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국현, 결코 진보적이지 않은 대북 대미관 |
이번 대선에는 역대 어느 대선보다 예측불허의 변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문국현이란 새로운 인물이 후보로 등장하여 지지율 10%를 넘보는 돌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거의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다가 그나마 아는 사람도 그저 유한킴벌리 사장이고 경영 방식이 독특하다 정도였다. 그런데 이처럼 정치와 무관한 사람이 갑자기 등장하여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대선 구도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기존의 구태정치, 부패정치를 걷어내고 새로운 정치, 참신한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의식 변화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문국현 후보도 자신의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정치성향을 진보개혁적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사실 이 때문에 진보개혁성향의 국민들이 문국현 후보에게 관심을 보이고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심지어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문국현 후보에게 관심을 보이고 나아가 문국현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과연 문국현 후보는 진보개혁성향의 정치인이 맞을까? 단순한 광고 이미지가 아니라 그의 발언과 선거 정책, 공약을 분석해도 진보개혁인사로 분류할 수 있을까? 진보개혁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통일, 외교, 안보 분야를 볼 때 결론은 ‘아니오’다. 세계일보가 지난 11월 20일 보도한 ‘[공약검증 대선은 정책선거로] 통일-외교분야’(홍원표 한국외대 교수)란 제목의 기사를 보면 문국현 후보의 외교안보통일공약 완성도를 이회창 후보와 더불어 ‘최하위’로 분석하였고 성향에서도 정동영, 이인제 후보보다 더 보수적, 냉전적으로 평가하였다. 통일, 외교, 안보 분야에 있어서는 이회창, 이명박 후보와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어떤 내용이 있기에 이런 예상치 못한 결론이 나오게 된 것일까. 첫째, 통일에 관심이 없다. 그의 17대 공약에는 통일 내용이 없고 심지어 남북관계에 대한 내용도 없다. 100대 공약가운데 통일, 외교, 안보 분야에서는 ‘통일’이란 단어가 딱 한 번 나온다. 대북정책의 기치로 든 “통일 지향적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나오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통일이 없다. 그저 임기 내 북핵 폐기, 평화협정 체결,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등의 내용밖에 없다. 이는 6자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진행되고 있는 것들로 새로울 게 없다. 이것들을 어떻게 통일로 지향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무하다. 만약 그가 통일에 관심이 있었다면 최소한 우리 민족의 통일이정표인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언급이라도 있어야 했다. 아니면 최근 6.15 공동선언을 잘 이행하기 위한 10.4 남북공동선언이라도 꺼내야 했다. 그러나 그의 공약에는 6.15나 10.4가 없다. 북한에 경제특구를 지정한다는 공약도 문제가 있다. 공약에는 ‘심천, 홍콩 방식의 경제특구를 북한이 지정할 수 있도록 지원’, ‘신의주, 남포, 원산 등에 경제특구를 단계별로 지정하여 개발’, ‘금융 무역, 조선, 관광 등으로 특화시켜 개발’한다는 내용이 있다.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무엇을 특화시켜 경제특구를 건설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북한 내정에 해당한다. 역으로 북한이 ‘한국의 목포, 강릉 등에 무역 중심의 나진, 선봉 방식의 경제특구를 지정하여 개발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우스운 상황인가. 또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해결에 주력’, ‘남북관계에서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해결에 역점’을 둔다는 공약도 현실을 무시한 공약이다. ‘납북자, 국군포로’는 북한이 인정하지 않는 존재다. 또 공식적으로 존재를 확인한 적도 없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남측에서 ‘납북자’라 주장해온 일부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모두 ‘납북자’가 아닌 ‘의거입북’ 즉, 월북자였다. 또, ‘국군포로’도 돈 받고 정보를 파는 믿을 수 없는 ‘탈북자’들의 주장 외에 구체적인 증거가 나온 적은 없다. 이처럼 남측에서 주장하는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는 객관 증거가 부족하며 따라서 이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마치 납치문제 때문에 북일 관계가 파탄나듯 남북관계가 파탄날 수밖에 없다. 지금 주력해야 할 부분은 오히려 남북관계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군사적 대치 상태를 해소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3항에는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보면 남북, 북미 관계가 급진전하면서 가까운 몇 해 안에 충분히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문국현 후보의 대북정책을 보면 이런 시대 흐름을 읽을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북한을 적으로 간주한다. 북한을 통일의 당사자로 보느냐 적으로 보느냐는 평화세력과 전쟁세력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문국현 후보는 자신의 공약과 발언들을 통해 대북적대의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먼저 국방 분야 공약을 보면 ‘육군은 북한의 비대칭전력 대응능력을 확보하면서 정예화’, ‘공군은 하이-로우 믹스를 통해 북한의 수적 우세에 대응하는 한편 전략적 운용에 적합한 체제 구비’와 같은 내용이 있다. 한국군이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고 여기에 대응하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통일의 당사자라면 군대도 서로 협력해야 하고 오히려 주변 강국들의 군사적 위협에 맞설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강국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오로지 어떻게 군사적으로 북한을 앞설 것인가만 생각하고 있다. 