진거 아닌감!이다음에는 북한쪽으로 갈수있기을
당분간은 가고픈 심정이 안 생기네.꼴라 씨키들
가이드에게 하롱베이와 장가계중 어디가 낫냐니깐 단연 장가계이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