다음으로 문국현 후보의 이른바 북방한계선(NLL) 발언을 통해 그의 대북적대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문국현 후보는 11월 28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북방한계선에 대한 질문에 대해 “국민을 설득시켜 가지고 이것(남북 경계)이 오히려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좋아하실 것 아니겠냐?”며 “지금 우리 배들이 마음 놓고 남포라든가 해주로 가게 하기 위한 배려도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남북 경계가 북쪽으로 더 올라간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는 진행자의 지적에 “우리 배는 들어가게 하면서 북쪽에서는 가능한 한 이용을 못하게 하는 그런 생각들을 이제 남쪽에서 해야 된다”라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한국전쟁 후 미군 장성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포되어 아무런 법적 근거도 갖고 있지 못한 북방한계선에 대해 오히려 북쪽으로 더 올려야 하며 남측 배는 북측 해역에 마음대로 다니면서 북측 배는 이용을 못하게 하자는 발언은 어떻게 생각해도 합리성을 찾을 수 없는 강도의 논리라고밖에 볼 수 없다. 문국현 후보가 정전협정이나 국제해양법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더 위험한 것은 북한을 적대국가로 간주하고 무모한 반북정책을 고집하는 것이다. 창조한국당 김갑수 대변인은 “우리 당은 우선적으로 남북 어선 간에 충돌을 방지하는 방안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후 남북 어선의 자유왕래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국현 후보는 자기 당보다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이 더 강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문국현 후보는 자신이 반통일 호전세력, 반북세력과 어떻게 다른지 해명해야 할 것이다. 셋째, 친미예속성이 강하다. 문국현 후보의 친미예속성은 한미공조 강화,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공약에서 ‘한미 공조를 강화하여 북미 관계 개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어렵사리 마련된 민족 공조의 분위기를 다시 되돌리겠다는 말이다. 과거 한국 정부는 북미 대결 과정에서 맹목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서 오면서 아무런 주도권도 쥘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고 10.4 남북공동선언으로 민족 공조는 더욱 확고한 대세가 되었다. 최근의 모습을 봐도 남북이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을 일치시키고 미국을 압박하여 4자 정상회담장에 끌어내고 있는 모습에서 민족 공조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북미 관계 개선은 이미 대세다. 여기서 한국이 민족 공조를 하느냐 한미 공조를 하느냐에 따라 이후 자신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문국현 후보는 ‘한미 공조 강화’를 하겠다니 다시 김영삼 정권 시절로 돌아가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문국현 후보는 자신의 공약에서 ‘한미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지속 발전’시킨다고 하였다. 이회창 후보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이를 미래지향적 동맹으로 전환하겠습니다”고 주장한 것과 유사하다. 한미동맹의 예속성과 불평등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되어 친미사대주의 성향의 후보가 낙선한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불평등한 한미동맹 바로잡기’도 아니고 ‘지속 발전’을 이야기한 것은 그의 친미예속적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미래지향적’이란 표현은 친미인사들이 한미동맹 재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 등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문국현 후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문국현 후보의 대미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지난 11월 7일 한국방송(KBS) 대선후보 초청토론회에 출연해 한 발언이다. 여기서 그는 “현 정부는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지나치게 자주적으로 갔다. 그 자주적으로 간 것은 6자회담의 틀이나 한미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대북 관계에 관한한 서로의 의견을 맞추는 것이 아주 중요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과의 공조체계가 훨씬 강화될 것이다”고 하였다. 한나라당의 주장과 거의 다르지 않은 인식이다. 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 전략적 유연성 합의, 평택미군기지 이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미국의 입장에 항상 보조를 맞춰왔으며 이 때문에 자주성 없는 정권, 친미예속정권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데 그마저도 ‘지나치게 자주적’이어서 자신은 더욱 친미예속의 길로 가겠다는 발언은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문국현 후보는 통일, 외교, 안보 분야에서 결코 진보개혁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실 경제정책에서도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하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찬성하는 등 모순된 입장을 보이면서 과연 그의 진짜 성향은 무엇인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들은 문국현 후보가 막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검증되지 않은 후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며 그의 정치 성향이 과연 어떠한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겠다. |